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 미국 민주당의 실패에서 배우기
토마스 프랭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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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출신으로 시카고 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역사학자로서가 아니라 미국 주류 정치학과 관련된 활발한 의견 개진으로 더 명성을 얻고 있는 토머스 프랭크의 최근 번역된 글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Listen, Liberal : Or What Ever Happened to The Party of The People 로 지난 2016년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018년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토머스 프랭크의 글은 가장 최근에 서평을 썼던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등에 이어 4번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만연한 불평등 문제와 원자화 된 노동자 그리고 미국 민주당의 변질과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위의 주제를 기본 토대로 삼고 후기 산업 사회에 이르러 계급 사회적 측면에서 ‘소위 전문가들의 등장’과 이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여 ‘엘리트 지배 정치’에 대한 사실상 이런 패착에 대해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1장 2장은 따로 분리해 다른 주제로 만들어도 될 만큼 근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지배 계급이라고 일컫는 ‘전문가 집단’과 이들이 바라보는 광범위한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상세한 이해와 분석을 담아 놓고 있습니다. “이들 소위 전문가들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후기 산업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왔다”는 점은 단순히 부와 명예를 손에 넣은 유산자 계급에 대한 협소한 평가가 아니라 대중들의 인식과 특히 지식인들이 이들 전문가들에 대한 정상적인 견제와 비판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토머스 프랭크 자신의 자기 고백으로까지 저는 느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후기 산업시대에 이르러 더욱 ‘노동자들의 원자화’를 가혹화시키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이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고 학업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그 결과로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 전문가 집단들 자체가 이런 시민의 삶과 사회의 일면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불평등 문제 전반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 내지는 무시가 바로 이런 인식에 기반하는 것으로 여겨도 지나치지 않아 보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원자화와 이런 불평등의 문제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부분으로 조지 H. W. 부시에 이어 집권한 민주당의 신민주당원인 빌 클린턴의 “세계가 단일 시장으로 변모하고 집단 행동이나 정치, 경제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아닌 개별적인 자기 계발 노력만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최소한의 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을 자의적으로 결여시키고 그것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자연현상에 빗대어 어떠한 논의를 봉쇄하고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세운 어느 변절한 리버럴한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면 아마 미국의 빌 클린턴 지지자들의 비난이 이어지겠죠. 여기에서 토머스 프랭크는 클린턴이 집권 시기에 놀랄만한 경제적 호황과 높은 고용률로 인해 커다란 면죄부를 부여 받았지만 실상 조금만 파헤쳐 보면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게 과도한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증명합니다. 앞서 불평등 문제는 “사람들의 직업을 단순히 업그레이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로 과거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집중된 경제 권력이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나 평등 같은 요소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많은 시민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에 나서는 정치인들이 오늘날 미국에서는 이른바 공화당 의회가 ‘금권 정치’에 물들어 이것을 민주당 즉, 리버럴이 해소시킬 수 있느냐는 오바마의 시대에 원천적으로 잘 드러낸 바가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수많은 이민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만하고 2008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를 초래한 조지 W. 