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게티빌라 - 고대 유물 박물관
현재 우리 가족은 땅끝보다도 더 먼 완도에 살다 보니 미술관 구경을 쉽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여행이 결정되고 제일 먼저 알아본 게 LA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게티센터는 LA 중심이 내려다보이는 산타모니카 산 기슭에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고, 관람료가 무료라는 사실 때문에 반드시 가야 할 곳이 되고 말았다.
게티센터는 원래 여행을 다 마치고 LA를 떠나기 전날 들렀지만 게티빌라와 함께 들러보면 좋은 곳이기에 두번째 여행지로 소개한다. 이곳도 역시나 주차요금 10달러를 받았지만 게티빌라처럼 예약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게티센터라는 이름에서 짐작이 가겠지만 게티빌라와 주인이 같다. 게티는 게티빌라에 있는 고대 유물과 게티센터에 있는 미술품 대부분을 직접 발굴을 하거나 경매를 통해 모았다고 한다.
사실 게티빌라와 게티센터를 둘러보면서 내내 부러웠던 건 우리나라 부자들 중에서도 게티처럼 사회에 제대로 환원할 줄 아는 부자가 생겼으면 하는 점이었다. 삼성처럼 미술관 지어놓고 자금 빼돌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그런 야비한 부자 말고. 책에서나 보고 이야기로나 들었던 렘브란트, 밀레, 고흐, 고갱, 마네, 모네, 르느와르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무료로 보는 호사를 누리도록 해준, 미국 여행을 생각하기 전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게티가 너무 고맙다.
게티센터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를 맞은 것은 20여 대나 되는 노란색의 대형 스쿨 버스였다. 주차장 한 층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는 스쿨 버스를 보며 여기도 역시나 사람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술관이 워낙 넓어 사람이 많아도 많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주차장을 나서면 바로 미술관이 나올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모노레일이 나왔다. 서성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와서 우리를 데려가나 보다 하고 있는 참인데 모양도 깜찍한 세 칸짜리 하얀색 전차 같은 게 들어왔다. 전기로 가는 무인 전차란다. 아주 천천히 가는 전차를 타고 5분쯤 올라가니 사진 속 끝에 하얗게 보이는 미술관 입구에 딯았다.
전차에서 내리니 70살도 넘었을 것 같은 자원봉사자 할머니가 다가와 안내문을 내밀더니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하니 1층에 가면 한국어 안내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둘러보니 곳곳에 조각 작품이나 조형물들이 서서 우리를 반겼다.
게티센터를 알리는 건물 표지석이다. 미국은 아무리 유명한 곳을 가도 요란한 광고나 플래카드, 간판 같은 걸 볼 수가 없다. 요란 떨지 않고 저렇게 조용히 존재를 알리지만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1층에 들어서면 안내데스크와 미술관 전체를 보여주는 미니어처가 있어서 미리 관람 동선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게티센터에는 모두 여섯 개의 건물이 있는데 동서남북에 위치한 네 개가 전시관이다. 각각의 전시관에는 그림, 조각, 실내 장식품, 사진 등이 무지하게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각의 건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다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안내문이 중요 언어별로 다 있었는데 우리나라 말로 된 안내문은 두 종류나 있었다. '구경거리'라고 쓰인 안내문에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거나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한 제안이라고 쓰여 있다. 바로 우리 가족을 위한 안내문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들고 다녔다. '구경거리'라는 말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미국 사람들이 번역을 해놓아서 어색한 구석이 아주 많았지만 우리말 안내문이 있는 게 어디냐고.
우리 가족이 미술관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끼니를 때우는 것이었다. 게티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채 안 되었지만 여행 내내 배고픔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우리는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들고 와서 바로 저기 앉아서 먹었다. 이름하야 미술관에서의 점심 식사.
드디어 배가 부른 우리 가족은 슬슬 미술관 탐험에 나섰다. 우리 가족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딱 하나. 이름을 아는 작가의 작품이 나오면 그 앞에 서서 무한한 감탄과 경애의 눈길을 보냈으나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은 과감하게 지나치는 것. 그런 식으로 관람을 했어도 우리가 게티센터에서 머문 시간이 무려 다섯 시간 반이다.
게티센터의 고마움 중 하나는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의 전시관에서 사진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행객 티 팍팍 내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으나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어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사진도 배워서 아는 만큼 잘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도 열심히 찍어 온 사진이니 시원치 않아도 올린다. 설명은 접어두고 사진만. 그림만 보고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 만한 작품들이 꽤 많았다. 고흐의 <아이리스>나 모네의 <정원>을 보고 온 것만으로도 게티센터는 훌륭한 미술관이라는 기억을 우리 가족 모두에게 남겼다.
이번엔 장식과 가구들.
요 화려한 침대가 탐나서 한 번 누워보고 싶었는데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패밀리룸에 모조 침대를 준비해놓았다. 그 옆에 사진은 벽이랑 바닥까지도 다 유럽 어딘가에서 떼어 온 작품이란다. 얘들아, 여기가 우리집이었으면 좋겠다. 그치?
게티빌라에서 실컷 보았던 조각 작품 전시실도 있었는데 우리 아들은 저 작품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간신히 꼬여서는 다른 방으로 갔는데 다시 아빠를 끌고 가서 조각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더라는...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는 아테네 여신이 어쩌고 저쩌고...
왼쪽은 조각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방이다. 우리 아들은 표정이 특이한 조각 작품만 보면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저렇게 흉내를 내곤 했다.
게티센터에도 역시 가족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이렇게 그려보고 만져보고 뒹굴다 보면 예술 작품이 더 가깝게 느껴질 것 같다. 그래, 거기 누우니까 유럽의 귀족이 된 것 같니?
게티빌라 선인장 정원 앞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멀리 보이는 곳이 LA 중심가라는데 서울이랑 비교하면 대도시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높은 건물이 없었다. LA도 지진의 위험이 있는 도시라서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게티센터의 멋진 정원을 산책하다 보니 또 배가 고파진 우리 가족, 이젠 저녁 먹으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