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 - 알츠하이머는 노화나 유전이 아니라 생활습관 병이다!
딘 세르자이.아예샤 세르자이 지음, 유진규 옮김 / 부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매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질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치매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을 쓴 딘과 아예샤 세르자이 박사 부부는 신경과 전문의입니다. 딘은 헬스케어 리더십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아예사는 혈관신경학과 역학 분야의 펠로십을 이수하고, 요리학원에도 다녔다고 합니다. 치매예방을 위한 식단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는데, 지중해식단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는데 기여한다고 하고,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한 식이요법(DASH)’이 뇌졸중을 예방함으로서 혈관성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등의 식사를 통한 치매예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마린다 대학교의 두뇌건강과 알츠하이머 예방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마린다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도로 구성된 지역사회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연 그대로의 채식, 규칙적인 운동, 사회봉사를 교리로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인근에 있는 샌버노디노 지역은 낙후되어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이 만연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지역의 환자를 진료하는 가운데 뉴로 플랜(NEURO Plan)이라는 혁신적인 치료법을 고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증상을 되돌리거나 악화되는 것을 방지했고, 결과적으로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했다고 주장합니다.


뉴로 플랜(NEURO Plan)의 핵심은 영양(Nutrition), 운동(Exercise), 긴장이완(Unwind), 회복 수면(Restore), 두뇌 최적화(Optimize)입니다. 알츠하이머가 생활양식에 기인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저자들이 주장하는 요소들은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질병인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아밀로이드 반과 신경섬유농축체가 쌓여 신경세포가 죽어나가는 현상을 보았을 뿐입니다. 아밀로이드 반에는 이상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여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유전적으로 베타 아밀로이드를 많이 만들어내는 돌연변이가 확인되었습니다. 병리학적으로도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인지장애가 없는 노인의 뇌에서도 아밀로이드반이나 신경섬유농축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의 뉴로플랜을 적용하려면 우선 알츠하이머 위험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나이, 유전적요소 등 불변적 위험요소와 영양, 운동, 스트레스, 수면, 정신활동, 사회 활동, 질병 이력 등의 가변적 위험요소에 각각 점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항에 따라서는 주관적으로 점수를 부여하도록 되어 있어 정확할지 의문입니다.


