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여담을 몇 자 늘어놓자면, 이전의 프레이져의 황금가지, 는 2개월 넘게 걸려서 겨우 다 읽었는데, 현재 읽는 이언 커쇼의 히틀러 평전은 2일만에 거의 다 읽어가고 있다. 황금가지가 1000페이지 남짓이고, 이언 커쇼의 평전은 다 합쳐서 2000페이지를 훨씬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이긴 하다. 물론 2개월 전에는 황금가지만 읽었던 것도 아니며, 그것만 붙잡고 읽을 여건도 되지 않았으나 히틀러 평전의 경우에는 하루에 거의 열 시간을 꼬박 붙잡고 읽어내려갔으니 단순비교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무리 흥미로운 일을 하더라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집중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 하루에 열 시간을 붙잡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사실은 그 책이 얼마나 흡입력이 있는지를 말해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황금가지, 가 흥미롭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히틀러 평전이 나에게는 좀 더 흥미로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글쎄, 황금가지, 를 축약본이 아닌 완전본으로 읽는다면 또 어떨까? 그러나 당장은 히틀러평전을 더 우위에 놓고 싶다. 그렇기에 이렇게 짧은, 사실 제대로 된 3제국에 관한 책은 몇 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글로 제 3제국에 대하여 간단히 남길 마음이 든 것이기도 하다.

 

제 3제국(1933~1945), 그러니깐 제 2차 세계 대전(1939~1945) 당시의 독일은 히틀러라는 인물에서부터 시작한다. 히틀러는 정말 복잡한 인물이다. 물론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악마, 광인, 순수한 악, 자살욕구자. 위의 어떠한 단어라도 그에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순수한 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을 파괴하고 그와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넣고 싶어하는 악마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가 복잡해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그 어떤 생산적인 지식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히틀러의 경우에 이르면 이렇게 규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 세상에 파시즘, 그 중에서도 특히 나치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라는 것을 널리 알린 것 정도가 될 것이다. 당신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쪽이든 마음에 든 곳에 가서 서도 좋다. 하지만 파시즘만은 당신의 이념으로 택하지 말라.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문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 파시즘을 택하지 않겠다. 그런데 파시즘이 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사실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파시즘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고, 그렇기에 우리는 두루뭉술하고 제 2차세계대전 당시의 베니토 무솔리니,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 정도를 파시즘으로 묶어서 살펴보고 있다. 물론 스페인 내전에서 결국 권력을 잡은 프랑코의 경우에도 파시즘으로 그 행동원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파시즘에서 가장 크게 족적을 남긴 나라는 이탈리아, 독일, 일본이 될 것이다. 위의 세 나라를 중심으로 공통점을 묶는다면 '국가의 절대권력' 정도가 보일 것이다. 개인은 그들의 뜻은 버리고 오직 국가와 그 국가를 지배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배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왼쪽의 책은 파시즘 연구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책인데, 이 책에서는 전시 이탈리아와 독일을 잘 분석하여 파시즘의 정의를 내려놓고 있다. 파시즘은 물론 전체주의이다. 하지만 전체주의가 꼭 파시즘적인 양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이 되려면 과거의 영광으로의 회귀, 즉 민족주의자들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하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지배하면서 로마 제국이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과거에는 허울뿐인 존재였던 천황의 신성 획득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다.) 그렇다면 독일의 경우에는 어떨까?  

 

앞서 히틀러를 언급하면서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을 제 3제국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 3제국이 있다면 제 1과 제 2의 제국도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이 집권하던 때의 독일을 제 1제국과 제 2제국을 계승한다고 여겼기에 이렇게 명칭을 붙인 것이다. 제 1제국은 신성로마제국(800~1806)을 뜻하며, 제 2제국은 독일 제국(1871~1918)을 일컫는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제 1제국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은 샤를마뉴 대제에서부터 그 연원을 시작한다. 샤를마뉴 대제는 난쟁이 피핀, 피핀 3세의 맏아들이었는데, 피핀 3세는 롬바르드 족의 침공에서 로마를 보호한 대가로 교황에게서 자신의 아들들, 샤를마뉴와 카를로만과 함께 축복을 받는다. (세례 또는 기름붓기, 라는 말이 많다.) 이를 지켜보면서 샤를마뉴 대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교회권력을 인정하고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퍼뜨리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는 교회로부터 서로마제국의 직전을 계승받았다고 인정을 받은 뒤 그 황제로 등극한다. 바로 이것이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다. 샤를마뉴 대제는 그의 전설과 12기사에 대한 일화로도 유명한데, 위의 책이 바로 그 12기사와 황제에 얽힌 전설을 다룬 책이다. 아마도 12기사의 수좌인 롤랑(혹은 오를란도)의 노래, 가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위의 롤랑전, 이 그 롤랑의 노래를 다룬 책이다. 그런데 사실 샤를마뉴 대제를 그 연원으로 둔다고 하여도 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말은 1200년대는 넘어야 쓰이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샤를마뉴 대제 치세하의 왕국은 프랑크 왕국이라고 불렸으며 샤를마뉴 대제의 죽음 뒤에 왕국이 분열되었다. 각각 동프랑크, 서프랑크로 분열되었으며 독일과 프랑스의 전신이 된다. 그 뒤에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가 본격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 제국은 카노사의 굴육과 아비뇽의 유수를 겪으며 교황권과 부딪히기도 했고 결국 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 를 통하여 그 힘이 정점에 도달하여 결국 샤를마뉴 대제 이후 몇 백년이나 지나서 제국의 이름으로 새로 쓰여졌다.

