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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평점 :
너무나 흥미로운 소설을 읽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우리나라의 역사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미국의 역사에 대한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서부로 이동하던 시기의 이야기는 오래전 서부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미국의 역사라기보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미시사를 통해 들여다보는 미 대륙 횡단 시대였다.
미국이나 호주나 원래 살던 원주민과의 갈등 혹은 박해가 역사의 어두운 면으로 얼룩져 있다. 어느 민족에게나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인디언 역시 밀려들어오는 백인과 평화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과 싸우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 상대가 보기에는 악해 보이지만 어쩌면 자기 부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존과 나오미 두 사람의 관점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미국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존 라우리는 암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를 파는 아버지를 돕는다. 인디언 어머니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아버지에게 존을 데리고 가 존은 그곳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마을에서도 백인의 가정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었다. 말도 당나귀도 아닌 노새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새는 대이동 시기에 중요한 수단이었고, 존은 양쪽의 장점을 모두 지닌 듬직한 사람이었다. 그를 사랑하게 된 나오미는 어려운 이동을 존이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마음을 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존은 쉽게 마음을 보이지 않았다. 지치고 힘들고 위험한 서부로의 이동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조금이나마 쉬웠을 거라는 짐작을 해 본다. 하지만 이들이 겪은 일들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짧지 않은 이야기의 맨 앞에 급박한 상황이 소개된다. 첫 부분을 읽으며 이야기에 바로 쏙 빠져들게 된 이유였다. 이후 이들의 만남부터 목마름과 계속되는 도강, 끝없이 이어지는 길, 고단한 야영이 낯선 단어들과 함께 진행된다.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전쟁 때 피난민을 떠올리기도 했다. 적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프거나 지친 가족을 이끌고 피난길에 올랐던 우리 조상들처럼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머나먼 대륙 횡단을 결심했다. 처음에 가졌던 희망은 점점 누더기로 변해 가는 옷가지처럼 전염병으로 죽어 가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수많은 고난으로 인해 빛이 바래 간다. 횡단을 끝내고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고, 누군가는 제대로 된 무덤도 갖지 못한 채 노상에서 생을 마감할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이들의 여정을 눈앞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글로 담았다.
저자는 남편 조상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이 책을 썼다. 많은 이들이 남긴 횡단 일기를 통해 이야기의 부분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강인한 여성 나오미는 당시에 있었을 법한 상상 속 인물이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와샤키 추장이나 나르시샤는 작가가 상상을 더한 실존 인물이다. 끔찍한 장면도 간혹 있지만 대륙 횡단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인디언 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재미있고도 유익한 책이었다. 작가의 묘사와 서사가 너무 좋아 원어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의 원서가 있었지만 다른 이야기도 궁금해 온라인 헌책방에서 그녀가 쓴 다른 작품을 찾아 바로 주문했다.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zctk3BfkNIc
* 위 글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