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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직 언론인이자 전 정권의 고위 관료였던 인물이 자택에서 체포를 당했습니다. 이 사람은 기사에서, 그동안 6차례의 경찰 출석 요구에 불응한 것으로 나왔고, 그로인해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다른 혐의도 수사중이거나 곧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아는데요.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정치적 발언으로 인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취지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방위 위원들이 고발했던 점이 이번에 수사가 되면서 이어진 일로 위 사건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독서 모임에서 만난 어느 국회의원 비서관 분과의 몇가지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는 국민의힘이 새누리당이던 당시, 모 의원의 비서관을 하고 있던 분이었는데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국회의원을 비롯, 소위 고위 공무원들, 법조인들에 대한 가장 큰 문제를 거론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회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고 직무가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사사건건 법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아무리 법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따른 고려가 필요하다."는 식의 '들은 얘기'를 이야기해 주더군요. 저는 앞선 제목처럼 이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위 잘나가는 양반들이 (물론 일부겠지만)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고위 공무원이나 요직의 법조인들, 혹은 정치인들의 생리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고 과정과 인식의 범위 자체 뿐만 아니라, 소위 '특권'으로 읽혀질 수 있는 문제 의식에 있어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엘리트들의 도덕적 기준 및 법의 평등이라는 관념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 존 듀이는 시민 각자가 '정치적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래쉬 또한 시민들이 분별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갖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인용하던 크리스토퍼 래쉬의 사례가 문득 떠오릅니다. 사실 저는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 시점부터, 포퓰리즘이 어떤 정치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조로 자리매김하면서, 극단의 정치가 암세포처럼 자양분을 얻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마누엘 카스텔이 예견했던 '온라인의 혁명'이 정치적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 아니라, 결국엔 사익 추구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의 음울한 추락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발언을 쏟아낼 수 있는 매체들이 기술적으로도 발전했고 심지어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됩니다.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짧은 단편을 통해, 껍데기에 불과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정치 혹은 사회 전반을 냉소했던 장면도 떠오르는데요. 어떠한 왜곡된 '스피커'를 사회의 정화작용으로 마땅히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과 심지어 그 사람의 경제적 이익까지 챙겨주며, 그의 뒤를 봐주는 '분별력을 잃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그만큼 이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선 그 사람은 자신의 '예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하죠. 표현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그야말로 죽은 사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의 표현이 법이 인정한 '제한과 의무'에 저촉되지 않는지, 한 개인의 위치로서가 아니라, 그가 맡고 있는 직위에 따른 '제한과 의무' 범위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이를 법적으로 판단해 보는 것은 체제의 안위와 정치의 온전을 위한 그 대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법정에서 판사가 자리에 들어설 때,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몸을 일으켜 판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나, 그의 말에 경청하고 그가 조직하는 법정에 기꺼이 수복하려고 하는 것은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의 공정한 대리를 맡고 있는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판사가 심리하는 법정의 판단을 그 고위직도 아무런 사심없이 응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그야말로 법의 평등을 존중하는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정치의 범위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왠만하면 정치의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때론 정치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무엇보다 시민들이 아닌 당사자들의 의견에 따라, 법의 판단을 받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 정치적 당사자들이 시민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아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또한, 정치에 속한 인사들이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 두 양자를 엄격히 분리하고, 도덕적으로 관리하거나, 스스로 그 양자가 협력하게 되는 일은 지양해야 했으나, 실상은 이 모든것이 권력의 행태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면에서 법의 판단은 더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각한 정치적 대결구도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동업자 의식'처럼 그러한 동조 의식이 결여된, 작금의 정치 무대는 그야말로 정치적 독립이 흔들리는 양상으로 자초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이 당사자들에 의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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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20대는 학교와 동기들, 그리고 술 보다는 오로지 '헌책방'에 있었습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는 서울에도 제법 많은 헌책방들이 존재했습니다. 제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좀 특별한 사연이 있는데요. 당시에 헌책방 모임에서 만난 어느 분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중으로 저보다도 그저 몇 살 위였지만 정말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아주 다방면의 지식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그때는 "저 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헌책방을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는 다 읽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책을 사 모았습니다. 알바비와 용돈의 거의 대부분이 책을 사모으는데 쓰였죠. 덕분에 옷도 면 티셔츠 한장과 면바지 딱 하나로 충분했고, 돈 천원도 귀한 그 시절에 매우 궁핍한 시간을 웃으며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끔찍합니다. 후후.


