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빛의 화가 - 모네展


[빛의 화가 : 모네]

전시일정 : 2007년 06월 06일 ~ 2007년 09월 26일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2, 3층

 
 

전시회설명 :
오늘날 모네의 명성은 세계적이다. 인상주의 탄생의 주역이었으며 최후의 인상주의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인상주의의 신념에 충실했던 그였기에, 미술사에 남긴 그의 족적은 모든 시대를 넘어서 지대하다.

본 전시는 인상주의 미술의 선구자 클로드 모네의 작품세계를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는 시기별 대표작품을 통해 선보이는 국내 첫 회고전이다. 빛의 시대를 연 모네의 다양한 풍경 작품과 인상주의의 성서라고 불리는 모네 예술의 진수 <수련>을 통해 근대 미술사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주역인 모네 예술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20여 점에 달하는 <수련> 연작과 지베르니 정원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의 중심 축을 이룬다. 이들 작품 가운데 길이 3미터의 초대형 작품 두 점과 2미터 크기의 수련 작품들이 집중 전시된다.

이 전시는 연대기적 서술을 탈피하고 모네 예술의 단면을 손쉽게 이해토록 하기 위해 5개의 테마로 구성되었다.
모네 예술의 결정판이라 여겨지는 물위의 풍경: <수련>을 필두로 모네 작품의 주된 소재를 구성하는 초기부터 지베르니에 이르는 다양한 풍경을 그린 센느강과 바다, 모네의 삶의 반을 차지하면서 정원에 서식하는 다양한 수상식물과 풍경을 집요하게 그려낸 지베르니의 정원, 그의 가족을 그린 인물화로 구성된 가족의 초상, 그리고 모네의 눈에 비친 유럽의 풍경을 담은 유럽의 빛이 주된 구성이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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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시댁에 다녀왔다.

배 타고 가는 게 처음이라서 약간 설레기도 했다.

일단은 서울에서 비행기 타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서 정말 좋았다.

완도에서 한일카훼리1호를 타면 2시간 40분쯤 걸린다.

시아버님이 아프다고 해서 건너갔더니만

작은 아들네가 보고 싶으셔서 그랬나 싶게 다 나으신 모습이었다.


딸아이 뒤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완도 앞 주도가 보인다.


제주도에서 오름을 오르고 있는 조카와 아이들.

나무가 하나도 없어서 그늘이 그리웠다.


아래 목장에 소들이 한가롭다.


장난꾸러기 아들과 함께 아빠도 벌러덩.


비자림에서. 항상 남자 아이들끼리만 뭉쳐서 돌아다닌다.



820년 된 비자나무.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

시댁으로 가는 길에 해안 도로 어디쯤에 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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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5-1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도라 시댁이 가깝다는 이점도 있군요...
지난번 제주도여행때 비자림을 가보지 못해서 아쉬워요.
아버님 괜찮으시다니 다행^*^
점점 완도에 적응해 가는 님의 모습이 보기 좋아요.
벌써 완도를 접수하신 느낌~

무스탕 2007-05-1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비자나무 진짜 멋있어요.. 다음에 제주도 가보면 꼭 비자림 가봐야 겠어요.
편찮으셨는데 아들네가 온다는 말에 바로 건강해 지셨을거에요 ^^

프레이야 2007-05-1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나무 몇 해전 가서 본 기억이 나요.
시댁 다녀오시는 길에 좋은 풍경 구경도 하고 참 좋으셨겠어요.^^

씩씩하니 2007-05-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주도 해변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가족여행으로 가면 늘 봄, 가을만 가게 되요..
여름 휴가 한번 가야될 꺼 같아요...
아이들이 자연이랑 어울려 얼마나 이쁜지 참 행복해보여요...
아버님 아프시다고 얼른 오랜 시간 마다않구 달려가시는 님..그런 님 마음이 이뻐서 얼른 나으셨나봐요...
비자림 못가봤는데..님 덕분에..구경해보네요~~


소나무집 2007-05-17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사실은 제주도가 가까워서 완도로 왔답니다. 남편이 그러고 싶다고 해서.