저자들은 광범위하게 문헌을 조사하여 고안한 뉴로 플랜을 로마린다 대학교의 두뇌건강과 알츠하이머 예방 프로그램을 통하여 치매환자에게 적용한 결과를 통하여 개인별 맞춤치료로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환자의 증상을 개선시키거나 병증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자신들의 가설을 지지하는 문헌에 무게를 두어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치매를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생활습관병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노화나 유전이 아니라 생활습관 병이다!’라는 저자들의 주장은 이미 밝혀진 유전적 요인에 의한 알츠하이머병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모든 치매환자들에게 뉴로 플랜을 적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인이 다른데 동일한 치료방식으로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물론 뉴로 플랜이 알츠하이머 병을 비롯한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한다는 문제는 달라질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기와 치유의 책
레지나 오멜버니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 유럽에서 구경하지 못한 나라가 있습니다만, 그 옛날에도 유럽에서는 여행이 자유로웠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광기와 치유의 책>은 아빠 찾아 유럽 각국을 주유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16세기 말, 베네치아에서 개업하던 의사 에르네스토 바르톨로메오 몬디니씨가 <질병백과>를 저술하기 위하여 유럽 각국을 주유하면서 다양한 사례와 치료법을 수집하러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프랑스를 거쳐 모로코에 이르는 엄청난 여정 사이에 딸 가브리엘라에게 근황을 전하는 편지를 보내옵니다. 여정이 수년을 넘어가면서 이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가 날아오면서, 가업을 이은 가브리엘라는 아버지의 보증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소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결국 가브리엘라는 하인 부부인 로렌초와 올미나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서 나서게 됩니다. 처음에는 파도바에 사는 카르다노 박사를 찾아 소식을 구합니다만, 별 소득이 없이 없어 아버지가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는 소식만 듣습니다. 파도바를 떠나 향한 곳은 독일의 튀빙겐입니다. 튀빙겐이 이르는 동안 폭우로 불어난 콘스탄츠 호수 인근에서 개울을 건너다가 말과 약상자를 잃었을 뿐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집니다. 바슬러박사라는 개업의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성추행을 당할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튀빙겐으로 가는 길에 도움을 얻은 구두룬 부인은 약초학에 조예가 깊지만, 마녀로 몰릴까봐 조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중세 시절에는 특히 여성이 민간요법을 행하는 경우에 흔히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튀빙겐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신교가 득세를 하면서 가톨릭 신자나 여성들을 처형하는 사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튀빙겐에서는 식물학 박사인 라이너 푸크스 박사를 찾아갑니다만,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뿐입니다. 그래도 푸크스 박사가 훔쳤던 아버지의 원고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튀빙겐에서는 배를 타고 네덜란드의 레이던으로 가서 오테르스페이르 교수를 만나지만, 아버지의 종적은 여전히 감감하고, 이곳에서 아버지의 광증이 더 심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가브리엘은 이곳에서 해부학 실연에 참여하게 되는데 당인 해부대에 오른 외국인 남자는 튀빙겐에서 만났던 로흐너씨었습니다. 가브리엘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뒤따라왔던 것인데 불행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다음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입니다. 이곳에서는 철학과교수인 해미시 어카트 박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역시 아버지의 행적에 대한 소문은 별로 없었습니다. 겨울철이라서 여행이 힘든 탓에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질병백과>의 집필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프랑스 몽펠리에에 있는 주베르 박사와 서신을 교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에든버러에 묵는 가운데 해미시 아카트 박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몽펠리에서도 별 소득이 없자 아버지가 편지를 보냈던 에스파냐의 산타엔그라시아로 향합니다. 하지만 피레네 산맥의 한 오두막에 머물던 날 곰의 습격을 받아 로렌초가 죽었습니다. 산타엔그라시아에서는 약재상의 도움을 받아 에스파냐 남쪽 해안에 있는 알헤세르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하녀인 올미나는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가브리엘은 탕헤르로 건너갑니다. 탕헤르에서는 사막에 있는 타라단테로 향했습니다. 아버지가 편지를 보낸 곳입니다. 그리고 타라단테에서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는 이미 광기가 도져 정신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곳 여관의 주인이 광에 묶어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딸을 만났기 때문일까요? 아버지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찾아 집을 떠나 10여년을 주유했지만 얻은 것은 광기뿐이었습니다. 정신이 멀쩡해도 살아남기 쉽지 않을 이국에서 광기로 혼란스러운 모진 삶을 이어간 것은 딸을 만나는 시간을 기다려온 것일까요? 아버지의 죽음을 대면한 가브리엘라는 , 아버지! 저 세상으로 훌쩍 뛰어가버리셨군요! 기억의 황야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나요, 그래야 마침내 가버릴 수 있으니까? 어제 우리는 같이 웃었잖아요.(444)”


16세기 말에 하인 부부가 동행했다고는 하지만, 어린 처녀의 몸으로 유럽을 주유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1590년 베네치아를 출발하여 1592년에 돌아갔을 것으로 짐작되니 정말 오랜 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행경비를 어떻게 조달하였을 것이며, 보안문제는 어떻게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당시 의학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 그러니까 <질병백과>의 원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의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민간전승의 요법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수 박물관>까지 오르한 파묵의 전작 읽기를 마친 것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전작 읽기를 마친 뒤에도 소설과 수필집에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그 가운데 <빨강머리 여인>을 읽게 되었습니다.


