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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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죽고 싶은 의사, 거짓말쟁이 할머니; https://blog.naver.com/neuro412/223228519932를 읽었습니다. 원제목은 <alors voilà: Les 1001 vies des Urgences>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들어보세요. 응급실의 1001가지 삶> 정도가 될까요? 병원의 응급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환자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종의 천일야화인 셈입니다.


저자는 28살이던 2013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프랑스의 젊은 의사입니다. 2012년 프랑스 남부 오슈(Auch)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실습을 하던 중에 전국 규모로 일어난 의사들의 파업이 일반대중의 싸늘한 반응에 부딪힌 것을 보고 의사와 대중 사이의 시각의 차이를 좁혀보기 위하여 ‘alors voilà’라는 누리방을 개설하였습니다. 보리유 선생은 응급실에서 직접 겪은, 혹은 동료를 비롯한 의료진 환자들이 그에게 들려준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치 있는 글 솜씨로 기록하여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작가의 글 솜씨는 독서의 깊이에서 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는 물론이고 현대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해박함을 자랑합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나눔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싶었다라고 했습니다.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글 앞에는 유명한 노래의 제목을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목차에 나와 있습니다.


천일야화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일주일 동안의 기록입니다. 프랑스 병원의 실습 근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매일 첫 번째 이야기나 마지막 이야기가 기록된 시각이 제각각인 것을 보면 출퇴근 시간이 분명치가 않은 듯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라는 기상천외하면서도 기다란 제목을 붙인 이유는, 화자가 병원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까닭이 불새여인이라고 부르는 말기 환자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요양병동의 7호실에 입원하고 있는 불새여인은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50대 여성으로 토마라고 하는 의과대학생 아들이 있고,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빅에서 실습을 마치고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불새여인은 모르핀 처방을 거부하고 식사도 거부하기도 하여 의료진의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환자분을 이 상태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라면서 협조를 부탁하는 의료진에게 왜 다들 별것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거야. 내 상태가 뭐가 어때서?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아. 난 그저 생의 끝자락에 와 있을 뿐이라고.(66)”라고 대꾸합니다. 그리고 보면 말기상태라고 해서 금세 죽음을 맞는 것은 아니라서 환자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이 옳겠습니다.


사자머리를 한 인턴이라고 소개된 화자는 친구들과 협력하여 불새여인을 돌보기에 애를 씁니다. 화자가 불새여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환자들 뿐 아니라 동료는 물론 선배 의사들의 이야기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선배들 가운데는 자신이 직접 불새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의사도 있습니다.


닷새째 되는 날에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한 화자의 돋보이는 생각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타인의 죽음은 우리 존재의 나양한 면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 중에서 의사야말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일 것이다.(238)” 그러면서도 끝까지 병마와 싸우는 인간의 모습은 정말 인간 승리의 한 장면 같아요.(185)”이라고 적은 것을 보면, 자신의 환자가 병을 털어내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화자가 의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읽으면서 저는 무엇 때문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화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라고 했습니다만, 저의 경우는 요즈음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과대학생들처럼 부모님의 권유에 따랐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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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워터프루프북) 세트 - 전2권 - 도서 1, 2권 (분권) + PVC 파우치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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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책에서 발견하고 읽어보기로 한 <모든 삶은 흐른다>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을 때는 너무 얇아서 정말 책이 맞아 싶었습니다. 손이 큰 사람은 손안에 들어올 것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두 권이나 됩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1권과 2권의 쪽이 이어져 159쪽에 이릅니다. 누리망 서점의 자료를 찾아보니 합본된 책도 따로 나와있습니다. 두 권으로 나누어 만든 이 책은 일반 종이가 아니라 돌로 만들어진 미네랄페이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물에 젖으면 뒤틀리는 종이책과 달리 미네랄페이퍼로 제작된 책은 변형되지 않기 때문에 수영장이나 욕조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작가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책은 한창 사는 것이 우울했을 때 썼다고 합니다. 살면서 위로가 가장 간절했던 시기였는데, 바닷가, 수영, 다이빙, 배 등 바다에 얽힌 기억을 떠올리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인간의 조건에 깃든 신비함을 밝힐 때 은유법을 사용하는 철학자들이, 특히 바다를 은유적으로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바다가 모든 악을 씻는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습니다.


모두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에 파도(vague)라는 소제목 아래 8꼭지의 글을, 이어서 밀물(maree haute)라는 소제목 아래 7꼭지의 글을 그리고 썰물(maree basse)라는 소제목 아래 9꼭지의 글을 담았습니다. 모두 24꼭지의 글은 바다, 밀물과 썰물, 무인도, 상어, , 등대, 바닷가, 방파제, 빙하, , 깃발 등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물과 현상을 비롯하여 난파, 해적질, 항해, 헤엄, 선원 등 인간이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첫 번째 글 바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넓고 싶은 바다를 대양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때때로 그곳으로 떠나기를 꿈꾼다. 대양으로 가고자 할 때 우리는 그야말로 커다란 결심을 해야 하고, 새롭게 시작될 뭔가를 찾아 그곳으로 출발한다. 단순히 현재를 살고 있는 땅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 더 멀리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출발이다.(20)”


그런가 하면 바다를 인생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은 멀리 떠나는 항해와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제대로 하려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26)”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멀리 바라보는 항해와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제대로 하려면 상상력을 마음껏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이 지나간 고속도로를 그대로 가지 말고 나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자.(53)”고도 하였습니다.


