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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
그리어 헨드릭스.세라 페카넨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서평 제의를 받고 제목을 보니 내용이 궁금해져 선뜻 읽어보고 싶다고 답을 보냈습니다. 책을 받고 보니 469쪽이나 되는 꽤나 두꺼운 책이었습니다. 이삼 일 바쁘기도 하고, 읽고 있던 책도 있어 두었다가 비 내리는 토요일 하루 종일 앉아 끝까지 읽었습니다. 솔직히 중간에 끊을 수 없을 정도로 뒤가 궁금했습니다. 아침 산책길에 들고 나갔다가(산책길을 느리게 걸으며 책을 읽는 게 요즘 취미입니다) 책이 너무 무거워 앞부분만 조금 읽고는 옆구리에 끼고 걸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벤치에 앉아 다시 읽었는데 시작부터 큰 사건과 함께 급속도로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뉴욕 33번가의 지하철역 바로 앞 열차를 놓친 셰이는 자신과 함께 남은 한 수상한 남자를 피해 다른 여성 쪽으로 걸어갑니다. 그녀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셰이는 돌연 선로로 뛰어드는 그녀를 보고 기겁합니다. 낯선 남자로부터 보호 받기 바랐던 여자는 오히려 자신이 보호해 주었어야 했던 사람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게다가 붙잡았다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상황이라면 그 트라우마를 견디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경찰로부터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셰이는 그녀의 집에 찾아다가 우연히 추모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미 그곳에는 셰이를 기다리는 카산드라와 제인 자매를 비롯한 친구들이 있었지요. 외로운 도시 뉴욕에서 짝사랑하던 하우스 메이트 션을 다른 여성에게 뺏기고, 직장마저 잃은 임시직 프리랜서, 이제는 남의 자살까지 목격한 셰이에게 그 고독감은 더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멋지고 친절한 카산드라, 제인 자매는 어쩌면 구원자처럼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계속된 우연은 운명이라 여기게 되었고, 자신을 반기는 그들에게 서서히 의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소심하고, 의기소침하고, 트라우마에 지쳐 상담까지 받으러 다니던 셰이는 새로운 기회가 왔음을 직감합니다.
400쪽이 넘는 이 책을 하루 만에 읽은 것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흡인력 덕분일 것입니다. 각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설득력있게 들려줍니다. 뉴욕 곳곳의 풍경이나 도시 분위기, 그리고 등장인물의 외모나 심리 묘사가 뛰어납니다. 곳곳에 혀를 내두르게 하는 반전까지 재미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셰이가 ‘데이터북’이라는 두꺼운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기록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통계 수치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진데다가 기업들이 제품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데이터를 분석하는 그녀의 숫자 기록 역사는 열한 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녀의 ‘데이터북’ 기록의 일부로 시작되는 각 장의 첫머리가 그 장의 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합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은 그 기록들에는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픽션이 가미되었음을 저자는 말합니다.
최근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100명 중 한 명꼴로 그런 성향을 가졌고, 그 중 가정환경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 속 인물들도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기억을 갖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그들의 일탈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극악무도한 인간들을 이곳저곳에서 목격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는 끔찍한 악행이 너무도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 가해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계속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무고한 사람들은 고통 받아야 하는가?”(316쪽) 법을 피해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에 대한 복수 부분에서 선과 도덕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인물 각각의 특징과 모자이크 같은 사건들의 짜 맞춤은 한 명이 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일지 모릅니다. 실제로 저자인 세라 페카넨과 그리어 헨드릭스는 작가와 편집자로 만나 오래 함께해 온 20년 친구이자 동료라 합니다. 이들이 쓴 다른 소설 <우리 사이의 그녀>와 <익명의 소녀>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422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