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에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통화를 하다가 어머니랑 나랑 둘이서 울먹이다가는 전화를 끊고 말았다. 동갑이신 시어머니랑 시아버지께서 올해 칠순을 맞이하셨는데, 두 분이 모두 음력 12월에 생신이다 보니 요즘 칠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중이다. 환갑 때도 시어머니께서 극구 말리는 바람에 자식들이 모이지도 않고 지나갔기에 칠순은 좀 잘해 드리고 싶은 마음들이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겨울이니 육지에 있는 온천이나 다녀오시겠다고 하셨다. 처음엔 정말 온천이 가고 싶어 그러는 줄 알고 그러시라 했는데, 몇 번인가 통화를 하다 보니 제주도에서 모이면 친척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고, 자식들도 부담이 가니 육지로 나와서 그야말로 간단하게 보내시겠다는 의도셨다.  

40대 초반부터 아버님이 직장을 그만두고 자리 보존을 하고 계셨기에 자식 삼남매를 키우는 건 어머니의 몫이었다. 당시로서는 거금의 퇴직금을 받았던 아버님은 시골에 집 한 칸 마련하고 나머지 돈을 전부 주식 투자를 하셨고, 3년도 되지 않아 어머니께 빚만 떠안겼다고 한다. 그때 아주버니는 대학 1학년, 내 남편 고2, 아가씨가 중3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눈앞이 캄캄했을까? 그래도 어머님은 온갖 힘든 일을 다하면서 아버님 병수발에,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셨다는 말을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그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지금 허리가 아프신 듯.

그나마 삼남매가 모두 공부를 잘해서 서울의 내노라 하는 대학에 들어가 준 게 어머니의 살아가는 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삼남매를 모두 서울로 보냈으니, 어머니도 자식들도 힘겨운 생활이었을 것은 뻔하다. 거기다가 둘째아들(내 남편)은 대학 들어가자마자 데모꾼이 되어 하루도 마음 편하게 한 날이 없었다고... 

난 시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정말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평생 살아오면서 당신의 주장을 한 번도 내세워본 적이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아버님과 함께 살다 보니 노심초사 아버님 중심으로만 살아오셨다. 제주도에 갔을 때 마트에라도 함께 가면 어머니는 늘 아버님만 챙기셨다. "이거 아버지가 좋아하는 거니까 사자"면서, 그래서 어머니는 뭘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난 다 좋아한다" 그러셨다. 평생 살아오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걸 한 번이라도 사본 적이 있을까 싶은 분. 아니 본인이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분, 우리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당신보다 아버님을, 자식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시어머니.  

이젠 삼남매 다 결혼해서 나름 잘 살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당신을 뒷전에 두고 싶어하신다. 평생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생신날 하루 주인공이 되는 것조차 어색하고 부담스러우신 분. 우리 시어머니다. 아까 전화 통화하다가 삼남매 너무 잘 키우셨고 생신상 받을 만큼 훌륭한 어머니라고 했더니만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하셨다. 조촐하나마 꼭 칠순 잔치 열어서 우리 시어머니의 안쓰러운 인생을 보듬어주고 빛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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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30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삶이, 참... 눈물 나요. 고마우신 어머님이시네요. 칠순 잔치 꼭 정성껏 베풀어주셔요. 어머님도 이젠 호강도 좀 하셨음 좋겠어요. 아버님 우선이 아니라 어머님 우선인 것들도 좀 생기구요...

소나무집 2009-10-30 23:0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희생하고 사는 삶이 습관이 되어서 받는 게 어색하신가 보더라구요.
지금도 맞벌이 형님네랑 같이 살다 보니 살림은 어머니 차지예요.

무해한모리군 2009-10-3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의 시어머님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헤아려주시는 소나무집님의 마음도 참 제가 보배울점이 많으네요.

소나무집 2009-10-30 23:47   좋아요 0 | URL
저도 어머니가 존경스럽긴 한데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요.
젊은 시절 참 힘들게 살았다고 들었는데
그런 말씀 하는 거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시어머니지만 친정엄마처럼 편하게 생각하니 편해지더라구요.

순오기 2009-10-3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났어요~ 우리네 어머니들은 끝없이 희생만 하신 삶에 위로를 드려야 해요.
좋은 마음으로 축하하며 공로를 치하해드리면 좋겠네요.

소나무집 2009-10-30 23:16   좋아요 0 | URL
서평 쓰려고 들어왔다가 결국 서평은 못 쓰고
이거 쓰면서 질질 짜기만 했어요.
시댁 식구들 성향이 뭘 거창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아마 조촐하게 할 거예요.
그때 제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글 하나 써서 낭독할까 생각중이네요.

순오기 2009-10-31 10:28   좋아요 0 | URL
음~ 며느리의 마음이 담긴 편지~ 감동하실거 같아요.
꼭 그렇게 해 드리시길...

무스탕 2009-10-3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우리 엄마들은 다 그럴까요? 시대적 상황이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절대적인 희생은 지금 우리는 감히 따를수가 없는 경지에요.
시어머님. 이번엔 맘 편히 잔치의 주인공으로 즐기셨으면 정말 좋겠네요.

소나무집 2009-10-30 23:12   좋아요 0 | URL
우리 세대는 그런 거 못 하죠. 절대적인 희생...
이젠 자식들한테 받아도 되겠다 싶은데 항상, 난 괜찮다, 하세요.
너무 그러니까 싫더라구요. 적당히 요구도 하고 받기도 하면 좋으련만...

꿈꾸는섬 2009-10-3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물 찔끔거렸어요. 칠순엔 조촐하게라도 잔치를 하셔서 그동안의 고마움을 되돌려 드리면 정말 좋겠어요. 소나무집님 너무 좋은 며느리세요. 저도 배우고 가요.^^

소나무집 2009-11-01 07:29   좋아요 0 | URL
눈눌 흘리게 만들어서 죄송~
저보다 어머니가 너무나 천사표다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이런 글 쓰게 되었어요.
새옷 입고 어쩌고 하는 것도 싫다고 하셔서
그건 안 된다고 꼭 새옷 사 드리겠다고 했어요.
이번엔 자식들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10-3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부 간 화목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겐 살이있는 인간교육이 될 것입니다.

소나무집 2009-11-03 10:47   좋아요 0 | URL
어머니가 착하게 사시니까 자식들도 다 착하게 사는 것 같더라구요.

치유 2009-10-31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무보님의 노고를 인정해 주시고 안스러워하시는 님의 모습이 더 애틋하고 이쁨니다.

소나무집 2009-11-03 10:50   좋아요 0 | URL
님, 고마워요.
나이 들어가면서 자꾸만 사람의 속마음이 보이네요.
특히 시어머니는 너무 고생을 많이 했고,
몸고생도 고생이지만 마음 고생도 엄청 많이 하신 것 같아서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거의 해본 적이 없는 분이라는 생각에 정말 잘해 드리고 싶지만 늘 마음뿐이에요.

같은하늘 2009-11-0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옷도 꼭 해드리고 잔치도 꼭 해드리세요.
어머님의 삶이 마음아팠지만 소나무집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입니다.
어찌하면 시어머님과 그리 지낼수 있는건지...

소나무집 2009-11-16 11:09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그냥 이해하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저도 결혼 초에는 너무 달라서 마음속으로 갈등이 많았거든요.

세실 2009-11-1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두 분 이세요. 참 따뜻해집니다.
그렇게 강한 어머님이 우리 대한민국의 힘이죠.

소나무집 2009-11-16 11:09   좋아요 0 | URL
아름답게 보아주니 고마워요.
맞아요. 어머니들은 다 강한 것 같아요.
세실 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