이런 대목도 마음에 새겨보려 합니다. “바다는 파도가 오지 않도록 막거나 무리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건 바꾸려 하지 않고, 다가오는 건 그대로 받아들인다.(101), “삶을 다채로운 색으로 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삶을 푸른색으로 칠하자, 삶이라는 그림을 펼쳐놓고 바람이 와서 넘기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붓을 들고 직접 색을 칠하자.(122)” “바다의 운명은 끝없이 돌아가는 운명의 바퀴와 같다. 운명의 바퀴는 우리의 삶에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를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한순간이고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131)”


저자는 삶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철학적 설명보다는 바다를 은유함으로써 가능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라는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다면, 바다 앞에 서기를 바란다. 파도의 리듬에 맞출 때, 파도의 움직임과 빛이 보여주는 놀라운 아름다움 속에 있을 때, 산다는 것과 충만함이 무엇인지 대략 보일 것이다(14)”라고 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 담은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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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스러운 사이 - 제주 환상숲 숲지기 딸이 들려주는 숲과 사람 이야기
이지영 지음 / 가디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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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즐겨하는 꼬리를 무는 책읽기로 <숲스러운 사이>를 읽게 되었습니다. 숲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읽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목이 독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럽다는 비유적인 표현인데 무엇들을 숲에 비유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숲스러운 사이>는 제주 곶자왈에 있는 환상숲에서 숲해설을 하고 있는 이지영님이 쓴 책입니다. 환상숲에서 만나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환상숲을 매개로 하여 만난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제주에는 주로 일 때문에 급하게 다녀오는 경우가 많아서 곶자왈을 구경해본 적은 없습니다. 곶자왈은 숲을 의미하는 제주어 과 덤불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진 말로 1990년대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한라산의 중간 높이에 형성된 야생숲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화산이 분출할 때 쏟아진 점성 높은 용암은 세월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바위로 쪼개지면서 요철(凹凸)이 심한 지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지형은 경작지고 개발되지 못하고 버려져 있었습니다.


토양의 발달이 더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무와 덩굴식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자연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의 155면적의 곶자왈은 2011년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신평리 마을회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협약을 맺어 마을 소유의 토지 48.5를 도립공원의 일부로 편입시키면서 곶자왈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환상숲은 신평리 북쪽에 있습니다. 은행에 다니던 작가의 아버지가 빚을 내어 사들인 땅이었습니다. 아내의 할머니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돌밭을 평당 3백 원을 받고 육지 사람에게 팔았던 것입니다. 귤밭을 사자는 아내의 부탁도 저버리고 샀던 돌밭은 훗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매달려 나무를 심으면서 숲을 이루게 되었고, 재활에 성공하는데 보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숲에서 작가가 숲해설을 하게 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 듯합니다.


<숲스러운 사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야기들이 계절과 특별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계절별로 정한 주제에 맞는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with라는 주제를 담은 봄에는 함께 숲을 걸은 사이: 숲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through라는 주제를 담은 여름이야기는 숲 사이로 걷다보면: 숲을 통해 알게 된 생각들입니다. while이라는 주제를 담은 가을에는 숲에서 사는 동안에: 함께했던 이들과 그동안의 이야기입니다. gap이라는 주제를 담은 겨울에는 숲에서 산다는 거리감: 그 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네 가지 주제는 모두 시간적 혹은 공간적인 거리감, 즉 사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숲을 매개로 한 시공간적 사이를 이야기하는 셈이니 <숲스러운 사이>라는 제목이 이해되는 듯합니다.


책을 읽을 때 독후감 쓸 생각에 표식을 붙여두곤 합니다만, 책읽기에 몰입하다보니 표식을 붙여둘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표지를 붙여둔 대목은 숲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찾아와 숲에 들어갔을 때 여섯 살짜리 아이가 뛰어다니다가 넘어져 이마의 피부가 쓸려 피가 나는 사고를 당한 이야기입니다.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흉이 질 수도 있는 상처였는데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어린이집 선생님은 당신 아들이 천방지축 뛰다가 생긴 사고이니 궤념치 마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로 다친 아이의 치료비를 내라는 학부모의 성화에 지친 선생님이 세상을 하직하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작가님은 아버지의 숲이 딸의 숲, 가족의 숲이 되었지만 결국은 모두의 숲이라는 점을 <숲스러운 사이>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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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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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제3, 승자의 혼미>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3차례에 걸쳐 벌인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시점으로부터 카이사르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시기의 로마 공화정을 변화를 담았습니다. 작가는 이 시기를 그라쿠스 형제 시대(기원전 133기원전 120)와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기원전 120기원전 78) 폼페이우스 시대(기원전 78기원전 63) 등 제3장으로 나누었습니다.