 

제 2제국은 1871년에서 1918년의 독일을 일컫는데, 그 씨앗은 이미 프로이센의 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에서부터 뿌려져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1740~1786까지 프로이센을 지배했었는데, 신성로마제국을 찢는데 일조를 했었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신성로마제국은 무너지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앞을 가로막는 나라는 모두 패배하였으나, 아무리 많은 승리를 거두더라도 단 한 번 패배하면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경우가 있으니, 나폴레옹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나폴레옹이 휩쓸고 나닐때,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진 뒤의 독일은 말그대로 지명을 가리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이 쓰러진 뒤에는 독일 연방국들 중에서 기존에 프리드리히 대왕에서부터 착실하게 기반을 다져온 프로이센이 맹주로 대두되게 된다. 독일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독일 제국을 이루게 된 것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컸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독일에서는 3월 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는 공화정이 되었지만 독일은 당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혁명을 진압하였다. 이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빌헬름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고, 여기서 독일 제국의 대들보,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패권 경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게 만들었고, 이후 프랑스마저 꺾고 독일 연방을 하나로 묶어 독일 제국, 제 2제국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빌헬름 1세는 초대 독일 제국 황제가 된다. 그리고 그 팽창된 힘은 유럽 전역의 열기와 맞물려, 빌헬름 2세에 이르러 제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으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이상을 살펴보면, 제 3 제국이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는 히틀러가 제 1제국과 제 2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은 성공대로, 그리고 실패는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실제로 히틀러의 평전을 읽어보면 히틀러는 강박적으로 이야기한다. 제 2제국 당시에 우리 독일이 얼마나 치욕적인 조약을 맺었던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나고,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제 3제국은 그 근본부터 파시즘의 요소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 3제국이 다른 제국들과 다른 것은, 제 3제국은 히틀러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히틀러 이외의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는 없었다. 히틀러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움직였다.

 

이제 이야기는 아돌프 히틀러로 넘어간다. 히틀러 평전에서 이언 커쇼는 히틀러에 대한 혐오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히틀러가 저지른 죄는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언 커쇼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저 악인이다, 나쁜 행동이다, 라고만 규정한다면 거기에서 더 이상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없노라고. 그렇기에 그는 어린 시절로부터 히틀러를 추적하여 그의 성장과정과 그가 어떻게 권력을 잡게 되는지를 1권에서 그려낸다. 히틀러는 제 1차 세계 대전에도 참여하여 무공훈장을 받는데, 전쟁을 거치며 그는 그 자신의 행동을 평생 규정할 두 가지 기준을 만들게 된다. 반유대주의와 볼셰비즘에 대한 무한한 증오가 바로 그것이다. 도대체 왜 히틀러가 볼셰비즘과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뛰어난 유대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유대인들을 증오하게 되었다 등은 흥미롭지만 거의 음모론 수준이고, 사실은 크게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왼쪽의 책은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는 책인데, 사실 책 자체는 흥미롭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학창시절의 히틀러는 어느 것에도 흥미가 없고 공상만 하던 문제 학생이었고, 그다지 성적도 좋지 못했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히틀러는 선생들에게 배울 것이 없기 때문에 저항한 것이다, 라고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저 책은 한 번쯤은 눈여겨볼만하다. 그 외에 히틀러가 가지고 있던 볼셰비즘에 대한 증오는 이후 사상적으로 접하게 된 생존공간의 문제, 와 결부되어 소련을 공격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히틀러는 항상 외부에 적이 존재한다고 상정하였다. 마치 사춘기의 학생들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안쓰는데도 그들이 자신을 다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괜히 돌출 행동을 벌이거나 혹은 특이한 일을 벌이는 것 처럼 말이다. 시선으로만 남았다면 다른 사춘기의 청소년들처럼 털고 일어났을테지만, 그 '시선' 은 이윽고 적의 시선, 으로 변하였고, 그 때문에 진실로 자기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되버린 것이다. 그로 인하여 히틀러는 점차 자기파멸적인 행보를 거듭한다. 말하자면 '자살 후보자' 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알 수 없는 울분에 휩싸여 거리를 방황하던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고, 거기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연설능력. 자세히 들어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이 그저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감정은 다른 사람을 울렸고, 이윽고 수많은 군중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맥주홀을 전전하면서 연설하던 그는 중앙의 나치당 정계에 제대로 진출하게 되고, 참신함을 내세워 점차 영향력을 늘리게 된다. 그런데 사실 히틀러는 고집강한 사춘기 아동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를 정말 싫어하여 아무리 중요한 결정이라도 최대한 미루다가 더이상 피할 수 없을때 확정지었다. 그의 고집은 정말 끔찍하여, 아무리 당론이 분열되고 양보를 해달라고 부탁이 오더라도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미 개인의 권력 집중 경향이 드러났을 것이다. 자신만 무조건 옳으니 다른 사람은 모두 나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는 바로 그런 경향말이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대체로 그를, 적어도 그 자신한테는,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아무리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려도 결국 그는 항상 이득을 보았다.

 

아무리 중앙이라고 할지라도 당시 정계 상황에서는 소수당에다가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던 나치당이 권력을 잡게 된 것은 히틀러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그가 미칠듯한 운이 항상 따라주었기에 계속 성공할수 있었다, 라고 분석만 내리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 든다. 빠진 것이 있다. 바로 당시의 독일 상황이었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물가 문제, 정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사회 상황은 히틀러 자신에게는 유리하게 돌아갔고, 그렇기에 앞서 말한 것 처럼 그의 선동이 먹힌 것이었다. 히틀러의 연설수법을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참전 용사라는 것을 이끌어 내어 민중의 공감을 얻고, 외부의 적을 상정하여, 유대인들과 볼셰비즘을 열심히 공격한 뒤에, 그들에게 죄가 있고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 라고 말하며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혼돈에 힘들어하던 민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했었다. 이는 다시금 히틀러의 성공을 가져오게 되고, 성공은 다시금 성공을 낳게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 히틀러가 집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자세하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계를 붙잡기 위해서 더 많은 계교를 부렸지만, 그 기초에는 저런 것이 깔려있다.