<빨강머리 여인>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고 내쳐진 오이디푸스가 결국은 신탁이 예언한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의 불행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 선왕 라이오스의 잘못에 대한 징벌에 연좌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혹한 신의 처사에 따른 희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라이오스의 악행은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자식, 손자와 손녀들에게까지 불행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테베의 백성들까지고 고초를 겪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르한 파묵은 <빨강머리 여인>에서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이란의 민족서사시 <왕서>에 등장하는 뤼스템과 쉬흐랍의 비극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11세기 초 페르도우시(Ferdowsi)에 의하여 완성된 <왕서(Shahnameh)>는 우주의 창조부터 7세기 페르시아가 아랍사람들에게 정복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6만 여구의 시행에 담았습니다. 무려 7권의 분량에 달하는 <왕서>는 페르시아 최고의 서사시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서사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함께 세계 4대 문학작품으로 꼽힙니다. 우리말로는 아직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빨강머리 여인>에서 인용한 뤼스템과 쉬흐랍의 비극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이란의 영웅 뤼스템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적국 투란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적이었지만, 투란의 왕은 뤼스템을 환대하였고, 타흐미네 공주는 뤼스템에 반하여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하룻밤 사랑으로 타흐미네 공주는 쉬흐랍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쉬흐랍이 장성하여 이란에 쳐들어갑니다. 이란의 폭군 케이카우스 왕을 폐위시키고 아버지 뤼스템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투란으로 돌아와 투란의 폭군 아프라시아브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 뤼스템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투에 나서서 결국 쉬흐랍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왕서>에 나오는 뤼스템과 쉬흐랍의 이야기는 아들이 아비를 살해하는 오이디푸스 신화와는 다른 얼개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파묵의 <빨간머리 여인>은 뤼스템과 쉬흐랍의 전설보다는 오이디푸스의 신화의 기본 설계에 따릅니다만, 오이디푸스 신화와는 등장인물이나 서사구조가 사뭇 다릅니다. 주인공 젬은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에 우물파기 명장 마흐무트 우스타를 따라 왼괴렌으로 우물을 파러 갑니다. 이곳에서 운명적으로 빨간머리 여인을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누기도합니다. 우물파기 작업을 하면서 마흐무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게 되지만, 실수로 흙더미가 담긴 양동이를 떨어뜨리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마흐무트가 죽었다고 생각한 젬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지만, 아들이라고 생각한 건설업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운명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빨간머리 여인과 하룻밤 사랑으로 아들이 태어났는데, 사실은 빨간머리 여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애인이었습니다. 또한 죽은 줄 알았던 마흐무트는 빨간머리가 나서서 목숨을 구해주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오이디푸스 신화와 일치하는 부분은 젬과 빨간머리 여인 사이에 태어난 아들 엔베르의 손에 젬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빨간머리 여인>은 오이디푸스 신화의 변주인 셈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품고 있는 오이디스푸스 신화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모리 북
하워드 엥겔 지음, 박현주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기억을 화두로 삼고 있어서 고른 책입니다. <메모리 북>은 캐나다의 추리소설 작가 하워드 엥겔의 사립탐정 베니 쿠퍼맨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많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이 많습니다만,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사 크리스타의 에르퀼 푸아로 등을 세계 3대 탐정으로 꼽습니다. 드라마로서는 형사 콜롬보의 콜롬보 형사가 생각납니다. 이들 탐정이나 형사들은 현장을 발로 뛰면서 증거를 모으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등장인물들을 모아놓고 사건을 설명하면서 범인을 지목하여 꼼짝 못하게 하는 서사구조를 가집니다.


그런데 <메모리 북>에 등장하는 탐정 베티 쿠퍼맨은 현장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수임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범인에게 머리를 얻어맞아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과적으로는 기억이 손상되었으며, 실서증 없는 실독증(Alexia sine Agraphia)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써놓은 글을 읽어 이해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탐정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해갑니다. 소위 안락의자 탐정 노릇을 한 셈입니다.


