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센터 - LA에 있는 미술관
미국 가기 전에 매일같이 남편과 태평양을 오가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여행 계획을 짰다. 남편은 LA 도착하는 날부터 이틀은 전적으로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사방팔방 정보 검색을 한 결과 게티센터와 그리피스 천문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출발 삼일 전에 우리가 도착하는 월요일은 두 군데 다 휴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고 싶은 곳 명단에는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뺐던 게티빌라는 화요일이 휴무라고 했다. 그래서 게티빌라가 우리들의 첫번째 방문지가 되었다.
공항에서 2달 열흘 만에 상봉한 네 식구가 감격에 휩싸인 것도 잠깐, 햄버거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산타모니카와 말리부 해변을 달려 게티빌라로 향했다. 게티빌라는 입장료가 없고 주차요금만 10달러를 받았다. 처음엔 주차요금이 10달러나? 했지만 서울 시립미술관에 갔다가 입장료에 주차요금도 2만원 넘게 내고 온 일을 생각해내고는 가볍게 통과했다. 하지만 게티빌라를 방문하기 전에 명심해야 할 일은 홈페이지에서 방문자 수대로 예약을 하고 반드시 티켓을 인쇄해 가야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런 건 모두 남편이 해치웠다.
장 폴 게티는 아버지 때부터 석유를 팔아 돈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번 석유 재벌이라고 한다. 그는 23살에 회사를 물려받았고, 38살에 은퇴를 했다. 평소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게티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을 전시하기 위해 LA 말리부 해변 자신의 별장에 박물관을 개관(1954년)했다. 그후 처음에 우리가 가려고 계획했던 게티센터 개관(1997년) 후 그리스, 로마의 유물만 모아 주제별로 전시할 박물관을 10년에 걸쳐 짓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게티빌라다. 정작 게티 자신은 게티빌라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대신 후손들이 그리스나 로마에 가지 않고도 고대 로마 유물을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참, 좋은 조상을 둔 미국인은 복도 많다. 이런 박물관을 무료로 구경할 수 있다니.
가는 동안 내내 박물관에 왜 빌라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안내서를 보니 게티빌라는 서기 79년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힌 로마의 저택 빌라 델 파피리l(Villa dei Papiri)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빌라의 직접적인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게티빌라의 세부 양식은 폼페이, 헤라클레스, 스타비아에 있는 고대 로마의 다른 저택 양식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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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분쯤 도착했을 때는 아주 한산해서 야호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점심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과 함께 온 학생들이 엄청 많아졌는데 알고 보니 부활절 주간 봄방학 기간이라고 했다. 월요일에 쉬는 기관이 많다 보니 게티빌라로 몰려온 듯했다. 왼쪽에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안내 데스크다. 자원봉사자들이 안내서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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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안내서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한글 안내서가 있어서 영어가 몹시 짧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만큼 찾아오는 한국인이 많다는 얘기도 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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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빌라의 전체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가 없어서 안내서에 있는 사진을 찍어 보았다. 사진상으로는 별로 커 보이진 않지만 저 건물에 있는 수십 개의 방과 정원을 돌아다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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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본따서 만든 계단이라는데 솔직히 사진으로 보았던 원형 경기장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원형 경기장을 통해 중앙 홀로 들어갔다.
중앙홀에 가운데 물이 고인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저렇게 천장이 뚫려 있었다. 로마인들은 빛과 공기가 들어오라고 뚫어놓은 저 지붕을 통해 들어오는 빗물을 모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극장에 가서 박물관에 관한 20분짜리 영상을 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가 여길 왜 들어왔던고 후회를 했다. 화면에서 떠드는 말은 도대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남의 나라 말씀이요, 시차(13일 오전에 인천을 떠났는데 LA에 오니 또 13일 아침이라 하루 벌었다며 신났더랬다.)를 넘나들며 태평양을 건너온 우리 가족 모두가 금발머리 남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으니...
얘들아, 정신 차리자! 여기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갈지도 모르는 미국이란다.
그래서 박물관 구경은 잠시 미뤄두고 정신 좀 차려 보자며 정원으로 나왔다. 로마의 저택에는 대부분 이처럼 훌륭한 정원이 딸려 있었고, 대화와 명상을 위한 평화로운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정원에 있는 나무와 허브는 모두 고대 지중해에서 심었던 종자들만 구해 심어놓은 것이라고 하니 놀랍다.
사방에서 풍기는 허브 향기에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아직 때가 일러서 그런지 꽃이 핀 식물은 많지 않았다. 우물 양쪽에 있는 식물은 파피루스다.
동쪽 정원에 있는 작은 분수인데 이것도 고대 로마 저택에 있던 모양 그대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이 분수의 뒤에는
바로 요런 게 있다. 조개 껍질로 장식한 극장 마스크라고 한다. 색깔이 화려하고 예뻐서 그런지 사람들이 우리처럼 앉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얘들아,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박물관 구경도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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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놀다가 걸어 들어간 통로다. 바닥에 깔린 붉은 대리석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대리석 기둥에 대리석 바닥, 우리가 밟고 다닌 대리석이 가격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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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모두 30개 정도의 방에 주제별로 유물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1층에는 암포라(Amphora)라고 부르는 이런 종류의 길쭉한 도자기와 그릇 종류가 엄청나게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딸아이는 저런 도자기 하나에 얼마쯤 하느냐고 물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우리 재산 다 줘도 부족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게티는 얼마나 부자길래 이 많은 유물을 사다가 박물관을 세운 거냐고 물어보는 세밀함까지 보였다. 그러게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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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역시나 주제별로 장식과 조각이 엄청나게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비행기에서 잠 한숨 못 잔 나는 너무 피곤해서 몇몇 방은 아예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나중에는 사진 찍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정말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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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으로 만든 관과 이집트 미라의 모습. 관에 새겨진 신들의 조각이 어찌나 생생한지 금방이라도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죽어서 저런 관에 눕는 복을 누린 사람은 천국도 더 빨리 갔으려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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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동안 박물관을 돌다 지친 아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 패밀리 포럼이라는 방이다. 이곳은 아이들이 실컷 만져보고 그려보면서 놀도록 꾸며놓은 체험 공간이었다.
첫번째 사진은 로마 병정 복장을 하고 뒤에 가서 서면 그림자가 비치도록 해놓은 건데 가운데가 로마 병정으로 변신한 우리 아들이다. 암포라 모형에 직접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어서 아이도 어른도 신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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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엉성하게 박물관 구경을 마친 우리 가족은 다시 정원으로 나왔다. 도시락 싸 들고 와서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부족할 정도로 공부거리가 많은 박물관이었다. 특히 영어로 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우리 가족에겐 수박의 겉만 핥다가 온 느낌이다. 아쉬운 게 많았지만 여행자답게 우리는 여기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