부시의 실패 보다도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정치적, 법적 근거를 갖고 있었음에도 오바마는 민주당 뿐만 아니라 미국 진보층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국가 감시 체계에 대한 그 애매한 태도와 함께 2008년의 ‘채권 휴지화’의 주역들을 오히려 인센티브를 받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다들 호사스런 개인 별장으로 은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이들의 중요한 인권을 위한 것인지, 민주당 역사상 가장 많은 은행 및 금융권의 기부금을 받은 이력 때문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여기에 저자인 토머스 프랭크는 높은 학벌과 학위를 받은 소위 엘리트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며, 1930년대 플랭클린 루스벨트의 민주당 정부가 뉴딜 정책을 통해 저학력자나 기반이 없는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사회가 붕괴되지 않도록 비 엘리트 출신의 각료들이 아주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간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진보주의가 소수의 전문가들과 엘리트들에게 달려 있다는 점은 이것을 ‘반동’이라고 해석해야 될지 아니면 포퓰리즘 시기에 제일 먼저 지리멸렬한 진보 세력의 운명이라고 해야할지 이것 자체를 ‘신의 운명’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더욱더 우리가 원자화되는 길로 스스로 나서야 할지는 어느것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불평등 문제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날씨처럼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수많은 기득원 우파들의 논리였다면 그것을 견제하고 복지를 걷어찬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해야만 했던 진보의 의무였으나 민주당 일각에서도 도널드 트럼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워싱턴에서 공화당의 광신적인 티파티는 여전함에도 미국의 진보가 왜 이렇게 지리멸렬했는지는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망하게 되는 연장서상의 한 장면일 뿐인지는 앞으로 더 고심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 책에서는 저의 암울한 결론에 토머스 프랭크는 실리콘 밸리와 같은 혁신 계급이 진보 계급을 대변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혁신은 그야말로 평등과 관련된 문제로 전방위적인 기술 혁신이나 기술 지식 노동이 과연 불평등 문제에 있어서 어떤 해결책을 손에 쥐어줄 수 있을지는 이 부분도 앞으로 많은 논의가 있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을 통해 한가지 통찰력에 이를 수 있었는데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우월한 시기에 강력한 근거를 갖고 출범한 오바마 대통령의 참담한 실패가 아마도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행간에 떠도는 강력한 군산복합체의 로비에 오바마가 굴복한 것인지 (음모론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휴지 조각에 불과한 오바마 케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금융 및 경제 기득권들에게 항복한 것인지는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그의 실패가 수많은 미국 노동자들의 좌절을 불러 일으켜 트럼프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시 진보성을 회복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의 개조와 혁신을 통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는 다소 비관적이지만 미국 정치와 시민들의 내면화된 확고한 민주주의적 태도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맏형이 이대로 쓰러지는 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죠.

“진짜 문제는 노동자의 불충분한 지성이 아니라 불충분한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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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 세계 질서의 붕괴와 다가올 3개의 전쟁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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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켄터키 대학의 패터슨 스쿨 출신으로 근래 전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지경학을 소개하고 그 관련 정보로 사기업 및 공적 기관 등에 소위 컨설턴트를 하고 있는 유명한 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의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원제 The Absent Superpower 이며, 지난 2017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김앤김북스에서 번역 출판을 맡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1세기 미국 패권과 지정학’에 이어 자이한의 두번째 서평인데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춘근 교수의 추천사와 특별히 이번 번역판에는 저자의 한국어 서문이 실려 있기도 합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브레튼우즈 체제를 바탕으로 1945년부터 중국의 공산화와 소련의 핵실험으로 미국의 국제 정치 전략이 다소 수정되는 1949년 이후를 넘어 구소련의 붕괴 이후 냉전 종식 이후까지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서방 진영과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이것은 저자가 보고 말하는 중요한 관점인 세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결과론적으로는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대전 이후, 영국이 갖고 있던 대략적인 세계 패권을 미국이 그동안의 고립주의적 외교에서 탈피해 안보 동맹과 자국의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서유럽과 일본을 재건시키고, 타이완과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의 경제의 외적 성장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까지 