히틀러의 복지국가 - 약탈, 인종 학살, 공범들
괴츠 알리 지음, 최준영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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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5월, 독일 바덴뷔르템 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난 괴츠 알리는 1600년대 프로이센 궁정의 시종장이었던 개종 터키인의 부계 후손이기도 합니다. 그는 독일 언론 학교를 졸업한 후,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까지, 그는 독일 좌파 학생 운동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요. 그의 개인적 회고를 통해, 이때 참여한 세대들이 "1933년 세대"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알리의 주요 관심사는 홀로코스트 역사와 나치의 인종적인 정책 수립에 관여한 인물들의 비판적 연구입니다. 특히 그는 유대인들에 대한 "최종 해결책"에 관한, 초기 정책과 행정적 차원의 실행까지, 그 전반을 연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연구는 여러 학자들로부터 인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중 일부의 학자는 비판적이기도 한데요. 특히 영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J. 에반스는 무엇보다 면밀한 분석이 요구되는 그의 경제적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2차 대전 당시의 나치 정권의 판에 박힌 인종주의적 성격보다 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유대인들을 최종 처분한 것이 중요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Hitlers Volksstaat : Raub, Ressenkrieg und nationaler Sozialismus"로 지난 200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6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이미 저자인 괴츠 알리가 수차례 언급하고 있지만 유대인들과 관련된 '최종 해결'과 그들의 재산 몰수와 관련된 통치 자료가 조직적인 문서 소각에 의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이는 과거 연합군에 항복한 일본 제국이 경성, 그러니까 서울 총독부의 보관된 통치 자료들을 한반도를 떠나기 전에, 철저히 소각했다는 점 역시, 언급하고 싶은데요. 역사 연구와 관련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이 앞선 사례들처럼 철저하게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시대의 기억들은 여전히 남기 마련입니다. 이는 국내에 있는 일부 친일에 가까운 학자들이, "아무리 일본 제국을 거악巨惡으로 취급하더라도 당시 제국을 이루던 관리들과 통치자들이 상식을 벗어난 일을 했을리가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을 봤을 때, 이들이 기대고 있는 것은 분명 조선총동부에 있던 통치 자료들의 소각으로 인한, 사료 부족일 겁니다. 증거를 대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 그것을 위선적으로 입에 담는 자들에게는 그만큼 달콤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영상 매체와 각종 영화 및 드라마 등을 통해, 아돌프 히틀러와 그가 만든 나치 정권에 대한 일정의 인식 등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특히 600만이 넘는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살해한 역사적 사실은 그만큼 나치에 대한 인종적 인식을 갖게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독일의 패전 후,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영양 실조로 깡마른 유대인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만큼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인상은 비참할 정도로 전형적입니다. 하지만 이 논저의 저자인 괴츠 알리는 당시 나치 정권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그림자를 드리운 소위 '아리안화'의 인종적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권과 특히 독일 제국 내의 중간 계급 이하의 국민들이 유럽 내의 유대인 말살을 통한, 경제적 및 재산의 이익을 분명하게 누렸다고 분석합니다. 글 1장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지만 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요제프 괴벨스가 35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28세, 알베르트 슈페어는 27세, 아돌프 아이히만이 26세, 요제프 멩겔레는 21세, 하인리히 힘러와 한스 프랑크는 32세, 헤르만 괴링 역시, 이제 40세가 되었을 뿐인데, 이들이 다른 나이 많은 세대들과 달랐던 것처럼, 당시 독일인들은 젊은 제국에서, 재빠르게 도덕적 양심이 끼치는 제약을 벗어 던졌다는 서사 자체는 의미심장합니다. 이 지점의 도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제3제국을 이끌었던 나치들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독일 국민들도 이들의 역겹고 혐오스런 정책에 동조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정권에 대한 지지를 넘어, 당시 독일인들이 그야말로 극악한 범죄 행위에 적극적 동참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독일은 1930년대 초반의 짧은 경제적 호황기를 거쳐, 1918년의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해가 될, 1938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독일은 재무장과 다름 없는 군비 증강 계획을 교묘하게 실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어음을 통한, 우회 자금 조달로 당시 제국은행 총재였던 샤흐트가 고안했던 발상이었습니다. 동시에 군은 1939년에 110억 마르크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했는데 당시 제3제국은 경상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편법이 항상 유용할 수는 없어서 1938년 4월 26일, 칙령을 발표하여, "유대인들은 5000 마르크를 초과하는 모든 개인 자산을 세무 당국에게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기에 이릅니다. 저자인 알리는 바로 이때 '유대인들의 소득 신고'가 1937년에 히틀러가 초안을 잡은 '독일 내의 아리안 민족 이외의 다른 인종을 분류'하려는 시도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는 정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독일 국민을 통한 징세는 정권의 아킬레스 건이라 여겼던 히틀러와 괴링에게, 독일 내에서 생산 활동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존재는 이들의 인종적 편견 만큼이나 이익을 가져다 줄 유의미한 자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1937년 말까지 독일 유대인들의 재산이 체계적으로 몰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첨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시 제3제국의 경제 정책을 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유럽 국가들도 공통된 이해를 갖고 있었던 '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 발행'을 매우 경계했다는 부분을 전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독일이 재무장 시기에 국채 발행을 통한 간접적 소요 충당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이기도 했지만 이 메커니즘은 일종의 '빚의 돌려막기'로 보면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2장에서 나치 정권의 정치적 이해이기도 했던, "세수원으로 활용하고 싶은 저소득 계층에 대해서는 어떠한 강력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맥락의 문제 역시 다시 한번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 시기의 나치는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에 유럽 국가들이 대항해야 한다는 명목을 걸기도 했지만 원천적으로 저소득 계층과 하위 계급에게 세금을 더 거둬들여 종래에는 국내 내부에서 이들이 '혁명의 원인'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지점에도 아리안 민족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그 역겨운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허를 찔러,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현지에서 군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게 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주둔 비용'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독일군이 소요하는 비용 전반을 제국의 재무부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 대 마르크'와 같이, 고정된 환율을 근거로, 직접적 현지 화폐로 조달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 인용되고 있는 당시 경제학자 게오르크 홀츠아우어는 '점령군 재정 운영의 표준적 관행'이 될 방안인, 현금을 포함한 현지 조달과 그에 따른 체계적인 징발과 수탈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나치 정권의 교묘한 군대 운영 방식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즉, 군대에 소요되는 비용은 독일 국민과 제국 재무부가 전부 대는 것이 아니라, 제국군이 국외에 주둔하게 될 경우, 현지 주둔 비용을 점령 지역의 국가가 철저히 부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언급되는 벨기에의 경우, 독일군의 주둔 비용을 대기 위해, 국가 차원의 예산 확보가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독일인들에 대한 여러 이미지들 가운데, '철저한 계산성'은 꼭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당시의 나치 정권 역시, 돈과 재정에 관련된 문제 만큼은 매우 철저했는데요. 유럽 내에서 자신들의 평판과 합리적인 외양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통화인 마르크화 뿐만 아니라, 현지 통화로도 비용을 받는 식의 복잡한 계산을 거쳤습니다. 이는 여기에 소개된 벨기에, 네덜란드, 비시 프랑스 정부 역시, 이러한 쳬계에 놓여 있게 됩니다. 특히, 이 시기에 개발된 '새로운 지불 수단'인 제국신용금고 증서 (RKK) 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RKK 증서는 마치 지폐처럼 생겼는데 50페니히부터 50마르크까지 다양한 액면가로 발행"되었습니다. 일종의 어음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는 제3제국 재무부가 보증하는 어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특히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 은행들은 이 RKK 증서를 프랑 화(貨)로 교환하도록 하는 '강제 법령'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점령국을 아주 철저하게 수탈하겠다는 나치 독일의 계산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1939년 9월 3일, 당시 독일 병사였던 하인리히 뵐은 "25 마르크라는 엄청난 급여"를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겠다고 쓰기도 했는데요. 전쟁 초기에 독일 병사들은 한 달에 최대 50마르크까지 송금 받을 수 있었는데 가족이 육군 우편서비스를 통해 돈을 보내면 병사들은 주둔한 국가의 통화로 지급 받게 됩니다. 또한, 주둔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병사들에게 들어가는 급여와 계속 늘어나는 가족들의 송금액은 현지 쇼핑 매대를 동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나치 역시, 독일 병사의 사기 유지를 위해, 이러한 쇼핑을 묵인했고 이렇게 보내진 유럽 각지의 상품은 가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동시에, 독일 내에서 '암시장'이 열릴 정도로, 전쟁 특수를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1941년 12월, 나치당의 이데올로그 알프레드 로벤베르크는 파리와 그 밖의 "서유럽의 모든 점령지"에서 "도주했거나 도주 중인 유대인들의 가재도구를 몰수"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는 곧 히틀러에게 승인되어, 유대인들에 대한 '최종 해결'에서 군에게 국한된 책임을 반박하는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독일 적십자사 총재였던 쿠르트 폰 베어는 "침구, 식탁보, 리넨, 도자기, 식기, 은 식기, 가전제품 등 희소한 생활용품의 배분"을 총괄합니다. 이들 물품은 배분의 첫 작전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피해를 입은, "오베르하우젠, 보트로프, 레클링하우젠, 뮌스터, 뒤셀도르프, 퀼른, 오스나브뤼크, 함부르크, 뤼베크, 카를스루에 등지"로 보내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생활 용품을 강제 징발하여, 독일인들에게 배분한다"는 아이디어는 실로 끔찍할 정도입니다. 가스실에서 최종 처분을 당한 수많은 유대인들의 재산을 괴링이 강조한 '순수한 아리안들'에게 전리품처럼 배분된다는 독특한 행정 체계는 당시에 수혜를 입었던 독일인들이나 그들의 후손들이 히틀러와 그 일당들이 벌인 '유대인들의 절멸'에 어떠한 감정을 가지게 될지 짐작하게 만드는데요. 이때의 혜택을 전해 들었거나, 자신의 친족이 그 해당인 일 경우, 결코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들의 말살'을 대하는 독일인들의 양심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역사의 실체적 진실은 그 이면을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매번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잔인할 정도로 말입니다.

