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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30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헨리 제임스는 1843년 4월 15일 미국 뉴욕시의 워싱턴 스퀘어 맞은편에 소재한 워싱턴 플레이스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양친 가운데, 아버지는 올버니의 은행가였으며, 어머니는 뉴욕시에 오랫동안 정착한 부유한 가문의 적통이었습니다. 그가 한 살이 되기 전에 그의 부친은 워싱턴 플레이스에 있던 집을 팔고 가족 전체를 데리고 유럽을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영국의 윈저 그레이트 파크에 소재한 별장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이 가족은 1945년이 되어서야 뉴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에 헨리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올버니에 있는 친할머니 집과 맨해튼의 웨스트 14번가에 있는 집을 오가며 지냅니다. 이후 1855년과 1860년 사이, 그의 부친의 관심사와 사업 여부에 따라 런던, 파리, 제네바, 불로뉴쉬르메르, 본, 뉴포트 등 열거한 도시들과 미국을 오가는 삶을 지속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뉴포트에 돌아온 헨리는 후에 저명한 문학 평론가가 되는 토머스 서전트 페리와 인생의 교우를 맺게 되고, 나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발자크를 "위대한 스승"으로 삼게 됩니다. 헨리는 자신의 첫 작품의 출간 이후, 1875년 가을, 프랑스 파리로 이사하게 되는데요. 미국을 두 번 오가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는 이후 30여 년을 유럽에서 보냅니다. 이 구대륙에서 그는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기 드 모파상, 이반 투르게네프를 만나는데, 특히 투르게네프는 그의 문학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1884년에는 프랑스의 리얼리즘 또는 자연주의 작가들의 이력을 추적하고 그는 점차 이들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후 그는 1897년과 1898년 사이에 영국 서섹스 주 라이로 이주하게 되는데요. 1904년에는 다시 미국을 방문하여 발자크에 대해 강의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태어난 헨리는 젊은 시절을 대부분 유럽에서 보냈고 영국에 정착하여 사망하기 1년 전인 1915년에 정식으로 영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1911년. 1912년, 1916년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후대에 이르러 그의 작품은 문학적 리얼리즘과 문학적 모더니즘 사이의 과도기적 작가로 평가 받으며, 많은 이들이 그를 영어로 쓴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지금 서평을 쓸 그의 이 작품은 원제, "The Portrait of a Lady"로 지난 1881년에 출간되었고, 출간 이전에는 더 애틀란틱 먼슬리와 맥밀란 매거진에 연재로 처음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역본들 가운데 제가 일독한 번역 판본은 열린책들에서 번역한 판으로, 2014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이번에 읽은 판본은 2021년 5월 2쇄입니다. 번역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인 정상준 교수가 맡았습니다.
저자인 헨리 제임스의 의하면 이 '여인의 초상'은 그의 다른 작품인 '대사들 The Ambassadors' 다음으로 스스로 평가하기에 가장 균형 잡힌 작품이라 인정합니다. 이 작품 역시 투르게네프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으며, 특히 헨리 제임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주제였던, "살아있는 삶의 숨결"이라는 이해로 이 작품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 자신은 이 장편에서 '그저 아가씨'라고 지칭했던 여주인공인 '이사벨 아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요. 물론 저는 이 여주인공의 일부 행동과 얼마간의 대사를 접하자마자 공교롭게도 이디스 워튼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조지 기싱도 포함해서 말이죠. 아직 총 두 권 가운데 다음 하 권이 남아 있지만 이 작품 전반은 천연한 삶의 교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열된 문장들 속에 꼭꼭 숨겨 놓아 우리의 인생에서 어느 정도 반면 교사가 될 수 있는 교훈적 소설의 전형이라 생각됩니다. 주인공인 이사벨을 둘러싼 인물들 모두가 각자 고유한 개성을 갖고 있고 더 나아가 이들 모두의 시선이 이사벨을 향해 있습니다. 