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삶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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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스무 살 시절의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두 권의 일기장을 다시 읽으며 오글거렸던 그 시절의 순수한 짝사랑들을 떠올렸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로 다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당시의 나와는 정말 다르다. 게으르기보단 치열했고, 주인공보다는 조금 더 건전했다.

 

  요즘 시대를 사는 젊은 친구들은(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돈을 많이 벌지 않는다. 원룸의 월세 내는 날짜 다가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빠듯한 생활을 하지만 더 나아지기 위한 시도가 무모하리만큼 소용없어지는 사회의 투명 유리벽이 점점 높아진다. “꿈이 뭐냐고?” “오늘을 무사히 보내는 거요.”(30쪽) 어쩌면 젊은 친구들의 소원이 점점 작아져 하루의 안위로 만족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에서 심심하리만치 정지되어 있는 순간들의 행복. 저자는 그것들을 말하고 싶어 했다. 빠듯한 일상에서도 늘 함께 하는 본능, 먹고, 자고, 사랑하는 소소한 기쁨과 슬픔의 조각들이 엮여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답답함도 느꼈다. 내가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기성세대라는 뜻이리라. 순수한 여유를 즐기는 주인공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음의 열정과 벅찬 희망을 잃어 가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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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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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모임 ‘작은숲’에서 이번 달에 함께 읽을 책으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선택했다. 그전부터 읽어보고 싶었지만 이번 기회에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인터넷 헌책방에서 이 책을 주문했는데 한 번도 펼친 적 없는 새 책이 왔다. 줄긋기가 좀 아깝긴 했지만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죽죽 그어 나갔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문체와 소재가 독특했다. 체코 출신 문인으로서의 다른나라에 짓밟힌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랑 이야기 속에 녹아 있어 읽는 동안 과거 우리나라의 아픔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화가이자 강인한 여성인 사비나를 중심으로 테레자와 토마시 커플, 그리고 프란츠와 마리클로드 커플이 등장한다. 사비나는 이들 커플의 남자들과 묘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이 책은 언뜻 보기에 남성편력을 다룬 소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토마시는 젊은 시절 여성들을 수없이 많이 데리고 논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는 테레자가 있게 된다. 어머니의 불운한 결혼과 이혼으로 어머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던 테레자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그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토마시를 찾아간다. 그녀가 의지할 곳이 어머니로부터 토마시로 옮아갔을 뿐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독립된 인격체로 홀로 서지 못한다. (마지막에는 그녀가 키우던 개 카레닌을 의지한다.-'카레닌'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토마시의 집에 들어가는 출입증 정도로 생각하고 옆구리에서 놓지 않았던 안나 카레니나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한다.) 프란츠는 굳센 아내 마리클로드에게서 벗어나고자 사비나를 비롯한 여자들을 만나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은 마리클로드 곁에서 맞게 된다.

 

  이 두 커플의 공통점은 변화 많은 시대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인데 러시아의 체코 침공으로 숨죽이며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갈등이 드러난다. 목소리를 높이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계속 감시를 받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시대 상황, 같은 입장에 처한 캄보디아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 등 오래지 않은 과거 우리가 겪었던 격동의 시절이 이 책 속에서도 펼쳐진다. 체코 출신의 프랑스인 밀란 쿤데라가 바라본 당시의 과격함과 무엇을 위함인지 모를 정치적 키치들 속에 희생되어가는 개인의 삶, 그리고 그 와중에 끊임없이 추구하는 개인의 안락. 결국 죽음 이후 남은 건 묘비에 새겨진 한 줄이라는 파란만장한 인생 이후 큰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인간 존재의 허무함도 담고 있다.

 

  변사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독특한 스토리 진행과 이야기 주인공 변화에 따른 시간과 관점의 전환, 그럼에도 전 스토리를 관통하는 은유들(책, 벤치, 베토벤 등)이 엉기어 걸작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신화와 역사, 예술 그리고 신학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이 책 속에 녹여 냈다. 성적 방황과 정치적 방황이 묘하게 어우러진 책이다. 그의 독특한 화술에 끌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의 무대이자 저자의 고향인 체코에도 가 보고 싶다.

 

-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49쪽)

-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64쪽)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아마도 그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그들은 저녁나절의 활기를 띤 호텔을 바라보았다. 그들 주위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악쓰고 몸짓을 크게 하는 바람에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걸어가면서도 그들 자신의 침묵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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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주거문화 산책
김종인 지음 / 밀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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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이나 실내 구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지만 도시에 대해 알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도시와 주거 문화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과 도시, 그리고 외국의 도시와 건물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도시로 몰리는 사람들을 위해 아파트가 수없이 많이 보급되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인구 밀집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 것을 느낀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중소도시 사람들까지도 도시로 몰려들면서 거대 도시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인구 집중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과거 프랑스도 밀집해서 살던 지역에 큰 불이 나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하고, 미흡한 상하수도 시설 때문에 전염병이 크게 돌기도 했었다. 우리나라도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들이 급속히 발달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첫째 원인이 무분별한 건물과 아파트 건축일 것이다. 사실 외국인들이 거대도시를 탐방하고자 여행을 오지만 우리 도시만의 매력이 크게 작용하지 못해 끊임없는 발걸음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도 조금만 생각해서 도시를 키워 나갔다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위성도시나 베드타운도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잠만 자고 도시로 출근하게 될 경우 이동에 따른 환경오염과 시간 낭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주거지만 분산할 것이 아니라 상업시설이나 일터, 그리고 녹지를 함께 분산 조성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굳이 서울까지 오지 않더라도 근처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족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문화시설이나 관공서까지 더한다면 더 완벽해질 것 같다. 한 예로 든 곳이 일산처럼 넓은 호수공원 주변의 녹지 조성, 아람누리 같은 문화시설, 여러 상업시설, 관공서 등 멀리 가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도시들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에는 한옥의 장단점도 소개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과거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여성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과거 한옥이 아파트로 변하면서 여성들의 활동도 더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음에도 온돌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지막한 창문 등 지금까지 우리의 거주지에 남아 있는 조상들의 지혜는 무시하면 안 될 것이다.

