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핵 시대 - 전략과 위험, 그리고 새로운 무력 외교
폴 브래큰 지음, 이시은 옮김 / 아산정책연구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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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내내 여러 뉴스 프로그램에서 기사화되어 판단되고 재분석되는 ‘북한의 괌 주변 공해상의 미사일 공격‘에 때마침 조금 연관되어 있어보이는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이죠. 이런 상황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매우 평온하고 평소와 다름없습니다. 다만 미국을 비롯한 외부의 언론과 방송들은 이번의 북한 도발에 대해 연일 기사화하고 있습니다.

그럼 책으로 돌아가면서 저자인 폴 브레큰은 현재 예일대에서 정치학과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미국 최고의 교수 및 학자 300인 안에 뽑혔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명성이 있는 사람이니 미 국방부와 정부 쪽의 여러 연구를 해 온 듯합니다.

책의 제목인 ‘제 2차 핵 시대‘는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의 첨예하고 극단적인 핵대결의 시대를 ‘제 1차 핵 시대‘ 이후의 세계를 뜻합니다. 물론 저자의 해석이죠. 이 제2차 핵 시대에 처음 시기에 대해서는 본문에 여러가지 상황이 나오는데 아마도 1991년 냉전이 끝나고 한참 지난 1998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 이후를 뜻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핵무장은 한참 이른 시기이지만 그동안 이스라엘은 여러 여건과 국익을 고려해 핵무기 보유에 대한 언급에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핵무장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미국이 자국의 핵폭탄을 이스라엘의 안보 차원에서 장기 대여 혹은 무상 대여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프랑스가 이스라엘의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폭 장치를 비롯한 핵무기 실험을 한 것은 나와 있지 않으나 아마도 프랑스가 사하라 사막 등지에서 한 자료들을 이스라엘을 위해 제공하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프랑스는 서로 동맹국입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여러 분류되는 용어들이 생소한데요. 저자는 국내 GDP 1조 달러 이상 국가들을 기준으로 일류국가라는 분류를 하고 있으며 나라의 경제 규모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을 전부 이류국가로 통칭하고 있으나 이 이류국가의 범위에도 여러가지 분류가 되는 듯 합니다. 일류국가는 성공적인 민주주의제도와 앞서 말한 경제 규모로 해석되어 보입니다. 일류국가에 언급되는 국가들은 미국, 일본, 인도, 중국, 브라질 등입니다. 반대로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보유를 이류국가의 핵보유라 칭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1차 핵 시대 즉, 냉전 시대의 미소간의 핵대결을 먼저 설명하고 있는데요. 미국과 소련의 극심한 이념 대결에서 핵 위기는 여러 차례가 있었고 상호확증파괴라는 공포의 균형하에 양국의 정치인들은 우발적인 대결이 지구의 종말로 맞이하지 않기 위해 소위 ‘위기의 관리‘에 노력해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1차 핵 시대의 교훈을 8가지로 압축하며 그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NPT 체제에서 국제적으로 공인된 핵무기 보유 5개국 이외에 발생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와 전통적인 중동 지역 맹주라 볼 수 있는 이란과의 갈등 등 그 지역 정세에 대한 30년이 넘는 분석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란의 핵문제는 지난 오바마 정권에서 이상하게 해결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핵보유는 반대로 미국의 묵인과 프랑스의 협력으로 이뤄졌으며, 미국은 혹시 모를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핵무장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몇십년간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이스라엘도 이런 정치적 상황을 알고선 이러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동 내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이 용이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전을 폭격한 것처럼 이란의 핵시설을 제거하고 싶어했지만 이란에 대한 공격은 설사 미국이 개입한다 하더라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오바마가 중국과 독일 등을 끌어들여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안전이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주주의 국가로 과거 중국과의 국경 분쟁과 파키스탄과의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 문제로 핵보유에 나섰고 파키스탄은 인도에 비해 경제력이 10분의 1도 안되는 처지에 인도와 사활적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무기 만이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줄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파키스탄의 핵보유는 거의 중국의 협력으로 이뤄졌으며 여기에는 미국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파키스탄 내의 군 기지를 이용하고 협력을 위해 이러한 핵개발을 묵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인도와는 원자력협정을 맺어 인도가 비 NPT국가로는 거의 최초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파키스탄 핵개발과 관련해서 여지없이 압둘 카디드 칸 박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정보 당국도 인정했지만 이 칸 박사가 북한 핵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죠. 다만 파키스탄의 핵무기는 일전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테러단체에 가장 유출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는데요. 폴 브래큰도 역시 이 점을 언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데요. 이 지구상의 약소국가가 몇기의 핵무기를 갖고 얼마나 용이하게 세계 최대의 강대국에게 사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역내의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안보 우려를 끼치면서 북한은 ‘미국 너희가 한국 일본을 폐허로 만들 각오가 되어 있느냐‘ 협박하는 것처럼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마땅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중국 또한 거의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대해 최소한의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도 이런 중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다만 이에 관련하여 저자의 주장에 몇가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 일본의 핵무장을 막을 수는 없어보이고, 일본의 핵무장은 전적으로 일본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판단과 만약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서유럽의 프랑스와 영국 같은 핵보유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핵무장은 한국과 대만의 핵무장을 막을 명분이 없게 되는 것으로 이는 거의 대부분의 전세계 국제정치학자들이 인정하는 부분인데 이것은 너무 안일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제거를 위해 선제적인 공격이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데요. 그 이유는 선제 공격이야 말로 서울과 도쿄에 그나마 제한된 피해만을 끼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제일 우려하는 부분은 워싱턴이 서울과 도쿄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단독 행사에 나설 가능성입니다. 이 지역의 모든 국가는 한반도의 안정만을 바랄 뿐이지만 다만 북한은 이러한 분위기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위기의 게임‘을 하고 있지요. 아마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과 우리 정부는 한국을 배제한 미국의 결단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쿄는 어쩌면 그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은 그렇지 않지요.