이를 달리 풀어보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유독 이사벨에 대한 호감과 호의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녀를 올버니의 골방에서 영국으로 데려가는 생면부지의 '리디아 이모'는 물론이거니와, 사촌 오빠인 랠프 터치트의 감히 측정할 수 없는 호의, 그리고 이모부인 터치트 씨가 일관된 그녀에 대한 평가 역시, 이 작품의 매우 특별한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작품 내내 헨리 제임스가 자신의 입을 통해, 몇번이고 강조하는 "우리의 여주인공" 이사벨은 미국 뉴욕 올버니의 세자매 중 막내입니다. (작가인 헨리 제임스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 올버니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소설에서의 채용은 꽤나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녀는 위로 두 언니를 두고 있는데 이들은 이미 짝을 찾아 출가한 상황입니다. 그 시대의 다른 여성들과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을 기꺼워하고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해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갖고 있는 이사벨은 이 자체로 전형적인 여성상과 구별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그녀는 "자기 나름의 의견이 많은 여성"이기도 한데요. 여기에 삶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느끼는 기쁨, 이들이 전하는 인생의 경험 등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의 목적성을 무엇보다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이를 통해 이 시대의 여성들이 누구나 준비하게 되는 결혼을, "결혼을 인생의 시작점으로 삼을 수 없다."강조하는 바와 같이, 자신의 독립성과 자유를 무엇보다 삶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은 것입니다. 물론 작중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녀의 반짝이는 호기심과 이것이 바탕이 된 뚜렷한 외모의 장점 등도 여러 설명과 화자들의 평가로 은연중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이 이사벨이라는 캐릭터는 복합적인 의미로 '살아 있는' 캐릭터이면서, 여자로서 시대가 갖는 불합리성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사벨의 운명을 소위 '자유의 무대'로 이끄는 인도자이자 혈족으로는 이모인 터치트 부인은 스스로 꺾을 수 없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평생을 일관되게 살아온 인물입니다. 물론 이 터치트 부인의 삶을 보기에 따라서는 제멋대로 살아온 자기 이기심의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남편을 포함해, 자신의 귀한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는 인물이면서, 심지어 자신의 이런 관념을 남들이 이해해 주는 것조차 바라지 않는 고집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헨리 제임스는 이 터치트 부인에 대한 인물 조성과 관련해, 보편적인 아내의 의무와 꺾일 수 없는 모성을 사실상 스스로 부정한 것에 대해 일언반구 평가를 내리고 있지는 않은데요. 자신의 인생에서 몸소 자유를 쟁취(?)한 여성이라는 설정은 여느 작품에 있어서도 매우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즉, 일생에서 자유를 얻은 여성이 그와 동시에 가정의 의무와 모성을 희생하여 과연 어떠한 안식과 평안함을 구축했을지는 여기에서는 다소 불명확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호오에 대한 명확한 감정을 제외한다면 리디아의 진면목은 극에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다소 감춰져 있는데요. 이 부분은 아마도 하권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리디아의 손에 이끌려 도달하게 된 영국 런던 템스강의 그 붉은 저택에서 이사벨은 이모부인 터치트 씨,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사촌과 대면하게 됩니다. 삶의 많은 경험들을 몸소 체화한 보기에 따라 현명한 노인의 전형인 터치트 씨와 옥스퍼드에서 공부했을 정도로 당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 랠프는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이사벨의 앞으로의 행로를 지켜볼 것을 결심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사촌간의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부친이 랠프에게 그 의사를 지나가듯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는 이사벨을 어떠한 관계로 묶이지 않고 몸소 지켜볼 것을 결정합니다. 이에 터치트 노인은 그런 아들의 의사를 철저히 존중하기에 이릅니다. 제가 앞서 설명해 드린 바대로 랠프는 자신의 아버지와 깊이 상의하여, 이사벨에게 실질적 자유의 기회를 사심없이 제의하기에 이르는데요. 이것은 오로지 이사벨을 향한 랠프의 순수한 선의로 점철된 결정입니다. 바로 이 랠프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길버트 오즈먼드와 대척점에 서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랠프가 선의와 도덕에 기반한 지극히 고결한 자를 대변한다면, 오즈먼드는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숨긴 채, 위선을 가면처럼 쓰고 이익에 따라 사람을 주무르는 인물입니다. 역겹게도 스스로 신사를 자칭하면서 말이죠.