 

  여러 아이디어도 나오는데 삭막한 아파트 생활의 보완으로 각 라인별 엘리베이터 옆에 조그만 쉼터를 마련해 같은 동이나 라인 사람들끼리라도 얼굴을 보고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건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요즘 생기는 아파트에는 커뮤니티 센터를 따로 만들어 주민들간에 소통할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그런 생각의 일환일 것이다. 멀리에 있는 대단위 녹지보다 가까이 있는 아파트 화단의 소중함을 알고,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녹지띠가 형성되어 언제 어디서든 초록을 만날 수 있다면 주말마다 자연을 찾아 멀리 떠나는 수고로움도 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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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삶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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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스무 살 시절의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두 권의 일기장을 다시 읽으며 오글거렸던 그 시절의 순수한 짝사랑들을 떠올렸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로 다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당시의 나와는 정말 다르다. 게으르기보단 치열했고, 주인공보다는 조금 더 건전했다.

 

  요즘 시대를 사는 젊은 친구들은(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돈을 많이 벌지 않는다. 원룸의 월세 내는 날짜 다가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빠듯한 생활을 하지만 더 나아지기 위한 시도가 무모하리만큼 소용없어지는 사회의 투명 유리벽이 점점 높아진다. “꿈이 뭐냐고?” “오늘을 무사히 보내는 거요.”(30쪽) 어쩌면 젊은 친구들의 소원이 점점 작아져 하루의 안위로 만족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에서 심심하리만치 정지되어 있는 순간들의 행복. 저자는 그것들을 말하고 싶어 했다. 빠듯한 일상에서도 늘 함께 하는 본능, 먹고, 자고, 사랑하는 소소한 기쁨과 슬픔의 조각들이 엮여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답답함도 느꼈다. 내가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기성세대라는 뜻이리라. 순수한 여유를 즐기는 주인공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음의 열정과 벅찬 희망을 잃어 가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다.

- "넌 뭐가 되고 싶어?" … "꿈이 뭐냐고?" 내일 일어났을 때 여길 나오지 않아도 되는 거요. 나는 가까스로 그 말을 참았다. 오늘을 무사히 보내는 거요. 대신 그렇게 말했다. 수의사가 안경 너머로 나를 응시했다. 큰 눈에 빛이 돌았다. 나이든 여자의 호기심 아니면 오지랖. 무엇이라도 성가시다. (29-30쪽)

- 브라운의 여자 친구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았다. 이 사람 저 사람 혀에 올려놓고 방아를 찧었다. 방아깨비 같았다. 방아깨비는 뒷다리를 잡고 있으면 쉬지 않고 방아를 찧는다. 브라운과 나는 마주 서서 방아깨비의 다리 한 짝씩을 잡고 있었다. 방아깨비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좋지 않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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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에서 온 소녀 오늘의 청소년 문학 10
정명섭 지음 / 다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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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혼자 대마도 여행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 전후로 대마도에 대한 각별한 생각이 있었다. 우리와 같은 유전자를 지닌 대마도 사람들. 지금은 너무 달라져버린 안타까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쓰시마에서 온 소녀>>를 블로그 이웃 분의 소개로 알게 되어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새로 생긴 도서관에 얌전히 꽂힌 걸 보고 반가워서 가져왔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역사 속 사실이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어느 조용한 마을에 살고 있던 가난한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의 글공부 독촉에 늘 빠져나갈 구멍을 찾던 해산은 어느날 찾아온 양반 집안 사람들을 보고 신기해 한다. 오빠와 여동생인데 왜구의 침입에 부모님을 잃고 그곳까지 피해 왔다고 해서 해산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오빠인 설유에게 새롭게 글공부를 배우기 시작한다. 조금 지나 군대를 이끌고 마을에 찾아온 이진유 장군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듯 보낸다. 설유와 여동생 설린을 왜구로 의심하는 무시무시한 진유와는 반대로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한 설유와 설린에게 마음을 뺏긴 해산은 진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설유를 잡으러 온 진유, 설린과 도망 간 해산,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채 마을은 위험에 휩싸이게 된다.

 

  숨막히게 벌어지는 일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의 성장통.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의 시기는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 모른다. 하지만 마을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내는 해산과 광현, 그리고 설린까지……. 이들 청소년의 기지로 마을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화를 찾게 된다.

 

  길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 그리고 실제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대마도에 갔을 때 보아서인지 대마도 도주 소씨 가문이 낯설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것을 우리는 잠시 간과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평온한 시기를 보내느라 권력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그들의 발에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일들을 용서하고 화해하되,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역사를 통해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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