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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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했습니다. 그 여행기를 최근에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우한 폐렴 으로 해외여행이 위축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 교민들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교민들을 많이 만나볼 수는 없었지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힘이 부친 젊은이가 일찍 호주로의 이민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호주 이민을 막연하게 동경해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그런 점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한국을 떠난 이유는 그저 한국이 싫어서혹은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였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평가하여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호주에서는 경쟁력이 충분하였을까요?


사귀던 연인과의 관계도 가족들의 냉정한 반응으로 벽에 부딪히고 직장 역시 만만치가 않고, 가족들도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탈출하여 호주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겠다는 각오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어학원에서 언어연수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에는 대학원에 입학하여 회계를 배우지만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가질 수 있었는지는 조금 모호한 것 같습니다.


작가가 시드니에 도착한 다음날 차에 치여 죽을 뻔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호주를 여행할 때 안내인이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호주는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기 때문에 한국과는 달리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을 먼저 보고 길을 건너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햇빛! 눈이 부셔서 고개를 어느 선 이상으로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어, 여기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게 폼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겠더라는 대목도 실감이 났습니다. 사실 저도 금년 여름부터는 해가 떴을 때는 색안경을 끼고 한낮에는 우산까지 쓰게 되었습니다만, 호주-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생긴 버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해 가본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읽을 때는 공감도가 확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페라하우스는 하얗고,, 하늘은 물감 풀어 놓은 것처럼 파란데, 그보다 더 진파랑인 바다에는 햇빛이 반짝반짝 부서지고, 거기에 또 흰 요트가 있고, 흰 갈매가가 날아디니고……라고 적은 장면도 손에 잡힐 듯 곧보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호주에서 정착하기까지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시간제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고, 그렇게 번 돈을 한국사람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긴장을 푸는데 쓰면서 세월을 소진하는 경우도 많은가 봅니다. 하지만 대학을 나오고 영주권을 받게 되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민권을 받기 전에 한국에 일시 귀국을 한 적도 있는데, 다시 호주로 돌아갈 때는 생각이 달라졌다고도 합니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는 그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한국이 실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행복해지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보다 호주에서 더 쉬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백호주의를 내세웠던 호주입니다. 지금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부랑자를 만나기고 하고, 없던 시민권 취득 시험이 생기는 등 호주 정착에 장애가 늘어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는 직원에게 해브 어 나이스 데이하고 말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아직은 진정 행복해질 방법을 찾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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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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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일본 도쿄에 있는 카페 오렌지 데이 센가와의 특별한 영업일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3218459841) 한 달에 한번 치매어르신들이 객장 일을 담당하는 날이 있다고 합니다. 주인이 치매에 걸린 부모님께 객장 일을 맡기면서 시작된 전통이라고 합니다.


치매 어르신들이 객장 일을 맡는 날에는 주문이 틀리는 날로 변한다고 합니다. 주문을 잊어버리거나 주문하지 않은 음료가 제공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는 손님들은 없다고 합니다. 객장 일을 하고 계신 치매어르신들을 이해하고 그분들의 실수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놓고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게 되면 치매증상이 빠르게 나빠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아있는 기능을 최대한 살려 사람들 속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이 증상이 개선되지는 않더라도 나빠지는 속도를 떨어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문 틀리는 카페 오렌지 데이 센가와의 사례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 그런 카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도 있지만 정부사업의 일환으로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경에서처럼 민간이 주도하는 그런 업장이 늘었으면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렌지 데이 센가와의 사례를 닮은 그런 음식점을 기획하고 운영해본 사례를 담은 책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2017년 도쿄의 작은 식당에서 이틀간 열린 기획으로 방송사의 제작자가 주관한 행사가 진행된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 행사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중국, 프랑스, 싱가포르와 중동국가 등 전 세계 150여개국가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기획은 방송사에서 제작업무를 하는 오구니 시로씨가 진행하던 기획이 갑작스럽게 엎어지는 일이 생기자, 와다 유키오씨의 치매시설을 방문한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와다씨는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지하게 해주는간병을 기본 이념으로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와다씨의 시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치매환자가 객장 일을 맡는 식당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실행에 옮기는 데는 5년에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 기획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탄력이 붙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준비하는 실행운영회가 꾸려지고 기획을 구체화시킨 끝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구니 시로씨의 특이한 발상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몇 차례 이어졌고, 결과적으로는 상시까지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민간사업장이 생기는 토양을 마련한 셈입니다. 치매환자를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하는 성숙한 문화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업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책읽기였습니다.


