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의 이집트 여행 - 인생의 참뜻을 깨닫는 네모의 여행 네모의 여행 시리즈 2
니콜 바샤랑.도미니크 시모네 지음, 이수련 옮김 / 사계절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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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그리스 문명이 남긴 유물을 웬만큼 보았다싶어 이제는 조금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해보려 합니다. 우선은 이집트를 구경해볼 생각입니다. 아직은 한 곳도 가보지 못한 인류 4대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이집트를 먼저 꼽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여행의 안전과 편의성은 물론이고 계절적 요인 등을 모두 고려한 것입니다.

<네모의 이집트 여행>은 이집트 여행을 준비하는 책읽기의 일환입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이집트 문명의 신비함을 바탕에 깔려있는 소설입니다. 이집트 현지에서 왕성하게 진행되는 고고학적 발굴의 뒤에서 벌어지는 도굴 등 이집트의 현실 등을 묘하게 엮어서 흥미롭고도 신비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집트 유적의 비밀을 캐들어 가는 과정 뒤쫓으면서 어떤 반전이 준비되어 있을까 기대가 컸습니다. 작가적 상상력에 의지한 비현실적 결말에 이르는 경우에는 허탈해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결말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사실 소설의 경우는 이야기의 전개과정이나 결말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책을 직접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질 수도 있어서 리뷰쓰기가 조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이집트인만큼 작가가 이집트를 어떻게 소개하는가에도 관심이 컸습니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부터 이야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뜨는 장면을 설명하는데 참 이집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늘 그렇듯이 사미르는 새벽이 첫 신호들을 미리 감지했다. 먼저 캄캄했던 하늘이 환해졌다 엷어지는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나일강 맞은편 연안이 동쪽에서 밝은 띠가 떠오르면서 수평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태양이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일이 빠르게 일어난다. 붉은 빛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산은 점점 선홍빛으로, 월계수보다 은은한 선홍빛으로 물든다. 그림자들도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는 황톳빛에서 노란빛으로 변해간다. 그러는 동안 하늘은 조금씩 순수한 빛을 찾는다.(11쪽)”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해돋이나 해넘이는 어디에서 보더라도 장엄한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프롤로그를 풀어내는 사미르의 경우 동트는 광경에 싫증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적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해돋이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동녘하늘이 구름에 덮여 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가리는 경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작가가 해돋이로 프롤로그를 시작한 것은 이집트 신화에 기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밤이 되면 태양이 땅속에서 운행을 계속하며 마귀들과 긴 싸움을 치른 끝에 승리의 새 아침을 연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시작되는 하루는 언제나 부활이요, 죽음을 물리친 승리이며, 새로운 역사였다고 합니다.

전개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집트 학자들에 의해서 이집트 문명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설명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집트 문명의 특징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된 내용을 별도의 지면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에 대하여 이집트 사람들의 생각을 설명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야기의 주인공 네모가 마음으로 사모하는 린다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 낌새를 챈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기회를 마치 그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잡아야 한다. 기회는 보통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190쪽)”라고 말합니다. 사실 살다보면 마음속으로 끌탕을 하면서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처럼 소심한 분들의 경우는 특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 기회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도 중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오히려 붙잡으려 하지 않음만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바로 작가가 책읽는 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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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꾸리는 법 - 골고루 읽고 다르게 생각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원하나 지음 / 유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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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을 꽤 오래 해오다보니, 누군가와 함께 책을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래 전에 <레미제라블>을 읽은 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도 다른 시각으로, 혹은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블로그 커뮤니티나 인터넷을 보면 다양한 형식의 독서모임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낯을 가리는 탓인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주변에 있는 분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번에는 선뜻 나서는 분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하겠다는 분들이 계서도 어떻게 모임을 꾸려 보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책 만드는 일만큼 독서모임 꾸리는 일을 좋아하는 출판사 대표이자 독서모임 기획자’라고 소개되는 원하나 대표님이 쓴 <독서모임 꾸리는 법>입니다. 