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목요일 오후 원주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창비 시상식에 갔다. 시상식은 광화문 프레스 센터 20층에서 있었다. 프레스 센터는 중요 인사들 기자 회견이나 하는 곳인 줄 알았더니 이런 시상식 행사도 하는 모양이었다 .
20층에 올라가니 창비 직원들이 나와서 방명록에 싸인도 받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행사 시작 20분 전에 도착해서 아직 빈자리가 많은 행사장.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과 창비 청소년문학상,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시상식을 하면서 독후감 대회 수상자들도 함께 불러주신 것 같아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장 옆에 독후감상문대회 당선 작품들을 전시해놓아서 이름으로만 보았던 작품들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만든 '얼렁뚱땅 가족 신문'도 한 자리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가족 신문 만들 때는 주로 아이디어 내기와 참견하는 걸로 기여한 아들이 흐뭇하게 보고 있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고 창비 고세현 사장님의 인사 말씀. 김려령의 <완득이>를 배출한 창비청소년문학상의 권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계간 창비어린이에 투고되는 작품들이 많아 창비어린이문학상까지 제정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저학년 부문, 고학년 부문, 동시 부문까지 있으니 문학의 꿈을 키우는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문학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올해는 고학년 부문 당선작은 없다고 한다.
창비 좋은어린이책 기획 부문에 <창덕궁에서 찾은 전통 과학과 기술>이 당선된 김연희 작가.
많은 신인 작가들의 시상식이 있었지만 나는 유독 이 작가에게만 관심이 갔다. 청소년 소설에 당선된 <싱커>의 배미주 작가다. <완득이> 이후 점점 소설의 수준이 높아진다며 영화 <아바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심사위원의 말씀이 있었다. 아, 궁금해라. 빨리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린이 부문 독후감에서 대상을 받은 3학년 어린이다. 이 친구는 독후감 한 편 써서 우리랑 똑같은 상금과 책선물을 받았다. 심사 위원 말씀이 요즘은 독후감을 빼어나게 잘 쓰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단다. 하지만 글쓰기 학원에서 금방 빠져 나온 듯 매끈한 글은 많지만 진정성과 자신의 삶을 녹여낸 독후감은 드물다고... 시상을 해주신 분은 <초정리 편지>를 쓰신 배유안 작가다.
배유안 작가에게 상을 받고 있는 우리 아이들. 작가가 되고 싶은 딸은 기분이 캡이었다고. 아들 딸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길...
작가들을 비롯해 다른 수상자들은 당선 소감을 미리 준비해 와서는 멋지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안 해간 우리 덜렁이 가족은 즉석에서... 가족 신문 만들던 과정을 이야기하다가 "우리 아이들은 공부는 안 하고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큰 걱정"이라고 말했더니 시상식장이 웃음 바다가 되었다.
좋은 자리에 풍악이 빠질 수 없다는 소개와 함께 들어선 난타 공연 팀. 팀 이름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Don't worry, Be Happy>를 신나게 부르던 가수. 노래에 맞춰 어깨가 들썩들썩.
공연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더니 입구에 서 있는 김려령 작가가 보였다. 손에 종이를 들고 있는 분. 유명한 작가랑 평론가, 교수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이름이나 작품은 알아도 얼굴을 모르니 싸인 한 장 받을 수 없었다. 그나마 김려령은 <완득이> 때문에 얼굴을 기억했던 작가다.
<싱커>로 제3회 창비청소년 문학상을 거머쥔 주인공 배미주는 <웅녀의 시간 여행>이라는 작품으로 이미 알려진 작가였다. 창비에 여러 차례 응모를 했는데 계속 미역국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작품으로 도전을 했고, 드디어 오늘의 영광이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수상 소감으로 들려주었다. 작가들의 이런 도전으로 볼 때 창비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의 권위가 어떤지 알 듯했다. 창비문학상 수상은 곧 작가로서의 길을 탄탄하게 열어주는 보증 수표 같다고나 할까~
좀 일찍 퇴근해서 행사에 함께했던 남편. 주중에 이렇게 남편 얼굴을 보면 보너스 같아서 좋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 2년 후배 정은숙을 시상식장에서 만났다. 20년 만에 만났는데도 서로 한눈에 알아봤다. 우리 동기와 결혼을 했고, 2년 전 푸른책들에서 주최하는 푸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작품으로 <우리 동네는 시끄럽다> <봉봉 초콜릿의 비밀> 등이 있고, 올해는 창비에서 청소년 소설도 한 편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학교 다닐 때도 참 똘똘하고 야무졌는데, 아내로서 엄마로서 거기다가 작가로서의 삶까지 야무지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참 예쁘고 부러웠다. 창비에서 뷔페로 준비한 저녁을 먹고 프레스 센터를 나와 근처 커피숍에서 20여 년(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 전 학교 다닐 적 이야기를 요란스럽게 나누었다.
후배랑 헤어져서는, 청계천의 야경을 즐긴 후, 아빠를 떼어놓고 셋만 막차를 타고 내려왔다.
아들 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상패.
여행 상품권 대신 준 상금이다. 이렇게 현금으로 주면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게 뻔한데... 콘도 이용권 같은 걸로 주었으면 덕분에 여행 한 번 더 갔을 텐데... 상 발표하고, 상품 보내주고, 시상식하고... 정말 띄엄띄엄 하는 덕분에 내내 자랑질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