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제국 상호의존성단 시리즈 1
존 스칼지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SF 멜로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노인의 전쟁'으로 유명한 존 스칼지는 소설 뿐만 아니라 금융. 비디오 게임, 영화, 천문학, 정치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입니다. 후에 자신을 공화당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와 관련된 여러 기사들과 온라인에 공개된 행적들을 봤을 때, 여타 일반적인 소설가로는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한다는 것은 작가로서도 충분히 긍정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는 이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여러 기부 활동과 그리고 팬들과의 소통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가 SF 소설에 집중하게 된 연유를 정확히 가늠해 볼 수는 없지만 휴고상을 수상하고 평단에서 '상호의존성단' 시리즈의 호평을 받은 점은 그의 작가적 수완이 남다르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The Collapsing Empire"로 2017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8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대략 천 년전, 지구와도 연결되었던 플로우가 끊기면서 인간이 문명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각종 자원을 서로 분배하여 생산하고 그런 권리를 보유한 가문들이 체제 내에서 준독점적 지위를 인정받는 행태의 이 '상호의존성단' 시스템이 글의 주요한 배경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플로우는 일종의 웜홀이나 화이트 홀과 같은 우주의 한 지점인 A와 다소 멀리 떨어진 B지점을 빠르게 연결하는 우주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플로우로 연결되는 각 시스템은 인류가 생존하기에는 난망한 지역이었지만 이들은 이 플로우를 생명선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문명 발전을 지속하게 됩니다. 보통 행성과 어떤 다른 지점으로 우주를 여행하는데 광속의 개념이 필요하다면 이 광속보다 더 빠르게 여행을 보장했던 것이 플로우였고 이 플로우를 따라 새로운 인류가 번성하게 된 것은 어쩌면 강한 개연성을 답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세계는 정치-상업-종교라는 3개의 권력 분업으로 지탱되고 특히 느슨한 봉건제하에 특정한 상업 생산을 귀족 가문이 독점하게 됨으로써 이들이 경제 권력과 사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체제로 소개됩니다. 전반적인 스토리 진행은 특정한 주인공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맞이하게 되는 붕괴의 자취를 따라 여러 인물들의 행적이 주된 서사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항성과 다른 항성간의 거리를 감안하더라도 이 플로우의 축복으로 40여개의 시스템이 우주선으로 연결되고 이러한 체제 전반을 황제와 상업 귀족이 권력을 분산하여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다만, 소수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계층을 제외한 일반 평민 혹은 시민 계층은 스스로의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지 못하며 상업적 이익과 경제적 권력이 조화와 선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사회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우주 전체가 이익 활동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배경의 설계는 인간이 스스로 땅을 딛고 살 수 있는 지역이 '엔드'라는 한 곳 뿐이라는 점과 나머지 시스템은 콜로니거나 아니면 황제궁이 있는 허브폴의 경우처럼 지하를 타고 들어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을 인위적으로 만든 지역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설정을 보고 '익스팬스'의 배경이 생각나기도 했는데요. 한정된 자원의 생산을 소수 가문이 독점하고 있고 그러한 체제에서 황제가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들은 제게 뭔가 기시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인간의 우매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특별한 우주적 현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불변하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을겁니다. 주변의 자연 법칙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플로우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흐름과 그것을 배경으로 확고하게 지속하고 있는 소수 가문들의 권력 답습이 만약 플로우가 붕괴되거나 예전처럼 기능을 지속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예측할 만한 일이죠. 이 부분에선 유독 슘페터의 주장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스스로가 지극히 효율적이라고 믿고 있는 시스템이 그렇게 철썩같이 믿고 있는 믿음으로 인해 배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것을 숱한 클리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극히 냉소적인 교훈까지 겹쳐 있게 되지요. 더군다나 여기의 귀족이라는 자들은 700년 전에, 플로우가 단절되어 고립된 2천만명을 손쉽게 버린 행적도 있기까지 합니다. 오로지 시스템의 유지라는 목적만으로 말입니다.

저는 SF가 그 존재 이유만으로도 일정 부분 어리석은 사람들을 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고전 장르의 순수성을 차치하더라도 SF만의 나레이션은 우리가 미래의 지표를 예측할 수 있게 하거나 또는 인류의 오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디스토피아의 한 귀퉁이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 스칼지의 이 글, 특히 2부에 막간으로 들어가 있는 부분은 참으로 이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치밀한 사적 욕망이 생존의 문제라는 벽을 만났을 때, 과연 권력에 심취한 인간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 수 있겠는가가 저의 주된 관심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삶의 기억을 갖고 있는 여황제가 새롭게 즉위해 들어간 '기억의 방'에 이 상호의존성단과 플로우가 거짓의 위에서 시작했다고 말하는 나레이션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짓의 위에서 탄생은 것은 마땅히 거짓으로 끝나야 한다는 음성 또한 매우 진실된 느낌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쯤에서 여러분도 플로우를 무엇으로 비교하고 계실지 짐작됩니다. 우리의 사회에서 플로우로 빗대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요.

끝으로, 순수하게 자신의 이익으로 나아가는 자가 과연 모두의 운명을 책임지게 될지는 다음 2권에서 만나볼 수 있겠는데요. 맹목적으로 이익에만 온전히 몰입하는 자들은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 무언가를 던지려고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냉소하죠. 또한 비웃습니다. 2편의 내용이 어떨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법 기대가 되네요. 저는 소설 자체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별로 없는 사람인데 스칼지의 이 작품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너무 잘 그려내고 있어서 그것대로 문제입니다. 보통 이런 스페이스 오페라란 장르가 때론 알맹이가 없는 화려함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스칼지는 아마도 그렇게 가볍게 서사를 동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좀 더 기대하고 즐겨봐도 될 듯 싶습니다.



-이 소설의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 있는 '기억의 방'은 꽤 신선한 발상이라 여겨졌습니다. 이것을 달리 해석해본다면 인간의 의식은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라 볼 수 있을지는 저의 짧은 지식으로 가늠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상호의존전단의 종말을 원하지는 않아. 우 가문을 포함해서, 너무나 많은 돈과 권력이 달려 있다" 아타비오 6세가 말했다. "인류의 생존은 중요하지 않고요?" 카르데니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그것이 상호의존성단의 종말을 의미한다면, 중요하지 않아."

의회는 여전히 문제 제기 자체를 자기들을 주변화하려는 정치적 음모라고 볼 거고. 아무도 무역이나 길드 가문의 특권에 훼방을 놓고 싶어하지 않아. 또한 이번 경우는 달라시슬라처럼 하나의 시스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 전체의 문제야. 도망갈 곳이 없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가 현재 대공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그 자신을, 그의 집안을, 엔드에 있는 그의 재산을 걸고 과잉 투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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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5 1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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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5 1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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