터치트 씨가 진귀한 경험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비로소 마치고 나서, 이사벨과 그녀의 이모는 프랑스를 지나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향합니다. 이 행로 직전에 이사벨은 미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사업가인 캐스퍼 굿우드와 영국 귀족의 전형이라 서술되는 워버튼 경의 청혼을 받게 됩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해 분명한 거부 의사를 전한 이사벨은 후반부에 언급되는 작가의 선명한 교훈적 지침의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을, 모든 사물을 스스로 판단해야만 한다."는 말에 걸맞는 예의바르면서 과감한 결단을 드러내는데요. 여기에 작가인 헨리 제임스는 이 워버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앞으로 이사벨의 험난한 삶의 난관을 예고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했습니다. 이 워버턴 경은 주변 인물로부터 인성과 성격은 물론, 그 능력과 또한 고결한 인품으로도 훌륭한 평가를 받는 귀족 중의 귀족입니다. 물론 극의 전개상 느닷없이 이사벨에게 청혼하기는 합니다만 워버턴이 외면에 두르고 있는 덕성과 명예,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쌓아올린 부는 보기에 따라 그 자신이 거의 완벽한 결혼 상대자임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사벨 역시 워버턴이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그런 그의 청혼을 한편으론 매우 기쁘게 여기는데요. 다만, 그녀는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더 많은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이것이 기반이 된 삶의 진정성을 직접 겪어 보고 싶은 야망을 갖고 있어 그의 청혼은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앞선 랠프의 배려로 말미암아, 이사벨에게 있어 '돈의 결핍'으로 인한 인생의 주저되는 걸림돌 역시 한번에 해결을 보는데요. 만약 워버턴과의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와 안온한 삶이라는 가정이라는 둘레로 쌓아 올린 안정적인 외형적 성벽조차도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리디아 이모 다음으로 이사벨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 마담 멀은 이 작품의 교훈적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랠프의 설명대로라면 이 스위스 상인의 미망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적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환대를 받는 여인으로 묘사되는데요. 몸에 익힌 철저한 그 시대의 예의와 자신의 감정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화법으로 무장한 이 여인은 실로 본모습을 철저히 숨긴 캐릭터입니다. 물론 이런 랠프에 의해서도 기본적으로 존경심을 받고 있는 마담 멀은 길버트 오즈먼드와 가볍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헨리 제임스는 후반부 피렌체에서의 마담 멀과 오즈먼드의 예의 주시할 수 있는 만남을 완전히 개방하고 있는데요. 그녀의 주요 목표이자 희망은 이사벨과 오즈먼드가 결혼에 이르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기인한 생각은 그녀에게도 이롭고 또한 잇속을 숨기고 있는 오즈먼드에게도 유리할 것으로, 이 점이 선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판단을 한 것인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마담 멀이라는 인물이 과연 선의에 준하는 인물인가에 대해 일정 부분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전에 읽은 '보스턴 사람들'에서도 그렇지만 이렇게 선의를 외피로 포장하여 상대방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는 인물에 대한 복합적인 묘사는 헨리 제임스 소설의 가장 큰 특징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 요약해 보자면 누구에게나 지극한 환대와 그녀를 만난 어느 누구에도 뒷말을 남기지 않으며, 거의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위장한 마담 멀이라는 인물의 존재 자체가 과연 이사벨에게 어떠한 영향이 될지는 앞으로 작품 내에서 중요한 복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끝으로 이 작품은 극을 좌우하는 여러 인물들 간의 극명한 관계를 드러내면서, 여주인공이 겪게 될 파국을 예견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외에도 시대적 배경이 되는 시대상으로써, 미국과 영국의 미묘한 국가 감정을 드러내 있기도 합니다. 