무스탕님>비자림은 저도 처음 가봤는데 정말 괜찮았어요. 산림욕하기 딱 좋았어요.

배혜경님>시댁에 가면 육지 사람인 저를 위해 꼭 한두 군데씩은 돌아보고 온답니다.

씩씩하니님>저는 여름 제주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더워서. 냉방이 잘 된 해변 호텔 같은 곳에 묵으면서 휴식을 취할 거 아니면 봄 가을 겨울이 더 좋아요.

좋은세상 2007-05-1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반갑다.^^이렇게 볼수 있었는데...선우는 더 이뻐졌고 지우는 자연속에서 부쩍 컷다.여전히 씩씩해보인다.호기심 많은 지우가 조은 곳에서 사는것 보니 울 아들이 불쌍해보이네 가족모두 건강하고 샘나게 알콩달콩 사는 모습 마니 기대 하리다.안뇽!!

소나무집 2007-05-19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나도 반갑다. 이런 데서 아는 사람과 만나니 말야.

전호인 2007-05-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을 보고 놀랬었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수종이 있다니 하고 말입니다.
특히나 그곳은 외부인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곳을 다녀온 것이 더욱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

소나무집 2007-05-2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 정말 좋았어요.
제주도에는 관광지로 아주 유명한 곳보다 숨겨진 알찬 곳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학교 숙제로 가족신문을 만들었다.

사실 다 만들어놓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글 쓰고 꾸미는 데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면 믿을까?

신문의 이름을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는데

딸아이가 "팔랑팔랑 뉴스는 어때?" 하는 바람에 그대로 OK!


가족 신문이기 때문에 꼭 가족 소개를 크게 넣어야 한다는

딸의 의견을 존중해서 가족 사진이 1면의 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1면 전체 모습.


2면 전체 모습.


발행인 옆에 딸아이를 앉혀놓으니 정말 데스크가 된 기분.

과천에서 완도까지, 우리가 이사 온 여정을 지도로 그려보았다.

정말 멀리도 왔구나 싶다. 지도는 아빠가 일필휘지로 쓱싹!

광고, 과학의 날 독후감 대회에서 상 탄 걸 광고하자니까

딸아이는 그것보다 엄마 운전 면허 딴 게 더 자랑스럽다며 이렇게!

살짝 아이디어만 주면 모든 기사를 스스로 써내는 딸아이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완도에서 보물찾기.

완도로 이사 와서 찾아낸 보물들을 화보로 꾸며보았다.

옆에 여백이 많이 남아서 선우가 2학년 때 쓴 동시 한 편이랑

우리 가족의 5월 기분 날씨 예보까지!


엄마랑 함께 만든 요리를 소개하고

차 한 잔 마시면서 편집 후기도 한마디씩!

아들의 "할 말 없음"이란 말 때문에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가족신문 만드는 동안 주변을 맴돌며 방해만 하고

심심하다며 데굴데굴 굴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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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5-1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네요. 가족신문 만들기.. 정말 어려운 과제에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다서시간동안 즐거우셨을것 같아요. 물론 다 만들고난 후의 뿌듯함도요~

치유 2007-05-1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만들었네요..저도 처음 가족신문 숙제할때 너무 어렵던데 이렇게 멋지게 꾸며놓고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했을 아이..제목부터가 너무 맘에 들어요..*^^*

무스탕 2007-05-1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잘만들었네요.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생각하고 같이 꾸미고... 그러면서 좋은 기억들 떠올라 모두 같이 즐거워 하고.. 좋은 시간 보내셨겠어요 ^^

홍수맘 2007-05-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환상적인 신문이네요. * ^ ^*.
장장 다섯시간이나 투자하셨다니 오우~ 대단하삼.