1940년 5월, 벨기에를 신속히 점령했던 독일 군부는 육군 총사령관 브라우히치 원수 명의로 "유대인을 경제 영역에서 신속히 배제하고, 유대인 기업의 재고 물품은 군이나 제국을 위해 처분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또한 나치는 점령지 국가였던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을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형태로 "네덜란드 금융 관료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이고, 다소 억지 논법이긴 하지만 네덜란드의 유대인 재산을 직접 몰수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독일군이 튀니지에 상륙하자마자 튀니지의 여러 유력 유대인 인사들을 체포했습니다. 이들 튀니지 유대인들은 공군 기지 건설에 투입한 노동자들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3,100만 프랑이 넘는 돈까지 부담해야 했습니다. 결국 나치 정권은 유대인들을 절멸로 이끌기 전에, 이들 모두가 독일 민족과 정부에 '속죄금'을 낼 필요가 있으며, 독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내의 유대인 재산 몰수를 앞선 속죄금 납부의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프랑스 정부 역시 이러한 속죄금 징수 명분에 따른 이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부추겼는데요. 다만 독일군이 그리스를 점령했을 당시, 살로니카에 있던 유대인들, 총 4만 6000명을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까지 수송하는 데 소요된 193만 8,488마르크를 누가 부담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재차 느끼는 것이지만 실로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미 글의 지면에서,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로 수송될 때, 이들이 먹을 식량과 식수의 제반 비용까지 쏠쏠하게 챙겼던 것이 저 나치들인데, 앞선 일례로 밝혀진 친위대와 살로니카 군정 사령관의 비용 논쟁은 이들이 얼마나 양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괴물들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 논저를 관통하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은 이렇습니다. 과거 제3제국을 통치했던 나치들 및 나치주의자들이 그저 인종주의에 눈이 먼, 미친 자들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현실 인식을 갖고 있던 자들이라는 규명된 본질이었습니다. 즉, 이들은 독일 전체를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논리 하에 국가를 운영했고, 특히 국내 인플레이션 관리에 철저한 계산을 기울였으며, 국가 재정에 소요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있다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독일인들을 마치 프리드리히 니체가 묘사한 것처럼, 아리안 민족이라는 우위의 인종적 이데올로기 자체에 몰입한 역겨운 국가적 정책을 도출시켰지만, 그보다 그 안의 본심은 철저히 이익적이고 계산적이었다는 면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소위 참혹한 '유대인 최종 해결'은 단순한 인종적 배제 및 강제적 분리에서가 아니라, 유대인 전부를 철저히 이용할 수 있겠다는 합리적 숙고를 통해 실행된 통치 행위 과정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금니'까지 모조리 축출되고, 가스실로 보내져 그 시신마저 화장되는 유대인들의 비참한 현실에 몇 번이나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런 서사가 제법 익숙한 저에게도 말입니다. 글의 후반부인 11장에서 노골적으로 명시되지만 "독일과 피점령지의 경제 관료들이 유대인 자산을 전시 국채로 전환하여 유대인들을 마치 참전국이나 피점령국의 채권자로 만드는 것" 자체는 그저 눈속임에 불과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역겨운 짓이지만 이들 모두가 "집단학살의 결과로 직접적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과 그로인한 집단 학살의 성공에 마찬가지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은 그만큼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7장을 거쳐, 이내 등장하는 "모두가 이익을 거뒀다"는 문장 자체는 이러한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관된 저자와는 달리, 역사학자 애덤 투즈는 괴츠 알리의 이해가 때로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언급 역시 저자가 인용하기까지 하는데요. 알리는 전시에 나치가 끝내 유대인들의 재산을 통해, 거둬들인 직접적인 세수 증가가 70%에 달한다고 판단했지만, 투즈는 그것이 과장된 수치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투즈가 제시하는 수치는 당시 제3제국의 국가 채무를 모두 포함하여, 제국의 국가 재정 비율을 따지게 될 때, 도출될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그저 외형적 숫자가 아니라, 그만큼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의 '사후 재산'에 대한 철저하고 불법적인 수탈에 확정적인 이익을 얻었다는 진실입니다. 많은 공범들을 양산하면서 까지 저들은 매우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점일 텐데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괴츠 알리의 이 논저가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현지 유럽 사회에 동화된 많은 유대인들을 아무런 죄도 없이, 편의적으로 인종 청소에 나서, 사후 그들의 생활 집기, 옷, 귀금속 등은 물론 채권과 증권 및 현금 자산까지 남김없이 뽑아낸 히틀러와 그의 정권에서 부역한 자들의 죄과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이 책의 자료와 나치 정권의 핵심 관료들의 행적등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의 독일 국민들이 어떠한 죄업 위에 국가를 다시 재건하게 되었는지, 이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대한 사과 뿐만 아니라 명확한 죄를 이들 모두가 재인식할 필요는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끝으로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유대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나치의 복잡하고도 일관된 작업은 현재 우리 역사계에 있어 단순한 인종주의적 망상 또는 극도의 나르시시즘적 실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를 1차 대전 전후로 폭발적인 폐쇄성을 드러냈던 민족주의의 배타적 발현의 한 사례로 제시하고 있기도 한데요. 저는 10장에서 다시금 드러낸 유대인들의 마지막 행로, 즉,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이들의 삶이 강제적으로 끝나게 된 진정한 연유를 밝히는 것이 우리 세대를 포함한 이후 사람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 역시도 "모든 연구자들이 주목해야 할 문제는 그동안 알려진 대중적인 이데올로기 외에 어떠한 구조적 요인들이 독일군으로 하여금 유럽 대륙에서 유대인을 제거하려 하도록 만들었는가"를 규명하는 일이라고 그 과제를 11장에서 담담히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전유럽에서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게 되는 과정에서 독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지의 당시 경제 관료 및 현지 정책 관련자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사실 자체는 유대인 절멸과 이들의 불법적인 재산 확보에 대한 공통의 범죄를 드러내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기간에 그리스에서 유대인들에게 몰수된 최종적 금 수십 톤이 증발된 사실은 이처럼 분명한 증거로 남았습니다. 이것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도 역사가들의 새로운 의무로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명분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이미 몇 가지 가설을 통해, 당시 중립국 스위스의 막대한 돈세탁 가능성을 마찬가지로 이 책을 통해 다시 고찰해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의 자료가 당시 나치가 약탈한 유대인 출처의 금이 전쟁 중 독일 제국 은행에서 스위스 국립은행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 확인 되기도 했죠. 이 나치 골드에 대한 스위스 당국의 책임 있는 발언이 나오지 않고 있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 책은 나치 정권 아래에서 평범한 독일인들이 얻은 이익에 주목함으로써, 그동안 기울어져 있던 역사 해석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이다.

베를린의 정책 입안자들은 두 가지 철칙에 따라 움직였다. 전쟁 중 누군가가 굶주려야 한다면 독일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전쟁 중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면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다른 유럽인들을 착취하기 위해 자신들이 동원한 온갖 수법이 과거의 굴욕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었다.

베를린 정권은 1933년에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 1935년에는 베르사유 조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이 두 조치는 정권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대다수 독일인의 눈에 이 조치들은 1차 대전 이후 독일에 "전쟁 책임이 있다는 거짓말"과 "치욕적인 평화"를 강요하고, 1920년대 내내 독일을 괴롭히고 모욕해온 세력에 맞서겠다는 의지로 비쳤다.

얼마 후 경제부 수석법률고문인 알프 크뤼거는 이 칙령을 "독일 경제에서 유대인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선행 조치"로 규정했다.

독일의 재정 상황이 날로 악화되자, 베를린의 나치 지도부는 체코슬로바키아 병합과 국내 유대인 박해를 서둘러 밀어붙이려 했다.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나치당 내에서도 집단학살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던 지도자들에게서 가장 강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나치 지도부는 관료들에게 "전선 병사의 가족들이 겪는 고충과 필요를 충분히 이해하고, 모든 국민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분명하게 지시했다.