카르타고는 한니발이라는 걸출한 장군이 로마의 본토를 유린하는 동안 본국의 내분에 휩싸여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 역시 승리의 달콤함에 취한 듯 내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승자의 저주라는 필연적인 변화인지도 모릅니다. 리비우스가 <로마사>에 기록한 한니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예언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계속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는 적이 없다 해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이 접근하지 못하는 건강한 육체라도, 그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내장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9)”


로마인 이야기 제1권에서는 로마왕국이 어떻게 성립하여 공화정으로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다루었고, 2권에서는 로마공화정이 어떻게 작동하여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가를 다루었다면, 3권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했던 공화정 체제가 어떤 문제를 안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귀족들이 중심이 된 원로원과 시민들이 중심이 된 민회가 상호 협력하여 외부 세력에 대항하여 카르타고를 필두로 한 외부세력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두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치체계를 보완해온 결과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왕정시대에 왕의 자문기관으로 시작했던 원로원의 위상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더하여 전쟁에서의 승리가 거듭되면서 원로원이 귀족계급과 시민계급 사이의 괴리가 심각해져 갔습니다. 로마 공화정이 발전해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사회체제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에니전쟁 이후에 심화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원로원과 민회의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바로잡으려 한 그라쿠스 형제가 등장한 것입니다.


카르타고를 말살시키는 현장에서 스키피오 아밀리아누스가 폴리비우스에게 지금 우리는 지난날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라고 말하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었던 것은 아닐까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이 말을 들은 것은 16살 때였습니다. 평민출신으로 집정관을 지냄으로써 원로원이 일원이 된 평민귀족 가문의 떠오르는 별이었습니다. 원로원을 구성하는 귀족계급들은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노예와 토지를 늘려가게 되었지만 시민계급은 점차 재산을 잃고 무산계급으로 전락해가는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그라쿠스는 토지개혁을 통하여 시민계급을 살리고자 하였지만, 원로원의 반발에 부딪혀 죽음을 맞았고, 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 역시 같은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 들어선 마리우스와 술라 그리고 폼페이우스 등은 원로원을 장악하면서 독재관이 된 술라는 3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의 정원을 600명으로 확대하여 새로 부상하는 기사계급이라 할 수 있는 경제인들을 국정에 참여시키려 하였습니다. 이처럼 술라는 로마공화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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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여행법 - 세상의 모든 길들
미셸 옹프레 지음, 강현주 옮김 / 세상의모든길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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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날 때면 철학자가 쓴 수필집을 챙겨가곤 합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는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가 쓴 <철학자의 여행법>은 여행을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해봐야 할 점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유목민과 정착민이라는,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온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을 대비시켰습니다. 유랑하는 여행자들의 세계주의와 정착한 농민들의 민족주의가 대립하는 구도로 인류역사를 움직여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정착하기 이전에 유목으로 삶을 꾸렸기 때문에 누구나 본능적으로 여행을 갈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겁고 창조적인 여가시간을 미끼로 문명이 요구하는 노동에 시간을 사용하길 거부하는 것이다(16)”라고 저자는 단정합니다.


저자는 여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따라서 목적지 정하기부터 집을 나서 여행을 시작했다가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목적지를 정하는데 있어 책, 소설, , 여행기 등의 자료는 다양한 부분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저자는 여행은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혹은 서점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32)’고 말합니다. 지도를 포함하는 지리적 자료를 섭렵한 뒤에는 시()와 소설이 뒤를 잇는다고 합니다. ‘지도와 시가 절대적 개념을 형성하고 핵심을 추상화할 때, 산문은 더 느리고 더 긴 리듬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비행기, , 기차,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을 이용하다보면 다은 여행자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믄데 이 과정에서 친교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저자는 혼자서 하는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여행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다양한 행태로 기억해두라고 합니다. 수채화, 사진, 크로키, , 짧은 메모, 긴 설명, 편지, 우편 엽서 등 각자에게 가장 편한 방법으로 기억을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여행의 순수함을 회복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확인할 목적으로 어느 지역을 찾아가는 여행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틀에 박힌 그런 것들을 찾아갈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전통적인 여행방식, 예를 들면 느림을 찬양하고, 빠름을 마치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치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여행을 한참 하다보면, 오직 자기 자신만을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유목민들의 에고티즘(egotism), ,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이 경지에 들어서면 세상은 여행자의 주위에서 저절로 움직이며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여행자라는 하나의 별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돌고 있는 세계처럼 말입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우리는 여행을 다시 조이거나 압축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134)”라고 말합니다. 여행을 통하여 얻은 다양한 정보들을 잘 정리하여 기억이 퇴색하거나 뒤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진, 그림, 동영상 등 다양한 기억 저장방식이 있겠지만, 경험을 오로지 글로 쓰일 경우에만 그 전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하여 기억의 편린들은 추억으로 갈무리될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유목민의 삶을 추구하라는 분위기 일색입니다. 저자는 여행에 대한 열정은 환경의 변화나 육체의 확대, 존재론적 고독, 형이상학적 이타심, 구체화된 미학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독성을 경험한 육체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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