이사벨과 정신적 친구로 지칭되는 헨리에타가 영국과 영국인들에 대해 갖는 일종의 민족적 적대감과 그런 치우친 사고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계재는 아닙니다. 영국인과 미국인은 엄연히 다르다는 시각은 전반적으로 국적 이상의 차별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데요. 물론 헨리에타는 나중에 연을 맺게 되는 밴틀링을 통해 어느 정도 불식되기는 하지만 앞선 굿우드와 이사벨을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행위 자체를 스스로 양심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이런 행위 자체는 자신의 친구인 이사벨을 위한다는 명목과 함께 말이죠. 이렇게 영국인 자체를 저어하는 헨리에타가 오즈먼드가 본래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이 두 사람을 어떻게 차츰 대면하게 될지 이 부분도 매우 궁금한데요. 약간의 논외로 이미 헨리 제임스의 이 장편을 읽은 많은 분들이 전편보다 미흡한 후편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부분은 남은 분량을 읽는 데 있어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사벨과 오즈먼드의 예상되는 이 불길한 결합이 어떤식으로 귀결되고, 더 나아가 그녀의 선연한 목적에 있어 이 사건이 어떠한 분절로 남을지 기대반 걱정반이기에 아마도 다음 권은 조심스럽게 일독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과연 주인공인 이사벨이 스스로 선언한 삶의 간절한 목적이 흔들리지 않게 되길 바라면서 천천히 다음 권을 손에 쥐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이사벨과 리디아 터치트, 심지어 부정적인 측면에서 마담 멀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독립성과 자유'입니다. 이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 본다면, 헨리 제임스의 이런 탐구는 꽤나 선도적인 주제였을 겁니다.
"자네 젊은이들은 농담을 너무 많이 해. 농담이 없어지면 자네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저는 어떤 일들이 일어난 곳을 좋아해요. 슬픈 일이라도 말이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었어요. 이 집은 생기로 가득 찼더랬죠."
터치트 부인은 경솔하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윗사람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러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세상에서 유독 불쾌한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이로운 점이었다.
그녀는 내면에 큰 생명력을 갖고 있었고, 자기 영혼의 움직임과 세상의 동요 사이의 연속성을 느끼며 가장 깊은 즐거움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지위의 의무와 명예란 의지의 높이에 따라 가늠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정들에 따라 달라진다.
"그건 이모님이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받으려고 생각하시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모님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으세요."
이사벨 아처가 갖고 있는 지론들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매우 운이 좋게도 독립적인 상황에 처해 있고 그런 상태를 매우 교양 있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쓰라린 어조가 너무 갑작스럽고 생격한 것이라서 그녀는 자신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영국인드ㅡㄹ이 무척 괴짜라는 말을 종종 들어 왔고, 그들이 본바탕에 있어서는 그 어떤 민족보다도 낭만적이라는 이야기를 어떤 독창적인 작가의 글에서 읽ㅇ은 적이 있었다.
아처 양은 세상 사람들에게 한 남자의 선택을 정당화해 줄 재산이나 그런 종류의 미모를 갖고 있지 않았다.
현재 이사벨에게 자기의 자유가 줄어든다는 것은 특히 불쾌한 것이었다.
후에 그는 훌륭한 지성이라는 것도 운동처럼 뛰어넘거나 끌어당길 수 있으며 심지어는 기록을 깨면서 희귀한 묘기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하기를 바라고, 사람들의 예의에 벗어나지 않게 말해주는 것 이상으로 인간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어요."
"너는 남들의 찬사를 받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남들의 호감을 받기 좋아하니까, 너는 낭만적으로 사물을 봐라보면서 불쾌한 의무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바로 그것이 네 환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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