소나무집 2007-05-1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정말 즐겁고 뿌듯했어요.
배꽃님, 제목을 뽑는 아이의 솜씨에 저도 놀랐답니다.
무스탕님, 앞으로 2호, 3호도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네요.
홍수맘님, 사실 다섯 시간 속에는 밥 먹은 시간,
사진 고르고 출력하는 시간,
필요한 물품 사러 나갔다 온 시간까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좋은세상 2007-05-1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이다!정말머쪄!아들의 엉뚱한 말 솜씨도^^!가족모두가 행복해 보인다.나중에 많은 조언 부탁해!선우야!?과외비는 나중에 ...^^:

소나무집 2007-05-19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들 엉뚱한 말솜씨는 여전하다우. 그래서 웃기기도 하지만 한심할 때도 많아.

신지호 2007-07-0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이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참 재미있게 후다닥 읽어 치웠다. 그리고는 책을 아낌없이 후배에게 던져준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나의 책장에 없는 걸 보면. 아마 가벼움 때문이었으리라. 나의 이십대엔 가벼운 건 무조건 싫었으니. 그후 작가로서 더 화려해지고 주변에 그녀의 작품이 널려 있어도  난 공지영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내가 공지영을 읽고 있다. 신문에 연재된 그녀의 글을 어쩌다 읽었는데 정말 쉽게 잘도 읽혔다. <무소의~>보다도 더 가볍게 읽혔다. 그리고 난 매일 아침 신문을 펼치면 제일 먼저 그녀의  즐거운 집부터 들여다본다.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앉아 신문 연재 소설을 들여다보는 가벼운 아줌마가 되었지만 난 내가 부끄럽지 않다.

이혼을 세 번씩이나 하고 아빠가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별난 여자가 아닌 그냥 한 여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인생이 들여다 보였다. 내가 이십대였다면 난 또 그녀의 가벼움만 탓했을 것이다. 내가 이십대가 아닌 게 정말 다행이다. 결코 가볍지 않게 살아낸 인생을, 그것도 자신의 인생(소설이라는 허구의 이름을 빌렸지만)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이끌어내는 작가가 어떤 날은 징하기도 하다. 무거운 세월을 다 통과해본 자들이 터득한 경지가 이런 가벼움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의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니 책이 너덜너덜했다. 시골 한구석 도서관에 있는 책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난 이런 제목의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 셀러 작가에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는데도 난 몰랐다. 그동안 신문은 왜 본 건가 싶다. 분명 기사가 많이 나왔을 법도 한데 그걸 다 비껴가다니...

책을 읽는 내내 뭔지 모를 꿀꿀함이 있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빗나가는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가볍지도 쉽게 읽히지도 않았다. 교도소, 사형수, 죽음, 자살, 상처라는 단어들이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어떻게도 치유되지 않았던 문유경의 상처를 치유해준 건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였다. 유경은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갖고 세상을 향해 칼날을 휘둘러댄 윤수의 '진짜 이야기'를 대면하면서 비로소 '진짜 자신'을 바라보고 모두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만났던 그 시간, 우리가 마셨던 인스턴트 커피, 우리가 나누었던 작은 빵, 일주일에 그 몇 시간으로 인해 저는 어떤 모욕도 참아낼 수 있었고,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었으며,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고, 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신께 뉘우치며 참회했다고 말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진정 귀중하고 또 따뜻하고 ... 행복한 시간을 가졌었다고. 혹여 허락하신다면 말하고 싶다고... 당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내 목숨을 다해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살아서 마지막으로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 내 입으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말, 을 꼭 하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눈시울이 젖었고, 작가의 말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눈시울이 젖었다. 유경도 윤수도  필요한 건 사랑이었는데... 화려한 행복으로 포장해려 했지만 유경의 상처는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결국 상처 받아서 뽀족뽀족해진 윤수의 마음만이 유경의 상처를 보듬고 더이상 자살을 꿈꾸지 않게 해주었다. 

유경, 윤수 두 사람의 상처의 근원이 엄마였다는 데 가슴이 섬뜩해진다. 유경이 어린 나이에 강간을 당했을 때 엄마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면, 윤수의 엄마가 두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상처는, 어쩌면 점점 더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엄마 된 자로서 어깨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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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15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영화가 되기 전에 읽었었죠.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겠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아직도 영화로는 못 봤어요. ㅠ,ㅠ

소나무집 2007-05-2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소설만 못했어요.
 