다만 이 기획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엮다보니 이야기의 전개가 종잡을 수 없어 이야기의 핵심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제가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최근에 발표한 <치매 고칠 수 있다>의 개정작업을 다시 하게 된다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이야기를 포함시킬 생각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치매환자가 1백만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65세 이상에서 치매유병률이 11%에 달한다고 하는데, 65세 이상인 사람 9명 가운데 1명이 치매인 셈입니다. 제가 처음 치매에 관심을 촉구하기 위하여 1996년에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를 발표하였던 것이 선구적인 일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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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
김원석.남궁인.오흥권 외 지음 / 청년의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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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진료로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의사들이지만 특히 몇 명 정도의 환자들은 기억에 갈무리해두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는 기억에 남는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한미수필문학상은 의료계의 신춘문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에는 15, 16, 17회 입상작들 42편 가운데 40편을 수록하였습니다.


입상작들은 횟수와는 무관하게 글의 성격에 따라서 1. 환자가 의사를 만든다, 2. 아픈 이들에게도 삶이 있다, 3. 죽음 앞에 서서 묻다, 4. 더 나은 세상 속 우리이기를, 5. 그대로 희망은 있기에 등으로 묶었습니다.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한 사연들은 대부분이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임상과 의사들의 경험담을 담고 있는데, 저처럼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 병리과의 경우는 특별한 사례는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환자와의 구체적 이야기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라는 제목을 보면 진력을 다했지만 환자를 구하지 못한 의사의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만, 이 책에 사연을 담은 환자들이 모두 안타까운 결과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전문 과목은 제각각이지만 비슷한 과정을 거쳐 제 몫을 다하는 의사로 성장해왔기 때문인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암환자가 많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까닭인지 암환자에 관한 이야기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기로 똘똘 뭉친 사나이라는 제목의 글은 최근에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은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뇌암으로 수술을 받고 3년 시한부판정을 받은 40대 남성에게 쌍거풀 수술을 해주게 된 사연입니다. 수술하기 전부터 쌍거풀 수술을 하려던 환자였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고서는 오기가 생겨서 쌍거풀 수술을 하기로 작심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30대 남자는 MRI검사에서 소세포암으로 확진되는 순간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쌍거풀 수술을 한 남자는 수술하자마자 토하면서도 밥을 먹기 시작했고, 강원도 산골에서 요양을 한 끝에 3년 넘게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에 관한 이야기는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에세 술을 자제하라고 말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설사병에 걸린 사람에게 똥을 자제하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라는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 적은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대체로 알코올 중독증 환자를 진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술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취미생활 등에 관한 이야기로 환자의 관심을 돌리는데 주력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관심을 쏟을만한 일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담도암 말기인 환자와 얽힌 기묘한 운명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반복되는 치료에 지쳐 삶을 포기하기로 하였지만, 그의 선택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기묘한 운명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는 이 생명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엮인 우연으로 삶과 죽음이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서도, 실은 우리는 어떤 죽음에 관해서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제가 가끔 부닥치는 골치아픈 사례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난소암이 복강 내로 퍼진 환자에서 복강 내 장기를 뭉텅이채로 절제하는 경우에는 장기별로 구분하여 병소를 찾아내고 보고서에 적어야하는 병리과의사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례를 수술했다가 세 차례나 수술을 해야 했던 외과선생님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만약 거만하고 바쁜 척하던 의사가 어느 날부터 사랑에 빠진 듯 밝은 표정으로 환자 앞에서 시간을 오래 쓰고 하루에 두 번 이상 회진을 돌고 있다면, 그 환자는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게 거의 확실하다


매년 봄에 공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미수필문학상에 저도 응모해볼만한 이야기 거리를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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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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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관찰 중에 있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전립선 항원검사를 하고 있는데 값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서 수술을 해주신 의사선생님을 만나려고 외래예약을 하렸더니 2달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1년이 넘어서야 만날 수 있다는 다른 의사선생님보다는 나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2달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우연히 읽게 된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에서 프랑스 파리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쓴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통하면 금세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병원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던 시절 말입니다. 지금은 김영란법 때문에 누군가의 소개로 진료순서가 바뀌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를 통하여 파리의 병원 사정을 고자질한 주인공은 잘나가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경험을 책으로 쓴 것이 아닐까 싶고, 그러다보니 파리에서 아프면 큰일이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손주가 있는 할머니 작가입니다. 시골에 있는 집에서 양 축사를 개조한 서재에 들어갔다가 전등이 고장 나는 바람에 더듬거리다 키 높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와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텅 빈 응급실에서 무조건 15분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 가운데 외래진료를 받아도 될 환자가 적지 않아서 응급환자 진료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그런 환자들은 진료가 늦는다고 갑질을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시골집에서 툴루즈를 경유해서 파리로 돌아온 다음에 응급실을 찾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응급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응급실을 찾아 이러저런 검사를 해본 결과 관절과 심장에 이상이 발견되어 수술과 검사까지 받아야 하는 오랜 병원순례가 시작됩니다.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오래 입원하게 되는데 의사선생님은 얼굴을 보기 어렵고, 의료진은 환자를 존중해주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몇 년 전부터 환자경험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입원했던 병원이라면 평가에서 꼴지를 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주인공이 유명 작가인 까닭인지 아니면 발이 넓은 까닭인지 진료 순서도 쉽게 바꿀 수 있고 해를 넘겨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건강보험이 우리나라와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치료비의 일정부분만 환자가 병원에 내면 되지만, 프랑스에서는 일단 환자가 전체 진료비를 병원에 내고, 그 명세를 공단에 제출하면 공단부담금을 환자에게 돌려준다고 합니다. 보험료를 청구하는 주체가 우리나라의 경우 병원인데 반하여 프랑스는 환자가 되는 셈입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듯합니다.