끝으로 폴 브래큰의 이 책은 수정되어야 될 주장이 몇 가지가 있지만 1945년부터 요즘의 북한의 핵문제까지 70년이 넘는 기간의 핵과 관련된 정치학적 또는 외교, 군사적인 해당 국가들의 행위와 그 기민한 분석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합니다. 이제 제가 이 책을 보면서 인상이 남았던 부분은 중국이든 북한이든 얼마간의 사소한 핵폭탄 몇기 라도 이들이 얻을 것은 충분히 얻어냈다는 주장이 계속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제가 우리 나라의 핵무장을 바라고 끄집어 낸 것이 아니라, 핵과 관련된 지난 국제 정치가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차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핵확산을 거의 국체로 여기는 미국 마저도 인도와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의 핵을 묵인했으며, 지금도 국제 사회에 파키스탄의 핵은 매우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분단의 한복판에 그리 연일 벌어지는 저 북한의 위협 행위를 보면서 과연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될지 큰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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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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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멜트다운‘은 노심용융을 뜻하는 용어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1기부터 4기의 붕괴에 대한 당시 약 1년간의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 등의 면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일종의 탐사보도 기록물입니다. 저자인 오시카 야스아키는 아사히 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입니다.

우선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아직까지도 머리에 남아있는 생생한 현장감입니다. 이런 탐사보도 스토리를 가진 글을 그동안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는데요. 생생한 느낌과 저에게 더 유익했던 것은 일본 관료사회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게 된 점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1기부터 4기중 1기는 수소 폭발로 끝났지만 나머지 3기는 멜트다운과 더불어 2기가 대기중에 폭발한 사건으로 하마터면 반경내에 있는 일본 국민 약 3천만이 긴급 대피할뻔한 사고였습니다. 더불어 일본의 내부 붕괴와 정치권의 파탄까지 가져올 위기까지 있었는데요. 특히 도쿄전력이라는 폐쇄되고 배타적인 그들만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한 기업이 얼마나 사회에 해악이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쿄전력은 일본의 명문 도쿄대 출신인 경영진과 원자력 분야를 전공한 일본 내에서는 이과 계통으로는 의학 계열과 비슷하게 최고위 엘리트 들이 직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각 부서별로도 관련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배타성과 특히 관리 및 검열을 받아야 되는 내각의 기관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도쿄전력의 회장과 사장 및 요직의 인사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각의 관료들에게 때론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 역사상 기록에도 없는 대규모 지진이 덮치고 이어 쓰나미가 원전을 휩쓸자 그 사고저리에 과정에도 도쿄전력이 한 몸뚱이로 움직이여 간 나오토 총리에게 당연히 가야될 정보를 누락시키거나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고 지휘 감독을 받으려 하지 않으려는 부분은 참 대단한 부분입니다. 저는 다른 부분보다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곳이 있었는데, 내부적으로 후쿠시마에 걸쳐있는 원전들이 쓰나미가 닥칠경우 어떻게 될지에 대해 조사를 마치고 그 시뮬레이션에 따라 원전 전체를 보호하는 콘크리트 방파제 건설이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누락, 묵인 시킨 것은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신들의 필요한 이익 논리에 따라 주민이든 내각이든 국가이든 크게 개의치 않는 행위는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이후 계속 요구되는 배상처리 문제에 있어서도 관련 기관에 로비와 압력 또는 회유를 동원해서 도쿄전력 수뇌부가 책임을 피하고 기업 보전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에도 심각한 괴리감이 느껴지더군요. 결국에는 제한이 없는 배상지원 설정과 도쿄 전력 수뇌부의 사퇴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그와중에도 막대한 퇴직금등을 챙기는 것을 보니 ‘이 무분별한 거대한 사익화‘에 대해 혐오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간 나오토 총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본디 사회 운동가 출신이었지만 정계에 입문해 무라야마 총리 이후 비 자민당 출신으로 집권 민주당의 내각 총리가 되어 집권 기간에 벌어진 후쿠시마 사태에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사후 처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새롭더군요. 이후 후쿠시마처럼 심각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하마오카 원전을 총리의 권한으로 폐쇄 결정을 내리고 이 사태를 통해 탈원전을 결심하여 여러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방안을 찾는 모습 또한 여느 일본 정치인 같지 않았습니다. 처리 중간에 총리가 해수 주입 중단을 요구했다는 유언비어에 언론과 자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비난에 몰입하고 내각 불신임을 위한 투표를 요구할 때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가 한 몫 거드는 것을 보고 간 나오토와 아베 신조, 양자의 대립적 인간상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아베의 그 언론을 이용해 벌인 교묘한 정치 수작은 지금의 아베와 딱 들어맞는다고 봐야겠죠.