보장해 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개입은 우선적으로 중동을 비롯한 에너지 수출국에 의한 석유와 천연가스 수송의 지속적인 안전망을 미국 해군이 제공해 왔고 이 점은 분명 1972년의 석유 파동의 시기를 거쳐왔어도 경제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 안보에 충분히 이익이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이한은 여기에서 이러한 미국의 개입이 앞으로는 어려울 것이며, 심지어는 “미국이 분명히 세계에서 손을 떼게 된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상황의 가장 큰 요인이 미국 내에서 소위 셰일 혁명이 일어나고 있어 앞으로 미국이 해외의 에너지 수입의 의존도가 가면 갈 수록 축소될 것이고 그에 따라 전세계의 석유 운송로를 지키기 위한 미 해군의 역할이 도전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미국 셰일 생산 산업 단체의 홍보이사로 보일 정도로 이 분야의 애착이 있는 자이한의 이 책 1부는 앞으로 미국이 세계에 발을 빼게 되는 이유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2부는 이러한 세계에 대한 미국 탈개입의 시기에서 필연적으로 초래될 3개의 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럽 대 러시아, 이란-사우디아라비아, 중국-일본 등 각 국가 및 세력의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꽤 상세한 국제 정치와 지리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자이한의 글을 읽으면서도 약간 이해가 안 되는 점은 냉전 시기 이후 나날이 축소되는 미국의 국방비 지출에서 2001년 9. 11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하게 됨으로써 당시 여건이 좋지 않았던 미국 경제에 적지않은 타격이 됨과 동시에 한동안 이 국방비를 미국 전체가 지탱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조지 W. 부시가 전격적으로 중동에 개입함으로써 집권 시기에 대규모 국방비 지출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시기로 보면 국제 외교와 정치 무대에서 미국의 ‘거대한 악의 대항마’를 만들어 다시 군사 강국을 유지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물론 지금도 미국의 군사력은 미국 밑의 순위에 있는 국가들을 합치더라도 비할바가 없습니다만 저는 ‘셰일 혁명’에 의한 에너지 수급 문제의 패러다임 전환보다는 이미 미국은 군사력 투입에 점차 발을 빼고 있던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이어 오바마 정부는 잠깐 ‘아시아로의 회귀 (pivot to Asia)’를 잠깐 대외에 천명하긴 했지만 사실상 직접적으로 어떤 정책이 추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래 중국의 지난 시절의 대국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획득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지금 미국의 정치경제적 상황도 적지 않은 요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역내에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는 지역 패권국이 나타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므로 아주 수수방관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 국내적 요인으로 발생한 미국의 군사비 감소가 영향력 축소에 기여했고, 국내적 에너지 수요 문제가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중대한 요인은 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동의하기 힘든 부분은 앞으로 발생할 중국-일본의 지역 대결에서 방향타를 잡고 있는 타이완과 한국을 분석하며, “한국으로서는 일본과 손잡는 게 뻔한 선택인 듯 보인다”고 애매하게 언급하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 줄타기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며, 우리를 친중과 친일 양자 사이의 가능성을 살펴보며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자료는 매우 부족합니다. 중국은 현재 우리의 제1 교역국이고, 일본은 미국이라는 수레바퀴 동맹의 한 축인데 한미 동맹관계를 고려하면 일본과 협력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기겠지만 이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역사 문제를 빗대어 오로지 아시아인들 특유의 민족주의 근성이라고 말해왔던 것을 고려해 보면 한일관계에 대한 서양인들의 특유의 인종주의적 시각을 볼 수 있는데요. 우리의 내부에서 미래 있을 수 있는 중국과 일본의 경쟁에 과연 어느 한쪽의 손을 드는 것이 과연 이익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평가는 그럴만하다고 여기나 과연 중국이 미국의 포위망을 뚫고 자기들 인근 바다의 제해권을 획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는 매우 비관적입니다. 이것과는 반대로 중국 자체를 완전히 취약하고 닫힌 국가로 자이한은 보고 있지만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파키스탄과 지부티, 스리랑카에 해군 기지를 조차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완전히 중국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 살려고 하는 중국이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 등지에서 군사적 방법을 모색하려고 할 때가 대규모 전쟁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우디-이란의 중동 지역 맹주를 놓고 벌이는 대결에 대해서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경우나 중동 최대의 재래식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란에 대한 위협이 심각해질 경우 사우디가 동맹국인 파키스탄으로부터 핵무기를 도입하게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점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중동 자체가 핵전쟁의 도화선이 될 지역이 높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유럽-러시아의 경우도 러시아가 과거의 동유럽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을 시도하고 발트해의 3국과 폴란드 일부 지역 내지는 핀란드 지배에 까지 나서게 된다면 독일의 재무장을 초래하고 이런 상황임에도 미국이 참전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는데요. 