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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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를 읽은 인연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저지대>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계 루마니아 작가 헤르타 뮐러의 등단작품입니다. 등단작품인만큼 작가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냈던 루마니아의 바나트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적었습니다. 바나트는 세르비아와 헝가리에 접해 있는 지역입니다만, 과거의 바나트 영역의 4분의 3정도가 루마니아에 속하고 4분의 1정도는 세르비아에 그리고 서쪽 귀퉁이의 일부는 헝가리에 속합니다. 불가리아의 바나트 지역에 있는 티미쇼아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도합니다.


작가가 그러하듯이 바나트 지역에는 독일계 주민들이 살고 있어 루마니아의 소수민족이 되고 있습니다. 독일계는 1930년 무렵에만 해도 75만명으로 루마니아 전체인구의 4.1%를 차지했으나 2011년에는 불과 36천명으로 0.2%로 격감했습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의 독재통치에 루마니아를 등진 것입니다.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주도했던 것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저지대>는 모두 19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연관이 되어 있기때문에 하나의 소설이면서도 독립되어 있는 이야기라 해도 좋겠습니다. 저지대란 제목과 관련하여 "(저지대는) 내가 태어난 바나트 마을을 그린 것이다. 그곳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모든 것이 고여 있는 감옥 같은 곳이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는 화자인 어린소녀의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합니다. 조문객들은 화자를 향해 욕을 하는 등 적대적이다. 아마도 고인에 대한 적의를 표출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전에 도살자로 일하다가 전쟁중에는 아마도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모양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가족들이 목욕을 하는 모습인데, 우리네와는 다른 특이한 풍경입니다. 제일 먼저 아기를 씻기고,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순서로 목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님이 제일 먼저 그리고 형제들이 순서대로 어머님은 마지막으로 하셨거든요. 발칸지역은 모계사회였던 모양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저지대'라는 제목으로 이 책의 표제작입니다. 무려 118쪽에 이르러 나머지 18편을 합한 부피에 가깝습니다. 내용은 화자의 집에서 부터 마을로 확대됩니다. 화자가 사는 동네는 가구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시골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을 풍경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동네와 많이 닮았기 때문일 듯합니다. 다만 우리네 옛 마을을 그 무렵 언젠가부터 역동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닮은 모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화자가 부모로부터 거의 폭력이라 할 처벌을 수시로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왜 그런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순간이면 이 두 사람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내가 어째서 이 집에, 이 부엌에 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97)”라는 화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됩니다.


이야기 말미에 있는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불치만씨등 네 편의 이야기는 <저지대>가 루마니아에서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삭제되었던 것을 복원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당대의 루마니아 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마지막 이야기 검은 공원에서 작가는 무기력한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네 눈이 공허하다. 네 감정은 공허하고 생기가 없다. 아가씨야. 안됐구나. 정말 안됐어.(235)” 하지만 그렇게나 절망스러운 과거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작가에게 영예를 가져왔다고 하니 삶을 모를 일입니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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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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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8>위기와 극복이 부제로 달려있는 만큼 로마제국이 맞은 위기 상황과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는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을 폐지하고 초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출범했지만, 사실은 카이사르가 설계하고 토대를 닦아놓았던 것을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시작한 것이고, 티베리우스가 체제를 공고히 해놓았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을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 황제에 이르면서 대중의 혹은 원로원에 영합하느라 나라살림을 거덜 내는 바람에 로마제국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국을 설계했던 카이사르가 공화파의 견제에 걸려 살해된 이후 황제라고 해서 천년만년 자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로마제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 황제는 모두 살해되는 바람에 로마의 세 사람의 통치기간은 32년에 불과했습니다. 누대에 걸쳐 쌓아온 로마의 기틀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하늘이 아직은 로마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로마 역시 악명이 높은 황제로 겪어야 했던 위기의 순간이 지나자 기회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8>에서는 로마제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서기68년부터 69년에 이르는 갈바황제, 서기69년의 오토황제, 역시 서기69년의 비텔리우스 황제, 서기69년에서 79년까지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서기79년에서 81년까지의 티투스 황제, 서기81년에서 96년까지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그리고 서기96년에서 98년까지의 네르바 황제 등의 로마제국 시절을 다루었습니다.