1934년에 태어난 한 군인의 딸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 시절의 작은 기쁨 중 하나는 아버지가 동부전선에서 보내주시던 소포였어요. 리가에 계시던 동안 보내주신 질 좋은 버터 통조림과 향이 좋은 홍차가 특히 기억납니다."

독일군이 전장에서 참담하게 패배하던 1943년 한겨울에도, 레닌그라드 인근의 제18군 병사들은 군 우체국 통계에 따르면 300만 개가 넘는 소포를 본국으로 보냈다.

그해 10월에는 베를린, 퀼른,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뒤셀도르프에서 유대인 8,000 명이 강제로 (폴란드) 우치 게토로 이송되었다. 10일 후에는 브레멘, 함부르크, 베를린, 빌레펠트, 뮌스터, 하노버, 카셀, 프랑크푸르트 등 이미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공습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도시에서 1만 3,000명이 추가로 추방되었다. 이들은 리가, 카우나스, 민스크의 게토로 보내졌다.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소련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 투쟁을 위해 가구를 징발했다는 구실을 내세워, 국제법을 위반한 단순 절도 행위를 은폐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경제를 담당한 독일 관료들은 RKK 증서를 이용한 독일 측의 비정상적인 대량 매입을 모두 점령비용으로 처리해 네덜란드 정부에 떠넘기는 일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가장 비옥한 지역을 독일군에 빼앗긴 비교적 작은 나라 세르비아는 추가로 10만 톤의 밀과 옥수수를 납부해야 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도 비슷한 명령이 하달됐다. 독일인이 유럽 전체를 대신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명분 아래, ‘반볼셰비키‘투쟁에 기여하라는 것이었다.

1942년, (친위대의) 힘러는 제국은행 총재 발터 풍크와 논의하여 유대인들이 절멸수용소로 끌려갈 때 지녔던 금, 보석, 현금을 모두 제국 은행에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모든 연구자들이 주목해야 할 문제는, 대중적인 인종주의 이데올로기 외에 어떤 구조적 요인들이 독일군으로 하여금 유럽 대륙에서 유대인을 제거하려 하도록 만들었는가를 규명하는 일이다.

독일이 소련 점령지에 수립한 극도로 잔혹한 통치 체제는 비록 대가가 현지 주민들의 기아와 빈곤, 강제노동, 죽음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평범한 독일 국민의 장래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로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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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유진 스티글리츠는1943년 2월 9일, 미국 인디애나 주 레이크 카운티의 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나다니엘 데이비드 스티글리츠로 보험 판매원이었으며, 모친인 샬럿 스티글리츠는 퍼듀 대학의 교사였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에 위치한 사립 인문 대학인 애머스트 대학을 졸업한 스티글리츠는 이후 MIT에서 석사 과정을 밟게 됩니다. 1965년이 되자 미국 국립과학재단 (NSF) 의 연구 보조금을 받은 일본인 경제학자 히로후미 교수의 지도 아래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시카고 대학으로 옮겼으나, 1966년부터 1967년까지 MIT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고, 그 기간 동안 MIT에서 조교수를 겸임하게 됩니다. 명예로운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그는 케인스와 거시경제 이론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갖게 됩니다. 이후 그는 예일, 스탠퍼드, 옥스퍼드, 프리스턴 등을 거치면서 교수직을 역임하는데요. 2001년부터 스티글리츠는 컬럼비아 대학의 경영대학원, 경제학과, 국제공공정책대학원 (SIPA)에서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런 그는 전세계 학자들로부터 신케인즈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의 경제 이론을 그런 몇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의 긴 이력들 가운데,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은행에서 수석 부사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특히 2001년에는 정보의 비대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 2008년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 자문을 제공했지만 그는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은행 구제 계획과 관련된 실무자와 그의 조직이 당시 월스트리트와 한 배와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이를 서슴없이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10월에는 유엔 총회 의장의 요청으로 '2008년 금융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위원회의 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특히 주류 경제학을 신봉하는 여타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스티글리츠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이것이 구축한 '세계화'에 대한 분명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특히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OECD의 선진국 클럽이 (UN 이외의) 세계 경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개도국들에게 벌이고 있는 초법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Road to Freedom : Economics and the Good Society"로 지난 202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그동안 접했던 경제학자들 가운데 스티글리츠처럼 신자유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학자가 있었는지, 책을 일독한 후에 잠시 고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스티글리츠는 글의 13장 서두에서, "나는 현재가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너무도 명백해서 신자유주의가 폐기되는 역사의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이미 다른 학자들의 입에서 언급되기도 했지만, "이익은 마땅히 사유화하고 부채와 실패는 공공으로 돌린다"는 2008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자들의 저 두꺼운 얼굴을 드러내는 표현이 저에게는 마치, "신자유주의의 제2막"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일전에 마틴 울프도 인정했고 파리드 자카리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2008년의 대위기 시점으로 월가의 경제 엘리트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했던 '교리'에 완전히 반대되는 7000억달러에 이르는 '공적 자금'을 수용하게 되면서, 사실상 신자유주의는 죽었다고 봐야했습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의 도출대로 이 신자유주의가 결국에는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데 일조하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 쉽게 믿겨지지 않는 역사적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이 그 왜곡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1970년대 혹은 1960년 후반부터, 미국의 공공지출 증가와 기업들의 영업 이익의 급격한 감소로 말미암아 이것의 타개책이 필요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상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에 대한 완전 일소는 물론, 그동안 미국에서는 노동 조합을 성공적으로 안락사 시킴으로써 부유층과 기업 경영자들의 요구가 정치권에 직접적으로 먹힐, 제반 사항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미 공화당과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당시 자유 시장주의자들의 연계 역시,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게 되자, 전반적인 체제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 글에서 스티글리츠의 분석대로 처음에는 시장을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고 (이면에는 독점 자본주의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파이를 키우게 된다면 사회 역시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식의 낙수 효과 이론을 설파하게 됩니다. 물론 이 '낙수 효과'는 명백히 허위임이 밝혀졌지만 당시 그 주장의 반향은 분명했습니다. 당시 밀턴 프리드먼을 직접 대면했던 스티글리츠는 프리드먼에게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지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결국 제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와 프리드먼이 어떤 건전한 토론이 되었을지는 불명확하지만 이미 당시에 '거두'였던 프리드먼과 이제 갓 학계에 나온 스티글리츠의 위상은 명백하게 달랐을 겁니다.

