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자유
밀턴 프리드먼 지음, 심준보 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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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은 1912년 7월 31일, 뉴욕 브루클린의 헝가리 왕국 출신의 유대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납니다. 그가 태어난 직후 가족은 뉴저지 주의 유니온 카운티 남부에 위치한 라웨이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프리드먼은 처음에 보험계리사나 수학자가 되려고 했으나, 당시 불황에 빠져 있던 경제 상황으로 인해 경제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요. 그는 뉴저지 주에 소재한 공공 연구 대학인 러트거스 대학의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뒤, 1932년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이후 대학원은 그가 누리는 명성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한,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과 진학을 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평생에 걸친 우정'이라 평가 받는 조지 스티글러와 W. 앨런 월리스를 만나게 되는데요. 결국 그는 동시대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비견되는 학자로서의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더욱이 그의 또 다른 업적이라 볼 수 있는 소위 '시카고 보이스'로 통칭되는 '시카고 경제학파'의 초석을 쌓은 일인데요. 후에 이들 시카고 경제학파들이 양가적인 측면에서 전세계 경제학계에 끼친 영향력을 짐작해 본다면, 프리드먼의 기여는 의외로 상당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재에 이르러서 그는 학계를 넘어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사조'로 거듭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이 책은, 원제 "Capitalism and Freedon"으로 지난 1962년에 초도 출판되었으며, 국내 번역본은 시카고 대학 출판부가 2002년 11월 15일 출간한 40주년 기념판을 기반으로, 2007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판본은 1판 17쇄로, 지난 2020년 12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참고 밀턴 프리드먼의 이 논저는 그가 인디애나주 크로퍼즈빌에 소재한 와바쉬 대학에서 행한 일련의 강의에서 얻은 영감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서문을 통해, 밀턴 프리드먼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논저의 전체적인 이해를 위해, 저자 스스로가 밝힌 '자유주의'를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과거 18세기 이후, 계몽주의에 기반한 전통적 자유주의는 밀턴 프리드먼이 인정한 바대로, "자유와 복지, 그리고 평등'을 포함한 시민권 개념과 인간의 기본 권리에 대한 총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프리드먼 스스로가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앞선 의미가 아니고, 확연하게 다른 "경제적 자유주의와 시장 자유에 기반한 맥락으로 여기에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것에도 반대를 표명하는 인식입니다. 물론 그는 이외에도 "자유를 촉진하는 국가 개입이라면 당연히 유지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요. 다만, 이 글이 나오게 된 시기가 냉전이 첨예한 때였기 때문에 그에게 미국과 대결하는 소련의 체제와 그에 따른 집산주의에 결연히 반대하는 목적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하이에크과 그는 인식의 궤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밀턴 프리드먼은 우리에게 적극적인 통화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그에 따른 관세 철폐와 같은 자유 시장 개념을 도출한 경제학자로도 읽히는데요. 다만 저 개인적으로 그의 이 논저를 일독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그가 '시장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었는데요. 더욱이 스스로가 무정부주의자가 아님을 강조했기에 시장 자유에 대한 본질적 기대를 민주주의가 지원하고 그에 따라 다수의 이익이라는 측면의 공통된 가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결국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시장 자유'가 자본주의의 근간인 동시에, 이런 자유가 인간의 이익과 복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공익에 대한 언급은 이 글에서 미처 몇 번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민주주의에 대한 경제학자의 불명확한 이해도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자유'에 대한 그의 회의적인 분석은 앞선 저의 느낌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뒷받침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따라서 이 글의 2장은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부의 역할이 시장에서 보장된 개인들의 '거래의 자유'를 지원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고, 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거래가 결과론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포함한, 경제적 자유 담론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작금의 세계는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의 실질적인 축소가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악화일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결국 우리의 정치적 자유를 비롯한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쇠퇴는 이렇게 복잡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의 권력이 