 

하지만  Hubris라는 단어가 있다. 히틀러 평전의 1권의 부제이기도 한 Hubris는 토인비가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신격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되는 현상을 지칭'할 때 사용한 단어인데, 원래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벨레로폰을 아는가? 천마 페가수스의 주인이던 영웅말이다. 그러나 그는 페가수스를 타고 신에게 도달하려고 하다가 결국 몰락하고 만다. 태양신 아폴로의 아들, 파에톤은 어떤가? 아폴로의 태양전차를 몰다가 제어를 하지 못하고 결국 제우스의 벼락에 징벌당한다. 신은 항상 오만에 빠진 자를 '벌한다' 이 징벌은 다른 신들조차 어쩌지 못하는 복수의 여신Nemesis의 힘이고, 그녀의 손길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지질학에서 고대의 5번의 멸종 원인을 조사하다가 한 가지 가설로 내세운 것이 있는데, 바로 네메시스Nemesis라는 이름이 붙은 가설이다. 혜성들의 기원으로 알려진 오르트 구름은 성운과 먼지에 가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며,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엄밀하게 어떤 구조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안에 행성이 하나나 두개 더 있어도 모를 일이라는 말이다. 지질학자들은 고대의 5번의 대멸종이 동일한 주기로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오르트 구름에 태양의 쌍둥이 언니로 짐작되는 어느 별이 있으리라고 가설을 세웠다. 그 별은 갈색왜성이나 적색거성의 형태로 태양과 쌍성을 이루며, 그 별의 공전으로 인하여 오르트 구름에 교란이 생겨 지구에 혜성과 운석을 쏟아붓게 되어 멸망이 일어난다. 그 별의 이름은 징벌자 혹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이다. 이 가설이 옳은 가설일지는 모른다. 최근에는 아마도 오르트 구름 내부에 10번째 행성, 그러니깐 퇴출된 명왕성 말고 다른 행성이 있을 것 같다, 라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옳다고 가정하다면, 번성Hubris 뒤에는 멸망Nemesis이 따른다. 비록 지질학에서는 번성과 멸망은 큰 인과관계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저 히틀러에게는 조금은 인과관계가 있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징벌을 맞은 사람들처럼.

 

결국 히틀러는 팽창 야욕을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의 땅들을 야바위로 야금야금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그의 목표가 된 것은 오스트리아였고, 체코도 곧 손아귀에 넣게 된다. 그가 구사한 전술은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바로 그 전술말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내심 전쟁을 원했다.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욕에 빠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오직 정복 전쟁만이 자신의 갈망을 채워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서 소련을 집어삼키고, 생존공간을 확보한다. 볼셰비즘은 세상에 뿌리를 뽑고, 유대인들은 황무지라도 개간하며 살라고 내팽겨친다. 볼셰비즘에 젖은 유대인들은 그야말로 악마니 주저없이 만나면 목을 벤다. 주위 유럽 국가들은 어느 정도 땅을 떼주면 평화를 해치지 않겠지, 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영국의 수상이었던 체임벌린은 뮌헨 조약을 맺어, 체코 땅을 떼주면 더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조약까지도 맺었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고, 이윽고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고 만다. 사실 히틀러의 입장에서도 침공은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비록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해서는 상황이 발전했지만 대부분 군수물품의 생산에 물자가 투여된터라 사회적 위기를 맞을 확률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히틀러가 지배하던 제 3제국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내각이라던가 조직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에 각 부처가 핏대를 올리며 평행선인 대립각을 세울 뿐이었다. 히틀러는 그저 방관만 하다가 목소리가 커서 이긴 사람의 말을 듣고 대충 서명해주기에 바빴다. 그런 그에게 폴란드는 먹음직스러운 땅이었던 것이었다. 파죽지세로 폴란드를 점령한 히틀러는 기세를 이어 프랑스마저 침공하여 무너뜨린다.

 

그러나 자신의 무오류를 믿고 점차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Hubris 히틀러는 징벌을 맞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징벌은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게 징벌이 작용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네메시스 가설은 번성과 멸망 사이에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다. 지구에서 아무리 번성을 하든 말든 정해진 주기가 되면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져내릴 것이다. 히틀러가 멸망할 시기가 점차 다가왔다. 무너진 폴란드는 유산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유산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크게 활약한 조종사들이며, 그 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암호 체계를 연구한 결과를 영국에 넘기기도 했다. 독일군의 U보트는 연합군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어쩌면 독일군이 좀더 강력해질 시간이 있었다면 영국을 봉쇄시켜 무너뜨렸지도 모르겠다고 여기게 만든 무기이다. 물론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 U보트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왼쪽의 특전 U보트, 는 상당히 뛰어난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이야기할 것은 오른쪽의 영화와 관련된 것인데, U-571의 내용은 독일군의 암호를 획득하려고 그들의 U보트를 잡아서 신형 에니그마(당시 독일의 암호기기)를 분석하려고 좌충우돌한다고 요약할수 있겠다. 이는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영국은 엘런 튜링(전산학에서 업적을 남긴)과 폴란드에서 획득한 독일군의 암호를 연구한 팀의 합작으로 독일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군의 U보트에게 공격을 심하게 당하면서도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암호기기를 영국이 해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독일로서는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영국은 독일이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도 독일의 패인으로 작용한다.

