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며칠 앞둔 날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동안 몸상태가 안 좋아 주말마다 자식들이 번갈아 내려가 뵙긴 했는데 너무 갑작스레 떠나셨다. 일주일 전에 다녀온 남편이 다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던 중 공항에서 소식을 들었다. 나와 아이들은 다음 날 새벽 원주에서 김포로 가서 제주로 갔다. 부모님 상을 처음 당해서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고, 심지어는 남편에게 건넬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던 아버님은 평생을 환자로 살았다. 어머님은 늘 삼남매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될까 봐 병수발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삼남매 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지금까지 살아주신 것만도 너무 감사하다고, 30년은 덤으로 사신 것 같다고 하셨다.
정말 곁에서 지켜 보아도 어머님은 아버님께 지극 정성이셨고, 아버님 대신 생활 전선에 나서서 고생을 하셨으면서도 자식들 앞에서 그런 신세 한탄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님을 모시고 온 날 밤에야 자식들 앞에서 옛날 힘들게 살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며 목놓아 우셨다. 어머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나도 눈물이 나왔다.
아버님은 아프기 전까지는 삼남매에게도 어머니보다 더 살갑게 챙기고 교육에도 신경을 쓰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삼남매 모두 공부를 잘했고, 착하게 성장했다. 며느리를 얻을 때도 어머니께 절대 시집살이 시키지 말라고 당부하신 아버님은 정말 자상하게 육지 며느리(제주 사람들은 육지 며느리를 선호하지 않음)인 나를 대해 주셨다.
제주에 갈 때마다 며느리 이름을 마치 딸 부르듯 "은희야~" 다정하게 불러주셨던 아버님, 제주의 번거로운 경조사에도 육지 며느리인 나는 대부분 제외시켜 주었고, 말 많은 친척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아버님, 마지막 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던 아버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둘째며느리가 기도합니다. "아버님, 안녕히 가세요."
작년 1월 어머님 아버님 칠순 때 온가족이 모여서. 형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