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한다는 그의 일관된 생각은 시장이 정치에 제한을 받지 않는 운신의 자유를 일컫는 소위 자유주의적 보장이 정부의 오판을 방지함은 물론, 그런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련의 움직임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8장의 독점과 관련된 프리드먼의 논증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정부의 독점을 용인할 바에는 차라리 울며 겨자 먹기로 민간 부문의 독점을 차라리 선택하겠다는 일종의 차악의 선택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사실상 독점에 대한 프리드먼의 인식은 불가피한 '기술적 독점'상황을 먼저 예시로 들고, 이것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 것인지 그에 대한 분석을 사실상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민간의 독점을 명쾌한 경제적 기법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그것 자체로 발전된 경제 사정이라고 보는 측면도 '시장의 합리성'을 너무나 과신하는 것으로도 읽히는데요. 그저 애매한 설명으로 '법에 의한 규제'로 제시하면서 시장에 미칠 독점의 폐해를 어설프게 비켜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예시를 드는 것들이 가히 미국적인 것인 것이라 볼 수 있는 연방 정부와 그 사이의 민간 독점 문제이고, 그는 이것의 타개책으로 세법 상황에서의 '법인세 폐지'문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은 상당히 논쟁적이지만 독점 상황과 상당히 관련 있는 면허 제도와 관련해서 예를 들어, 의사들의 면허와 같은 '면허제'의 사실상 폐지를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의사 면허 제도와 같은 시스템에 있어 프리드먼은 의사와 관련된 면허제 전반을 살펴보고, 끝내 '의료업의 요건으로서의 면허 폐지'라는 결론에 이른 것인데요. 의사와 의사 협회,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의사 협회와 같은 특수 이익 단체의 문제점들을 열거하며 이러한 '전문가들의 독점'을 언급하는 부분은 꽤나 충격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기득권과 특히나 전문가 그룹의 특수 이익을 사실상 자본주의적 속성이라고 볼 수 있는 능력주의와 맞닿은 것으로 이를 사실상 용인하고 긍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연유로 프리드먼의 이와 같은 주장은 막상 눈으로 보면서도 쉽게 믿을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더욱이 해당 장에서 논의되는 의료 협회 내지는 의사들이 기반이 된 이익 단체에 의한 사회의 부정적인 파급을 그는 언급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러한 의료 단체 혹은 협회가 병원과 사회에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이 기반이 된 서술은 프리드먼이 앞서 강조한 "독점적 지위의 형성"이라는 가시적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습니다. 사실 의사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특수 지위를 갖는 직군이라 이들의 이익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용인할 것인가에 대해 단순히 의료 서비스 제공 문제를 떠나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프리드먼은 경제학자로서 자신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시장 접근에서의 자유'를 기반으로, 이들 의사 단체들의 독특한 폐쇄성과 통제력은 앞선 '자유'에 있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의료 시장에서의 접근 자유'가 우리들의 공익에 중점이 될 부분이기도 하지만, 면허 등록과 관련된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원칙에 비추어 이익과 불이익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꽤 면밀한 제안은 의외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더욱이 무능한 의료 행위로부터 일반 시민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고, 의료 과실에 있어 보다 보상이 어렵게 된다면 이는 의료 행위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것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이 같은 면허제도는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논증되면서 이에 면허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에는 확실히 인식의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요. 더욱이 의료협회를 노동조합과 비교하여 인식하고 있는 프리드먼의 진술은 이 부분대로 충격적이라고 느껴질 만합니다. 앞서 노동조합에 대한 프리드먼의 부정적 인식을 감안해 본다면 그가 '시장 접근으로서의 자유'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선 부분과 별개로 그가 얻은 통화주의자라는 명성은 화폐 교환의 문제, 더 나아가 대략 자유로운 화폐 교환 시장의 필요성을 짐작하게 하는데요. 과거 미국의 금본위제와 관련해, 내국인들의 금소유 및 금거래 문제에 대한 정부의 견제를 비판합니다. 즉 이는 내국인에 대한 차별로 확장되는데요. 뿐만 아니라, FRB 조직 이후, 이 조직이 미국의 시장과 경제 정책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통화와 화폐에 대한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거듭 강하게 이러한 '소수의 조직'에게 그런 권력을 부여하는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지 계속 의문을 표하고 있는데요. 완고한 시장 자유주의자가 시장에 어떤 통제를 가할 문제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요. 