서기68년에서 69년 사이에는 네 명이 황제가 등장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던 것은 앞선 황제들의 낙마를 지켜보면서 나는 저보다는 낫겠다는 욕심을 가진 인물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하마트면 로마 제국의 마지막 1년이 될 뻔했다.’라고 할 정도로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서기 69년에는 세명의 황제가 재위에 올라 삼황제 시대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갈바 황제가 살해되고, 오토 황제는 자살하고, 비텔리우스 황제도 살해되고,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황제는 병사,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역시 암살당했습니다. 네르바 황제의 경우는 자연사였다고 합니다. 재위 기간이 2년에 불과한 네르바 황제부터 이어지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5명의 황제를 오현제라고 해서 로마제국의 전성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로마제국은 황제 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라인군단과 도나우 군단이 싸우는 세력 간의 대결, 브리타니아, 갈리아, 게르만, 그리고 유대 등 속주민들의 봉기 등 제국이 혼란 속에 끝없이 빠져들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폼페이와 헤르클라네움이 매몰되고, 로마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났고, 심지어는 유피테르 신전이 로마인의 손에 불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황제들이 제국과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갔던 것은 세상을 큰 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하였지만 욕심은 끝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릇이 안 되는데 욕심을 부리다보면 스스로를 망치게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절의 황제들은 군인출신이 많았습니다. 로마제국에서 군인들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잡다한 인간 집단을 이끌고 전투를 치러 승리를 올려야 하는 장수들은 대체로 군사적 측면에서의 기량을 물론 정치력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대체로 군단장급은 원로원 출신인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군의 군단장 출신으로 황제 위에 올랐던 사람들이 몰락하여 제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은 제국의 통치체제가 잘못되었다고 하기보다는 황제의 자질이 문제였다고 하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앞서 말씀드린대로 제국을 통치하려면 개인의 그릇이 그만큼 커야 했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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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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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불가리아를 여행한 인연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1905년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불가리아였던 루스추크에서 태어난 엘리아스 카네티는 1911년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부터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다고 합니다. 1921년에 이주한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다녔는데, 1차 세계대전이후 혼란한 사회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빚어진 대규모 소요사태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1924년에는 빈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면서 군중의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혹(Die Blendung)>의 초고인 <칸트 불에 타다(Kant fängt Feure)>1931년에 완성했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화형(Auto-da-fé)>, <바벨탑(Tower Babel)> 등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독일어 제목 <Die Blendung>어둠 속에서 갑자기 밝은 불빛이 비치면 일어나는 순간적인 실명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빼앗겨 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거나 그렇게 되게 함을 의미하는 우리말 제목 현혹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Die Verblendung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을 현혹(眩惑)으로 정한 이유를 1. Die Blendung에 딱 맞는 멋진 우리말 제목을 찾지 못했고, 이 소설의 중심주제가 현혹된 정신’, 그리고 문화, 물질과 권력에 현혹된인간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Die Blendung’을 영어로는 ‘The blinding’으로 번역되는데 일시적인 실명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통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빛은 간상세포가 인식하여 전기자극으로 전환시켜 뇌에 있는 시신경중추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둠 속엣 갑자기 밝은 불빛을 보게 되면 간상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자극이 갑자기 증폭이 되면서 마비상태에 빠지면서 시각중추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태, 즉 실명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빛이 꺼지고 조금 지나면 회복이 됩니다. 따라서 순간적 실명, 혹은 일시적 실명상태를 의미하는 우리말 가운데 멋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쉬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현혹>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칭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중국학 학자 페터 킨, 그리고 그의 가정부로 들어왔다가 두 번째 부인이 된 테레제, 그리고 킨이 집에서 쫓겨난 뒤에 만나게 되는  ‘체스의 천재라고 부르는 포주인 꼽추 피셜레 등입니다. 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변하는 상황에 따라 1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 2머리가 없는 세계그리고 3머릿속에 있는 세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에서는 25천권에 달하는 책을 소장한 집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지내던 페터 킨의 집에 새로 들어온 가정부 테레제가 8년에 걸쳐 책들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본 페터 킨이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결혼과 함께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데, 가정부일 때 하던 일보다 안주인으로서의 권리 챙기기에 열중할 뿐 아니라 침대를 사러갔을 때 만난 직원과 일탈을 보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킨이 유산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집에서 내쫓기까지 합니다. 그런가하면 킨은 위험한 테레제를 집에 가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옮긴이는 이러한 테레제의 행태가 물질에 현혹된 인간의 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라는 작은 제목은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는 페터 킨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머리가 없는 세계에서는 집에서 쫓겨난 페터 킨이 지금까지는 피상적으로 접촉해오던 외부세계와 직접 만나게 됩니다. 2부에서는 외부세계에서 자유를 즐기던 킨이 이상적인 하늘이라는 카레어서 자칭 체스의 천재라고 하는 포주 피셜레를 만납니다. 2부는 킨과 피셜레가 함께 움직이면서 겪는 일들을 적고 있는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속임수를 쓰고 폭력까지 난무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머리, 즉 이성이 없는 세계인 셈입니다. 여기에서 킨은 테레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킨이 자신의 돈을 훔쳐갔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를 자백하라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킨은 자신이 테레제를 죽인 살인범이라고 자백합니다.


