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더 보이의 내부 시사를 마치고 가까운 영화 관계자 중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부모가 된 후로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영화를 못 본다고. 더 보이는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온 아기가 훗날 자길 사랑으로 키워준 양부모를 살해하고 지구를 위협하는 최악의 빌런이 되는 판타지 공포 영화다.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볼수 있을 리가 나는 이제 아이가 막 태어나려 하는 참이어서 그때까진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영화 감상에까지 심각한 지장을 준다고?‘ 이때는몰랐다. 내가 얼마나 눈물이 많은지.
아이가 생긴 후로 그 관계자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절실히 알게 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가 납치당하거나 죽거나사라지거나, 심지어 다치는 장면이 나와도 여지없이 펑펑 운다.
만듦새가 엉망진창인 영화를 봐도 그렇다. 전처럼 팔짱 끼고 앉아서 "아... 저 신파"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다.

농담 같겠지만 당신도 아이가 생기면 이 글이 생각날 거다. 그땐 일산 한구석에서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추리닝‘ 바람에 헤드폰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주먹을 입에 물고 꺽꺽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위안삼기를아... 이제 나는 아이가 어떻게 되는 영화를 보지 못하는 몸이되었습니다.

감상한 영화의 편수를 늘리는 것은 겉멋 부릴 수 있다는 것말고는 내게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공부처럼 접근하는 건 체질상 안 맞는 모양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덕질의 영역에서 그 분야에 해박해져야 하는데 즐겁지 않으면 이미 덕질이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 분야에서만 해박하면 돼.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그런데 아, 생각해보니 아직도 E.T.를 못 봤네….

과민성 이죽거림과 비아냥을 습관처럼 손가락과 입에 달고 살고, 남을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려 할 때 언어를 실체가 있는 무기처럼 점점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우린 갈수록 잔인해지고 과격해진다. 아니다, 그것만도 못하게 갈수록 비열하고 저열해진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고골이 주콥스키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런 말도 있다.
"좋은 번역은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같아야 한다는 통념이있지만, 진정 훌륭한 번역은 현실의 거울처럼 작은 얼룩들과결함들이 있는 번역이다."

"친구랑 또 보려는데 이 영화 내일도 해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좋던지 불쑥 끼어들어 내일 표를 예매해드리고 싶었다. (오지랖 같아 나서진 못했다.) 영화를 정말 좋게보셨나보다. 연세가 있는 관객의 말이라 더 그랬을까, 내가 이 영화에 투자한 사람도 아니고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도 아닌데 작품을 좋게 봐주는 관객을 만나니 너무 감사하고 뭔가 벅차기까지했다. 객석 뒤편에 앉아 관객들의 웃음소릴 듣는 것과는 또다른뭉클함이었다.

영화 번역가로서 가장 기분좋은 순간은 "내가 번역한 영화를관객들이 저렇게나 좋아해줄 때가 아니라 "관객들이 저렇게나좋아해주는 영화를 내가 번역했을 때다. 얼핏 같은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관객들이 저렇게나 좋아해주는 영화를 내 품에 안을수 있었던 행운 내 손으로 고이 보듬어 내놓을 수 있었던 행운.
그 모든 건 행운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그 할머니 관객의말을 듣고 느낀 감정의 정체는 감사함이었다. 그 우연한 행운에대한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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