 

잠깐 영국으로 눈을 돌리면, 영국은 체임벌린이 물러나고 윈스턴 처칠, 히틀러의 숙명의 라이벌이 수상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처칠은 갓 자리에 오르자마자 위기에 빠졌다. 연합군, 그러니깐 영국군과 프랑스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쫓겨 됭케르크라는 항구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 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이 포위당하여 전멸했다면 처칠은 아마 전쟁반대파들에 의하여 실각당하고 독일과 조약을 맺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히틀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군대를 멈추게 한다. 그렇게 귀중한 24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영국군은 모을 수 있는 모든 함선을 모아 겨우 도망쳤고, 하루가 흐르고 다시 추격에 나선 히틀러군은 영국군의 주력이 도망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프랑스가 무너지고 이탈리아가 참전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독일은 영국과의 전쟁을 개시한다. 원래 히틀러는 끝까지 영국을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반 나치의 거점이 된 영국이, 그리고 호전적인 처칠이 수상 자리에 앉아있는 이상 그의 회유는 먹히지 않았고 결국 공중전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처칠도 히틀러 못지 않게 고집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상공에서 폭격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무실에서 태연하게 집무를 보면서 전쟁을 지휘했다. 갑작스러운 폭격에 좀 당황했던 영국군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중전에서 독일군을 압도하고, 승리를 거둔다. 왼쪽의 2차세계대전사, 는 내가 끝까지 읽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에 대하여 심도있는 분석을 원한다면 저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히틀러는 여기서 이제 결정적인 패인을 저지른다. 영국군과의 전쟁도 마무리짓지 못하고 고착상태에 빠진 채 소련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스탈린은 독일이 침략해오기 전에 이미 그들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기는 했었다. 영국이 독일의 암호를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도 고집이 센 것은 마찬가지라서 처칠이 은밀히 정보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그 정보를 무시하고 '독일이 쳐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스탈린의 숙청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재가 희생이 되었으니, 독일군이 갑자기 쳐들어왔을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결국 침공 하러 들어가게 되면 시가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독일군의 기동력을 심각하게 깎아먹어서 도리어 발이 묶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위가 닥쳐 수많은 기계를 마비시켰다. 이는 기계화된 독일군 전력에 악영향을 미쳤고 결국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그리고  전황은 스탈린그라드에서 극적으로 변했다.

 

동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대반격을 맞이한다. 그동안 산발적인 반격과 추위에 의하여 많은 사상자, 부상병이 있었고, 사기도 저하될때로 저하된 상태였다. 왼쪽의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 그런 장면이 잘 나와있다. 왼쪽의 작품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소련에게 밀리며 패색이 짙던 독일군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그것도 권력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전쟁은 정말 무의미하다, 라는 것이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3주간의 짧은 사랑, 겨우 결혼에 이르지만 다시 전장에 나가게 되는 주인공. 그는 이윽고 무의미한 전쟁에서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한다.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 전투를 벌이던 독일군과 소련군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탱크도 무력화된 스탈린그라드에서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만슈타인의 작전도 실패로 돌아간 뒤 결과적으로 갇히게 된 독일군은 결국 지원도 무위로 돌아간 채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쓰러지면서 히틀러를 원망한 사람도 있었고 히틀러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사람도 있었으며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종말에서 끝까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친 사람도 있었다. 히틀러는 희생된 장병들을 영웅적 희생으로 포장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당시 독일 6사단을 이끌던 장성인 파울루스의 투항으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물론 히틀러는 파울루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발대발하였다. 그는 파울루스가 자결하기를 바랐지만 파울루스는 끝끝내 자결하지 않았다.

 

 

스탈린그라드에서만 극적으로 전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일본군을 쫓아내었고 이집트에서는 몽고메리 장군이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롬멜을 격퇴시켰다. 모든 징조가 독일의 패색을 나타내었다. 점차 몰리는 심정이 된 히틀러는 마침내 조직적인 최종 해법을 지시한다. 이미 폴란드에서 수많은 학살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던 독일군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이전에 비하여 더욱더 감정이 많이 무뎌져가기 시작했다. 제 3제국 초기만 해도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아예 조직적으로 절멸시킬 생각은 없었다, 고 여겨진다. 대량학살을 방조한다면 모를까, 나서서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몰아넣으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초기에도 유대인들은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였으며, 처음에는 강제로 게토에서만 거주하게 하다가, 어느 순간 아예 나라 밖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원래 히틀러의 계획은 마다가스카르 섬에 유대인들을 몰아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계획은 흐지부지되었고, 다른 곳에 관심을 돌렸다. 히틀러가 방조하는 사이 독일 정부는 꾸준히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그들의 재산은 모조리 나라에게 압수를 당하고, 제 3제국 정부는 악명높은 유대인법들을 많이 만들었다. 유대인남자와 관계를 맺은 독일여자는 행실이 나쁜 여자로 매도당했다. 이미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동화되어 독일인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고, 단 한 방울이라도 유대인의 피가 섞인 사람은 모조리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축출당하고 쫓겨났다. 예전 글에서 소개한 위의 게오르규의 25시를 보면 유대인으로 오인받은 주인공이 나오는데, 이 책은 생생하게 유대인들의 고통과 당시 독일의 모습, 그리고 전쟁의 무의미성을 보여주고 있다.