3머릿속에 있는 세계에서는 피셜레로부터 전보를 받은 킨의 동생 게오르크가 형을 구하기 위하여 독일로 옵니다. 테레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형의 잘못된 생각을 되돌리고, 경비원과 테레제를 내쫓고 형을 집으로 돌아오도록 조치하고 파리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킨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도서관에 불을 질러 책들과 함께 불에 타 죽고 맙니다. 그러니까 머릿속에 있는 세계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를 이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현상을 군중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작가가 추구하던 군중의 심리연구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행태는 굳이 군중심리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읽어내기가 아주 어려웠던 것은 죽었던 등장인물이 다시 나타나는 등 서로 다른 시점이 뒤엉키는데다가 등장인물이 생각하는 바를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적고 있는 까닭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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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책
세실리아 아헌 지음, 이정임 옮김 / 이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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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신에게 일어나게 되는 일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에 저라면 그 일이 좋은 일이라면 기뻐하며 맞이하겠지만, 나쁜 일이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막아보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바꾸는 일도 서슴치 않을 것 같습니다. <내일의 책>바로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내일의 책>은 얼마전에 다녀온 발칸을 여행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살고 있는 열여섯 살 소녀 타마라는 부자 아빠를 둔 덕분에 해변에 있는 호사스러운 대저택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기가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은 갖추고 사는 아이는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갖추어준 아빠와 다정한 대화는커녕 버릇없이 말대꾸를 하고, 언쟁을 일삼았습니다. 아빠도 쉽게 흥분하고 딱딱거리는 편이라서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타마라는 당연히 내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고 현재에 살았고 지금만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사업의 실패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타마라와 엄마는 집을 비롯한 모든 걸 다 잃어버리게 되었고, 시골에 있는 외삼촌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타마라는 아빠와 마지막 만남에서 나는 아빠를 증오한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면전에서 문을 쾅 닫은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보면 착한 구석도 있는 것 같습니다.


외삼촌의 집은 칼세이니 성의 성문에 달린 집입니다. 외숙모가 별채로 음식을 나르는 것을 보면 누군가를 돌보는 것 같습니다. 타마라는 외숙모가 엄마는 물론 외부세계와 차단시키려 할 뿐 아니라 식사 등 일상을 틀에 맞추어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읍내라도 가려면 차를 15분 정도 타야하고 정기운행하는 차량도 없어 읍내에 나가는 일도 수월치가 않습니다.


어느 날 순회도서관 차량이 방문하게 되고 타마라는 마커스와 안면을 트게 됩니다. 그리고 덕분에 읍내에 나가게 되지만 읍내에서 만난 숙모는 미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타마라는 순회도서관 차량에서 묘한 책을 발견합니다. 가죽으로 장정이 된 두툼하고 커다란 갈색 책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책 표지나 책등에 책이름은 물론 작가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고, 책장은 금색 걸쇠가 걸려있는데다 금색 맹꽁이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타마라는 이 책을 빌리기로 합니다.


칼세이니 성에 놀러갔던 타마라는 이그나티우스 수녀를 만나게 됩니다. 수녀님의 도움으로 책장의 열쇠를 풀었지만 책의 어느 쪽에도 글자가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언가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다음날 의미가 있는 무언가를 적기 위하여 책장을 펼치자 타마라 자신의 필체로 첫 번째 쪽이 채워진 것을 발견합니다.


날자와 요일이 적힌 아래로 일기장에게. 이렇게 쓰는 건가?’라고 서두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날자는 책을 펼친 다음 날입니다. 그러니까 타마라가 오늘 일어난 일을 적어놓은 일기인 것입니다. 타마라는 일기 한 줄 한 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일기의 문장 하나하나는 내가 우리 옛집에서 이곳까지 떨어트려 흔적을 남기길 간절히 바란 빵부스러기였던 것이다(191).’라고 이해했습니다.


