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왔다. 김장하러 간 후 6개월 만이다. 아이들 학교도 징검다리 연휴에 쉰다는 걸 알고는 남편도 진작부터 휴가를 내놓고 친정에 가기로 했다. 겨울 내내 병원을 들락거리며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린 후에 찾은 친정집이었다.
옛집을 허물고 새로 지은 집들이 많아 동네 모습이 좀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친정 동네다. 그 동네에 초록이 에워싸고 꽃잔치가 벌어져서 동네가 환해졌지만 노인네 한둘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니 인적은 드물기만 하다. 우리 부모님네들 다 돌아가시면 젊은 사람 하나 없는 이 동네는 어찌될 것인지 괜한 걱정도 된다. 나이가 든 탓인지 나고 자란 친정 동네 하나하나가 더 정겹게 다가왔다.
딸을 보며 반가워하는 엄마 아버지를 보자 때아닌 눈물이 나왔다. 딸네집에 먼저 전화를 하시는 법이 없는 친정아버지가 그동안 몇 번씩이나 전화를 해서 딸의 안부를 물었을 정도로 걱정을 끼쳤다. 건강해진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일을 하고 계신 밭에 몇 번 왔다갔다 한 것만으로도 피곤해서는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고 내내 누워 있다 왔으니 울 엄마 딸걱정에 잠도 못 주무시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어버이날에 친정엄마 생신까지 겹쳐 오빠네랑 동생네도 잠깐씩 다 내려왔다 갔다. 효도 받아야 할 날에 엄마는 내내 자식들 챙겨 먹이느라 더 분주하셨다. 아픈 허리가 더 굽어지는 줄도 모르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냉장고 문을 여닫고 하루 종일 도마 다닥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오시면 맛있는 식당이나 찾아 한두 끼 대접하면서 자식의 도리를 다한 듯 생색을 냈던 것 같아 죄송스럽다.
어제 아침 부모님은 정성과 노고가 깃든 먹을거리를 트렁크 가득 실어주셨다. 출발하는 딸네 차 곁에 서서 한마디 하시던 친정아버지. "마늘 캘 때 또 와라!" 그런데 그 한마디가 나를 울컥하게 했다. 마늘 캘 일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이 보고 싶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고딩 조카 학원 때문에 밤늦게 왔다가 아침 일찍 떠난 오빠네, 친정에 올 때마다 가까이 있는 시댁까지 챙겨야 하는 동생네, 모두 바쁘기만 하다. 시댁도 멀고 아이들 학원에도 연연해하지 않으니 그나마 삼남매 중 우리가 가장 한가하다. 한 달 후면 마늘을 캘 텐데... "그때 꼭 갈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