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10월 24일 토요일)에 친정아버지의 칠순이 있었다. 어떻게 해 드릴까 묻는 자식들에게 "잔치고 뭐고 다 그만두고 내려와서 일이나 거들다 가라"시던 친정아버지. 어려운 시절(1941년생)에 농촌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고생만 하신 친정아버지이기에 좀 의미 있는 칠순 잔치를 해드리고 싶었다. 더구나 환갑 때는 동생 결혼식과 같은 달에 생신이 있어서 삼남매하고 저녁 식사만 한 게 다여서 엄마가 내내 서운해하셨던 기억도 있고.  

그래서 태안에서 제일 좋다는 한정식집(비원)을 예약해서 부모님 양쪽 형제분들만 모시고 저녁 식사를 했다. 모인 손님이라고 해봐야 아이들 포함해서모두 30명도 안 된다. 식사를 하기 전에 간단하게나마 칠순 행사를 했다.    

식당 겉과 내부 인테리어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음식은 훌륭했다. 일식과 한식이 반반씩 나왔는데 정말 마음에 들어서 다음에 또 이용하고 싶을 정도. 1인분에 35,000원이었는데 비싼 음식 많이 먹고 다니는 오라버니 말에 의하면 서울에서 7만원짜리 한정식보다 낫다고 했다. 상차림은 태안의 유일한 이벤트 회사에 부탁(20만원)했는데 예쁘긴 한데 과일이 좀 부족해서 수박이랑 메론 두 개는 내가 추가.

 중3인 큰조카가 할아버지께 꽃바구니를 드렸다. 어느새 키가 180센티나 되어버린 큰 손자가 할아버지는 내내 대견하기만 하다.

 케익 자르기. 두 분 머리가 오랜만에 새까맣다. 전날 저녁 칠순 생신을 드시기 위해 두 분이 마주앉아 염색을 하셨다고 한다. 친정아버지와 친정엄마의 피부색이 정말 대조적이다. 그 옛날 처음 선보러 갔던 날 신랑감의 까만 얼굴이 너무 싫어서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는 울 엄마~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평생 잘 살고 계신다. 

 7명의 손주들을 대표해서 큰조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께"로 시작되는 편지를 읽어 드렸다. 할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한다는 내용을 제법 감동스럽게 써서 많이 컸음을 느꼈다. 

 큰딸인 내가 감사패도 드렸다. 우리 삼남매도 부모님도 모두 사근사근한 성격들은 아니라서 어려서부터 사랑한다는 표현 같은 걸 하면서 살지 못했다. 특히 아버지께는. 그래서 감사패에 그런 내용을 담아 드렸다. 내용을 읽는데 목이 메어서는... 

"사랑하는 부모님께 항상 저희를 위하여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지금껏 주신 큰 사랑 가슴에 담고 조금씩이나마 보답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신 모습으로 오래오래 저의 곁에 있어 주세요. 아버님 고희일을 맞이하여 자식들의 마음을 담아 드립니다.아버지, 어머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자식들이 따라 올린 술로 건배도 하셨다. 울 친정엄마는 와인잔에 건배하는 게 뭐 특별한 거라도 되는 양 굉장히 좋아하셨다.  

큰절도 올리고, 오빠네는 삼배, 나머지 두 딸네는 일배씩~

 어머님 노래도 불러 드리고 - "나 실제 괴로움은 다~ 잊으시고 ~" 하지만 어찌 잊으리~

 바쁜 농사일 중에도 손주들이 오면 함께 매미도 잡으러 다니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놀아주시던 모습이 정말 고맙고도 좋았다. 친정아버지는 우리 삼남매를 키울 때는 어른들 앞이라서 예쁘다는 말 한마디 못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친정아버지는 손주들은 유난히 예뻐하신다.

 삼남매가 다 모인 가족 사진도 이렇게 단촐하다. 친정아버지는그 당시 '셋만 낳자!!!' 가족 계획의 피해자라고 더 낳지 못한 걸 늘 억울해하신다.

 큰딸인 우리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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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0-11-1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분이 너무 정정해보이시네요 참 보기 좋아요,,
아버님 어머님이 흐믓하셨겠어요,,

소나무집 2010-11-12 19:14   좋아요 0 | URL
늘 농사일을 하다 보니 건강해 보이셔도 여기저기 아픈 데가 아프시답니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좋아하셨어요.

치유 2010-11-1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잘했다..
어쩜 친정엄마가 저리 고우신지...
오래 오래 건강하게 지내시길.

소나무집 2010-11-12 19:14   좋아요 0 | URL
난 왜 울 엄마 피부를 안 닮은 건지...

순오기 2010-11-1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좋은 모습인요~ 두 분이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길 기도해요.
소나무집님이 엄마를 많이 닮은 거 같아요.

소나무집 2010-11-12 19:15   좋아요 0 | URL
늘 티격태격하시는 모습을 보면 일부러 투정 부리는 것 같아서 귀여워요.^^

hnine 2010-11-1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두분 모두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저도 기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부모님께서도 자제분들께서도 얼마나 흐뭇한 시간이었을까요. 사진 속의 가족들 모두 웃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소나무집 2010-11-12 19: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정말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싶은데 이젠 농사일 하느라 너무 힘들어하세요. 농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부모님 좋아하시는 걸 보니까 자식들 마음도 좋았어요.

프레이야 2010-11-11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모두 다복해보입니다.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참 보기 좋으네요.
전 얼마전 시어머니 칠순이었는데 저렇게 큰절 올리기 이런 거 없고
좋게 말하면 완전 현대판으로 했네요. 좀 서운하셨을 듯해요.

소나무집 2010-11-12 19:19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는 삼남매가 별 탈 없어 잘 살고 잇는데 요즘은 그게 효도라고 하시더라구요. 옷도 한 벌씩 해드린다고 했더니 다 필요없대요. 행사용 옷 그런 거 입을 일 없다고... 그래서 있던 거 그냥 입으셨어요. 저희 부모님이야 시골 사니까 시골 분위기에 맞춰서 했어요.

세실 2010-11-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어머님 참 고우세요.
감사패 받으시며 얼마나 흐뭇하셨을까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소나무집 2010-11-12 19:19   좋아요 0 | URL
불현듯 감사패 같은 걸 해드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했는데 은근히 좋아하셨어요.

BRINY 2010-11-12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께서 행복하시겠어요.
소나무집님 한복이 예쁘네요.

소나무집 2010-11-12 19:21   좋아요 0 | URL
네, 내내 좋아하셨어요. 손님들께 은근히 자식 자랑도 하시고... 시골 분들은 자식 자랑하는 재미에 살거든요.^^ 한복은 대여점에서 딸 둘만 똑같은 걸로 빌렸어요.^^

꿈꾸는섬 2010-11-12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맘이 다 짠해요.^^
친정부모님께 감사패도 올리시고, 큰손주의 편지는 정말 감동적이었겠단 생각을 했네요.
가족들만의 단촐한 잔치 정말 좋았겠어요.
친정부모님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소나무집 2010-11-13 07:41   좋아요 0 | URL
손님이 많으면 저렇게 못했을 거예요.
이젠 자식들보다 손주들이 뭘 해드리는 걸 더 좋아하세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