갓 성인이 된 무렵부터 책을 잡다보니 쉽게 그만 둘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책을 읽으셨던 것도 아니고 가정 분위기도 책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때 친구들이 책 좀 그만 읽고 밖에 좀 나가라고 핀잔을 주던 기억도 나고, 군 입대를 했다가 훈련 중 부상으로 군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조정래의 아리랑 전권이 눈에 보여 반가운 나머지 미친듯이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그럼에도 책은 항상 저와 함께였습니다.


얼마전 부산 여행을 갔을 때, 보수동 책방 골목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헌책방은 20대의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바친, 집보다 가까운 존재였죠. 그렇게 퀘퀘한 냄새와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책방의 서가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책 주인장 분들께 몇 권의 책을 보여주며 책값을 여쭤보니, 알라딘 중고서점의 책값과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보수동을 처음 방문했던 2003년만해도 만원이면 몇권이나 살 수 있었는데,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판매하는 책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예전에 경험했던 헌책방의 모습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비즈니스적 측면의 그 자체였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니까 그 돈이면 그냥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주문을 해야겠다는 현실적 절충이라고 해야할까요.


예전에 주변 지인들이 저에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 너의 삶이 바뀌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제법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무엇보다 세상에 눈이 떴다고 해야할까요. 누군가에 이익으로 이용당하는 지식과 그 본질에 대해 이제는 그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머리가 명민하고 영리한 자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익히 알게 되었죠. 무엇보다 어느 사람의 기름칠이 된 언변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교적 친밀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중하고 겸손을 표명하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일겁니다. 요약하자면 그동한 읽었던 글줄 때문에 저는 그야말로 음흉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SNS를 하지 않으니 카페에서 책을 읽던 중에,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어 제 서재에 몇자 적어 보게 되었습니다. 글을 다 쓰고 읽어보니 얼핏 부끄러운 마음도 듭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지금보다 더 낯뜨거운 생각이 들면 글을 없애 버릴 수도 있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기분으로 올려 봅니다. 저의 20대가 따뜻하고 아름다웠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헌책방을 다녔던 기억 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기억을 반추하며 오랫동안 단물을 빠는 것이 인간의 고집적인 측면이라고 하지요. 저 역시 그런 범주에 하등 벗어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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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5-09-06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참 좋아하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긴 힘들더군요. 책은 읽었으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으면서 주절주절 말만 앞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적벽의 제갈량 앞에서 넌 무슨 책을 읽고 뭘 배웠길래 그다지도 자신만만하고 오만하냐고 몰아붙이는 백면서생들 보는 느낌입니다.

베터라이프 2025-09-06 15:10   좋아요 1 | URL
간혹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중에는 오만한 경우도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책과 가까운 분들은 대부분 겸손한 편이었습니다. 쓰신 내용보다는 현대 사회에서도 부와 권력을 가진 계급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책과 깊은 사고를 경험하는 것을 별로 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이행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뿌리깊은 지식과 그 활용에
대한 폐쇄적 사고가 저들에게 있는 것이죠.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들과 그런 연유로 통찰에 가까워지는 비권력층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음모론과 같은 것이 아닐겁니다. 저도 우드로 윌슨의 사례를 알고 있어 책만 읽은 편협한 이상주의자들에 대해 연민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성찰, 그리고 이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글을 읽으셨으면 합니다 ^^

Comandante 2025-09-07 12:01   좋아요 1 | URL
전 앞으로도 책을 꾸준히 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세상을 단 한치도 낫게 바꿀 순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 굶는 사람들, 나이 들어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실천이지요. 본인이 뭘 말하고 쓰는지도 모르면서 나불거리는 사람들은 정말 혐오스럽습니다.