과연 나토 동맹국에 의한 공격이 유럽 동맹군의 참전으로 이뤄질지는 자이한이 이미 말한대로 러시아가 폴란드를 차지하려고 든다면 폴란드 스스로는 적지 않은 기간동안 게릴라전을 펼쳐야 한다는 점을 들어 유럽이 대 러시아 단일대오에 설지는 반 정도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글의 얼마간 내용을 보더라도 자이한의 여기 이 책은 꽤 도발적입니다. 미국의 영향력 축소가 3지역의 큰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단순히 현실주의적 시각을 넘어 음울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에다 전세계적으로 이미 노동층의 심각한 인구 감소와 이런 이유로 시장 붕괴의 시나리오까지 얻게 될 수 있는 산업국가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그는 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의 이런 이해와 분석은 미국이 계속 앞으로 패권국으로 남을 이유로도 분명해 보이는데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중견 국가들은 자국책을 찾아야만 하는지 그게 불가능하다면 국제 무대에서 어떠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지 일단 많은 이론적이고 외교적 노력들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뭔가 잡음이 있더라도 한미 동맹이 유지되는 것은 국익에 이로운 일이나 마찬가지로 일본이 과하게 중국을 도발하여 미국이 개입하거나 이로인해 대 중국 봉쇄 동맹이 연결되어야만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트럼프의 미국은 그 불안정성이 지대하다고 봐야하는데 이 점과 관련해서도 자이한은 미국의 포퓰리즘 시대에 들어섰다고 보는 등의 기존의 엘리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를 보이는 것과 비슷한 관점이 보여 이 점도 매우 불편했습니다. 국제 정치와 외교 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이나라 일반적인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일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분명히 해석 수단으로서도 자이한의 논리는 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과거 냉전 시기의 미국 역할론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많고, 베트남과 쿠바를 논하지 않더라도 니카라과와 파나마, 그레나다에 있었던 미국의 행적을 눈감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면에서 자이한은 미국 없는 세계의 묵시록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전부 일독을 마친 저로서는 모든 것을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한편으론 캐나다 앨버타에 대한 그의 집착은 꽤 귀엽기까지 했는데요. 국제 정치에 대한 여러 시각들 가운데 이런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관점으로 타협하시고 보면 흥미로운 것들도 확실히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쯤에 글은 적당히 써야하는 압박이 있어서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본문 번역 중에 ‘빡세게’라는 표현이 있던데, 제가 국어 사용의 엄숙주의자는 아니지만 문어체에 다른 표현도 많은데 굳이 일상 대화에서나 쓰일법한 빡세게라는 식으로 했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이춘근 교수가 서문에 역자가 이 책을 상쾌, 통쾌해 했다고 언급하는데 서평을 쓰고 나서 원서를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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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미래
조지프 나이 지음, 윤영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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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석좌교수이자 전임 학장인 조지프 나이는 리버럴한 국제정치 학자들 가운데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헨리 키신저와 함께 학자이면서 공직에 참여했고, 양자의 위상을 더한다면 키신저보다 더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조지프 나이일겁니다. 개인적으로 조지프 나이의 글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얼마전에 서평을 썼던 존 G. 아이켄베리에 이어 큰 기대감을 갖고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The Future of Power로 지난 2011년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는 2012년 세종서적에서 번역 출판을 했는데요.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책들은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새 판이 끝나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점은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