결국 뒤이어 몇번의 자민당과 언론의 정치 공세에 결국 간 나오토 내각은 총 사퇴를 하게 되고 글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은 생각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하고 응당 다수의 안전이 걸려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사적인 이익과 몸담은 소속이 중요할지라도 처신은 옳아야 하지만 역시 사회 시스템의 한계인지 자연적인 인간의 내적 결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불이익은 감수해야 하지만 민주주의의 정체를 따로 논하지 않더라도 일의 여파가 어떤식으로 나타날지 파악했다면 마땅한 판단이 필요한데 각자 자신의 보신이 더 중요한 법인가 봅니다. 이럴 경우에는 법과 제도를 강력하게 하여 그 개인이 속한 사회보다 몸담은 조직에 힘이 더 쏠리는 행위를 미연하게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 윤리에 맡겨 정확한 판단을 기대하는 것이 일견 옳지만 그것은 동화에서나 바랄 만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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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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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관련해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학자이자 권위자인 전 예일대 로버트 달 교수의 생애 마지막 저작인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를 이제서야 일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미국 학계에 끼친 그의 영향은 지대해서 온라인 상에서 많은 이들이 추모를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가 2014년 숨을 거둘때까지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참 대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쟁적 소비주의라는 지배적 문화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시민들에게 확산되었죠. 이는 미국의 시민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의 국민들에게도 동일한 딜레마를 남기게 됩니다. 이에 더이상 무분별한 소비문화가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불어 민주주의가 성숙해짐에 따라 개인의 정치적 평등에 더 관심을 좀 더 기울이게 됩니다. 사실상 자본주의체제가 발전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 개개인의 정치적 평등이 그만큼 확대되지는 못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의해 미국이 노예제를 폐지한지 100년가까이가 지나서야 흑인에 대한 정치적 참정권과 평등이 비로소 확립되었죠. 여성의 참정권과 평등권도 이와 비슷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본디 평등한 존재로서의 가치 추구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하지만, 근래 임마누엘 칸트로부터 비롯된 순수 이성으로서의 이성적 판단은 평등의 추구에서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인식된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정서적인 역할이 현대 사회의 정치적 평등을 구축하는데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왜 흔히 아이들이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평등을 인식하는데 중요한 수단은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더 큰 좌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렇게 인식이 전환된 인간의 평등의 추구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미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규모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만큼 이를 점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참여적 민주주의‘가 이러한 개인들의 정치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로버트 달 교수는 판단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매우 원론적인 주장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면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 엘리트들과 기득권들에게 투표를 하는 많은 경제적 하위 계층의 이러한 정치적 행동이 앞서 설명한 정치 엘리트와 기득권들에게 매우 잘못된 신호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저 사람들이 우리의 기득권과 정치적 결정을 지지하는구나 하는 잘못된 해석 같은 것이죠. 그래서 단순히 계급적 투표를 포함한 정치 행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 구조의 건전한 발전과 상생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나서야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개개인의 인권과 평등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올바른 발전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주장에 제가 강하게 긍정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결국 개개인의 ‘정치적 평등‘을 구축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는 많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의 민주주의‘가 비롯되는 것으로 사실상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는 양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자신이 불평등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감정적 모티브부터 비롯되어 그것을 정치적 참여로 승화시키는 것이 앞으로 악화될 지도 모르는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내의 개인들의 정치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올바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에서 출발해 그것을 억압하고 배제하려는 정치권력들과 기득권들을 제어하는 것에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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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경 일본에 화제를 일으킨 시라이 사토시 교수의 책이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전 구해 일독하게 되었습니다. 전후 이후 이뤄진 일본 정치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덕분에 매우 흥미롭게 행간을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목에 나와 있는 ‘영속패전론‘이라는 것은 간단히 설명하면 2차 대전 패전 이후 미국에 종속되어 자신들이 패전했음에도 속으로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후반부에도 이 영속패전론에 대해 심도있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일단 간단한 설명은 이렇구요. 저자는 3. 11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사실상 전후 체제는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는데요. 이는 오에 겐자부로가 외치듯이 작금의 시대는 ‘모욕의 시대‘ 이며 이런 모욕적인 일상에 일본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정치 권력의 책임이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저도 일전에 후쿠시마와 오키나와 그리고 핵발전에 관한 여러 책을 이곳을 통해 리뷰했는데요. 즉, 이것은 후쿠시마 사태 때 일본 기상학회 이사장이자 도쿄대 교수인 니노 히로시가 말한 ˝따르게 하되,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전부 응축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일본의 거대한 정치권력이 원자력 마피아 들과 연합해 책임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해 결국에는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우선해 국민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본심을 드러냈고 그동안 일본의 정치가 주장하고 건설해왔던 전후에 구축해왔던 일본의 민주주의는 그야 말로 참혹하게 끝났다고 여기는 통탄할만한 자기 고백이라고 하겠죠.

