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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ㅣ 관계 1
안도현 지음, 이혜리 그림 / 계수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비오는 아침 등교 준비를 일찍 마친 딸아이가 우산꽂이에서 자기 우산만 달랑 꺼내 들고는 현관 밖으로 나섭니다. 학교 가는 게 아직도 어설프고 행동이 굼뜬 1학년 아들 녀석은 막 양치질을 끝냈으니 겉옷 입고 가방 찾아 메고 신발을 신으려면 또 한참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자기 우산만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딸아이가 곱게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동생 우산도 챙기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야 관계가 좋아진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요. 그때 문득 이 책 생각이 나서 관계가 뭔지 아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대답은 아들 녀석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관계란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거야."라고요. 딸아이의 표정은 말 안 해도 아시는 분들은 알 거예요. 동생에게 한 방 먹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으니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표정...
이 책은 갈참나무에 매달려 있던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낙엽들과 어울어져 긴 겨울을 보내고 아주 작은 갈참나무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낙엽들은 사나운 바람을 막아주고, 도토리를 모으는 할아버지의 손길과 먹이를 찾아다니는 생쥐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도토리는 늘 피해다니고 숨어 있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슬펐지요.
하지만 낙엽들이 도토리에게 힘을 줍니다. 도토리가 끝까지 살아남아 갈참나무로 다시 태어나야 잎사귀를 돕는 일이라고요. 겨울 내내 긴 잠에 빠져 있던 도토리가 깨어보니 몸은 젖어 있고 주변엔 낙엽 썩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낙엽이 썩어가는 데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자 낙엽들이 꼭 껴안아주며 말합니다. " 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걸. 우리는 정말 행복하단다."
도토리는 단단한 껍질을 벗고 세상 밖으로 싹을 내밀었지요. 도토리 속에 들어 있던 갈참나무 한 그루가 낙엽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귀엽고 어린 갈참나무의 모습을 볼 수 없었겠죠!
그래요.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어요. 아무리 작고 사소한 부분이라도 관계를 맺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요. 안도현 님의 글도 군더더기 없이 읽히지만 이혜리 님의 그림을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답니다. 그림만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훤히 알 수 있어요. 표정을 가득 담은 낙엽 하나하나와 도토리 그림이 정말 사랑스럽네요.
유치원생부터 초등 저학년 아이들까지 모두 좋아합니다. 관계 맺기에 서툰 엄마 아빠도 함께 보시면 더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