 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 (1) 숭고와 비장: "손만 대면 - 황금이 되는 자의 괴로움"

 

* 담론비평(2007. 5. 10)  / "손만 대면 황금이 되는 자의 괴로움"

 

[기획연재: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 (1) 숭고와 비장

 

강성민 학술평론 ksm@dambee.net

 

 

   
 
 
김훈을 읽을 때마다 받는 느낌이 있다. 다들 그랬겠지만 처음은 강렬했다. 하지만 자꾸 읽다보니 형식이 보였고 사유의 문법이 보였다. 그러자 점점 질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스타일에 기대는 자의 한계로 가볍게 치부할 건 아니다 싶었다. 그건 김훈의 개성이기보다는 우리의 감각적 깊이가 닿지 못한 보편적인 것에 대한, 김훈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걸기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숭고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미학용어 숭고(崇高, sublime)와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고, 대충 말하자면 김훈이 거대한 것에 압도당할 때가 많다는 것, 접근의 한계, 견딤의 한계, 관계맺음의 한계 등 한계가 많다는 것, 사물을 공들여 분석해놓고 그 결과물로부터 시적인 초월을 해버린다는 것, 사람들이 허무주의라고 말하는 그런 태도를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니 갑자기 양념간장이 떠오른다. 우리가 깔끔하게 시 한편을 읽거나 대금 연주 같은 걸 듣는다면 조선간장의 깊고 그윽한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헌데 김훈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너무 처연하게 바라봐서 진하디 진하지만 끝 맛에서 조미료를 쳤다는 의혹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조미료는 모두 천연재료로 즉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맛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훈의 숭고는 몰아의 경지는 아니다. 그는 이미 예전에 『풍경과 상처』(문학동네, 1994)에서 “나는 자연을 해독하거나 자연을 자아의 일부로 편입시키지 못한다. 나는 거기에 가담하지 못하고, 늘 그 바깥을 서성거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훈은 솔직한 편이다. 앞에서 한 말은 “아득한 염전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는 그 갯벌이 끝나는 곳까지 물러가 있다”라고 말할 때 사실임이 증명된다.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연못처럼 가두지 못하고, 저 멀리 수평선까지 밀어낸다. 그 밀어낸 아득한 거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말이다. 풍경은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그를 매혹시킨다. 그래서 전군가도(全群街道)의 벚꽃을 보며 그는 “여자 생각”에 쩔쩔 맸던 것이리라. 애초에 여자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가짜로 가진다고 한들 뭐가 변하겠는가 하는 자의식일 뿐이다.

 

 

 


김훈이 몰입을 못하거나 기피한다면 차라리 비장함을 떠올려야 옳을까. 비장함과 숭고는 둘 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감정이란 점에선 똑같지만, 메카니즘이 다르다. 세상과 자아의 불일치나 대립이 자아의 꺾어짐으로 귀결될 때 비장미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김훈은 꺾어지는가. 비장하게 전사해서 연민을 일으키는가.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날렵하고 현란하게 말(言)에 올라타고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그 넓은 공간을 달린다. 그 팽팽한 긴장이 풀어질 때 아마 문필가 김훈도 죽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김훈 고유의 숭고를 나는 김훈이 누군가를 위해 써준 추천글에서 확인한 적이 있다. 바로 곽의진이라는 소설가인데, 출판저널 기자시절 이 분이 펴낸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의 인터뷰를 하러 진도에 내려간 일이 있다. 말이 인터뷰이지 사실은 진도에 한 이틀 가보고 싶어 일부러 그 책을 골랐다는 게 맞다. 진도가 고향인 작가가 서울로 상경해 소설가로 성공해서 애도 낳고 살다가, 소설과 가정을 통째로 버리고 홀로 귀향해서 살다가 고향의 언어와 눈으로 고향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한땀 두땀 지어낸 책이다. 그는 인터뷰를 대충 마치고 먼 데 까지 온 손님들을 위해 진도 곳곳을 구경시켜 주고, 자기가 친하게 지내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사주고, 옆동네 잔칫집에 데려가 홍어회와 함께 술도 질펀하게 먹여주었다. 그러더니 차를 몰고 산속 깊숙이 지어놓은 자신의 거처로 우리를 데려간다. 산비탈이 간신히 평지를 이루고 있는 곳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나무집이었다. 마당 바로 앞이 낭떠러지였다. 그래도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했으며, 달빛에 교교히 물결지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다. 곽 선생의 말이 김훈은 자기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그가 진도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하룻밤은 머문다고 얘기를 전해준다. 김훈과 사진작가 허용무는 진도 돌김을 간장에 찍어 먹으며 홍주를 많이 마셨다고 했다.