그러면서 전후 천황제의 존속을 댓가로 이뤄진 일본 평화헌법체제 하에 미국의 안보 편입에 아베는 전후체제의 탈각을 외치며 평화헌법을 개정해 교전권을 갖는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지만 이것은 미국에게 역시 모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죠. 물론 부시 행정부 시절 리처드 아미티지를 비롯한 저팬 핸들러 들에게 일정 부분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역할을 강조했으나 오바마 행정부 들어 이렇게 더 나아가 일본 정치권 수뇌들이 역사 수정주의에 나서자 미국의 정치권이 이를 매우 혐오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일본을 방치하거나 방관하거나 내버려 두었지만 언제까지 미국이 자신들이 구축한 현 세계체제와 밀접히 관련된 전후체제를 부정하는 일본을 두고만 볼지는 앞으로 지켜 볼일입니다. 더욱이 교전권을 확보한 일본이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지는 그것의 미래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것에 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후 대외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자기 기만의 행태에 대표적인 것으로 센카쿠/댜오위다오와 독도 문제 인데요. ICJ에 가자고 하는 중국의 요구에 ˝센카쿠에서 영토 문제는 없다˝고 거절하는 일본 당국이 독도 문제에 관련해서는 한국 정부에 ICJ에 가자고 요구하지만 이렇게 국제사회에 기만적이고 이중적으로 보이는 행태에 설사 독도가 일본의 요구대로 그렇게 된다 한들 국제 사회에서 그것을 옳다고 여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다만 독도에 관련된 저자의 주장에 논리적인 문제가 있는데요. 굳이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맺은 조약들이 불법화가 되었기에 1905년 강압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할 당시에 무주지라는 핑계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향권에 강제로 넣은 것을 점유권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게 역사 문제 아무리 내밀어 봤자 의미없는 일 아닌가 반문하면서 증거로 삼을 수 없는 불법적인 일을 갖다 들이대는 것은 자기 모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초에 일본의 조선 병탄이 국제 사회에 의해 불법화가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유감스럽다고 느낄 수 밖에 없더군요.

