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만 5천 6백 분의 소중한 순간들52만 5천 6백 분1년의 가치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 뮤지컬 <렌트>, ‘Seasons of Love‘ 가사 중에서 -

"호영,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
<킹키부츠> 공연을 할 때 어느 날 정성화 형이 나에게 물었다. 형의 질문에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형, 나는 그냥 내가 교차로에 서 있는 사람 같아요. 뮤지컬, 드라마, 영화, 예능, 홈쇼핑, 사업···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 같달까요? 좋은 엔진으로무장한 사람들이 각자 자기 길을 찾아서 쌩쌩 전속력으로 흩어져 가는데 난모르겠더라고. 매일의 선택이 달라. 오늘은 이 길, 내일은 저 길."

아주 어릴 적, 아득한 그 시절부터뭔가 될 거라고, 되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TV에 나갈 거야, 예쁜 옷을입는 사람이 될 거야,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게 할 거야. 그렇게연극학과에 들어가고 뮤지컬 배우가 되고 어린 시절의 꿈이 이루어졌을 즈음엔 다른 꿈을 그렸다. 내 끼를 발산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다면 드라마, 영화, 예능, 홈쇼핑, 트로트… 장르 불문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에 삶은 항상 총천연색이었다. 그런 내 곁엔 "너는 무조건잘될 거야, 너니까 반드시 해낼 거야, 너는 슈퍼스타야"라고 말해주는엄마가 있었다. 엄마 덕에 세상 누구보다 삶이 선명한 채도와 명도를가지게 됐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나의 엄마, 다이애나 김 여사님께 제일 먼저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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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여러 번 독일을 방문하면서 둘러본 놀이터 중에 베를린 놀이터도 포함돼 있다.
편해문의 책에 소개된 베를린 놀이터에는 여러 특징이 있다.
첫째, 다양성이다. 우리나라처럼 미끄럼틀, 그네, 시소로 구성되는 3종 세트가 어디를 가나 똑같이 설치돼 있지 않다. 둘째,
아이들은 컴컴해질 때까지 그곳에서 논다. 셋째, 놀이터를 구성하는 재질 가운데 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실, 오늘날 모든 매력적인 공간들은 자본에 의해 소유·관리되면서, 전 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끌어온다. 집합적상징 자본은 오버 투어리즘을 낳고, 이것은 다시 도시의 사회적 구조를 망가뜨린다. 도시의 사회적 구조라는 건 뭘까? 포르투갈의 리스본(리스보아)에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타보는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라는 게 있다. 관광객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 도시를 조망한다. 이엘리베이터는 원래 20세기 초에 지어진 윗동네 주민들을 위한 공공시설이었는데,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이제는 최소한30분을 기다리지 않으면 탈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관광시설로 변했다. 관광객으로 인해 옆집에 놀러 가거나 일하러가는 주민들의 일상은 현저히 불편해졌다. 또한 주민들은 더복잡한 지하철과 노면 전차에 시달려야 한다. 관광객에게 내어 준 임대 아파트로 인해 현지 주민이 살 집은 점점 줄어들고 그에 따라 주거비가 상승한다. 유럽의 서쪽 끝 리스본은 두번의 세계 대전도 피해 간, 1755년의 대지진 이후 새롭게 건설돼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해 온 낡은 도시다. 1930년대에 다니던 노면 전차가 지금도 땡땡거리며 골목을 달리고, 여기저기 무너져 가는 집들이 즐비한 곳이다. 인구 50만 명의이 도시에서 주민들은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한 해에 6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아와 주민들의