어떻거나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는 파리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장면들을 고발하는 느낌이 들지만 주인공 역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이리저리 손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프랑스 독자들은 너무나도 우스워 의료보험공단으로부터 항우울제 명분으로 환불을 받아야 할 소설이에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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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라이프 마인드 - 나이듦의 문학과 예술
벤 허친슨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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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출판사의 서평단 청미에 선정되어 읽게 된 책입니다. 사실은 중년 무렵부터 우아하게 늙어가기를 화두로 삼았기에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중년에 해당되는지 살짝 걱정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서평단을 공모하면서 중년은 35세부터 노년 전의 연령대를 의미한다고 해서 저도 여전히 중년이라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흔히 중년의 위기를 이야기합니다만, 돌이켜 보면 소년시절부터 위기가 거듭되었던 것 같고, 중년에서 겪었던 위기라고 해서 딱히 별달랐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특정해서 구분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인생을 유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3단계로 단순하게 분류했던 것을 기대여명이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하여 복잡해지면서 보다 세분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는 인생주기를 크게 4개의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태어나서 청년기까지의 첫 번째 연령기, 직장을 잡고 가정을 이루는 20~30대를 두 번째 연령기, 마흔부터 30년 정도를 중년기, 그리고 이후에 삶을 마무리하는 노년기가 이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영국 켄트대학에서 유럽문학을 가르치는 벤 허친슨교수는 <미드라이프 마인드>에서 우리의 삶에서 중년의 의미를 이해하고 바람직하게 노년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특히 저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에서 희곡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우리 인간이 중년을 통과하면서 어떻게 해야 창의적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끊임없이 성찰해왔음에 착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단테와 몽테뉴, 괴테, 보부아르 그리고 베케트 등의 삶과 작품을 살펴 중년의 의미를 찾아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위기를 논하기 시작한 것은 캐나다의 정신분석학자 엘리엇 자크가 죽음과 중년의 위기라는 수필에서 개념을 내놓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보다 이전에 활동했던 작가의 삶이나 작품에서 중년의 의미를 찾는 것이 옳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슬픔: 중년의 다섯 단계라는 모형이 스위스 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과 죽어감에서 제안한 바 있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등의 단계를 중년의 슬픔에 적용한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대상으로 한 것은 암 등 불치의 병을 통보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던 것인데 과연 중년에 대한 슬픔과 비교할 수 있겠나 싶습니다.


작가는 젊었을 적에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와 모리셔스 사이에 있는 레위니옹 섬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단테의 신곡,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프랑스 서정시 선집, 그리고 T. S. 엘리엇의 시 모음집을 읽었다고 합니다. 섬에서 돌아와서는 괴테의 파우스트, 몽테뉴의 에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셰익스피어의 희곡 선집,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등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지적인 성숙함에 이르는 경로를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들 책을 모두 읽었는데, 늦은 중년에 이르러서 읽은 것이 작가와 다른 점입니다. 중년에 이르기 전에 지적 성숙함에 이르는 경로를 찾기보다는 비판적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청년기가 다양한 시도를 통하여 암중모색을 하는 것처럼 시작은 다소 모호한 느낌이었습니다만, 책읽기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중년의 위기라기 보다는 중년의 성숙함으로 논지가 중심을 잡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에서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채울 것은 채우는 재조정이야말로 중년의 본질이다(280)”라는 핵심을 정리해냈습니다. 후반에 들어서는 여성의 삶에서 중년의 의미까지 두루 살펴보고 있어서 남성은 물론 여성 독자들에게도 묵직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보통사람들의 삶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문학작품들은 읽는 이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작품 속에서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추론해내는 작업이 적절할까 하는 의문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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