한국 전쟁의 연구로 유명한 시카고 대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한국과 대만이 없었다면 일본이 그와 같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누릴수 있었겠는가˝ 라는 언급을 현재의 일본인들이 인정하고 냉전 시대에 한국이 없었다면 지금 일본의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예상치 못한 이익, 자국의 300만명 희생에 몰두해 피해자로 둔갑해가며 대동아공영권으로 인한 2천만의 주변 아시아인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지 않는 것은 그 근간에 이러한 영속패전론적 인식이 있는 듯 합니다. 진주만 폭격과 그와 동시에 미국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자신들조차 이 전쟁은 안된다고 여겼지만 그 책임을 통감하지 않는 다수의 일반 일본 국민들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간의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자신들도 역사적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일본 지식으로서는 꽤 보기드문 글인것만은 사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속마음을 철저히 분리해서 표현하고 해석하는 일본인들의 관념적인 특성상 일체론적으로 전부 받아들이기엔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이런 현실적 모순을 이해하고 매번 반복되는 역사적 문제에 관련해서 진솔하게 밝힌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독도 문제와 관련된 일본 지식인들의 이상한 잣대를 너무 많이 접해와서 좀 진전된 내용이 있을 줄 알았으나 그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끝으로 오독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되어 조만간 또 한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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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아가리 - 홍세화, 김민웅 시사정치쾌담집 울도 담도 없는 세상 2
홍세화.김민웅 지음 / 일상이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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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 선생과 ‘보이지 않는 식민지‘의 김민웅 선생이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그 즈음에 이 ‘열려라 아가리‘ 라는 정치 대담집을 출간했습니다. 당시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먹고 사는것에 바빠서 저만치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저는 홍세화 선생님을 예전에 김규항씨가 주축이 되어 출간했던 잡지 ‘아웃사이더‘로 더 깊이 기억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지식인들중 거의 최초로 ‘상식적 톨레랑스‘를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우리 사회에 이른바 요청하셨죠. 그리고 김민웅 선생님의 책들중 삼인에서 나온 ‘보이지 않는 식민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도 저의 이십대 시절에 여러번 정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삼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좋아했는데요. 지금도 서가에 여러권이 있습니다.

두 분의 대담을 총 네 분야로 나눠 실었습니다. 비교적 편집이 잘 되어 있다고 느낀게 읽는 도중 중간에 두 분의 실제 사진이 흑백으로실려있는데 꽤 어색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독해를 그렇게 방해하지도 꼭 두 분이 나누는 대화의 현장에 저도 같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첫장에는 당시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기념(?)으로 정신적으로 우울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적잖은 위로로 시작됩니다. 이것을 위로로라고 해석한 것은 오로지 제 개인의 따름인데요. 내용인 즉슨, 박근혜 정권의 거짓 공약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써 전 정권인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체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지 않는 이상 그(박근혜)가 공약한 복지 분야의 재원을 확보하지 못할 것은 자명했습니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이 전 정권의 이런 정책을 부정하고 뒤엎기란 거의 가능성이 없었죠. 이를테면, 정부가 주장한 기초노령연금을 실행하려면 결국 가진 자에게서 가져와야 하는데, 과연 박근혜 정부가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답하기란 이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즉, 박근혜 정권의 근본적 문제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가 동시에 실패했는데, 이것이 제반 여건이 어려워 그런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에 대해선 저로서는 후자에 더 의심을 둘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당시의 정치는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오로지 치안과 행정만이 남았고, 경제는 여전히 기득권층의 요구에 정권 자체가 함몰된 상황이었습니다. 이 기득권층들은 학벌로 강하게 연결되고 거기에다 과거 개발 독재 세력과 친일을 옹호하거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지난 10년의 민주 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를 개선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크게 생각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목소리를 내어야 될 진보 세력은 ‘통진당 해산‘ 사태로 지리멸렬해졌으며, 여기에는 이석기씨의 엄연히 잘못된 언사와 행동 그리고 내부의 파벌 문제로 그런 상황에 없지 않아 부채질을 한 요인이 있으며 이러한 근본적인 상황에는 더이상 공부하지 않는 진보 계층에 책임이 있다고 홍세화 선생이 언급합니다. 학습해서 사고하고 더 자신을 성찰해야하는데 20대 수준의 의식으로 현재의 사회와 정치적 상황을 해석하려고만 하는 모양새라 홍 선생은 이것이 큰 문제라고 여기는 듯 했습니다.

거기에다 기존의 공약을 뒤엎고 대선 당시 일부 경제 민주화 인사들을 도태시키고 전정권의 언론 장악을 유지하여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권에 사실상 희망이 없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로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전혀 읽지 않으니 정권의 입맛대로 언론을 세운 것도 있지만 분명 언론인들 스스로 학습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부분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해야겠죠.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사회 시스템이 건전한 상식 조차 정권의 지대한 불순으로 생각해 엄정히 관리해 왔습니다.

이렇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치-경제-사회-복지-교육 을 주제로 두 분의 대화가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줍니다. 읽는 사람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두 분의 대화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대화속에 인용된 여러 지식인과 학자들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고 저도 몇몇의 책은 추후에 구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첨예하고 날카로운 정치 사회 비판서 라기보다는 편하게 일독을 할 수 있는 교양서의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민주 정부가 들어선 즈음에 읽는 것이어서 제 마음이 제법 편해져서 그럴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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