 

폴란드를 점령하자마자 히틀러의 충복들은 그동안 히틀러가 주장한 내용에 따라 유대인들을 총살하기도 하고 학살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초기에는 가스실로 끌고가서 조직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한 종족을 절멸시키려는 시도는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히틀러는 내심 볼셰비즘을 멸망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면, 그야말로 이 세상 모든 악인 유대인들만이라도 안고 가야겠다고 여겼던 것인지, 소련과의 전쟁이 한창 장기화될 전망이 보이자 마침내 최종 해법을 내린다. 히틀러는 일찍이 예언했었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그 자신의 예언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조직적인 학살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류 최악의 사건, 홀로코스트가 일어난다. 후에 강제수용소로 악명을 떨치게 되는 아우슈비츠는 원래 폴란드인들을 모아두는 곳이었다. 거기서 소련군 포로를 상대로 살인실험을 하고 결과를 얻은 후 제 3제국은 1941년 12월 헤움노 강제수용소에서 절멸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면은 한층 더 잔인하게 변하여 1942년 1월 반제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앞서 유대인들을 마다가스카르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기억나는가? 그러나 그 계획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실현에 옮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먼저 유대인들을 한 곳에 모으고, 동부로 옮긴 후 노동력으로 쓰려고 했으나 어느 순간 그런 경제논리마저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완전히 없애야한다, 는 생각이 회의에서 떠돌았다. 사실 노동력으로 유대인들을 부려먹고, 자연적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려 죽게 만들고, 굶어죽게 만드는 방법은 소련을 어느 정도 장악했을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반제 회의 공문서 자체에서는 명확하게 절멸을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회의장에서는 절멸, 제거와 같은 말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그런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일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 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서 겨우 몇 자 남겼다. 왼쪽의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서 제 3제국과 히틀러의 분열이 일어난다. 제 3제국은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히틀러의 뜻대로 굴러가는 국가이다. 아래의 각료들은 히틀러의 의중을 짐작하여 히틀러가 원하는대로 움직였으며, 히틀러가 한번 소리치면 그저 꼬리말고 그의 말에 따르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번 유대인 절멸 사업에서는 히틀러 본인은 앞서 말한 반제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그저 연설에서는 독설을 쏟아내었지만 그 외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히틀러에게 충성을 바쳤고 그의 치하 제 3제국에서 선전을 맡았던 괴벨스의 기록에서도 히틀러의 역할은 애매모호하였다. 그가 히틀러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히틀러의 과오(로 꼬투리가 잡힐수도 있을 것 같은) 부분은 말을 다듬어 썼을런지도 모르는 일이고, 늘 히틀러의 정치는 '어떤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렇게 유대인에 대해서 증오심을 토하던 히틀러치고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는 것을 지적하지는 않을 수 없다. 이는 히틀러와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유대인 살해를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로 뒷받침된다. 여기서 제 3제국은 히틀러와 약간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는 히틀러는 곧 제국이었으나, 이제 그 제국은 히틀러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어떤 '악' 을 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니다. 이언 커쇼가 히틀러 평전에서 밝혔다시피 대단위 규모의 사업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히틀러의 재가가 있어야만 했고, 그런 대량 절멸 사업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추후에 보고 받았을리는 없다. 아무리 모른 척 하려고 할지라도 그가 최종으로 결정을 내리는 자였다. 이 분열은 기묘한 결과를 낳았는데 반제회의의 참석자들은 동시에 특이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기계 부품과 같은 존재다' 와 같은 생각말이다. 이런 생각들을 서로 품고 있을때에는 아마도 히틀러든 다른 각료든 서로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들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의 부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나 아렌트가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으로 밝힌 바 있다. 물론 그녀의 저서에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 등과 같이 말이다.

 

수많은 암살 시도를 겪은 히틀러는 운이 좋았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중 유명한 암살 시도가 두 번 있는데, 첫 번째 암살 시도는 히틀러가 정권을 갓 손에 쥐고 전쟁을 막 일으킬 때 평범한 사람이 그를 제거하려고 폭탄을 설치한 것이었고, 두 번째 암살 시도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를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히틀러를 폭사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만약에 그때 히틀러가 제거되었다면,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는 거의 죽을 뻔 했었다, 역사가 조금은 바뀌었을까? 사실 그 부분은 좀 부정적이다. 암살 시도는 너무 어설펐고, 히틀러 주위의 친위대원들의 광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였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늦게 암살 시도가 일어났다. 물론 좋은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결국 두 번째 암살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참혹하게 단두대에서 목이 베이고, 푸주간의 고기처럼 갈고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저렇게 참혹하게 보복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히틀러가 정신적으로 몰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참전으로 인하여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된 연합군측은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동부 전선, 독일과 소련의 전쟁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인하여 트럭을 공급받게 된 소련은 많은 보병 여단을 트럭으로 이동시켰으며 결국 돌파하게 된다. 이미 독일은 동부와 서부 전선 모두를 유지하기에는 힘이 부친 상황이었다. 사막의 여우라 불리던 명장 롬멜은 히틀러 살인 미수 사건에 휘말려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동부 전선의 독일군 원수였던 만슈타인은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 퇴역하고 말았다. 히틀러는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 그리고 그들 뒤에서 버티고 있는 미국의 루스벨트를 상대로 더이상 버틸 힘이 없었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1945년 4월, 소련군은 베를린을 점령했고, 산발적인 독일군의 저항에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대응한다. 벙커 안의 히틀러는 자살한다. 그의 곁에는 에바 브라운이 있었고 그 뒤를 괴벨스와 그의 가족들이 따라갔다. 그리고 제 3제국은 조금 더 그 이름만 유지하다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제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글을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사실 이 글에 나온 내용들은 누구든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까지 소개한 책들과 소개하지 않은 책들에 더하여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정보의 세계에서 헤엄치면서 건져올릴 수 있는 내용들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이 가진 약점은 괴벨스나 괴링과 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그들의 이야기까지 넣는다면 훨씬 길어질 것이라고 여겨졌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히틀러라는 인물에 비한다면 제 3제국에 미친 영향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 제외하였다. 이후에 괴벨스의 평전을 읽은 뒤에 나중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 히틀러의 관계 및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제 3제국의 행방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각종 도서관에서 논문 검색을 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분명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내용들보다도 더 무게를 실을 수 있는 부분은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파시즘은 정말 위험한 것이다, 라고. 거기에 더하여 전쟁도 정말 끔찍한 결말을 낳는구나, 와 같은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막힐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이 말 뒤에는 저 많은 내용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이렇게 내용과 생각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독서에 어떤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부연하자면 어차피 내용은 인터넷에서 구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내용에 대해서 찾아야할지 모른다면 아무리 인터넷이 뛰어난 도구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독서는 그 '어떤' 에 해당하는 키워드들을 제공하고,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던 키워드들을 재정의한다. 좀 멋진 말로 하자면, 중심되는 개념들의 외연과 내포를 적절히 조절한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키워드의 재정의는 무엇에 쓰이는가? 그것은 바로 당신과 나의 대화에 쓰인다.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지나친 상대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에 처하기에, 그런 늪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대화를 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합리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 바르게 사용되어져야 하며, 바로 이 때 다양한 독서를 통해 각인된 키워드들의 재정의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쉽지는 않지만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 노력할 것이고 저런 독재자의 재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p. s. 다음에 쓸 글로 주제를 두 가지 잡아두고 있는데.. 어떤 것이 나을려나 모르겠다. 하나는 고대로 거슬러가서 로마의 오현제에 관련된 글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주제를 180도 틀어서 과학쪽으로 멸망에 대해서, 그러니깐 공룡은 왜 멸망했는가, 에서 파생되어서.. 위의 네메시스 가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써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워낙 로마에 대한 글은 많기도 하고.. 거기다가 괜한 글을 더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과학계통의 글을 쓰는게 좋으려나?  뭐, 어느 쪽이든 다음 달은 되어야 겨우 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꼭 다음에 저런 주제로 글을 쓸 지는 모르겠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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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8-09 13:29   좋아요 0 | URL
명저에 걸맞는 멋진 서평입니다.특히 팩스턴, 게오르규, 레마르크, 아렌트 책까지 함께 소개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제2제국 당시 치욕적인 조약이라고 쓰셨는데 베르사이유 조약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그런데 베르사이유 조약은 제2제국 기간이 아니라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연합국과 맺은 조약입니다.알사스 로렌 등 영토를 잃고 무장해제까지 되었지요.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수뇌부엔 유대인이 많아 유대인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흑색선전이 확산되었습니다.이런 분위기를 히틀러가 이용하기도 하고요.제2제국은 1918년 말,1차대전이 끝나고 황제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끝납니다.