조지프 나이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권력에 대한 범위는 국제정치학, 국가간의 관계, 세계체제,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의미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권력의 대표적인 사전적인 해석은 “다른이에게 어떠한 것을 하게 만드는 동인, 힘, 강제력” 정도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선 나이 그가 국제정치학계에 내밀었던 ‘소프트 파워’와 기존의 ‘하드 파워’를 묶어 ‘스마트 파워’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유주의적 현실주의에 수반하는 용어라고 인식되었는데요. 조지프 나이가 흔히 국제정치에서의 신자유주의자라고 평가받는 것으로 봤을 때, 스마트 파워에 닿는 그의 사고는 키신저나 럼스펠드와는 다른 입장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부분은 그가 ‘국제정치에서의 신자유주의자’라고 해서 네오콘으로 알려진 신보수주의자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권력의 다른 형태인 군사력 투입과 관련되어 그것이 필요할 때는 사용해야 하지만, 그 전까지는 소프트파워 같은 온건한 방법도 사용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그렇지만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소프트 파워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극단에 이르지 않고 절충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들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앞선 서문에서 1970년대 중반 프랑스는 파키스탄에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핵 재처리 시설을 이전하기로 합의했는데, 여기에 포드 및 카터 행정부가 프랑스를 설득했고 결국 프랑스는 이 계약을 철회했고, 이처럼 프랑스의 태도는 설득과 신뢰를 통해 바뀌었다며 여기에서 조지프 나이가 이해하고 있는 권력이란 바로 비물리적인 타협과 설득에 기반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권력이 반드시 영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미국 스스로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물리적 및 비물리적 방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온건하다거나 우유부단하다는 등의 외부 인식에 개의치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현실주의적 입장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강력한 행위자들은 약자들을 아예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게 할 수 있으며, 설혹 약자들이 테이블에 앉더라도 이미 게임의 규칙은 자리를 선점한 강자들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덧붙이고, 직면한 세계 정치경제적 이슈들을 논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G7이 오늘날 G20로 바뀌었어도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여기에 초대되지 못할 정도로 국제 정치의 현실 인식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 글은 이와 비슷한 현실에서 ‘그 권력’이 현재 중국의 대두와 함께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마찬가지로 찾아보고 있습니다. 1부는 그러한 권력의 종류인 군사력, 경제력, 소프트 파워를 분석하고, 2부는 오늘날 대표적인 권력 이동인 분산과 전이인 개방된 인터넷 시대의 사이버 파워와 미국의 쇠퇴로 해석되는 권력의 전이를 집중적으로 따져봅니다. 이에 반해 미국의 떠오르는 지경학 이론가 피터 자이한은 미국의 쇠퇴는 어림도 없는 주장이며, 잠시 숨고르기를 할 뿐이라고 언급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존 아이켄베리도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대두라는 시기에서 “중국을 흡수할 만한 개방성, 경제 통합, 역량을 국제 사회는 갖추고 있다”고 그 역시 중국의 급진적 대두와 미국의 쇠퇴에 조심스러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지프 나이도 세계의 절반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유럽과 일본과는 미국이 견고한 동맹 체제로 이 양대 세력이 설사 미국의 영향력을 다소 뒷걸음치는 것으로 만드는 요인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유세계 및 자유진영의 통합 영향력은 서로 발전된 것이라 봐도 과도한 해석은 아닐겁니다. 현재에도 국제 체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중국을 적대국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인가와 이 글 6장의 미국의 쇠퇴와 권력 전이에 조지프 나이가 중국을 많은 분량을 할애해 평가하는 것은 바로 “중국의 정치적 변화와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금세기 중반까지 중국은 전반적인 권력에서 미국을 능가하지 못하리라는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네트워크로 크게 변화된 세계에서 기존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의 파급력으로 다른 국가들을 국제 사회에 추동하고,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세계 체제에 반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을 관리하는 것은 분명 수단의 한계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자비한 현실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필요할 때 힘의 투사와 군사력의 투입이 있어야하며, 소프트 파워 같은 것은 별개의 보조 수단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제한적인 해석입니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자신의 시장을 열어 유럽을 재건시키고, 많은 동맹국들의 번영에 이바지 한 것은 분명합니다. 피터 자이한 같은 이는 이러한 체제(일종의 미국의 희생으로 받아들이는)가 이제는 변화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결국에는 특히 미국의 광범위한 해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동시에 아이켄베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계속 국제 사회에 끌어들여야 하는 점이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 동안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집니다.

