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역사에서 가장 안된 임금은 단종(端宗)이다. 단종은 세종의 손자로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삼일 만에 어머니를 잃었고, 10살에 할아버지 세종을 12살에 아버지 문종을 잃었다. 12살(1452년 5월)에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15살에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겼다.
상왕이 된 단종은 문종의 유지를 받든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에 의한 왕위 복위 사건이 발각되어 노산군으로 강등(1457년, 세조 3년)된 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금성대군에 의한 또 한 번의 복위 사건이 실패하자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 1457년 10월 24일, 단종의 나이 17살이었다.
지금이야 뻥뻥 뚫린 고속도로로 서울에서 영월 가는 데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하루 아침에 왕의 자리를 잃고 강원도 첩첩산중으로 유배를 떠나는 어린 단종의 눈에선 눈물이 끊이지 않았을 것 같다.
강물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단종이 사셨던 청령포다. 청령포는 동남북 삼면은 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험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없이는 육지로 나갈 수 없다. 지금도 다리를 놓지 않은 건 배를 타고 건너면서 단종의 원통한 마음을 느껴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솔숲에 단종의 어소가 보인다. 단종은 외부와 단절된 이 적막한 곳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나중에 단종이 돌아가시고 난 후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가 밤마다 찾아와 문안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길지 못했다.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겼고, 단종은 영월 읍내에 있는 동헌 객사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가 그해 10월 24일 세조의 사약을 받았다.
이곳이 단종이 살았던 터였음을 알리는 비석으로 영조 때 세워졌다.
해설을 듣는 중. 건너편에 보이는 초가집은 궁궐에서 도망쳐 온 궁녀와 관노들이 거처하던 곳.
비록 인형으로 만들어진 단종이지만 앳된 모습이 서글프다.
단종이 쓴 시가 방문 위에 걸려 있다.
관음송. 단종의 거처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로 단종이 두 갈래로 갈라진 곳에 걸터앉아 쉬었다고 한다. 당시 단종의 모습을 지켜보고, 단종이 오열하는 모습을 다 들었다고 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부른다. 수령은 600년 정도.
망향탑. 청령포 뒷산에 있는 작은 돌탑이다. 단종이 유배 생활중에 자신의 앞날을 근심하면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생각하며 탑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금표비.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금한다는 내용이다. 이 금표비 덕분에 울창한 소나무가 지금의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단종이 올라 한양을 바라보았다는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서글프게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에 보탠 단종의 눈물도 적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