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가 일부 계층에게 있어 큰 반감을 일으키는 모양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과거 일본 메이지 시대의 정한론(征韓論)은 그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과 소위 천황주의자들을 대변했던 사상입니다. 저 천황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기에도 역겨운 것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했던 일본은 꽤나 짧은 기간에 근대화를 이루게 됩니다. 아마도 그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은 이웃 나라인 조선을 그토록이나 경멸하고 멸시하게 됩니다. 이는 중국 중심으로 돌아가던 동아시아 권력 지형을 거두고 자신들이 이제 아시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들은 조금씩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가 전세계 바다와 땅을 유린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제국주의를 견인했던 복합적인 측면의 근대화는 반대로 아시아인들에게는 크나큰 역사적 재앙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웃인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말이죠. 당시 일본에게는 대만의 점유와 더불어, 조선 반도를 침탈하는 것이 저들 말로는 자신들의 이익에 무조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조선에 정치적으로 견고한 독립국이 유지되는 것은 전혀 바라지 않는 일이었죠. 더욱이 자신들의 왕을 소위 천황으로 받들면서 주변국의 전제 왕정은 사실상 일본의 지배에 걸림돌로 취급했습니다. 여기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조슈 번의 대두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요시다 쇼인을 포함해, 그토록 정한론을 꺼내든 저들의 요구는 결국 우리에겐 비극적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가 굳이 정한론을 꺼내 들게 된 것은 우리 나라 저변에 깔려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것들이 실상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이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조선을 먹어야겠다고 한 것인데, 그저 쌀 수탈을 비롯한 자원 수탈과 인력 송출을 위해 알량한 사회 기반 시설을 깔아 놓은 것이 과연 순수하게 조선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이 부분과 관련해 역사학자 알렉시스 더든은 과거 일본의 조선 지배를 "계몽적 통치"라는 말로 비꼬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이점은 일전에 영국이 인도에 사회 기반 시설을 어느 정도 구축한 사례와 더불어 이해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지난 조선이 1860년 이후의 그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써버린 것은 당시 정치 권력의 무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제 왕권이 근본적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점은 소수의 지배 계층이 향유하고 있던 권력의 독점이기도 했지요. 고종 시대를 뭔가 재조명하고 싶어했던 이태진 선생의 취지는 어느 정도 존중합니다만 지난날 우리의 양반님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위해, 조선의 국왕과 체제 전반을 개혁하기 위한 진정한 시도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주변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체 말입니다.
양날의 보도처럼 현재 우리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것이 '반일주의'입니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현재 일본 대형 서점들 곳곳에는 '혐한(嫌韓)'을 주제로 한 책들이 아주 미친 듯이 팔리고 있습니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미 혐한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아주 명확히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소위 우리나라의 대형 언론사 몇 곳도 일본에서 현지어 서비스를 하며, 혐한의 유사한 형태로 아주 기깔나게 팔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은 따로 담지 않겠습니다. 이 반일과 관련해 우리가 인지해야 되는 점은 과거 역사가 결코 청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에서 말입니다. 1945년 이후, 맥아더가 당시 USS 미주리호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으면서 천황에 대한 일종의 양해 혹은 양보를 일본 측에 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노골적인 전쟁 책임을 천황에게 하지 않겠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일본 천황제의 존속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미국 측의 당면한 국익에 따라 당시 군부와 행정 권력이 서로 공감하고 동의했던 부분인데요. 냉엄하고 절차적인 국제적 전범 재판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 비참한 전쟁이 여타 잡음과 갈등 없이 신속하게 끝나야만 하는 정치적 요구가 있었던 것이죠. 미국과 일본에서 말입니다.
결국 일본 천황은 전쟁 범죄에 대해 면죄를 미국에 의해 확약받았고, 일본은 이러한 맥락의 왜곡된 전후 과정을 경험하고 나서, 추후에 이것이 자신들의 국가적 가치관과 역사를 보는 관점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뭐 그것은 아주 '자의'에 가까운 의도로 말입니다. 특히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 있는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주변국들에 대해선 오로지 국익을 방패 삼기도 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자신들도 알고 보면 전쟁의 피해자라면서 말입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당시 일본 지도층들은 아마 이런 말을 했다죠. "우리가 미국에게 진 것이지, 타이완과 조선, 중국에 진 것은 아니다."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자들은 정말 치를 떨 정도로 역겹고 감히 인두겁을 쓴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흡사 반일은 우리 나라에서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요술봉과 같습니다. 일본에 대한 겸허한 역사적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일반 시민들의 요구를 '좌파'로 매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친일 청산 문제에 있어선 진정한 반성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반민 특위는 차치하더라도 일본의 뿌리 깊은 잔재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불행한 우리 민족의 운명과 졸속으로 처리된 일본의 전쟁 책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 비판에 대한 목소리를 좌파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의 마음을 너무나 저리게 만듭니다. 그런 연유에서 황현필 선생도 이와 같은 심정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과거 일본 제국이 이 땅에 저지른 수많은 만행과 그런 절망의 시대에서 자신의 알량한 이익을 살뜰히 챙기면서, 피땀 흘려 목숨을 바쳐 가며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선열들을 욕보이는 것은 물론 "나도 일본이 이렇게 일찍 패망할 지 몰랐단 말이다!"라는 지독한 변명으로 일관했던 자들의 민낯은 참으로 3월의 어느 날을, 처참한 기분에 빠지게 만듭니다. 최소한의 금도라는 것도 없는 자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