가연 2012-08-09 22:40   좋아요 0 | URL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이 옳은 듯 하네요ㅎㅎ 베르사이유 조약이 치욕적인 조약이었고.. 1918년에 황제가 망명했고 그 뒤에 맺었으니 바이마르 공화국이 맺은 조약으로 보는게 타당하겠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만..ㅎㅎ 글 문맥을 수정하기는 좀 그런게,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제 2제국이 조약을 맺었다고 선전하는게 그 제국을 계승했다고 여기는 나라로서는 이득이 되는 셈이라 여기지 않을까요? 그렇기때문에 아마 평전에서도 제 2제국을 겨냥하여 저렇게 선전을 했다고 여겨서 쓰여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여기고 있는데..ㅎㅎ 부족한 점들 일깨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댈러웨이 2012-08-09 21:53   좋아요 0 | URL
가연님, 안녕하세요?

오전에 이 페이퍼를 읽다가 현기증이 일어서 스톱했었습니다. 뒷 얘기 마저 읽을려고 들어왔는데,,, 프린트를 해야겠네요.
안그래도 독일사 18세기 19세기 훑으며서 정보가 하도 난삽해서 고생을 했었고, 파시즘, 히틀러 관련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막막했었거든요.

정말 감사해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몇 자 남겨요. 누군가 하시겠다. ^^

p.s. 다음에 올리실 글에 대한 예고편까지 나온 상황인데, 음...저는 개인적으로다가 로마를... 음... 그러니까 이거는 어디까지나 그냥 바람이라는... 아, 지금 벌써 가연님께서 올릴 다음편 읽을 생각에 막 설레기까지 하네요.

가연 2012-08-09 22: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댈러웨이님..ㅎㅎ

아하하.. 프린트까지 하실 글은 아니라 여겨져서 괜히 부끄럽네요.. 저로서는 책읽다가 충동적으로 쓴 글이라.. 아무래도 제가 저 위의 책들을 이 글을 쓰면서 다 다시 참조하지는 않아서..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쓴 부분도 있어서 엄밀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만 유념해주시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서 약간은 뿌듯하네요.

아하하.. 아래 p.s.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의견 수렴용이긴 해요, 풋. 하지만 저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 댓글은.. 푸하하.. 그래서 추신을 끄적거리면서도 댓글 안달릴 것 같아서 그냥 그래서 멋대로 쓰려고 생각중이었답니다.. 그래도 로마 한 표 나왔네요, 풋.

transient-guest 2012-08-15 05:56   좋아요 0 | URL
자세한 리뷰네요. 잘 읽고 갑니다. 2차대전과 히틀러, 그리고 제3제국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책이 '제3제국의 흥망'인데, 요즘은 절판이 된걸로 알고 있어요. 윌리암 샤이러라는 미국기자가 쓴 책인데, 완성도와 몰입도 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classic입니다. 추천하고 싶네요.

가연 2012-08-16 22:1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음.. ㅎㅎ 그 책을 들어보기는 했는데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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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요아힘 나겔 지음, 정지인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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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1.