저자인 스티글리츠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여실히 주장했던 '자유'와 우리의 일반적인 '자유'가 완전히 다른 개체임을 증명합니다. 그의 책에서 수차례나 등장하는 문장인 "한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부자유이다." 혹은 "일부에게는 자유를 주고 일부에게는 자유를 빼앗는다"거나, "나의 자유는 결국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는 유사한 맥락의 서사는 경제학자인 그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11장에서 명시되고 있지만 미국은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자유 시장과 작은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일방적인 내면화가 강고하여,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미국인들의 독특한 정서, 즉 자유에 대한 과도한 감정 이입을 하는 동시에, 개인주의와 이기적 탐욕, 및 욕망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서사가 이들이 말하는 자유와 맞물려, 아주 잘 들어먹혔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전에 크리스 헤지스와는 '복지'와 관련된 미국인들의 부정적 서사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요. 마틴 길렌스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정부의 돈으로 살아간다"는 그 대체할 수 없는 인식적 거부감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 혹은 좀 더 뒤로 가서 펜데믹 시절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같은 최근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는 정부의 개입 없는 원천적인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가운데,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자유는 체제를 위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런면에서 샹탈 무페가 말한 우파와 신자유주의자들의 결탁은 그것대로 이익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스티글리츠 역시, 글 후반부에서 "보수 우파의 승자 독식 사회에 대한 지지"는 부와 권력을 독점한 계층에게 있어서 "작금의 체제는 결코 불만일 수 없다"는 것을 외려 더 밝히는 꼴이라고 보여집니다. 미국 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대한 내면화가 정치 및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고, 미국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경제적 소득 위에서만 자유가 주어질 수 있다"는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그저 시민들이 뜬구름 잡는 '자유 타령'으로 일종의 관념화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스티글리츠가 전체적인 논증에서 신자유주의가 결국에는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말았는데, 미국 사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건전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치부되기 일상이었습니다. 더욱이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미국 재무부의 단면을 통해, 저자인 스티글리츠는 "재무부가 마치 월스트리트의 한 지점으로 여겨질 정도이다"라고 냉소하기까지 했는데요. 물론 이러한 사회적 기저 양상은 지금도 분명한 모습인데 신자유주의 자체에서 이 체제가 요구하는 '시장 자유'라든지, 자유 무역, 공정한 경쟁과 관련해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출현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는 다른 양상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 스티글리츠는 기존의 세계 경제에 관한 자유 무역의 기조가 도널드 트럼프로 인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고 후술 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2장에서 저자는 "현실에서 신자유주의는 손실이 사회화되고 이익은 사유화 되는 모조 ersatz 자본주의"라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더 빠른 성장과 경제적 안정은 이미 허위임이 드러났지만 펜데믹이나 기후 변화 혹은 시장의 독점화와 같은 외부효과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이론상에서의 아주 혁력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효과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입장은 명백합니다. 경제학이 숫자에 기반한 설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면 외부효과 자체는 통제할 수 없는 변이이기도 합니다. 이는 숫자로 분석하거나 더 나아가 통제선 안에 가둘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더군다나 4장에서, 보수 우파나 주류 경제학 (즉, 신자유주의)이 인간의 본성을 오도했지만 여기서 드러난 바와 같이, 다수의 시민들이 '계몽된 사익'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공공의 이익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저는 그래서 일찍이 밀턴 프리드먼이 정치적 자유 만큼이나 경제적 자유도 중요하다는 인식의 맥락이 그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치적 근본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은 시점에서 시장을 옹호하고자 경제적 자유를 섣부르게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스티글리츠의 말처럼 경제학자들과 보수 우파가 생각하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위적인지 이처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애덤 스미스를 이렇게 편파적으로 해석한 것이 시장과 경제를 위에 놓고 그 밑에 인간과 사회를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물론 극우 포퓰리즘이 등장한 이 시점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과연 무엇에 어떤 목적으로 봉사했는지는 어느 정도는 명확하지만 경제학이 인간을 초월한 물리학과 같은 위상을 바란다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이상하게도 소름끼치는 그림이 하나가 절로 그려지게 됩니다. 시장은 결코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신자유주의들의 반복되는 주장은 원천적으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차단하고 이에 사회가 경제에 요구하는 것들을 마땅히 시장이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메가폰의 외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글의 5장의 비판적 논증, 특히 금융 자본의 과도한 지대 추구, 그리고 이어지는 11장의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위기 등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미 저자인 스티글리츠는 "막대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 부유층의 소득 상당 부분이 도덕적 정당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위 계층의 불평등 한 소득 역시,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었는데요. 최근에 읽었던 케빈 필립스의 글도 신자유주의가 종래에 없었던 금융의 기술적 시도인 증권화와 더불어, 금융 자본주의의 기술적 맥락 등은 결국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9장에서 도출된, "엘리트들 가운데 일부가 미디어를 장악하여 사회적 메타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데 불균형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강조합니다. 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사회 전반을 심각한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속으로 몰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주류 산업이 된 미디어 업계가 미국 헌법이 그토록 강조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한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 원인이 바로 시민들이 체제에 순응하게끔 교묘한 논법을 지속하고 있는 이들 미디어 환경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은 약간의 논외이지만 최근의 읽은 캐서린 스튜어트의 글에서 현재 미국 내 극우주의자들의 자아 정체성이 너무나 비대하여, 소위 "헌법 위에 자신들이 있다"는 식의 기술이 보여주는 실체는 마치 주류 엘리트들과 '그들이 원하는 체제에 대한 해석'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작금의 미국 내 현실에 대해 스티글리츠는 글의 여러 부분에서. "현재 미국 정치에서 포퓰리즘의 등장은 이 신자유주의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라는 저 아름다운 표현은 결국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그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종종 정직하지 못한 시민을 만들어 냈으며 신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3부 초입의 문제는 결코 과장이 아닐 겁니다. 저자는 이미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주장의 명확한 근거나 객관성 없이 이들이 레토릭에 능한 왜곡된 달변가임을 밝히기도 했었는데요. 글 중간에 '위선이 판치는 사회'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평가는 특히 엘리트 계층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에 대한 어떠한 정당성 내지는 필수불가결한 원칙으로 포장하는 등의 위선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는 노엄 촘스키의 말마따나 다수의 시민들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는 지식인들의 존재는 물론,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이기심과 욕망을 마치 '좋은 것'으로 부채질 하면서 기본적 절제를 잃어버린 엘리트들의 존재는 1980년 이후로, 시민의 평범한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습니다. 저자는 글의 서두에서 밝힌, "(신자유주의자들과) 우파의 자유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는 분명한 분석이 바로 이 논저의 제목이 밝히는 바를 명확히 짚어냈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사회의 일부 사람들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권력에 굶주려 있는 만큼",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전반적인 본성을 너무 쉽게 치부했으며, 밀턴 프리드먼이 대중을 향해, 교묘하게 말을 건넨 것처럼 소위 많이 배웠다는 지식인들과 이들의 일부가 스스로 부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숙고할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저자인 스티글리츠가 자본주의 내에서 과도한 지대 추구의 위험성을 목도한 시점의 경계심과 도덕성의 배제를 이뤄낸 '이기심의 권력 추구'가 신자유주의를 더욱 관념적으로 강화시켜 나간 것은 분명해 보이며, 앞선 미국 내 교육이 이런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그들만의 '자유'와 시민의 삶 전반을 '그 안의 삶'으로 교묘하게 내면화 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경제 기술적 측면에서만 해석하려는 자들에게 마땅히 경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전에 지그문트 바우만이 경제학이 시민들에게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1세기도 되지 않았는데 많은 이들이 이 '경제학'을 우리가 비판할 수 없는 신성 그 자체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제가 보기에는 이를 안타깝게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저는 스티글리츠가 좋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이상하게도 앞선 바우만의 시선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비판적으로 분석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반이 좋은 사회 더 나은 삶에 있어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이 신자유주의가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고 나서야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분석된 이해가 뭔가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학자들과 달리 저자는 글의 말미에서 여러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었는데요. 그 부분은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데올로기는 규칙을 만들 자유를 포함하여 일부에게는 더 많은 자유를, 다른 일부에게는 더 작은 부여하는 제도와 규칙을 정당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더욱 최근인 2021년 1월 6일의 반란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평화로운 권력이행을 뒤엎기 위한 공격이었다. 당시 많은 공화당원이 유사종교처럼 보이는 집단이 되어 근거 없이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했고, 미국의 민주주의와 미국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소중히 여겨 왔던 자유가 위험에 빠졌다.

어느 정도의 신뢰 없이는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없으며 모든 것이 소송에 달려 잇는 세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다.

불평등이 (엄청나게) 확대되더라도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이득이 모든 타인들에게 흘러내려 모두가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더 빠른 성장과 더 높은 생활수준이 널리 공유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장밋빛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떤 형태로든 사기나 착취가 일어나지 않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프리드먼과 같은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자기 이념에 너무 집착하여 기초적인 이론적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꺼렸다.

그들은 소득과 부의 분배에 반영된 것처럼 고삐 풀린 시장과 기존의 권력관계를 옹호하려 했다.

그들은 경제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어서 착취가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경쟁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이러한 일탈의 중요성을 경시했다.

경제학은 오랫동안 물리학처럼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한 규범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이 되기를 열망했다.

우파가 추진하는 이러한 규칙과 규정 (그들이 암묵적으로 사회 계약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항)은 사회의 행복과 권력과 부의 분배에 명백한 결과를 초래한다.

공적으로 제공하는 사회적 보호에 대한 많은 반대는 집단행동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부가 언제나 비효율적이라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동된다.

만약 그것이 도덕적 정당성이 결여된 방식으로 정의되고 할당(또는 재할당)된다면 재산의 소유에서 나오는 소득에도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합법적으로 독점력을 획득하면 약품이 필요한 암 환자나 보험회사로부터 얼마든지 높은 가격을 매겨 강탈하는 등 회사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다.

우리의 다윈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는 노동자들에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야 하며 무자비해야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승리한 시대에 이들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자유에 관한 그들의 프레임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불행히도 플랫폼 기업들은 종종 협조적이이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들은 잘못된 정보의 단속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대체로 저항하며 그 결과로 발생한 피해로부터 책임지지 않는 자유를 요구해 왔다.

나는 평등, 더 정확하게는 부자의 희생으로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늘리는 것은 또한 가난한 이의 자유를 증대하고 부자의 자유를 축소한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종종 정직하지 못한 시민을 만들어 냈으며 신뢰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주어진 양의 재화가 더 균등하게 분배되는 사회가 그 재화가 소수의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사회보다 더 정의롭고 더 좋은 사회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수십 년간 생활 수준을 향상시킨 혁신 대부분은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 서 있는데 흔히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수행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이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이동하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가정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현재가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너무도 명백해서 신자유주의가 폐기되는 역사의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시장의 사도였고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 같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주장을 제시하며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했다.