베터라이프 2025-09-07 19:24   좋아요 1 | URL
모두가 아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으면 이 세상은 그나마 살만 했겠죠. 인식과 행동의 괴리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남들과 더 많이 알아서 그런 지적 우월 보다는 글이 분명 마음을 두텁게 만들고 눈을 개안시키는 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교육한 사람이 더 많아지고 이제는 행동해야겠다는 결심이 많아지면 세상은 좋아지는 거겠죠. 그런 연유로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아야하는 시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퇴근 후에 가본 곳은 경춘선 별내역 인근에 위치한 '지구별 헌책방'입니다.

저는 대중 교통을 이용해 방문을 했는데요. 이 별내역 근방은 저로서도 처음인 방문길이었습니다.





별내역에서 지도 어플의 정보대로 길을 따라 책방이 있는 모 오피스텔 건물에 도착을 했는데요. 책방은 오피스텔 상가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었고, 따로 이정표는 있지 않았습니다. 건물이 총 2개이니, 안쪽에 길을 따라 잘 찾아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서가는 크게 4개 정도로 길게 놓여져 있었고요. 상당히 빽빽하게 책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맨 왼쪽 서가에는 제법 오래된(1980년대) 책들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책 분류가 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매장 자체가 매우 깔끔한 공간이라 예전 헌책방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은 입구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이고요. 대충 보시면 알겠지만 책들 대부분은 상태가 좋아보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따로 가격 책정이 되어 있는 책을 제외하고는 권당 1천원으로 판매하고 계셨는데요. 이곳은 무인 헌책방이라 책을 고르고 나서 사장님의 계좌번호로 입금을 하시면 됩니다.




다른 블로거들의 책방 소개글로 보건대, 여기의 책들은 대부분 기증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방이 있는 오피스텔이 신축 건물이고 상가 건물도 꽤나 규모가 있어 보여서 과연 월세 운영이 되실지 조금 걱정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책도 권당 1천원에 판매하고 계셨으니까요.




이렇게 도합 8천원에 구매를 했는데요. 책방에는 이외에도 양질의 책들이 많으니 한번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저에게는 열화당에서 나온 보들레르의 저 책이 득템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요.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도 꽤나 반가웠습니다. 저도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판형에 새로운 번역보다 이런 옛날 번역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저 중에 우선 아니 에르노의 얇은 소설부터 읽어볼까 합니다. 그럼 헌책방 방문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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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4-27 0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내역에도 헌책방이 있었네요.요즘 서울에도 헌책방이 많이 사라지는 추세인데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베터라이프 2024-04-27 14:55   좋아요 1 | URL
싸고 양질의 헌책을 다루는 책방이 많이 사라진건 사실이죠. 서울도 이제 헌책방 구경하기 어려운 도시가 된 것 같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시우행 2024-04-28 0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말만 들었던 그 헌책방이네요. 너무 멀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네요.

베터라이프 2024-04-28 14:40   좋아요 0 | URL
저도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 더 더워지기전에 가보자 했지요 ^^; 책값이 매우 저렴해서 그래도 가볼만한 곳이었습니다 ^^