 

 

 

  트와일라잇, 언더월드, 블레이드,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흥행에는 모두 차이가 있고, 이 중에는 속편이 제작된 영화도 있지만 속편이 제작되지 않은 영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흡혈귀, 뱀파이어에 관한 영화라는 것이지요. 흡혈귀라는 모티프만 가져온 등장인물이 있는가 하면, 나름의 원칙을 따라서 흡혈을 하는 그런 등장인물들도 있습니다. 위의 영화들 중에서는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가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의 컬렌가는 일종의 채식뱀파이어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인간의 피를 빨지 않고 동물의 피로 그 욕구를 대신하지요. 블레이드의 주인공은 일종의 데이워커입니다. 이는 대낮을 걸을 수 있는 자, 라는 뜻인데, 원래 전승상에서 뱀파이어는 태양을 두려워하고 밤에 자신의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검을 휘둘러 뱀파이어의 비명을 쏟아내지요. 뱀파이어를 다룬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종 장르소설들, 판타지소설들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나옵니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이라는 소설에서는 결말 부분에서 흡혈귀들의 시조로 설정된 노스페라투를 부활시켜 주인공들과 적대시킵니다. 장르소설로 월야환담, 이라는 소설은 아예 흡혈귀 사냥꾼이 주인공이고,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흡혈귀들입니다. 흡혈귀의 불사성은 이런 소설들에서도 유지되어, 월야환담에서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느라 지쳐 자신의 인격을 아예 바꿔서 로맨티스트로 살아가는 흡혈귀도 나오지요. 만화책에서도 우리는 흡혈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헬싱, 이라는 만화에서 주인공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에서 그 모티프를 따왔으며 (주인공 흡혈귀인 아카드Alucard는 드라큘라Dracula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지요) 흡혈귀이고, 그것도 매우 강력하면서도 오래된 흡혈귀입니다. 이 만화에서의 아카드는 재로 태워도 부활하고, 심장을 부수어도 부활하며, 햇빛 아래에서도 당당히 걸어나갑니다. 기존의 흡혈귀 전승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지요. 이렇게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들이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어떤 매체는 기존의 전승을 파괴하기도 하고, 어떤 매체에서는 기존의 전승을 너무 엄격하게 지키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들 모두 하나의 공통점은 가집니다. 그것은 바로 피, 기본적으로 피를 마셔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2.

 

 

 

  피가 생명의 근원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그 이면에 수많은 신화와 전설들이 깔려있습니다. 기념비적인 저작인 황금가지, 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신화에서의 각종 제전들에서 피의 이미지가 선명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이 아티스 제의인데, 식물신인 아티스는 매해 죽음을 맞이하고 매해 생명을 부여받아 살아납니다. 그의 전승에 따르면, 어머니이자 애인인 대지모신 키벨레는 아티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까봐 미쳐버리게 만들고, 그 결과 아티스는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물푸레나무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후에 다시 부활하는데, 그에 따라 제의를 주관하는 대제사장은 매해 그의 제전에서 팔을 그어 피를 내고, 주위의 사제들과 함께 자신의 성기를 잘라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던집니다. 피는 광란을 가져오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해를 하고 성기를 잘라서 들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어느 집에든 그것을 마구 던집니다. 이 제의에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피를 바쳤다는 점이고, 전승에 따라서 성기를 잘랐다는 것입니다. 성기는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생명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생식행위이기 때문이지요. 그 성기와 피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아티스를 매해 부활시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제의에서 현대 뱀파이어 영화의 특징인 '성적 긴장과 공포' 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기는 그야말로 욕망의 상징이지요. 피로 물든 잘려진 성기 이상으로 욕망과 공포를 잘 드러내는 상징물은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우리는 요즘도 종종 원시부족을 여행할 때, 인육을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으며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고대부족들은 인육을 먹고 상대의 피를 마셨습니다. 그들이 흡혈귀였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상대의 피를 마시고 심장을 뜯어먹음으로서 상대의 강력한 힘이 본인들에게 흘러들어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미지는 북유럽 신화의 지크프리트와 파프니르와 관계에서도 변주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부족은 희생 제물로 매년 한 명을 선택하여 제의의 날이 되면 그의 사지를 찢고 목을 벤 다음, 그 피를 짜내어 밭에 뿌리고, 그의 사체를 하나씩 떼어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남은 부분은 갈아서 밭에다가 심기도 하지요. 이런 잔인한 의식은 그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으로, 여기서도 피와 육체는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이 피를 대가로 소모된 힘을 회복하여 (젊음을 회복하여) 다음해에도 우리에게 풍년을 베풀어달라, 라는 사고 방식입니다. 이런 희생과 생명의 이미지들은 현대 종교에서도 남아있는데, 우리는 크리스트교에서 성찬식을 거행할 때,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요, 축성한 빵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지요. 이에 대해서는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데,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가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지만 일단 기본적으로는 전승으로 볼 때, 일종의 희생제의의 상징이 그 속에 내재되어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을 참조하면 육체의 생명과 영적인 생명이라는 이미지를 피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3.

 

 

 