조지프 나이가 주창했던 소프트 파워는 그것을 이용하여 어떤식으로 권력을 획득하는지에 따라 해악이 될 수도 있고, 공익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권력은 매번 영향력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어서 중국과 여타 다른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을 강제로 이끌어 내기 위해 소프트 파워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글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이버 세계에서의 국가들 혹은 비국가단체에 의한 광범위한 상대를 향한 노골적인 사이버 해킹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의 제재 가능성을 제도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것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다국적 기업과 미국의 공공기관을 해킹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이에 못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 보유고에 대한 치명적인 사이버 공격이 비도덕적 수단에 자행된다면 이것은 세계에 큰 절망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요. UN은 이와 관련하여 사이버 관습법을 마련하려고 고민중이라는 기사를 보긴 했습니다만 이 사이버 해킹을 단순히 변화된 권력 이동으로만 한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도덕의 결여로만 그치지 않지 않을까 고민입니다.

끝으로 미국의 많은 학자들은 세계 안보에 기여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을 공공재로 여기는 많은 국가들과 미국 내부의 목소리에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미국은 고립주의적 전통이 있었고, 최근 두 차례의 전쟁에 개입하면서 막대한 군수 산업의 초과 이익을 감안하더라도 군사비 지출에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서방 국가들과 미국 동맹국들은 이러한 역할을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바통 터치를 하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양 국가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을 통해 미국에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보입니다. 로버트 코헨은 “패권 이후 시대에 상호 협조와 무임승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기구를 조직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억압적인 수단의 권력을 상대에 사용하려고 하는 일부 국가에 대하여 온건한 다수 국가들의 ‘스스로 동의하는 소프트 파워’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는데요. 미국이 캐나다와 전쟁을 할 의도는 전혀 없기에 서로간에 주고 받는 관계가 지속되는 것처럼 상대적인 약소국들이 소프트 파워 자체를 굴욕적인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지프 나이의 이 연구물 자체가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시민들에게도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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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정책
서정건.유성진.이재묵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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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과정의 연구 및 동시에 미국 외교 행위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 의한 한국, 중국,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짚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한국정당학회에서 주관하고 경희대학교 출판 문화원에서 2017년 출판한 일종의 연구 논문집인데요. 집필진으로는 서정건, 유성진, 이재묵이고 모두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책의 주된 출판 목적은 2016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앞으로 동아시아지역내의 미국 외교정책이 이전과는 다른 어떤 변화된 점이 있을지 진단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 핵문제가 차기 미국 행정부의 지대한 관심사이자 해결이 시급한 사안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결말의 6장을 비롯한 총 6개의 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근래의 미국 정치외교 과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씽크탱크와 미국 의회지도자들 및 각 행정부의 외교관련 관료들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이념과 당적, 정치관 등을 잘 분류해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도 관련 부분에 있어서 비교적 상세한 이해를 돕고 있는 점은 다른 여타 국제정치학 및 외교 논점을 담고 있는 글들과는 다른 차별화 된 유익한 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1장과 2장은 국제정치학의 이론과 전통적인 미국 외교 정책을 잘 비교해 우리가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한미 관계가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한 군사 원조 및 경제적 원조를 미국이 지원함으로써 전통적으로 후견-피후견 관계로 알게모르게 고착화 되었는데, 이 점의 반증 논리로 5장에서는 “미국의 주요 정치 엘리트들이 한반도를 미국의 국익을 수호하는데 있어 주요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최근 시카고국제문제협회가 조사한 엘리트 의견 조사에 경험적으로 뒷받침된다.”