그때도 지금도 권위주의는 큰 정부를 지닌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극심한 불평등과 높은 실업률로 특징지어지는, 정부가 너무 작은 역할을 한 국가에서 발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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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전략 - 트럼프는 어떻게 세계와 맞서는가 ㅣ 그레이트 하모니 16
짐 슈토 지음, 이종민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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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 10일에 태어난 짐 슈토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의 혈통으로, 부친은 어니스트 슈토이고 모친은 리즈 슈토입니다. 그는 뉴욕 맨해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소재한 남학생만의 예수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에 중국사학을 전공으로 예일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켄터키 주 루이빌의 WHS-TV에서 영화 편집자로 일했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 시사 토크쇼인 PBS의 "The Student Press"의 진행자 겸 프로듀서로 언론계의 경력을 시작합니다. 또한 그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범 아시아 경제 뉴스 채널인 아시아 비즈니스 뉴스 Asia Business News, ABN의 홍콩 특파원으로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 ABC에 입사하여 당시 펜타곤을 드나들며 취재에 나섭니다. 2007년에는 미얀마 내부에서의 잠복 취재로 뉴욕의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매년 수여하는 언론상인, "조지 폴크 텔레비전 보도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 그는 공무직으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 주중 중국 대사였던 게리 로크의 비서실장 겸 수석고문으로 일했으며, 2008년에는 외교협회의 종신 회원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Madman Theory : Trump Takes on the World"로 지난 202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6년 7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슈토의 이 논저는 일종의 르포르타주 형식의 글로, 지난 트럼프 1기의 외교 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당시 정부에 관여한 관료들과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그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미 책 제목과 관련된 의미심장한 부제로 대략 논증의 흐름을 예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언론인 특유의 집요한 탐구가 엿보여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글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1기 행정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내놓은 글들이 있어왔지만 슈토의 이 글 만큼 도널드 트럼프의 민낯을 공개한 논저는 일찍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더욱이 1기 내각에 참여했던 참모들이 트럼프에 대해 증언하는 내용들은 충분히 사실적이고 그가 벌였던 외교 정책과 군사적 실패에 대한 거의 가감없는 증거와 분석이 수반되어 있어,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 2기를 규명하는데 어느 정도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일독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제가 자주 언급했던 스티브 배넌 만큼이나 1기 당시, 무역 고문을 지낸 피터 나바로의 영향력이 트럼프에게 비교적 지대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국내에 번역된 『웅크린 호랑이』의 부족한 서평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나바로가 단순히 반중 인사로 뭉뚱그려 보기에는 아주 명확하게 자신만의 중국을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즉,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중국을 세계 무역 기구의 틀 안에 자리를 마련하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중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한 것이 당시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패착으로 보는 점의 일반적인 극우 포퓰리즘적 시각이 유독 제 눈길을 끌었는데요. 바로 이 지점에서 나바로가 왜 트럼프의 지근거리에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들은 기존의 엘리트 지배 체제를 불신하고 그러면서 여기에 대한 아무런 대안 없이, 그저 이 시스템을 비난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선동'에 나섭니다. 피터 나바로 역시, 신자유주의에 협력했던 리버럴들을 포함한, (물론 이를 본격적으로 추인하고 주입시킨 것은 과거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이지만) 당시 세계화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 나서면서 오늘날 중국의 부상을 당시 엘리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수사를 어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소위 '중국으로 인한 미국 경제의 추락'이라는 세계관에 상당한 의견 일치를 보이는 부분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미치광이 전략은 과거 리처드 닉슨이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미국이 마땅히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외교적 강경파 이상의 수사로, 오랫동안 닉슨은 이 '미치광이 전략'을 자신의 전매특허의 수사로 만들었지만 이는 포커판에서의 '블러핑'과 같은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작 자신이 키신저를 통해 드러낸 진심 어린 의도 자체는 베트남에 핵무기를 쏠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시의 닉슨을 얼마나 분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닉슨처럼 혼잡한 국내 정치와 선을 긋고 그것이 무책임한 협박이라도 할 말을 하는 소위 '강한 지도자'의 면모를 동경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가 헝가리의 극우 포퓰리스트 빅토르 오르반을 누구보다 존중했다고 나오는 묘사는 마치 "다른 방식의 강력한 지도자"를 부지불식간에 떠올리게 만듭니다. 특히 글 서두에 저자인 짐 슈토는 자신과 인터뷰를 한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서 겪어본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진심으로 의심해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여기에는 "참모들의 조언과 충고를 의도적으로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무시하는 태도" 자체로, 정작 중요한 외교 정책을 앞두고 소위 '트럼프식'의 강력한 자기확신적 행위를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근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는 이미 수차례 이 트럼프의 부정적인 자기 확신적 태도에 기반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정책 결정 과정이 거의 가감없이 폭로 되기에 이릅니다.

이런 트럼프를 좌우하고 하고 있는 세계관 가운데 그가 가장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생각은 "미국이 그동안 이용당해왔다"는 서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앞선 피터 나바로 역시 같은 나토 동맹인 "독일이 미국의 동맹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독일과 같은 국가는 우리와 경제적 경쟁자라는 인식을 강조하면서 다소 모호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미국 내 극우들은 현재의 동맹 관계를 논하면서 과거 소련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확고한 동맹이었다는 식으로 그동안 70여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동맹국과 그리고 협력국과의 전반적인 관계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어떠한 명확한 외교적 대안을 가지고 저런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이 보기에 미국의 외교 정책은 바뀌어야 하지만 냉전 시기를 포함한 과거 외교 담론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주된 행태인데요. 그래서 익명을 요구한 트럼프 1기의 전직 참모는 트럼프를 일컬어, "동맹 관계를 대차대조표 장부처럼 관리하는 꼴"이라고 냉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에야 표면에 드러났지만 이때부터 캐나다를 향한 트럼프 무리들의 불편한 감정은 독일과 같은 나토 조약에 묶인 동맹국들과의 소위 "안보의 무임승차론"을 강화시킨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미국은 저런 동맹국들에게 이용당해왔다는 서사의 핵심이 트럼프와 그를 따르는 트럼프주의자들의 핵심 인식이었습니다. 


저자인 짐 슈토는 국가의 대외적으로 중요한 정책인 외교 문제를 대통령의 자리를 사적 지위로 전락시킨 트럼프의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위 자기 확신적 태도는 과거 부동산 사업 이력으로 말미암아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이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의 가치관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정치에 들어서기 이전에 정치인들로부터 받은 굴욕으로 말미암아 기존 정치 자체에 냉소하게 되고, 그런 연유로 오로지 자신 만을 믿게 되는 일련의 오만하고 경직된 사고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3장에서 분석되는 러시아와 그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푸틴에 대해 보이는 트럼프 자신의 무력감은 잘 설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지난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것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이에 대해 CIA가 인정을 하기도 했는데요.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선거 개입은 그 나라의 정체를 뒤흔들 정도로 매우 심각한 문제였지만 트럼프는 그런 푸틴에 대해서 만큼은 비굴한 자세로 일관합니다. "푸틴의 비위 맞추기"라는 수사로 드러나듯, 2018년 7월,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굴욕적인 자세는 전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 선거 개입에 대한 푸틴의 변명을 전격 수용한 트럼프는 공동 기자 회견에서 이런 푸틴의 변명을 일절 수용하게 됩니다. 더욱이 저자는 이런 러시아에 대한 결정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이끄는 행정부의 공식 대러 정책을 번번이 거스르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일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과거 참모들은 "트럼프가 푸틴이 가진 권력을 선망하고 그를 향한 찬사는 진심"이라고 폭로하고 이런 연유에서, "그가 푸틴의 여러 면모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는 전체적인 평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와는 확연하게 반대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게 보인 태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젤렌스키와 그의 국민들에게는 굴욕적인 태도 그 자체였습니다. 커트 볼커 우크라이나 담당 특사, 피오나 힐 NSC 유럽, 러시아 담당 선임국장, NSC 소속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 등 우크라이나 문제를 담당하는 여러 고위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측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젤렌스키가 트럼프와의 정상 회담을 간전히 원하는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바이든 일가를 우크라이나와 엮으려는 열망에 트럼프는 사로잡혀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트럼프가 민주당과 그곳의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보였던 점은 다들 아는 유명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적으로 대적의 위치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국익과 개인의 이해관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점은 상당히 위험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젤렌스키에게 트럼프는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대 바이든 조사"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하라는 요구까지 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했던 젤렌스키는 이런 백악관의 태도에 백기 항복을 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 헌터와 그 아들이 몸담았던 우크라이나 가스 회사 부리스마를 겨냥한 수사"에 착수하라는 요구였습니다. 에둘러 말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미 연방 대통령이 타국의 대통령 면전에서 저런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러워 해야하는지, 아니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인 짐 슈토의 언급대로 트럼프는 대통령의 지위를 사익 추구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일종의 분석은 충분히 공감이 될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독재 국가에 대한 선택적 분노, 구별되는 적대감으로 이해될 수 있는 미국의 대 중국 정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앞선 피터 나바로의 대 중국 인식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에게 있어서, 중국은 단순히 세계 무대에서의 정치군사적 대결 구도에서 뿐만 아니라, 주된 대립은 거의 경제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중국을 악마화하면 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명확합니다. 과거 1990년대 초반부터, 중국을 개방시켜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은 것은 서방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맥락은 이러한 틀을 답보하고 있고 이런 체제 자체가 바로 세계화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데이빗 코츠 심지어 마틴 울프까지 이러한 세계화의 과정을 분석하기도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중국의 개방에는 일정 부분 미국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신자유주의들의 예견대로 중국에게 경제적 번영이 이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독재가 사라지고 자유화가 추동될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무산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전후까지, 중국은 미국의 기조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에 재투자를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2008년 전까지 미국 국민들이 무분별한 신용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지점에는 FRB의 저금리와 통화 발행 때문이 아니라 막대한 중국계 자금이 미국에 유입되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부터 최근까지의 중국 경제 매커니즘이 무조건적으로 미국에게 해가 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미국과 중국 경제가 서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 5장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2019년 5월의 양국 실무진의 협상에서 당시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거의 들어줄 생각도 갖고 있었지만 막판 시진핑의 뒤집기로 말미암아 이후 협상과 대화 자체는 무산되기에 이릅니다. 이때부터 양국은 서로를 향한 관세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어지는 북한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 그리고 동맹국인 한국에 희생을 강요하는 전반적인 이 시기 백악관의 행보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비핵화 회담 자체의 무산이 볼턴의 책임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이때 미국이 김정은을 제한적 타격을 가해 정권을 무너트리겠다는 계획까지 논의되었습니다. '코피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지만 나중에 이 작전으로 말미암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미 국방부의 분석 자료를 보고선 완전히 백지화가 되지만 만약 트럼프가 (현재 이란에 보이는) 그 즉흥적 태도로 미 공군에 의한 평양 폭격을 이도저도 없이 추진했다면 과연 문재인 정부라도 이를 막을 수 있었을지는 불명확합니다. 여기에다 오랜 동맹국인 한국에 미군 주둔비와 관련된 청구서를 실무자들을 포함한 압력을 행사해 우리 정부를 당혹하게 만든 사건에 대해, 저자와 그가 인용한 정치인들의 평가를 통해, "동맹국 한국에게 가하는 가혹한 처사", "동맹을 그런 식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분명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8장에서는 ISIS 격퇴과정에 놓여 있던 당시 시리아에서 섣부른 철군 논의는 전투에 나서고 있던 쿠르드인들과 거기에 조력을 하고 있는 미군들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동시에,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부적으로 공화당 인사들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을 반대하기까지 했는데요. 결국 한 번의 번복을 거쳐,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는 완료됩니다. 이것의 내막에 대해서도 저자는 트럼프가 당시 튀르키예 대통령이었던 에르도안의 소위 감언이설에 넘어가, (물론 트럼프 역시도 아무런 고민 없이 철군하고 싶어했지만) 현재 시리아 북부 일부는 사실상 튀르키예의 영향력에 들어가 있는 상황입니다. 저자인 짐 슈토가 에르도안이 트럼프를 잘 구워 삶았다고 내심 그리 생각하고 있는지는 불명확 하지만 이 때의 철군은 과거 오바마의 행정부의 중동의 출구 전략 및 아시아 회귀라는 명목하에 이뤄진 이라크 철군과 동일한 패착으로 규정되기에 이릅니다.   