도시의 매력, 저주인가 축복인가?
"저주인가 아니면 축복인가?" 분명한 것은 도시 정치와 도시법이 작동하지 않으면,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장소의 특별한탁월성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살고 싶은 도시는 순식간에 자본이 사고 싶은 도시로 변해 버린다. ‘에어비앤비‘를 규제하지 않아 주민들이 살아야 할 공간을 초단기 임차인인 관광객이 들어가 사는 일이 일상이 될 때 원주민에게이것은 저주가 된다. 몰려오는 관광객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자본의 탐욕에 아무런 법적·제도적 족쇄를 채우지 못하면 이것은 매력적인 도시의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실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을 위시해 유럽의 여러 도시가 에어비앤비를 규제하는 법률을 서둘러 마련한 것은 매력적인 도시들이 직면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2023년에는 피렌체가이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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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더 보이의 내부 시사를 마치고 가까운 영화 관계자 중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부모가 된 후로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영화를 못 본다고. 더 보이는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온 아기가 훗날 자길 사랑으로 키워준 양부모를 살해하고 지구를 위협하는 최악의 빌런이 되는 판타지 공포 영화다.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볼수 있을 리가 나는 이제 아이가 막 태어나려 하는 참이어서 그때까진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영화 감상에까지 심각한 지장을 준다고?‘ 이때는몰랐다. 내가 얼마나 눈물이 많은지.
아이가 생긴 후로 그 관계자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절실히 알게 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가 납치당하거나 죽거나사라지거나, 심지어 다치는 장면이 나와도 여지없이 펑펑 운다.
만듦새가 엉망진창인 영화를 봐도 그렇다. 전처럼 팔짱 끼고 앉아서 "아... 저 신파"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다.

농담 같겠지만 당신도 아이가 생기면 이 글이 생각날 거다. 그땐 일산 한구석에서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추리닝‘ 바람에 헤드폰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주먹을 입에 물고 꺽꺽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위안삼기를아... 이제 나는 아이가 어떻게 되는 영화를 보지 못하는 몸이되었습니다.

감상한 영화의 편수를 늘리는 것은 겉멋 부릴 수 있다는 것말고는 내게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공부처럼 접근하는 건 체질상 안 맞는 모양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덕질의 영역에서 그 분야에 해박해져야 하는데 즐겁지 않으면 이미 덕질이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 분야에서만 해박하면 돼.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그런데 아, 생각해보니 아직도 E.T.를 못 봤네….

과민성 이죽거림과 비아냥을 습관처럼 손가락과 입에 달고 살고, 남을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려 할 때 언어를 실체가 있는 무기처럼 점점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우린 갈수록 잔인해지고 과격해진다. 아니다, 그것만도 못하게 갈수록 비열하고 저열해진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고골이 주콥스키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런 말도 있다.
"좋은 번역은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같아야 한다는 통념이있지만, 진정 훌륭한 번역은 현실의 거울처럼 작은 얼룩들과결함들이 있는 번역이다."

"친구랑 또 보려는데 이 영화 내일도 해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좋던지 불쑥 끼어들어 내일 표를 예매해드리고 싶었다. (오지랖 같아 나서진 못했다.) 영화를 정말 좋게보셨나보다. 연세가 있는 관객의 말이라 더 그랬을까, 내가 이 영화에 투자한 사람도 아니고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도 아닌데 작품을 좋게 봐주는 관객을 만나니 너무 감사하고 뭔가 벅차기까지했다. 객석 뒤편에 앉아 관객들의 웃음소릴 듣는 것과는 또다른뭉클함이었다.