더욱이 그는 1931년의 경제 지표를 들고 와서 당시의 연준이 국내의 통화량 감소를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비판하는 부분은 거의 노골적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상업은행의 건전성을 FRB가 사실상 해치고 있다는 측면의 인식과 더불어, 통화 당국과 다름없는 FRB의 시장 개입과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연방 정부의 시스템적 묵인 등을 꼬집으며, 이러한 법제화가 과연 올바른 통화 정책의 수렴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프리드먼은 극히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결과적으로 "통화량 증가율, 부채관리, 은행감독 등을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서 부적절하게 많은 재량권이 연준과 재무부 당국의 수중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라고 이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에 이릅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앞선 의회가 주도하는 통화 전반을 비롯한 시장 위기에 대한 법제화가 정치적 당리당략으로 좌우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프리드먼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1933년에 제정된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무력화가 시장에 어떠한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데이빗 코츠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프리드먼과 하이에크의 초석으로 제안된 신자유주의 경제, 그리고 이 체제를 강력히 옹호한 일련의 신자유주의자들이 특히 국방 분야에서 만큼은 정부의 자금 지원을 용인했던 진상과 그리고 2008년의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에서 보인 극심한 도덕적 해이라는 민낯을 비판했습니다. 이에 10장에서 프리드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짐에 따라 불평등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식의 장미빛 미래를 강조하는 부분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영혼이 없는 인간의 말처럼 '시장이 알아서 공익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 아닌 확신과 흡사합니다. 프리드먼은 이토록 자신의 논저에서 복지 담론과 케인스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어떤 대안도 명확히 제시한 바가 없는데요. 물론 그는 말년에서야 "사회 정의'에 대한 회의적 인식을 상당히 철회하긴 했지만 그가 말하는 공익과 공공선이 과연 무엇인지, 여기에선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접근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많은 주장들은 우리가 비판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특히나 존 스튜어트 밀과 애덤 스미스를 제한적으로 인용하고, 특히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은 마치 지구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도덕 철학자이기도 한 스미스를 그저 '시장의 화신' 정도로 소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학자의 양심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프리드먼이 이 글을 쓰게 된 역사적 맥락이 당시 세계의 불안전성에 기인했다는 점은 이해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그가 평생 견지하고 있었던 '자본주의적 기반의 자유 세계'라는 일종의 신념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2006년이 아니라 최소한 2010년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2008년의 기록적인 전세계 금융 위기 사태의 원인이 된, 중국발 자금으로 막대한 신용 생활을 하고 있던 미국 시민들과 그것을 부채질한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그가 과연 어떻게 인식했을지 지금으로선 너무나 궁금해지는데요.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이 그저 맹목적으로 내뱉는 '대마불사' 같은 말장난이 아니라, 시장의 붕괴라는 측면에서 그저 막대한 공적 자금으로 구제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와 그 상황을 프리드먼은 과연 이를 어떻게 판단했을지도 마찬가지로 알고 싶습니다. 
 




더구나 실제로 보수주의자라는 용어는 너무나 차이가 큰 입장들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입장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불가불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나 귀족적 보수주의와 같은 복합형 신조어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인 경제체제와 자유롭지 못한 정치체제의 조합도 분명 가능하다.

자발적인 협력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은, 종종 부정되곤 하는 기본적인 명제, 즉 경제적 거래가 ‘쌍방 당사자 모두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동시에 쌍방에게 똑같이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 있다면‘ 쌍방 당사자 모두가 일득을 본다는 명제에 기반하고 있다.

만약 공동의 행동을 위한 합의의 범위를 사람들이 항상 일치된 견해를 가질 만한 한정된 범위의 문제들로 제한할 수 있다면, 이러한 부담은 크게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의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명확한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따라서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쟁점들은 더욱 적어진다.

정부가 수행하기에 적합한 활동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서로 다른 개인들의 자유가 저촉되는 것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인종의 분리나 통합 중 어느 하나를 시행해야만 한다. 내게는 어느 쪽이나 다 나쁜 해결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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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4-14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탄이 나오는 멋진 서평입니다.

베터라이프 2024-04-14 17:46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프리드먼의 이 책은 제가 프리드먼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쪼록 많은 분들이 일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