끝으로 저는 도널드 트럼프를 통해 무엇보다 극우 포퓰리스트의 진정한 면모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독일의 나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서 저열한 측면을 끊임없이 충동시킨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포퓰리스트들 역시 유사한 매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뤄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해 "노동자들과 저학력자들에게 분명한 피해를 끼쳤다"는 인식으로 표를 얻어, 엘리트 지배 체제 자체를 경멸하고 타파해야 하는 무언가로 지목했지만 정작 저들은 아무런 대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은 그저 상상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입니다. 일전에 샹탈 무페가 말한 것처럼 "그저 권력 의지에 따른 권력 자체를 단순히 쟁취하려는 시도"에 있어, "개인의 욕망과 자신의 이해관계만이 중요하다면 그것의 결과는 사회에 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는 충분히 귀담아 들을만 합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는 이것을 명확히 설명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 자체는 선동에 너무 취약한 측면이 있는데 이를 인간 본성이라는 미명하에 방치하게 된다면 자신의 인생 대부분과 그가 속한 사회 전반이 소수의 선동 정치인들에 의해, 시스템이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현저합니다. 굳이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틀로 설명하기 보다는 이미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이미 많이 목격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글 2장에서, 한 전직 고위 참모의 입을 빌어 드러난 "한반도 긴장 상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트럼프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배경 조차 전혀 알지 못해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은 저로서도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게 있어 저 서사모아나 나우루와 같은 지위의 국가도 아니거니와 특히 70년 동맹관계와 더불어, 우리측 인사들은 어디에서나 미국을 '혈맹'이라고 거의 자랑스럽게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혈맹 국가의 수반이 저 정도의 무지라니 저로서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이 책을 위해 인터뷰한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서 겪어본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진심으로 의심해 본적이 있는지 물었다.

동맹 없는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 모든 관계가 철저히 이해타산에 좌우될 때 국제 관계란 어떤 의미인가? 정책 결정 과정이 폄하되고 무시당한 결과 사실상 대통령 한 사람이 곧 정책이 돼버렸을 때 미국의 외교정책은 어떻게 되는가?

"그에게는 지정학이나 동맹에 대한 낭만 따위는 없습니다."수전 고든의 말이다. "오로지 미국을 최우선으로 두는 데 철저히 몰두하고 있죠."

일부 트럼프 옹호론자들은 워싱턴에서 아웃사이더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당선인이 단순히 그 정책 자체를 몰랐거나, 통화가 대통령의 공식 소통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라는 늬앙스를 벌써부터 풍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피오나 힐 전 백악관 NSC 유럽, 러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청문회에 출석해, 대통령이 ‘국내 정치용 잔심부름‘을 위해 미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유일한 진짜 적국인 러시아와 전쟁 중인 핵심 동맹국의 절박한 요구를 희생시켜 버렸다고 비판했다.

일례로 한 전직 고위 참모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트럼프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배경조차 전혀 알지 못해 충격을 받았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전 세계에 생중계된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푸틴 옆에 나란히 서서, 러시아 정부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부인하는 러시아 지도자의 주장을 덥석 받아들였다.

손들랜드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줄리아니가 매달리는 바이든 부자 조사처럼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 걸린 큰 건들"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고 홈스에게 말했다.

당시 결정은 오마바 행정부 당국자들조차 훗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IS가 세력을 키우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고 인정했을 만큼 뼈아픈 실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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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돈
케빈 필립스 지음, 이건 옮김 / 다산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케빈 프라이스 필립스는 1941년 11월 30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습니다. 필립스 가(家)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및 잉글랜드 혈통으로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으로 온 이민자 집안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공화당에 매료되어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런 유년 시절을 거쳐, 뉴욕시의 브롱크스에 소재한, 공립 특수 고등학교인 브롱크스 과학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미국 뉴욕 주의 해밀턴에 위치한 사립 인문대학인 콜게이트 대학에서 정치학 전공으로 졸업했고,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공립 연구 대학인 에든버러 대학에서 유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1964년에는 하버드 대학의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필립스는 초기 경력에서 뉴욕 출신의 변호사이자 자유주의 정치인이었던 폴 앨버트 피노의 보좌관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합니다. 1968년에는 리처드 닉슨의 선거 캠프에서 유권자들의 투표 패턴에 대한 전략가로 일했고, 여기서 미국 정치 내에서 보수주의 정치의 변화를 예측해 미국 정치학 분야의 영향력 있는 논저인, 『떠오르는 공화당 다수』의 초안을 만들게 됩니다. 선거 이후, 그는 닉슨 행정부 시절 법무부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정치와는 선을 긋고, 나중에 작가와 평론가로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몸담았던 공화당에 환멸을 느낀 필립스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 당시, 더욱 확대된 부의 불평등에 대해 비판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특히 그의 여러 평론과 주지된 논점들 가운데 미국 정치가 현재 기독교적 근본주의에 가까운 신정주의적 행태로 변질되고 있으며, 일부 정치 가문들이 대를 이어 의회를 세습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 바가 있습니다. 이외에 그의 개인적 삶은, 1968년에 마사 헨더슨과 결혼을 했고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 주 네이플에 요양차 내려왔던 필립스는, 2023년 10월 9일, 알츠하이머 합병증으로 인해,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Bad Money"로 지난 2008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9년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출판사의 사정에 의해 절판된 상황입니다.