영화 번역가로서 가장 기분좋은 순간은 "내가 번역한 영화를관객들이 저렇게나 좋아해줄 때가 아니라 "관객들이 저렇게나좋아해주는 영화를 내가 번역했을 때다. 얼핏 같은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관객들이 저렇게나 좋아해주는 영화를 내 품에 안을수 있었던 행운 내 손으로 고이 보듬어 내놓을 수 있었던 행운.
그 모든 건 행운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그 할머니 관객의말을 듣고 느낀 감정의 정체는 감사함이었다. 그 우연한 행운에대한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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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것 … 그렇습니다. 매사에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일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셔야 하지요. 누군가가 하느님을 확실히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표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모든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하느님이 그와 함께 계시지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말하자면 그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는 거짓 예언자임을 뜻합니다. 모세와 같은 하느님 백성의 위대한 지도자는 항상 의심할 여지를 남겼습니다. 우리 확신을 위해서가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여지를 남겨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믿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 삶은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 오페라 리브레토처럼 주어지는게 아닙니다. 우리 삶은 걷고, 방황하고, 행동하고, 찾고, 바라보는 그런 것입니다. 만남을 찾는 모험에 나서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찾으시고 만나시도록, 하느님과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저에게는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의 삶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
예수회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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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 잘 지내? 계절이 바뀌고 있어. 주위 풍경이전과 다르게 보이고 공기의 감촉이 바뀌어가. 아마 나도 조금은 변하고있겠지. 하지만 어디가 변했는지는 스스로 알 수 없어. 자신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마음을 거울에 비춰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림자는 말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여기 있는 그녀가그림자고 벽 바깥에 있던 그녀가 본체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전부터 그게 마음에 걸려서, 여기 오는 사람들의 얘기를듣고 조각조각 정보를 모아 나름대로 생각해봤어요. 그리고이런 가설을 세웠습니다. 실은 이곳이 그림자의 나라가 아닐까. 그림자들이 모여 이 고립된 도시 안에서 서로 도와가며 숨죽이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지만 네 말처럼 여기가 그림자들의 나라라면, 어째서 본체인 내가 도시에 들어가고 그림자인 너는 여기 갇혀 죽어가는 걸까? 반대라면 이해되지만."
"내 생각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림자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에요. 자신들이 본체고 벗겨져나간 그림자가바깥으로 쫓겨난다고 믿고 있죠.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가 아닐까. 벽 바깥으로 쫓겨난 것이 본체고, 여기 남은 이들이야말로 그림자가 아닐까

"여기서는 아직 어릴 때 본체와 그림자를 떼어내죠. 그리고본체는 불필요한 것, 해로운 것으로 치부당해벽 바깥으로 추방돼요. 그림자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지만 설령 본체를 쫓아내도 그 영향이 말끔히 지워지진 않아요. 미처 제거하지 못한 마음의 작은 씨앗 같은 게 뒤에 남고,
그것이 그림자의 내부에서 은밀히 성장해가죠. 도시는 그것을재빨리 찾아내서 긁어낸 뒤 전용 용기에 가둬버리는 겁니다."

"마음의 씨앗?"
"그래요.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 이 도시에서 그런 감정은 무용한것, 오히려 해로운 것이죠.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겁니다."
"역병의 씨앗." 나는 그림자의 말을 되풀이했다.
"네. 그러니 남김없이 긁어내 밀폐용기에 담아서 도서관 깊숙이 넣어두는 거예요. 그리고 일반 주민의 접근을 금지하죠.
"그럼 내 역할은?"
"아마 그 영혼을혹은 마음의 잔향을가라앉히고 소멸시키는 일이겠죠. 그림자들이 할 수 없는 작업이에요. 공감이란 진짜 감정을 가진 진짜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왜 그걸 굳이 가라앉혀야 하지? 밀폐용기 속에서깊은 잠에 빠져 있다면 그대로 둬도 될 것 같은데."
"아무리 단단히 갇혀 있어도 존재 자체가 위협이니까요. 그것들이 어떤 계기로 힘을 얻어 일제히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그게 이 도시의 잠재적 공포가 아닐까요. 만약 그런 사태가빚어지면 도시는 순식간에 와해될테죠.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의 힘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싶은 겁니다.
누군가가 오래된 꿈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꿈을 같이 꿔줌으로써 잠재된 열량이 달래진다-그들은 아마 그런걸 원하는 거겠죠.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당신한사람뿐이에요."

훗날 고야스 씨는 자신이 왜 일상적으로 스커트를 입는지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첫째로는, 이렇게 스커트를 입고 있으면, 네, 왠지 내가 아름다운 시의 몇 행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랍니다."

"그런 건 여기서 하루하루 일하다보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요. 지금은 그런 데 크게 신경쓰지 말고, 일단 이곳의 업무를차근차근 익히십시오. 그리고 이 작은 마을에 마음과 몸을 길들여주세요. 지금으로선, 네,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답니다.
괜찮습니다."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나는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상당히 근사한 표현이다.

저토록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태워주지 않는지페르미나 다사가 신기하게 여기고 있자, 선장이 저건 물에빠져 죽은 여자의 망령이며, 지나가는 배를 건너편 해안의위험한 소용돌이 쪽으로 꾀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않았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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