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 제주 시댁에 내려가서 일주일을 살다 왔다.
다른 때는 시댁에 가도 지겹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번엔 일주일이 좀 길게 느껴졌다.
(연말연시에 어머니랑 아가씨네 식구들이 와서 5일 동안 북적대고 간 지 얼마 안 된 탓도 있고.)
어머니께서 시집살이 같은 건 시키지도 않는데 뭐가 힘드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공간이 아닌 곳에서 내가 주도할 수 없는 음식들을 먹으며,
먹기 싫다는 불평이나 뭐가 먹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손님들 올 때마다 환한 미소로 화답하며 음식을 내고(아버님 상이 있어서 더 많은 손님들이 오심)
큰며느리는 일년 내내 고생하는데 작은며느리는 명절 때 고생 좀 해도 된다는 친척들의 말씀까진 흘려 들을 수 있지만
일주일 내내 집안에만 있는 게 내겐 힘들었다.
명절에 제주에 가면 나는 감옥이다. 표현이 좀 거칠었나!
어쨌거나 제주 사람인 남편이 나를 집안에서 꺼내주지 않으면 그냥 집안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대식구 밥상 차리고 설거지나 하면서.
동창회다 세배다 바쁜 남편에게 설날 저녁에 영화나 보러 가자고 했다가 들은 말.
"철딱서니 없기는, 애들이냐?"
헐~ 속에서 울컥하며 솟아오르는 큰소리를 꾹~ 눌러 참았다.
(제주에 내려가면 어머니 다음으로 가장 철딱서니 있어 보이는 사람이 바로 나로구만!!!)
갈 곳도 없고, 피붙이도 없고, 함께 놀 사람도 없는 마누라를 위해 마음 좀 써주면 어때서...
더구나 일 년 전 이맘때 이름 있는 수술까지 받은 몸인데.
15년을 같이 살았으면서도 마누라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는 이가 철딱서니 없는 거 아냐?
꼭 그런 걸 말로 해야 하나? 애들처럼? --> 흥, 복수다!
하지만 어머니 앞에서 큰소리 내기 싫어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다소곳이 앉아 TV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제주에 있는 동안 여유 있는 날은 내내 눈이랑 비가 내려 여행을 다닐 형편도 아니었다.)
소파에 앉으면 손이 닿는 거실 책장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책장에도 있거나 보관함에 들어 있는 책들이 많았다.
아주버님 독서 취향이 나랑 겹친다 싶어 반가웠다.
*** 제목이 생각나는 책 몇 권
- 읽다가 온 <열하일기>는 올해 안에 들여놓아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