저자인 케빈 필립스의 지난 이력으로 보건대, 공화당 주류 정치에 있던 인물이 노선을 바꿔 정권과 지지 세력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의 이 논저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글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저자가 6장에서, 과거 스페인 제국의 몰락을 언급하며, 당시 마드리드에 있던 귀족들이 부패와 사치에 빠져, 그 신대륙으로부터 축적된 그 많은 금과 은에도 불구하고 세력을 잃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미국이 처한 투기적 금융 경제와 정치의 무능으로 결합된 지속 불가능한 체제를 과거 스페인과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의 사례들에서 분석하고, 2008년 즈음의 미국 경제의 몰락의 요인이 되었던 '주택 시장의 붕괴'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현격한 사례들에 앞서, 저자는 "경제 엘리트들의 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이 2007년 이전에는 없던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었는데요. 즉, 철저한 신자유주의적 이행이 이뤄진 미국 금융 시장에서 과거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 없으며, (어쩌면) 시장이 합리적으로 탐욕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에둘러 말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필립스의 분석을 토대로 이 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이 그 이전에는 생겨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2008년의 뉴욕 발 금융 붕괴의 일차적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파리드 자카리아나 마틴 울프 등과 같은 이들이 2008년의 '대위기'에 대한 수많은 분석서를 세상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언급된 내용 중 우선 미국 정치 역사에서 남북 전쟁 전후로, 북서쪽의 금융 엘리트들을 견제하기 위해 나섰던, 한때 민주당의 정당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1장에서, 찰스 긴들버거를 인용하며, "경기 순환과 절정기의 위기에서 발생하는 투기 열풍이 우려되며, 특히 금융 부문이 걱정스럽다. 경기과열이 모두 광기와 공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패턴이 매우 자주, 그리고 매우 비슷한 형태로 발생하므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금융 부문의 투기적 성격에 대해 논하기도 했습니다. 일전에 전문가들은 의회 로비로 집중된 '글래스-스티걸 법'의 무력화를 제일 먼저 끄집어 내기도 했는데요. 저자의 관점은 이와는 약간 다르게 당시 FRB의 책임자 앨런 그린스펀이 실리콘 벨리의 IT 거품을 직면하자 금리를 내리며, 시장의 거품을 만들어냈듯이, 이 주택 대출 (서브프라임)의 과도한 투기적 증권화에 있어서도 역시나 전과 마찬가지로 실질적 대책 없이, 그저 거품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연연했다고 강조합니다. 그린스펀은 알려진 바대로 강고한 '통화주의자'로서, 거품이 마냥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기존의 입장과 만약 시장이 위기에 처한다면 버블을 더 부채질하는 방법의 소위 탈출 전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2008년의 대위기는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당시 미국 시민들이 중국 발 자금으로 너무나 과도한 신용 생활을 영위했고, 더 나아가 은행 대출로 자신의 소득 규모와 맞지 않는 주택 구입에 나섬으로써, (물론 당시 정부가 이를 획책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정치와 경제의 무능과 맞물려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장에서도 이미 드러지만 당시 미국 금융 업계의 무분별한 대출 관행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다음 4장에서, 저자는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 영어권 국가들의 주택 소유 열망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당시 미국에서 다수 시민들의 은퇴 계회과 주택 보유를 위한 소위 '은행의 조력'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부채의 증권화'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에 저자는 증권화의 핵심인 CDO를 '금융 유독 폐기물'로 냉소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주택 시장이 붕괴하고도 경기 침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는 1951년과 1967년 단 두 번이었다"는 사실과 이 때는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때문에 국방부와 전쟁 호황이 시장과 미국 경제를 구한 것이라고 분석됩니다. 이러한 논리적 배경은 충분히 설득적이고 우리가 2012년 경의 중국의 주택 시장 거품을 우려했던 것처럼 굳이 2008년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시장의 과도한 거품'은 결국 다수에게 파괴적 결과를 초래하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 사실상 미국 경제의 견실한 체제 유지는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는 최우선 선결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과거 런던이 기초를 마련했던 금본위체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수습과 세계 경제 재편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영국이 갖고 있던 권력이 점차 뉴욕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1949년의 런던의 패착과 파운드화의 몰락을 다루면서 '강대한 산업 국가'였던 미국의 일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 대전 내내 석유가 새로운 에너지 원으로 부상하고 이 석유의 수급이 국가와 경제를 지탱하는 자원임을 깨달은 미국은 석유 수출국 기구 (OPEC)에 압력을 가해, 거래 통화를 달러로만 할 것을 사실상 강제합니다. 이 때의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 거래 화폐가 달러에 연동됨으로써, 환차손에 따른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더욱이 미국 경제의 부침에 따라 달러화가 변동을 띠게 됨에 따라, 이란과 같은 국가는 석유 수출 대금을 달러가 아닌, 엔화나 유로화로 변경합니다. 물론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후, 제재를 당한 국가이기 때문에 달러가 아닌 주요국의 통화로 거래하는 것이 분명 이익이었을 겁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5장은, "중국 기업들의 경우, 이란 석유 구입량 세계 1위인 국영기업 주하이젠롱트레이딩을 포함해서 대부분이 이미 유로화 결제로 전환하였다"고 첨언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인 필립스는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동안 이란 경제가 버틸 수 있었던 주요 요인에는 바로 이러한 전환이 배경이 되었을 겁니다. 이는 미국 당국의 허를 찌르는 약삭빠른 대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논의된 5장의 '피크오일' 즉, 2010년을 기점으로 전세계 원유 생산이 감소로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은 이후 현실과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셰일 가스의 혁명과 각 산유국들이 생산 설비의 현대화로 지속적인 증산이 이뤄지게 됨으로써, 2006년 이전의 예측들은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저자는 조지 W. 부시의 제2차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개입이 중동의 정치적 위기를 심화시켜, 사우디를 비롯한 국가들의 원성을 미국이 들어야만 했다고 강조합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가 이라크 전쟁에 앞서 에너지 관련 회의를 했던 것처럼, 조지 W. 부시의 후세인 축출은 결국 '이라크의 석유'가 원인이었음이 기정사실이었습니다. 당초 부시의 기대대로 후세인을 제거하여 중동의 정치적 분위기를 완화시킨다는 가정이 일전에 게리 거스틀의 분석대로 실패로 끝난 것이었습니다. 그런 연유에서 저자는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가 과연 무엇을 위해 전쟁에 나선 것인가"를 마찬가지로 꼬집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출판하고 난 뒤에도 포퓰리즘 정치를 목격한 필립스가 앞으로의 미국 정치를 어떻게 예견했을지는 불명확하지만 그는 6장 이후의 논증을 통해, '희망이 없는 미국 정치'를 직시한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는 맨슈어 올슨을 인용하여, "특수 이익집단에 의해 정치 및 경제 동맥이 막혀서, 생명줄에 해당하는 아이디어와 엘리트가 순환하지 않기 때문"에 1945년 이후, 성공을 거듭했던 미국의 정치경제가 쇠락에 들어선 연유를 (정치권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는 종래의 노엄 촘스키와 크리스티안 마라찌가 비판적으로 주장했던 바와 상당히 유사한 논리적 연계이기도 합니다. 앞서 제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남부와 서부는 토머스 제퍼슨, 앤드류 잭슨, 루스벨트, 트루먼의 지도 아래 민주당 진영을 형성하여 북서부 금융 엘리트에 대항했다."는 민주당의 이력은 현재 월가 엘리트들과 적극적으로 야합한 현실과 대비되기도 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을 넘어서는 정치 자금을 월가로부터 거둬들인 버락 오바마의 사례는 일전에 CDO를 만들어낸 "금융의 현대화" 만큼이나 노골적이고 기술적입니다. 이어지는 6장에서, "미국의 공화정체와 민주주의를 저해하면서 가문을 중시하는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저자의 예견은 마치 그 유명한 '코크 형제'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본문에서 '족벌주의'가 딱 한번 언급되기도 하지만 이 단어로 인해, 현재 미국 정치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여실히 짐작하게 하는데요. 이런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멸시와 거부의 풍조는 민주당과 공화당 이 양당을 모두 거부하는 시민들과 이들을 통해, 세력을 포집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극우 포퓰리즘 정치의 급격한 성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2008년 대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월가의 금융 엘리트들이 뒤이어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그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새로운 엘리트들의 탐욕과 그리고 도덕적 해이가 어떤 식으로 용납되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데요. 여기서 소개된 것처럼 과거의 민주당이 설사 신자유주의와 협력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 이행의 결과로 촉발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정치권(리버럴)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주지된 사실은 뭔가 아이러니하기도 했습니다. 금융 시장의 현대화와 기존의 경제 체제를 뒤바꾸게 만든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명암은 분명합니다. 저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확언을 정치권이 반쯤 수용하기 이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한 무능의 반복된 설계와 권력, 그리고 돈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는 체제만 보장된다면 그 외 다른 정치와 다수의 삶은 상관없다는 미국 부유층의 소위 '복음'을 제도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분별력이 요구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건전한 민주 체제의 우선적인 기반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시민 다수의 삶의 조건'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차 "금융 공학이 도를 넘어서게 되었다"는 이 책의 경고는 미국 시민들이 유념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도한 금융 공학은 저자의 제목대로, 정치를 뒤흔드는 '나쁜 돈'을 양산하고 결국에는 민주주의 기반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판단됩니다. 과거 "월스트리트가 '오염된' 주택저당증권 및 파생상품 판매로 오명을 뒤집어썼고, 결국 이익과 명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고 반복하는 내용은, 여전히 금융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가 필요함을 깨닫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와 미국은 2008년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은 거의 명백해 보입니다.


