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를 읽은 인연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저지대>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계 루마니아 작가 헤르타 뮐러의 등단작품입니다. 등단작품인만큼 작가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냈던 루마니아의 바나트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적었습니다. 바나트는 세르비아와 헝가리에 접해 있는 지역입니다만, 과거의 바나트 영역의 4분의 3정도가 루마니아에 속하고 4분의 1정도는 세르비아에 그리고 서쪽 귀퉁이의 일부는 헝가리에 속합니다. 불가리아의 바나트 지역에 있는 티미쇼아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도합니다.


작가가 그러하듯이 바나트 지역에는 독일계 주민들이 살고 있어 루마니아의 소수민족이 되고 있습니다. 독일계는 1930년 무렵에만 해도 75만명으로 루마니아 전체인구의 4.1%를 차지했으나 2011년에는 불과 36천명으로 0.2%로 격감했습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의 독재통치에 루마니아를 등진 것입니다.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주도했던 것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저지대>는 모두 19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연관이 되어 있기때문에 하나의 소설이면서도 독립되어 있는 이야기라 해도 좋겠습니다. 저지대란 제목과 관련하여 "(저지대는) 내가 태어난 바나트 마을을 그린 것이다. 그곳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모든 것이 고여 있는 감옥 같은 곳이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는 화자인 어린소녀의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합니다. 조문객들은 화자를 향해 욕을 하는 등 적대적이다. 아마도 고인에 대한 적의를 표출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전에 도살자로 일하다가 전쟁중에는 아마도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모양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가족들이 목욕을 하는 모습인데, 우리네와는 다른 특이한 풍경입니다. 제일 먼저 아기를 씻기고,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순서로 목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님이 제일 먼저 그리고 형제들이 순서대로 어머님은 마지막으로 하셨거든요. 발칸지역은 모계사회였던 모양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저지대'라는 제목으로 이 책의 표제작입니다. 무려 118쪽에 이르러 나머지 18편을 합한 부피에 가깝습니다. 내용은 화자의 집에서 부터 마을로 확대됩니다. 화자가 사는 동네는 가구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시골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을 풍경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동네와 많이 닮았기 때문일 듯합니다. 다만 우리네 옛 마을을 그 무렵 언젠가부터 역동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닮은 모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화자가 부모로부터 거의 폭력이라 할 처벌을 수시로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왜 그런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순간이면 이 두 사람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내가 어째서 이 집에, 이 부엌에 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97)”라는 화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됩니다.


이야기 말미에 있는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불치만씨등 네 편의 이야기는 <저지대>가 루마니아에서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삭제되었던 것을 복원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당대의 루마니아 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마지막 이야기 검은 공원에서 작가는 무기력한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네 눈이 공허하다. 네 감정은 공허하고 생기가 없다. 아가씨야. 안됐구나. 정말 안됐어.(235)” 하지만 그렇게나 절망스러운 과거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작가에게 영예를 가져왔다고 하니 삶을 모를 일입니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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