 

 


 

김훈은 추천글에서 “이 글의 저자 곽의진이 고향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고향으로 유배당한 자의 삶과 같다. 곽의진은 고향을 유배지로 만들고 그 유배지에서 다시 고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후 그 집 마당을 온통 붉게 칠하는 일몰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나는 이 곳의 풍경을 견딜 수 없다. 그런 장엄한 소멸을 견디어낼 힘이 나에겐 없었다”라고 말이다. 매일매일 세상이 허물어지는 것 같은 전면적인 일몰 앞에서 김훈은 무너졌다. 그러고 보니 그는 너무 자주 장렬하게 전사하는 듯하다. 그러니 비장하기는 비장하다.


최근 펴낸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보면 김훈의 숭고성이 전쟁이라는 공간, 그것도 성안에 갇힌 약소국의 예정된 죽음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 구절을 보자.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하지만 적들은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적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적을 표상하는 무수한 말도 보이지 않는다. 칸트가 보편적 이성을 정초하기 위해 일부러 물자체를 고안했듯이, 김훈 또한 실존의 명료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남한산성은 어떤 곳인가. 그 산성은 병자호란 때 대피한 조선왕실이 10만 적군에 둘러싸여 있던 돌로 된 수갑이었다. 조선은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밖으로 나가 투항할 수도, 구원을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칸에게 무릎 꿇는 일이 오로지 살 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내면을 그려놓은 소설이다. 투항은 곧 사는 길이었지만, 투항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 마음고통을 다시 겪어내는 것에 김훈의 작가정신이 깃들어 있다.


“청병에 대항하여 싸우자”, “아니다 항복함이 최선이다”라고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이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사흘 뒤에 성을 나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결판이 난 뒤 최명길은 말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 청나라 측이 저항을 고집한 신하 2명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하자 2명의 젊은 당하관이 자청하고 나섰고, 그 이유를 캐묻다가 왕은 쓰러져 운다. 그 때 최명길은 다시 말한다. “군신이 함께 삼전도로 가더라도 전하의 길이 있고, 저 두 사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 먼 후일에 그 두 길이 합쳐질 것이옵니다.”


김훈은 최명길이 사직을 보호하기 위해 총대를 멨다는 것을 분명히 묘사하고자 한다. 최명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홀로 적진을 뚫고 최초로 교섭하러 갈 수 있었다. 항복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했지만 아무도 그 주장을 하지 않았기에 최명길이 입을 열었다고 보는 것이다.