- 6장에서 저자는 "일본, 한국, 타이완 등 미국으로부터 군사력 보호를 받는 나라들은 미국 국채와 정부기관 부채를 외환보유고로 대량 보유함으로써 비용을 간접적으로 분담하면서 달러 가치를 떠받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었는데요. 미국의 동맹국인 우리 나라가 그저 안보와 군사적 수혜국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실은 이처럼 우리와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종교적인 유럽인들과 국제 엘리트들은 미국의 독실한 기독교 우파들이 부시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나쁜 돈 Bad Money"으로 지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과거나 현재나 금융 부문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서 ‘돈‘에 부정행위가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케인즈를 따르면서 일부는 슘페터도 따랐던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시스템이 투기와 위험에 취약하다는 주장으로 매우 유명해졌는데, 숭배자들은 8월의 공황을 ‘민스키 시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융 부문은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금융부채를 확대하여, 결국 모기지 부채를 비우량 고객과 무자격 고객들에게까지 확산시킴으로써 금융지배를 완성하였다.

틀림없이 이런 민간부채의 홍수가 금융 부문의 팽팡, 차입운영, 야심에 고효율 연료를 제공해주었고, 그 덕에 금융 부문은 1990년대 중반에 GDP 기준으로 제조업을 추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달러를 지켜보는 수십 개 국가들 때문에 다른 종류의 위험이 미국에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국통화를 달러에 연동시키는 나라, 석유판매대금을 달러로 받는 나라, 중앙은행 금고에 달러가 가득 찬 나라, 1000억 달러 이상의 국부 펀드를 자랑하는 나라들이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규제당국은 효율적시장이나 규제완화 이론에 사로잡혀서, 진행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시장의 현실을 외면하려 했다.

그린스펀이 2001-2003년 점진적으로 금리를 낮춘 것은,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후원하는 두 거대 모기지회사인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구제하려는 뜻도 있었다고 일부에서 추측했다.

미국 및 세계의 중간층 및 중상층은 평등주의에서 멀어져 사치로 기울고 있으며, 공직을 구하는 자들도 이런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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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즈 ㅣ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윌리엄 블레이크 크라우치는 1978년생으로 2015년에 TV 드라마화 된 작품인, 『웨이워드파인즈』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스테이츠빌 인근에서 태어나, 같은 주의 올린에 소재한 공립 고등학교인 노스 아이레델 고등학교와 채플힐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이런 그의 재능은 중학생 시절부터 발휘되어 이 당시에 단편 소설 및 글쓰기 준비를 하게 됩니다. 크라우치는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첫 소설인 『사막의 장소』와 『잠긴 문』을 출간합니다. 그리고 2011년에는 『런』을 자비로 디지털 출판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최근작인 『30일의 밤 Dark Matter』역시, TV 드라마화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이외에 그의 개인사로는 1998년 6월, 레베카 그린과 결혼했으나 두 사람은 2017년에 이혼했고, 2019년 당시에는 재클린 벤-제크리와 교제중이었습니다. 또한 팬들을 위해 자신의 개인 사이트를 운영중이고 이곳에서 글과 방송에 대한 소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ines"로 지난 20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4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된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15년 당시 이 작품이 TV 드라마화가 되었을 당시, 시즌 2까지 접한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에단 버크 역을 맡은 맷 딜런의 다소 부족한 연기와 극의 진행에 따라 일부에서 보이는 개연성 실종에 어느 정도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당시로서도 서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류의 완전히 다른 끔찍한 진화"는 꽤나 보기 드문 주제이기도 했는데요. 이 소설의 맨 끝에 인용되어 있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종래의 태도와는 별개로, 작가인 크라우치는 "인간이 지구에 저지른 짓거리"에 따라 인간 게놈이 변형되었고 더 나아가 오염되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경고를 이 작품을 통해, 밝히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과학적 연계의 설득적 근거는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주인공인 에단 버크는 2012년, 미국 재무부 비밀 요원으로 (통칭 시크릿 서비스) 이 극의 흑막인 젠킨스가 이때 벌이고 있던 일을 수사하던 중, 실종됩니다. 결국 모종의 연유로 그는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이다호의 외진 지역인 웨이워드파인즈였습니다. TV 드라마에서는 에단 버크와 관련된 과거 행적 가운데, 제2차 이라크 전쟁에서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알카에다에 의해 포로가 된 사항을 삭제했습니다. 아예 나오지가 않는데요. 원작을 읽어보니 영상에서 보았던 '에단 버크'의 정신적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보통 전쟁 포로를 경험한 끔찍한 기억은 삶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이기도 했던 존 매케인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5년 6개월 동안 전쟁 포로로 억류된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언론을 통해, 그때의 경험들을 진심으로 토로하며, 미국 시민들에게 나누기도 했습니다. 극의 에단 버크 역시,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전쟁 포로로 어떠한 참혹한 경험을 겪게 되었는지 접할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기억은 그의 행동 전반에 미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측면에서 말이죠.

물론 그 전쟁 포로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그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웨이워드파인즈라는 작은 마을이 본능에 있어서도 가히 정상이 아닌 곳임을 직감합니다. 마을에 실제로 통용되는 지폐가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쓰이던 달러화였고 서술되는 마을 사람들의 일견 모습들이 억눌려 있거나 부자연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를 내부의 사람들이 무슨 괴물 보는 듯한 시선은 차치하더라도 작가인 크라우치는 이 사람들을 어쩌면 "자유에 대한 기본적 욕구"가 거세된 어떤 군중상, 혹은 집단성을 그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극 후반부의 에단과 젠킨스와의 대화에서, 에단은 젠킨스에게 "당신은 이 마을을 거의 폭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일침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에 화답하는 젠킨스는 "자유란 그저 21세기에 나온 관념" 정도로 일축합니다. 지금은 자유가 아니라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고 언급하면서 말이죠.

적지 않은 작가들은 예를들어, 핵전쟁 이후의 아포칼립스적 시대상을 그려내면서, 자유주의적 질서를 잃어버린 인간 군중의 폭력적 상황을 서사의 주제로 삼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거부할 수 없는 폭력적 질서에 일방적으로 노출되고, 심지어 무비판적으로 순응한 인간들"에 대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었는데요. 후반부에 젠킨스가 말하는 아주 중대한 시기의 인간종의 보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계획의 전반은 그가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했듯이, 최소한 '계획의 대상자'들에게 앞으로의 문제를 위해, 많은 토론과 대화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시간 낭비일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의 삶이 통째로 날아가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그 이전의 삶에 대한 대부분을 재조정해야만 하는 시점에서, 9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감행하거나 탈출을 해서 목숨을 잃었다면, 기존의 체제를 넘어서는 일부 혹은 전반적인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그저 생물학적인 인간종을 유지시키기 위한 아주 본능적인 수준의 대처, 그리고 인간성 말살에 가까운 억압과 폭력, 그리고 프로파간다가 주가 된다면 그것은 수단이 목적을 배반하고 말살시키는 행위에 가까울 것입니다. 극중 어린 아이들이 아무런 도덕적 제재 없이 폭력에 물들어 있는 장면은 역겨운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런 식으로 매몰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경종을 울리기 위한 작가의 주제 의식이 어느 정도는 엿보여서, 답답한 주인공의 행보를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드라마를 못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시즌2와 시즌3으로 이어지는 미성숙의 어린 소년들의 인간성 말살의 전체주의적 개조화도 충격이지만 주인공의 비참한 몰락 역시 보는 내내 음울하고 이후에는 한동안 불쾌한 상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에 원작에 있던 요소를 드라마가 제대로 연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이후 절판된 시리즈의 나머지 작품들을 구해서 읽고 싶지만 그것이 쉽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에게 있어, 자유 의지와 선택의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외부의 개입 같은 것이 얼마나 인간 사회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외부 세계가 처참히 무너지는 소위 아포칼립스 상황이 인류의 직접적 위협이 된다기보다 그런 '비상 상황'을 이유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기본적 가치와 권리를 무참히 압살하는 어떤 권력이라든지 맹목적 믿음과 같은 일련의 폭력적 과정들이 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심히 경고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웨이워드파인즈 바깥세상에 대해선 서로 이야기 하지 않아요. 그게 하나의 규칙이죠."

"바로 그거야, 1971년에 데이비드 필처라는 젊은 유전학자는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네. RNA 재배열이나 DNA 다형성 같은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의 일이라는 걸 명심하게. 그 친구는 우리 인간의 유전적 정보가 담긴 근본적 총체이자 세포의 성장을 담당하는 인간 게놈이 변형되고 있으며, 점점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네."

"한동안 여기서 지낸 후에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현실에 동조하는 게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몰라요. 물어본 적도 없고요."

에단은 컴퓨터 모니토를 흘끔 쳐다보았다. 아주 크고 오래된 고물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쓰던 것 같은. 그렇게 육중한 모니터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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