호시우행 2024-04-28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가격은 가히.ㅎㅎ
 



영화 파묘가 일부 계층에게 있어 큰 반감을 일으키는 모양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과거 일본 메이지 시대의 정한론(征韓論)은 그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과 소위 천황주의자들을 대변했던 사상입니다. 저 천황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기에도 역겨운 것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했던 일본은 꽤나 짧은 기간에 근대화를 이루게 됩니다. 아마도 그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은 이웃 나라인 조선을 그토록이나 경멸하고 멸시하게 됩니다. 이는 중국 중심으로 돌아가던 동아시아 권력 지형을 거두고 자신들이 이제 아시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들은 조금씩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가 전세계 바다와 땅을 유린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제국주의를 견인했던 복합적인 측면의 근대화는 반대로 아시아인들에게는 크나큰 역사적 재앙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웃인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말이죠. 당시 일본에게는 대만의 점유와 더불어, 조선 반도를 침탈하는 것이 저들 말로는 자신들의 이익에 무조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조선에 정치적으로 견고한 독립국이 유지되는 것은 전혀 바라지 않는 일이었죠. 더욱이 자신들의 왕을 소위 천황으로 받들면서 주변국의 전제 왕정은 사실상 일본의 지배에 걸림돌로 취급했습니다. 여기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조슈 번의 대두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요시다 쇼인을 포함해, 그토록 정한론을 꺼내든 저들의 요구는 결국 우리에겐 비극적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가 굳이 정한론을 꺼내 들게 된 것은 우리 나라 저변에 깔려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것들이 실상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이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조선을 먹어야겠다고 한 것인데, 그저 쌀 수탈을 비롯한 자원 수탈과 인력 송출을 위해 알량한 사회 기반 시설을 깔아 놓은 것이 과연 순수하게 조선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이 부분과 관련해 역사학자 알렉시스 더든은 과거 일본의 조선 지배를 "계몽적 통치"라는 말로 비꼬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이점은 일전에 영국이 인도에 사회 기반 시설을 어느 정도 구축한 사례와 더불어 이해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지난 조선이 1860년 이후의 그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써버린 것은 당시 정치 권력의 무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제 왕권이 근본적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점은 소수의 지배 계층이 향유하고 있던 권력의 독점이기도 했지요. 고종 시대를 뭔가 재조명하고 싶어했던 이태진 선생의 취지는 어느 정도 존중합니다만 지난날 우리의 양반님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위해, 조선의 국왕과 체제 전반을 개혁하기 위한 진정한 시도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주변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체 말입니다.


양날의 보도처럼 현재 우리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것이 '반일주의'입니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현재 일본 대형 서점들 곳곳에는 '혐한(嫌韓)'을 주제로 한 책들이 아주 미친 듯이 팔리고 있습니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미 혐한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아주 명확히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소위 우리나라의 대형 언론사 몇 곳도 일본에서 현지어 서비스를 하며, 혐한의 유사한 형태로 아주 기깔나게 팔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은 따로 담지 않겠습니다. 이 반일과 관련해 우리가 인지해야 되는 점은 과거 역사가 결코 청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에서 말입니다. 1945년 이후, 맥아더가 당시 USS 미주리호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으면서 천황에 대한 일종의 양해 혹은 양보를 일본 측에 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노골적인 전쟁 책임을 천황에게 하지 않겠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일본 천황제의 존속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미국 측의 당면한 국익에 따라 당시 군부와 행정 권력이 서로 공감하고 동의했던 부분인데요. 냉엄하고 절차적인 국제적 전범 재판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 비참한 전쟁이 여타 잡음과 갈등 없이 신속하게 끝나야만 하는 정치적 요구가 있었던 것이죠. 미국과 일본에서 말입니다. 


결국 일본 천황은 전쟁 범죄에 대해 면죄를 미국에 의해 확약받았고, 일본은 이러한 맥락의 왜곡된 전후 과정을 경험하고 나서, 추후에 이것이 자신들의 국가적 가치관과 역사를 보는 관점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뭐 그것은 아주 '자의'에 가까운 의도로 말입니다. 특히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 있는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주변국들에 대해선 오로지 국익을 방패 삼기도 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자신들도 알고 보면 전쟁의 피해자라면서 말입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당시 일본 지도층들은 아마 이런 말을 했다죠. "우리가 미국에게 진 것이지, 타이완과 조선, 중국에 진 것은 아니다."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자들은 정말 치를 떨 정도로 역겹고 감히 인두겁을 쓴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흡사 반일은 우리 나라에서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요술봉과 같습니다. 일본에 대한 겸허한 역사적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일반 시민들의 요구를 '좌파'로 매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친일 청산 문제에 있어선 진정한 반성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반민 특위는 차치하더라도 일본의 뿌리 깊은 잔재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불행한 우리 민족의 운명과 졸속으로 처리된 일본의 전쟁 책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 비판에 대한 목소리를 좌파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의 마음을 너무나 저리게 만듭니다. 그런 연유에서 황현필 선생도 이와 같은 심정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과거 일본 제국이 이 땅에 저지른 수많은 만행과 그런 절망의 시대에서 자신의 알량한 이익을 살뜰히 챙기면서, 피땀 흘려 목숨을 바쳐 가며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선열들을 욕보이는 것은 물론 "나도 일본이 이렇게 일찍 패망할 지 몰랐단 말이다!"라는 지독한 변명으로 일관했던 자들의 민낯은 참으로 3월의 어느 날을, 처참한 기분에 빠지게 만듭니다. 최소한의 금도라는 것도 없는 자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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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3-06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터님 책 외에 이런 글도 무척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밀린 글을 다 확인 못해서 이제서야 찾아 읽었습니다. 신문 사설 읽은 기분입니다^^ 어제 친구랑 파묘를 보고 왔어요. 너튜브에서 황현필 쌤 구독하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가지고 있다해서 궁금했거든요.