고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안보를 가장 먼저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과거 냉전 시기의 일본이 갖는 미국의 안보적 특수성과 오늘날 G2 시대에 중국 부상과 관련해서도 미국에게 일본은 이러한 안보 지렛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더욱이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 일본의 위치는 미국의 아시아 동맹의 핵심축 (linchpin) 이라고 여기며, 미국의 관료와 지도자들이 앞으로 한미일 삼각 동맹을 원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안보와 경제 및 지역 균형 정책에 바로 자신들의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미국은 닉슨 행정부 이후로 헨리 키신저의 주도아래 특히 현실주의적 입장을 근 20여년 동안 유지시켜 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미국 외교 정책의 기조였으나, 때로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 확대를 기조로 삼는 민주평화론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 (네오콘)이 있었고, 고립과 개입을 넘나드는 잭슨주의자들과 과격한 윌슨주의자 등 굳이 이념과 이론으로 분류를 하자면 위와 같지만. 근래 출현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완전하게 새삼스러운 이론적 틀이 아니라 원래부터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계 패권과는 상관없이 자국이해적인 측면이 원래 강했고,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이 현실의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추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아직도 국제정치가 얼마간의 온정주의가 바탕이 된 낭만적이고 이상의 사고로 해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한 일이 아닌가 판단해 봅니다.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핵심은 “미국 외교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과 정당, 이익 집단 등 중 국내적 정치적 행위자들의 선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인데요. 국제 정치 무대에서 안보를 비롯한 세계 질서 유지라는 조정자로서의 미국의 존재는 특히 군사동맹에 의거 일정 부분 안보를 의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러한 미국의 외교 정책 추동의 요인들에 대해 정말로 막대한 연구 자금을 들여서라도 투입해야만하며,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가 강하게 비판한 ‘미국 의회에 대한 이스라엘 로비’ 수준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대미 지렛대가 될만한 수단들을 갖춰 놓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일본이 대미 종속이 심화되고 있고, (실체가 있는지 없는 모를) 대일본 중국 위협 상쇄를 위해 일본이 러시아와 가까워지려고 한다면 미국이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이 글에서의 판단은 국가의 외교에서 얼마만큼 다른 대안을 만들어내고 비편향적인 수단들을 갖춰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더 엄밀히 분석한다면 과거의 미국이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이상을 위해 마냥 국제 사회에 노력한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이란-콘트라 사건도 그렇고 파나마와 그레나다에 군대를 투입한 것이나 쿠바 피그만 침공 등 베트남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군사작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 여부에 따라 할일은 해왔던 국가입니다. 이것이 패권을 가진 국가의 자율성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오직 자국의 안마당과 지역내의 안보를 위해 수단을 동원한 것이죠.

끝으로 앞으로 작게는 동아시아 지역과 크게는 세계 안보에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은 북한 핵문제가 만약 이대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순위에서 빠지게 되고, 이어 과거 지위를 회복하고 싶어하는 중국과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테러 단체에 탈취당할 위협이 높은 파키스탄의 정국 불안 가능성 정도 일겁니다. 저는 특히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테러 집단에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는 것이 이 파키스탄의 대량 살상 무기입니다. 이게 과연 막연한 기대감 말고 실제적인 관리가 될 것인지믄 앞으로 20여년 과정에서 면밀히 지켜봐야 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다른 일면으로 보면 소장 학자들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 연구가 진전된 논의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은 칭찬받을만한 부분이겠죠. 다만, 한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2016년 미국 대선을 트럼프와 샌더스 양 극단주의의 대결로 여기서는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크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포퓰리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만한 분들이 이런식으로 판단한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한미일 삼각 동맹과 관련해서도 너무 미국 쪽의 이해만을 받아들여 한일 양국간의 영토 및 역사문제를 가볍게 보는 것으로 여겨지는 점도 마찬가지로 뭔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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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없는 자본주의
조너선 해스컬.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지음, 조미현 옮김, 김민주 감수 / 에코리브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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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명인 조너스 해스컬은 영국 브리스틀 대학교와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강의하고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의 객원 교수를 역임한 바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입니다. 이 책의 소개와 기사를 조금 찾아본 결과로는 조너선 해스컬은 특히 영국 정부와 공공기관 등과 여러 연구를 해온 연구자로도 알려져 있더군요. 마찬가지로 공저자 중 다른 사람인 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역시 케네디 장학생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및 정부학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이 렇게 신자본주의에 관한 해박한 연구서는 2018년 출판되었고, 원제는 Capitalism With Out Capital 입니다.