원대표님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자신만의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어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을 꾸려가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한 책’이라는 기획의도에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1. 독서모임 만들기, 2. 모임 준비하기, 3. 모임 운영하기, 등으로 정리된 차례를 보면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정말 독서모임을 꾸려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독서모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된 책은 미국 작가 앤 후드의 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대표님 역시 ‘여러분은 왜 독서모임을 하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바로 앤 후드의 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을 인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메리 앤 섀퍼와 애니 베로스가 같이 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과 캐런 조이 파울러의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같이 소개합니다. 각각 독서모임을 만든 상황과 목적이 다르지만 모여서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눈다는 점에서 독서모임을 꾸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인터넷서점의 블로그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편향된 책읽기 습관을 대폭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일반소설에서 시작해서 장르소설을 거쳐서 의학과 과학분야의 에세이로 읽는 책의 주제가 바뀌어가다가 이제는 철학, 역사 분야로까지 확대되었으니 책읽기가 제대로 궤도에 오른 셈이라고나 할까요? 저자는 1. 규칙적 독서, 2. 독서 편식 개선, 3. 감상공유, 4. 생각 정리 + 말하기 훈련, 5. 인문학 공부, 6. 책을 통한 친교, 등 독서모임을 만드는 여러 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만, 이 가운데 하나만 일수도, 어쩌면 중복된 이유로 독서모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방법도 소개합니다. 1. 책 선정의 변 + 간단 책 소개, 2. 한줄 평, 3. 발제, 4. 기억에 남는 구절 공유, 5. 감상 나눔, 6. 모임 마무리 등의 순서를 제안합니다만 모임의 특성에 맞게 변형해서 적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책을 고르는 다양한 방법도 소개합니다만, 저 역시 주제를 정하고 모임이 참석하는 분들이 각자 추천한 책을 읽는 방식도 있겠고, 특정 저자를 정하고 그 분의 책 가운데 각자 골라서 읽고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방식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시들해진 모임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책읽기 이외에도 서로 책을 교환하는 일도 소개합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독서모임을 통하여 해볼 수 있는 일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저자가 운영하신다는 독서모임에 참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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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사자의 서
서규석 엮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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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심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현생에 대한 아쉬움이 크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사후세계의 안녕을 내세우는 종교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사후세계의 안녕을 위하여 현세에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누구도 확인해볼 수 없었던 사후세계를 두려워하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도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것, 혹은 고인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들을 같이 담아 장례를 치르기도 합니다. 부장품이라고 하는 이런 것들이 옛 무덤에서도 많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 예로부터 유래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신분이 높은 경우 살아있는 사람까지 묻는 순장제도의 경우는 솔직히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부장품이나 무덤의 내부에서 죽은 이가 영생을 얻거나 부활하는 방법을 적은 기도문이 발견되는 문화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자(死者)의 서(書)는 특히 티베트와 이집트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이집트 여행을 앞두고 죽음과 죽은 자에 대한 이집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書)>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사자(死者)의 서(書)를 기록한 것은 어느 시대에서 반짝 유행하던 것이 아니라 고왕국시절부터 프톨레미 왕조에 이르기까지 삼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묘실의 벽에 기록되거나 부장된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로 기록된 내용으로 로제타석의 발견을 계기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도굴꾼들은 사자(死者)의 서(書)를 ‘죽은 자가 반드시 몸에 지녀야 하는 책’이라는 뜻으로 키탑 알 마이이트(Kitab al Mayyit)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래의 이름은 레우 누 페르 엠 후루(Reu nu pert em hru)라고 하는데, 이는 ‘낮에 출현하는 장(章)’이라는 뜻으로 ‘사자가 오시리스 왕국의 심판을 받은 후 아침에 뜨는 낮의 태양과 함께 현세로 나오는 것 즉 부활,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는 주문집’을 복합적으로 상정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사자의 서는 부활의 서가 되는 셈입니다.

사자(死者)의 서(書)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것으로 부활을 위한 주문, 라에 대한 경배, 마법의 말, 주술 공식 등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고왕국시기에 들어 왕들의 피라미드나 분묘, 관 등에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크게 3종류의 사자(死者)의 서(書)가 있는데, 기원전 3,100년경의 고왕국 시기에는 주로 피라미드의 현실에 새겨놓았기 때문에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제11왕조가 시작되는 기원전 2,233년경의 중왕국 시기에는 일반 민중에게까지 확산되었는데, 민중들의 미이라를 담은 관에서 발견된 문구들을 모아놓은 것을 ‘코핀 텍스트’라고 한답니다.