친일청산을 못한것이 두고두고 나라에 큰 걸림돌이네요.
그것 때문에 불필요한 이념 전쟁이 끝도없이 이어져 뉴스만 보면 답답합니다. 건국전쟁같은 영화도 분노를 일으키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베터라이프 2024-03-06 23:2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

너무 과찬을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ㅠㅠ 사실 이 글을 쓴 계기가 된 것이 미미님도 말씀해주셨지만 황현필 선생과 관련된 터무니 없는 비난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파묘도 일부 사람들에게 가당치 않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일전에 슬라보예 지젝이 그랬던가요. 하나의 사실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비틀어서 아예 다른 측면의 주장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고 나서 새롭게 발견된 요즘의 신기한 현상이라고 말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우연히 검색을 통해 발견한 헌책방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책보고'에도 참여하고 있는 책방이었습니다.





대중 교통 이용시, 지하철 7호선 공릉역에서 찾아가시면 됩니다.





책방 입구입니다. 지하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바로 입구에서 찍은 모습니다. 이 책방은 주로 만화 도서와 판타지 및 무협 소설을 대량으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헌책방 치고는 책 분류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반가웠던 이디스 워튼입니다. 구매할까 잠시 고민해 봤네요.




이렇게 도합 5권을 구입했습니다. 총 16500원이었습니다. 잠깐 다녀온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이 책방은 주로 만화와 책대여점에서 주로 보이던 무협과 판타지 소설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반 도서들의 장서 보유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다만 책들은 대부분 상태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단편집입니다. 1998년 초판입니다. 저렇게 띠지까지 온전해서 신기했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입니다. 여백에서 나온 2007년판입니다. 이미 민음사에서 개정판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지요.




소위 문제적 작가로 불리는 미셸 우엘벡입니다. 플랫폼이라는 장편이고 2002년 초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동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조금 훑어 보았는데 묘하게 흡인력이 있더군요.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페터 슈미트의 장편입니다. 2005년 6쇄였습니다.




선물용으로 구입한 이해인 시집입니다. 2009년 20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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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1-25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책 많은데>표지판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겠어요 귀여운 표현ㅎㅎㅎ 무협말씀하시니 상태좋은 묵향이 있나 궁금하군요ㅎㅎ 저는 중고책방에서 찾을 목록들을 늘려가는 중입니다. ^^

베터라이프 2024-01-25 10:58   좋아요 1 | URL
워낙 무협과 판타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책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찾으시는
묵향이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 왜냐하면 여기 소개되어 있는 유튜브에 만화 희귀판 구하는 분들이 여기서 애타게 구하던 책을 발견하는 모양입니다. 한번 나중에 내방해보세요~ 책방 이름도 정겹고 좋은데 사장님들도 매우 친절하셨어요 ^^

Comandante 2024-01-29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책방에서 하루종일 시간 보내며 살고 싶습니다 ㅎㅎ

베터라이프 2024-01-30 07:07   좋아요 0 | URL
이런 책방의 묘미는 곳곳에 숨어있는 좋은 책이죠 ^^ 주말에 시간 계산 안하고 박혀 있기 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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