일기장에 적혀있는 내용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타마라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일어날 일들을 모두 막아서는 안 된다 때로는 거북할 때도 있다. 때로는 사람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그 모두가 우리의 일부이므로 우리 자신의 다음 부분, 다음날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하다. 일기장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241).


일기장은 이와 같은 진실을 깨닫게 된 타마라를 자신과 가족들을 둘러싼 엄청난 비밀로 이끌어갑니다. 이 책은 사실 타마라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벌어진 비밀을 전하는 역할을 할 뿐 미래까지 보여주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역시 미래를 아는 일은 천기에 속하는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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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2
켄 키지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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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독서회에서 5월에 읽기로 한 책입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62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밀로스 포먼 감독이 잭 니콜슨, 루이스 플레쳐 등을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1975년에 개봉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79월에 개봉되었습니다. 그 무렵 의과대학 본과 3학년으로 마침 정신과 임상실습을 받고 있어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영화 속의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충격 자체였습니다. 전기충격이나 전두엽절제술(전전두엽 절개술이 정확한 용어입니다)이 시술되던 시절이었던 만큼 전전두엽절개술을 받은 랜들 패트릭 맥머피(잭 니콜슨 )이 시술 전의 모습과는 달리 영혼이 빠져나간 듯 멍한 상태에 빠진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1890년 고틀리프 부르크하르트(Gottlieb Burckhardt, 1836~1907)가 처음 고안한 전전두엽절개술은 1935년 에가스 모니스(António Caetano de Abreu Freire Egas Moniz, 1874~1955)가 개량하여 강한 폭력성을 보이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당시까지 적용되던 어떠한 치료방법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적용하였습니다. 시술을 받은 환자들의 폭력성이 사라지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1949년 노벨 의학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폭력성은 사라졌지만 환자가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감정을 보이지 않는 등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1970년대 들어서 시술을 금지하는 나라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배경은 미국의 오리건 주입니다. 주인공 랜들 패트릭 맥머피(잭 니콜슨)는 권위주의에 반감이 심한 인물인데 도박을 즐기는데다가, 아동성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신감정에서 결함이 없는 정상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수감생활보다는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길을 선택하여 정신병원에 이송되어 온 것입니다.

랜들이 입원하게 된 병동은 밀드레드 래치드(루이즈 플레쳐 )가 수간호사로 있으면서 환자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환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정신적 학대도 서슴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환자들은 래치드 수간호사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맥머피의 성격 상 환자들처럼 행동하기보다는 무언가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그런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상황은 맥머피와 래치드 수간호사 사이에 긴장감이 넘치는 대결구도는 서로 우세를 주고받는 용호상박의 접전을 벌이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맥머피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을 설득하여 병원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지만 탈출을 앞두고 벌인 파티가 잘 마무리되지 못하면서 탈출에 실패하고 그 결과 맥머피는 전절두엽절개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맥머피가 세운 탈출계획은 화자인 인디언 추장 브롬덴(윌 샘슨 )이 이어받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놓쳤던 사실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점은 정신병원에서 수간호사가 환자의 치료와 관련한 사항을 결정한다는 것인데, 정신과 전문의가 수간호사의 진료행위를 거드는 상황은 아무래도 있을 수 없는 일 같다는 생각입니다.

정신병원하면 왠지 음침하고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선입견은 소설이나 영화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요즈음의 정신병원은 시설도 말끔하고 환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이 보장되고 있습니다. 소설 속의 정신병원은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일할 때는 정신병원들의 운영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전국의 정신병원들을 직접 방문하게 점검할 기회가 있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47년전에 영화를 보았을 때나 책을 읽은 지금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제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작품해설에서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을 일컫는 속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맥머피와 브롬든이 뻐꾸기라는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날아든 뻐꾸기 맥머피는 브롬든에게 저항의지와 자유를 향한 열망을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브롬든에게 불러주었다는 노래 세 마리의 기러기가 무리 지어.... 한 마리는 동쪽으로 날아가고, 또 한 마리는 서쪽으로 날아가고, 나머지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다.... OUT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기러기가 재빨리 내려와 너를 낚아채 밖으로 데려간다(451)”라는 대목에서 가져온 해석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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