김훈은 한국일보 기자시절 군사정권의 용비어천가를 썼다. “니가 글을 잘 쓰니 니가 써라”고 위에서 요구했고, “그래 내가 쓴다”라고 김훈은 썼다. 그가 쓴 정권찬양 기사는 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활자화되었다. 그들의 책임까지 몽땅 김훈이 떠안았다. 하지만 총대를 메었다고 그게 무슨 영웅의 행위는 아닌 것. 언론인으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고, 김훈은 그것이 치욕스럽다고 수시로 말해왔다. 하지만 그런 행위에 대해 사죄하기보다는 그냥 치욕을 끌어안고 살겠다고 또한 말해왔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의 최명길은 누구인가. 백관이 입을 모아 장렬히 싸우자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합창을 할 때 오직 최명길 혼자 항복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최명길이 강경일변도였던 예판 김상헌을 덜떨어진 인간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최명길은 예판과 끈질긴 논리대결을 벌인 뒤에도 “일 리가 있는 말씀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다만 인간으로서, 왕을 모신 신하로서 그 상황에서 취할 최선의 행동원칙을 정하고 밀어붙였을 따름이다. 김훈은 자기 또한 그런 심정으로 곡필을 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소설 『남한산성』은 이러한 김훈의 자전적 에피소드 위에 특유의 비단결처럼 유장한 문체로 내려앉으면서 더욱 굳게 입을 다무는 듯하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남성적 숭고’라는 느낌도 살짝 든다. 루카치가 소설은 성숙한 남성의 문학양식이라 말했던 것은 소설가가 비극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김훈은 천상병 시인의 정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추방된 자리에서, 자신을 쫓아내버린 세계와 대칭되는 존재의 삶을 영롱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천상병의 정치의식이다.” 이 대목을 김훈은 혹시 자신의 글쓰기가 생에 대한 과장된 제스처인지, 아니면 필연적인 정치의식의 소산인지를 떠올렸을까, 떠올리지 않았을까.


가령 『칼의 노래』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왕의 칼과 왜구의 칼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 외로운 장군의 얘기다. 이순신은 교활한 선조의 칼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순신은 “적의 적으로서 살거나 죽어야지 왕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함을 참을 수 없었”으며 “왕의 칼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나의 충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훈은 ‘쾌도난담’ 사태로 자질 여론이 일자 시사저널에 사표를 던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내 30년 기자생활을 오욕으로 마무리하자.”자폐적인 태도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는 이순신을 복원하면서 “내면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나와 이순신을 동일시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김훈은 “벗이여, 나는 3인칭으로 글을 쓸 수가 없네.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네”라고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왕의 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김훈을 몰아세웠던 그 여론이 아니었을까. 그는 노회하고도 교활한 여론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칼을 꽂았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그 일에 대한 나름의 만족감을 흘려왔다.


 

 

 

하지만 나는 김훈이 역사를 호출해서 자신을 변호한 정치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고통스러운 결단을 역사에 기대서 표현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니 『칼의 노래』는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의소설(寓意小說)이다. 이것은 『현의 노래』의 우륵에게로 거의 유사하게 이어졌는데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자면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사극들은 김훈 내면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이런 그의 세계관이 늙은 여성으로 확장된 것이 「언니의 폐경」이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으로 형상화된 것이 「火葬」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을 통해 김훈은 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아온 셈이 됐지만, 그 이전에 이미 그는 타인들의 삶을 글로서 많이 어루만진 바 있다. 그래서 김훈을 미워할 수가 없다. 저 멀리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 나오는 마성역장 박창하 씨, 토박이농부 정진호 씨, 금속장인 김인태 씨, 간이음식점 주인 심동순 씨 등과 같은 보통사람들, 『원형의 섬 진도』(이레, 2001)에 나오는 사라져가는 농꾼, 춤꾼, 소리꾼, 무인(巫人)들의 삶은 김훈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빚어진다.


 

 

 

이처럼 그는 자기에게만큼 타인에게도 애정을 베푸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장점이자 단점 중의 하나는 손만 대면 작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독특하고 깊이 있는 북 리뷰로 필명을 떨치고 있는 ‘로쟈’라는 분은 김훈의 문체가 기본적으로 에세이스트의 것이고 소설가의 문체는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아름다워도 적당히 아름다워야지 너무 아름다우면 소설이 안 된다는 데 있었다. 평범한 것도 김훈이 묘사하면 평범함의 극단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공감이 가는 지적이라 해두고 싶다.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6월호에 실릴 예정인 '탈아카데미 저자열전-김훈편' 총 6개 챕터 중 첫번째 챕터를 떼어 내어 확장한 것입니다. 담비에서는 앞으로 김훈을 10가지 코드로 읽어내는 글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 '숭고'(sublime)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단번에 떠오른 책은 몇 권이 된다. 그런데 '비장'이라는 개념을 적절히 풀고 있는 책들은 그렇지가 못해서 조금 아쉽다. 덧붙여 '로쟈' 님은 알라딘의 스타를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스타로서 공인받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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