제18왕조가 시작된 기원전 1567년의 신왕국시대부터 프톨레미왕조의 사자의 서는 왕조별로 구분하여 부르는데, 왕조가 바뀔 때마다 수도를 옮겼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구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헬리오폴리스 텍스트’는 기원전 2,494년에서 2,181년까지 제5왕조와 제6왕조 시대의 것들을 이르는데, 사카라의 피라미드의 벽과 무덤의 현실 내에 상형문자로 기록되었던 것들이라고 합니다. ‘테베 텍스트’는 기원전 1,568년부터 1,085년 사이의 제18왕조에서 제20왕조에 이르는 것으로 관과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던 것들입니다. ‘사이테 텍스트’는 개원전 664년 제26왕조 이후의 것으로 파피루스나 관을 비롯한 상징물에 상형문자, 신성문자, 문중문자로 기록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書)>는 모두 4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이집트에 전해지는 천지창조와 부활의 신화를, 2부에서는 영원과 천국의 세계를, 3부에서는 부활의 염원이 깃들인 파피루스를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사자의 서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이집트에서 죽은 이를 미이라로 만들고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교리의 뿌리가 이집트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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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 그 탄생과 몰락
만프레드 클라우스 지음, 임미오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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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하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도서관이 생각납니다. 물론 오랜 과거에 불타 사라지고 흔적이라도 남아있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이집트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웬지 알렉산드리아가 빠지만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흔히 제국이나 왕국, 혹은 국가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책은 많지만, 도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읽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 그 탄생과 몰락’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처럼, 도시의 역사인데, 특히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라는 점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쓴 만프레드 클라우스 교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의 고대 사학과에서 로마황제 시대사와 고대 사회사를 전공한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리아의 역사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하여 건설된 시점부터 아랍사람들이 점령할 때까지의 역사, 그러니까 로마제국을 거쳐서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까지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던 기원전 331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프톨레아미오스 왕조가 로마제국에 무너지고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되었던 기원전 30년부터 로마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나뉜 시점에 해당하는 서기 284년까지, 속주의 수도였던 시기, 마지막으로는 서기 284년부터 641년까지인데 이 시기는 동로마제국의 영역에 속하면서 618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잃었던 이집트를 629년에 되찾았다가 642년 아랍의 우마위야 왕조에 빼앗길 때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동로마제국은 정교일치의 시기였기 때문에 대주교에 의한 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나일강이 지중해로 열리는 하구에 세워진 도시 알렉산드리아에는 고대 이집트의 원주민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입된 이방인이 주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시를 처음 건설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고, 알렉산드로스가 젊은 나이에 죽은 뒤로는 마케도니아의 장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를 거점으로 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개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뒤로는 로마제국이 지배를 받았으니, 알렉산드리아는 이방인의 도시, 즉 세계인의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일강 중 상류에서 살던 이집트 원주민 역시 알렉산드리아가 번창하면서 이주해 들어왔을 것이므로, 이집트 원주민의 문화, 특히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는 여러 신을 믿었던 로마제국이니 만큼 이집트 고유의 신을 받아들여 통치의 이념으로 삼아야 했을 것 같습니다. 책의 앞부분을 읽다보면 이제는 사라진 프롤레마이오스 왕국 시절 알렉산드리아에서 주목받았을 여러 건축물을 비롯하여 도시 시설들이 마치 지금도 있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막상 알렉산드리아에 가면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은 고고학적 성과로 확인된 유물이나 고대 그리스 혹은 로마 사람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실감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로마제국에서 활약한 많은 사람들, 특히 저의 전공인 의학 부문의 전문가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고 업적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활약한 의사 헤로필로스는 당시에 이미 대규모로 시체를 해부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정황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카이사르의 방화로 불타버렸다고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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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로저 크롤리 지음, 이재황 옮김 / 산처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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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다녀온 지 벌써 4년이나 지났습니다. 아나톨리아반도의 서쪽 절반을 도는 일정이었는데, 마지막 이틀은 이스탄불을 구경했습니다. 이스탄불은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였습니다. 유일한 천년제국 비잔틴도 결국은 문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라 믿었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제국군대의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거대한 힘을 가진 두 제국이 접경을 하게 되면 충돌은 필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던가요? 아무리 힘이 빠져가는 비잔틴제국이라고 해도 떠오르는 오스만제국이 쉽게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불과 기천의 군사로 수십만 대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점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1453년 5월 29일 오스만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메흐메트2세가 오스만 해군의 함정을 갈라타의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마르마라해에서 금각만으로 진입시킨 기상천외한 작전 덕분이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슬람세력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가지려는 염원은 이슬람교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629년 비잔틴제국의 28대 황제 헤라클레이토스가 예루살렘의 도보순례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페르시아와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헤라클레이토스는 편지를 한통 받았는데 바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알라에게 무릎을 꿇기를 청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슬람 교리를 바탕으로 아라비아의 사막에 흩어져 있는 부족들을 통합한 이슬람은 놀라운 속도로 페르시아를 복속시키고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시켜나갔습니다. 당연히 비잔틴제국과도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669년에는 우마이야왕조의 무아위야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규모 상륙부대를 파병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비잔틴제국과 아랍세력의 충돌은 40여년에 걸쳐 이어졌지만 아랍세력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역사가들은 “하느님이 로마 제국을 보호했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우마이야왕조에 이어 셀주크 튀르크 역시 비잔틴제국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8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비잔틴제국이 속으로 곪아 들어간 뒤에서야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슬람의 강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의 저자 로저 크롤리는 작가이자 역사가로 이스탄불에 살았던 적이 있고, 아나톨리아를 여행하는 등 지중해 연안지역에 관심이 크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슬람교가 시작된 7세기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이스탄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해냈는데, 옛일은 큰 묶음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이슬람에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은 시간을 잘게 잘라서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비잔틴제국을 영도하던 콘스탄티노스 11세와 패기의 오스만제국을 영도하던 메흐메트2세의 건곤일척의 대회전은 젊음의 패기가 마지막 승자가 되었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비잔틴제국의 멸망은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이 가톨릭과 정교로 각각 나뉘어 갈등을 빚는 구조 속에서 위기의 상황을 외면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쇠약해진 비잔틴제국에게 지원은커녕 가톨릭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밀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종교가 맹목적으로 폭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때 그랬던 모양입니다. 오스만이 문 앞에 와있는 순간에도 종교갈등을 접어두고 힘을 모을 생각을 왜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오늘날의 살아가는 우리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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