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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인문학 모임 ‘작은숲’에서 이번 달에 함께 읽을 책으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선택했다. 그전부터 읽어보고 싶었지만 이번 기회에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인터넷 헌책방에서 이 책을 주문했는데 한 번도 펼친 적 없는 새 책이 왔다. 줄긋기가 좀 아깝긴 했지만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죽죽 그어 나갔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문체와 소재가 독특했다. 체코 출신 문인으로서의 다른나라에 짓밟힌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랑 이야기 속에 녹아 있어 읽는 동안 과거 우리나라의 아픔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화가이자 강인한 여성인 사비나를 중심으로 테레자와 토마시 커플, 그리고 프란츠와 마리클로드 커플이 등장한다. 사비나는 이들 커플의 남자들과 묘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이 책은 언뜻 보기에 남성편력을 다룬 소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토마시는 젊은 시절 여성들을 수없이 많이 데리고 논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는 테레자가 있게 된다. 어머니의 불운한 결혼과 이혼으로 어머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던 테레자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그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토마시를 찾아간다. 그녀가 의지할 곳이 어머니로부터 토마시로 옮아갔을 뿐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독립된 인격체로 홀로 서지 못한다. (마지막에는 그녀가 키우던 개 카레닌을 의지한다.-'카레닌'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토마시의 집에 들어가는 출입증 정도로 생각하고 옆구리에서 놓지 않았던 안나 카레니나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한다.) 프란츠는 굳센 아내 마리클로드에게서 벗어나고자 사비나를 비롯한 여자들을 만나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은 마리클로드 곁에서 맞게 된다.
이 두 커플의 공통점은 변화 많은 시대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인데 러시아의 체코 침공으로 숨죽이며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갈등이 드러난다. 목소리를 높이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계속 감시를 받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시대 상황, 같은 입장에 처한 캄보디아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 등 오래지 않은 과거 우리가 겪었던 격동의 시절이 이 책 속에서도 펼쳐진다. 체코 출신의 프랑스인 밀란 쿤데라가 바라본 당시의 과격함과 무엇을 위함인지 모를 정치적 키치들 속에 희생되어가는 개인의 삶, 그리고 그 와중에 끊임없이 추구하는 개인의 안락. 결국 죽음 이후 남은 건 묘비에 새겨진 한 줄이라는 파란만장한 인생 이후 큰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인간 존재의 허무함도 담고 있다.
변사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독특한 스토리 진행과 이야기 주인공 변화에 따른 시간과 관점의 전환, 그럼에도 전 스토리를 관통하는 은유들(책, 벤치, 베토벤 등)이 엉기어 걸작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신화와 역사, 예술 그리고 신학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이 책 속에 녹여 냈다. 성적 방황과 정치적 방황이 묘하게 어우러진 책이다. 그의 독특한 화술에 끌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의 무대이자 저자의 고향인 체코에도 가 보고 싶다.
-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49쪽) -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64쪽)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아마도 그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그들은 저녁나절의 활기를 띤 호텔을 바라보았다. 그들 주위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악쓰고 몸짓을 크게 하는 바람에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걸어가면서도 그들 자신의 침묵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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