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작년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우선 일찍이 앨런 그리스펀은 앞으로의 세계 경제가 첨단 기술과 정보 통신 산업이 주도하는 경제로서, 이것을 신경제 New Economy라 명명한 바 있습니다. 즉 이러한 자본주의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로서 과거의 자본을 유형의 자산이라고 정의한다면, 앞으로는 유형이 아닌 아이디어, 지식, 예술적 컨텐츠, 소프트웨어, 브랜드 및 네트워크와 관계 등을 일컫는 무형 자산이 주가 되어 선도하는 신자본주의에 대한 개념과 상세한 전망을 담은 연구가 바로 이 글입니다. “지난 몇 십년간 형체가 없는 것들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며 마침 이 글의 주제가 어떠한지 대략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 책의 2부 5장 : 무형자산, 투자, 생산성 및 장기 불황과 6장 : 무형자산과 불평등 확대를 주목해 읽게 되었는데요. 자본이 축적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증명하는 것으로 이런 차원에서 오늘날 소득의 불평등에 이 무형자산에 따른 불평등이 또 다른 요소로서 가능성을 보이지 않나 싶었는데, 대략 제 추측이 옳았습니다. 일단 무형 자산은 4S 즉, 확장성, 매몰성, 스필 오버, 시너지 효과 등의 대표적 속성을 갖고 있고, 이들과 관련해서 저자들은 스필 오버와 시너지와 관련된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스필 오버란 무형 자산과 관련된 기업과 각 주체들의 투자들이 일종의 서로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으로 동종 산업 뿐만 아니라 상이한 업종 간에도 의미있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네트워크와 자동차라는 자산을 통해 발전한 우버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무형 자산에 관련된 일차적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오늘날 IT 산업의 발전과 함께 이 무형 자산이 놀랄만한 성장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 됨에 따라 노동의 역할이 중요해 질 것이라는 전통주의적인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예상을 넘어 이 무형 자산의 증대는 전통적인 노동의 역할을 변질시키고 결과적으로 자본창출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닌 결핍이 내재되어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더욱더 불평등의 길로 내몰릴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엘리트들과 사회 현실에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현재의 노동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결국 저자들도 일정 부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 만으로 이러한 무형 자산의 요소를 습득하고 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며, 장기 불황 시대에 각 관료주의와 정부가 유아 계층을 비롯한 청소년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험적 주장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판단해봅니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많은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은 국가들에 비해 무형 자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R&D 라는 측면도 정확히 수치를 계산할 수 없는 이 무형 자산의 스필 오버와 시너지 효과를 갖는 수단으로서 저작권과 특허에 관련한 보장에 많은 국가들이 힘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수한 경영과 높은 성과라는 강한 문화를 가진 기업들”은 앞으로도 자본 산출에 다른 수단인 무형 자산에 힘을 쏟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은 기업과 국가는 더욱더 도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적게 나마 인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공동 저자들의 이 연구물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광범위한 금융에 대한 설명도 담겨져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요. 사실은 금융과 이를 뒷받침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저처럼 실망감을 맛보고 싶지 않은 분들께는 이 책을 강하게 추천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다만 제4의 혁명과 신경제와 같은 최신의 정보 및 자본주의의 변화된 모습을 지식으로 얻고 싶은 분들은 구매와 일독을 권유드려봅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통계와 상세한 도표, 최근 발표된 여러 경제 논문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최신 경향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엄밀하게 따져 본다면 전통적인 유형의 자산과 여기에 언급된 무형의 자산이 서로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지 앞선 양자의 경계가 명확하게 분리되어 완벽하게 자본주의의 흐름이 변화되었다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전통적인 제조업 수준의 상품 생산과 그것을 시장에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기술의 발전 시대에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분명할 겁니다. 다만 무형 자산을 수치화하려고 하고 그 파급을 예측해보려고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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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0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나열하고 정리해서 결과를 말해주니까 어느정도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돼네요. 긴글쓰신다고 수고많으셨습니다.ㅎㅎ

베터라이프 2019-12-20 23:26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데 어쩔수 없이 어떤 부분은 주관적이고 편파적이 되기도 하네요 ^^ 하여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