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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신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0
손보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아주 오래전 손보미의 소설을 읽었다. 유명한 책이라 읽었는데 그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작년엔가 작가의 팟캐스트를 통해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들었다. 제목처럼 우연한 계기에 술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그다지 술을 좋아하지 않는 작가가 조니워커에 대해 알게 되고, 결국 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우연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때 들은 작가의 이야기들이 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떠올라 데자뷔의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인 ‘그’와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사람이다. 경찰 출신의 탐정인 ‘그’는 변호사들의 부탁을 받아 정보를 캐는 일을 하며 나름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항산화제를 챙겨 먹고, 술 담배를 즐기지 않는 그는 절제를 잘하고 자기 관리에 능통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에게는 하나의 루틴이 있는데 일정 기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가를 갖는 것이다. 휴가를 앞두고 있던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의뢰가 들어오고, 그는 휴가 대신 낯선 도시로 떠난다. 반면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후 헤어졌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에 정착해 큰 개를 키우며 살고 있는 애연가다.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있는 여성처럼 보인다. 어느 날 학창 시절 친구가 그녀 앞으로 남겼다는 유품을 받으러 리옹으로 간다.
여행이라는 것, 혹은 반드시 여행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낯선 도시에 가게 되면 그동안 자신이 해 오던 습관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여행 중 만난 인연으로 결혼하여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여행에서 반려자를, 혹은 중요한 인연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굳이 여행으로 만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끔 나에게 찾아오는 물건이나 사람, 책, 영화와 같은 사소한 것들도 사실은 굉장한 우연의 산물일 때가 많다. 아마도 작가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뚜껑도 따지 않은 마지막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이 우연히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듯 말이다.
우연은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우연히 만난 사람, 우연히 알게 된 사실.. 이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운명이라 여긴다면 세상에 인연 아닌 것이 있을까? 낯익은 이름에 빌렸다가 읽지 않고 그대로 반납할 뻔했던 책을 결국 읽었다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말이다. 소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1uuhtx5tF14
https://www.podty.me/episode/16685546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122/pimg_762781103320175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