조사한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탐정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기억력 장애로 보고 들은 것들을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조사를 진행하거나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하워드 엥겔이 탐정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이유는 작가 자신이 같은 상병으로 투병생활을 통하여 극복해나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메모리 북>의 서문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올리버 색스가 쓴 이유는 하워드 엥겔이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 생겼을 때, 올리버 색스와 만남을 통하여 재활의 의지를 확고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활과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집필이 가능한 조건이 되자 엥겔을 <메모리 북>을 완성하여 색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메모리 북은 비망록을 체계적으로 적을 수 있는 작은 책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그저 이름이 뭐와 운이 맞는 간호사로 기억하는 간호사, 캐롤 맥케이는 매번 데이와 운이 맞는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어찌되었던 맥케이 간호사는 쿠퍼맨에세 공책을 하나 건네면서 메모리 북으로 쓰라고 합니다. ‘약속이나 날짜 같은 걸 적어놓는 공책입니다. 기억력에 시동을 걸 수 있도록 도와주죠. 지금 쓰고 있는 종이 쪼가리는 버리고, 앞으로 이걸 쓰세요. 저를 믿으세요. 메모리 북이 훨씬 좋답니다.(85)’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종이 쪼가리에 적어놓은 글은 생각지도 않은 사이 어디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공책의 경우는 부피가 있어서 쉽게 눈에 띄는 장점이 있습니다. 쿠퍼맨의 경우도 메모리 북에 수집한 정보를 기록하고, 자신이 써놓은 글을 유추해서 조금씩 이해해 나아갈 수 있었고, 결국에는 용의자를 범인으로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면 잠이 쏟아지는 모양입니다. 그런 잠에 대하여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밤을 샌 사람들의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잠, 경미한 자동차 사고 같은 악몽들, 선잠, 깊은 망각, 하지만 사람을 유혹하고 끌어당기는 잠에는 병원 잠만 한 것이 엇었다.내가 깨어 있는 시간을 유혹하는 요부 같은 잠은 나를 감시했고, 내 약점을 알았으며, 선정적인 약속들을 내밀었다. 저녁 식사 중이나 손님을 맞을 때, 잠은 따뜻한 두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난 졸음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또다시 나는 잠의 손길에 굴복했고, 그 감미로움에 빠졌다.(209)”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수시로 잠에 빠져드는 바람에 읽는 흐름이 깨지곤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분은 의학용어에 다소 익숙하지 않은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군데 손을 보면 좋을 곳이 있어서 개정판을 낼 때는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팬데믹 시리즈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우한폐렴 사태가 어디를 향하는지 예측하는 일마저도 포기하고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변명하기에 급급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전 세계에 자랑하던 K-방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도 헷갈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답답했던지 눈길을 붙든 책이 슬라보예 지젝이 쓴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입니다. 지젝은 우한폐렴이 시작한 직후인 20203월에 <팬데믹 패닉>을 썼다고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지난 1월에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으로 휘청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앞날을 상상하는데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체제의 앞날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팬데믹 패닉>에서 지젝은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에 대하여 개별국가의 노력과 함께 전 지구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서는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에서 드러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인기영합주의의 창궐에 주목하였습니다. 자유주의는 물론 좌파의 정치적 무능력에서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우한폐렴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일찍이 중국이 시행하여 효과를 거두었던 봉쇄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하여 마스크를 쓰자는 주장과 개인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기에 마스크를 쓸 수 없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타인과 함께 하지 못하는 자유가 무의미하듯 자유롭지 못한 개인들의 공동체는 통치의 대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부에서는 우한폐렴의 대유행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다루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지구온난화 그리고 착취 등은 동일한 투쟁을 요구한다는 이야기, 우한폐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각국의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지난날의 영웅을 회상시킨다는 이야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성애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잡스러운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2부에서는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에 대한 논의입니다. 전시 공산주의, 민주주의의 한계에 이어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등을 짚어보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생각에 더하여 공감이 가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우한폐렴 사태로 인한 사회의 붕괴를 막는다는 이유로 내건 국민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의료보장 등의 조치들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는데, 이를 신우파계열의 인기영합주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좌파계열이 주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짚고 가자면, 시도 때도 없이 내세우던 K-방역의 대단한 성과는 지젝의 눈에 차지도 않았던지 대만이나 뉴질랜드의 성공적 방역에 대하여 언급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주목해온 우리나라의 K-방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헌팅턴에서 격리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을 때 새라 메이슨이라는 사람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곧 공산주의다라는 팻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체가 모호한 조치가 끊임없이 지속되어 자영업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마저도 우한폐렴을 통제하기 위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서 간략하게 소개한 지난날의 영웅을 소환한다는 대목은 자크 라캉이 발표한 강연의 제목 <.... 혹은 그보다 못한(ou pire/or worse)>에 담긴 '아버지 혹은 그보다 못한(le pere ou pire)'이라는 문구는 가부장에 맞선 방항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쫓겨난 가부장보다 더 못한 지도자로 귀결될 수 있는지 엄중하게 경고하는 의미의 문구라고 지젝은 설명합니다. 이 대목은 우리나라의 사례가 분명하지 싶습니다.


지젝은 현재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생태적 위기, 인종차별주의라는 세 가지 영역의 상관관계와 관련이 있다.(100)”라고 짚었습니다. 별개의 문제인 듯한 세 가지 쟁점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설명을 이 책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한폐렴의 세계적 유행으로 일어난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지젝의 성찰에서 무언가가 손에 잡히는 듯하지만 그것이 정답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