  이렇게 피는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생명력, 영혼원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피를 통하여 젊음을 회복한다는 관념도 오랫동안 유지되어왔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피를 강탈하는 괴물이 나타나게 된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고대인들은 (물론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모르는 것들이 정말 많았으며, 잘 모른다는 것은 우리의 인지가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인지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는 괴물을 만들어냅니다. 고대인들의 사고를 추적해보면, 사람에게서 피가 흘러나가면 죽는다, 라는 사실에서 피가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여기게 되고, 그렇다면 이 피를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겠구나, 와 같은 과정을 밟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피만 있으면 어떻게든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겠구나, 라고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 피로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는 괴물, 뱀파이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고대인들의 전승에서는 사실 피만 엄밀히 분리되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괴물은 피와 살을 동시에 뜯어먹는 존재들이었고 (그 편이 훨씬 그로테스크하기에 공포감을 많이 주기도 합니다만) 이는 페르시아 전설에서의 시체를 뜯어먹는 괴물인 굴(Ghoul), 그리스의 반인반수인 라미아(Lamia)의 이미지로 드러납니다. 한동안 피와 살을 동시에 뜯어먹으려 무덤에서 부활해온 괴물들은 중세에 이르러 크리스트교의 전래와 함께 십자가를 들이밀면 무덤으로 사라진다, 심장에 말뚝을 박고 시체를 태워 재로 만들어야 된다, 등의 퇴치방법이 연구되어왔으며, 각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의 결합에 의하여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됩니다. 바로 살점을 먹기보다는 피만 빨아먹게 된 것이지요. 이는 중세에 유행한 흑사병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흑사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악마의 소행이다, 등의 가설을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체부위가 어디 절단되거나 한 것도 아닌데 죽음을 맞이하다니 말이지요. 그렇기에 살과 피를 동시에 물어뜯던 괴물에서부터 피만 흡혈하는 괴물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살과 피를 동시에 뜯어먹든, 피만 빨아먹든 어느 쪽이든 희생자가 죽음에 이르는 것은 당연했지요. 이는 다른 수많은 괴담들과 연관되어 밤거리를 걷는 사악한 괴물, 뱀파이어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갈 것이 있습니다. 그들, 고대의 주민들이 만약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획득했었다면 괴물이 생겨났을까요? 앞서도 말했지만 괴물은 결국에는 두려움과 무지의 산물입니다. 만약에 고대인들이 우리와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도 라미아나 서큐버스, 굴과 같은 괴물들은 자리를 잡기 어려웠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이들 괴물들은 그 생명력을 거의 잃은 것이지요. 물론 이 말이 현대에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 무지는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고, 고대의 괴물들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 자리를 새로운 괴물들이 채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괴물들은 (앞서서 존재했던 괴물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다시금 소멸되고, 다시금 생성되는 과정을 반복할 것입니다.  

 

 

 

4.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고대의 괴물들이 인지에서 사라진다면 (현대에 이르러 몽마인 서큐버스나 인큐버스와 같은 괴물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요) 왜 아직까지 흡혈귀는 그 생명력을 유지하며, 더 나아가 스크린을 장악하게 되었을까요? 이 책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는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뱀파이어를 낳는데 중심역할을 맡았던,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뱀파이어와 한동안 공존의 길을 걷던 괴물들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영향력을 거의 소실합니다. 물론 뱀파이어라고 해서 현대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는 볼 수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뱀파이어는 여러 매체에서 주역을 맡거나 중심 캐릭터를 맡아서 활약해오고 있으며, 대중들의 관심에 호응하듯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장 위의 몽마, 서큐버스나 인큐버스와 비교해도 몽마가 중심되는 영화나 소설은 그리 많지 않고, 대중의 관심에서도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인간형 악마인 몽마가 이러할진데, 인간과는 동떨어진 외모를 가진 키메라, 히드라와 같은 환상종들은 더 나쁜 상황에 놓여있겠지요. 이 책의 저자는 저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고대에서부터 뱀파이어의 연원을 조사해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바빌로니아의 릴리트와 굴, 라미아, 그리고 하피와 같은 여성형 악령들에서부터 그 기원을 확인하며, 중세를 거쳐서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흡혈귀들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수많은 흡혈귀 문학이 있었지만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 괴테와 같은 대문호들도 흡혈귀에 관련된 소재를 바탕으로 흡혈귀에 관한 글을 썼지요) 그 중 흡혈귀에게 불멸의 생명을 안겨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입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세세한 설정들, 그리고 당시의 탐정 소설의 영향과 심리, 정신병리학등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7년이라는 산고 끝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아직까지도 뱀파이어 문학의 고전이자 필수 참고서로 여겨지고 있으며, 현대 대중문화에서의 흡혈귀들의 대부분의 설정은 이 드라큘라를 따르거나 혹은 이 드라큘라를 뒤집는데서 발전되어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라큘라의 줄거리는 너무 잘 알려져 있겠지만 굳이 조금 언급하자면, 왈라키아 공작 블라드 체페슈 3세, 드라큘라가 이제 영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집을 마련하려고 조너선 하커를 불러들이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조너선 하커는 그의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겨우 성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약혼자 미나 하커가 드라큘라에게 물려 흡혈귀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반 헬싱 박사와 힘을 합쳐 결국 그를 물리치지요. 하지만 아무리 잘 쓴 문학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그 문학작품의 캐릭터가 독자적인 생생한 생명력을 획득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역사적 배경에 편입되고 (블라드 체페슈 3세는 실존인물이지요) 고대로부터의 전설에서 이끌어져나왔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기서 뱀파이어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기술의 발달이 작용합니다. 이 책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의 흐름 순서를 보면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에 대한 설명 뒤에 이 드라큘라가 어떻게 영화화가 되었는가, 를 설명합니다. 만약에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인 '노스페라투 - 공포의 교향곡' 이 없었다면 뱀파이어가 지금 이렇게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이 영화 자체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는 수많은 다른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낡은 전설에서 늙어가던 뱀파이어에게 신선한 피를' 공급합니다.

 

 

 

5.

 

 

  그렇다면 이렇게 깨어난 뱀파이어는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사실 능력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뱀파이어는 우리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보통 인간이 뱀파이어에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둘 다 동등한 조건에서 싸움을 벌인다면 설령 아브라함 반 헬싱 박사라도 그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을 초월한 근력과 정신력이 있으니 당연한 말이겠지요. 하지만 뱀파이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지만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그 생명을 획득합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결국 뱀파이어에 유머를 섞는 결과를 낳게 되고 더 나아가 희화화를 가져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사람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설명하는데, 그 중 성숙한 방어기제로 유머와 승화를 이야기합니다. 특히 유머는 본인의 기분과 남의 기분을 동시에 배려하면서 자신이 할 말을 하는 그런 유형의 기제인데, 이를 좀 더 확대시켜서 살펴보면 이 뱀파이어의 경우에도 그런 일종의 정신적 방어 기제로 유머가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반복하자면 인간을 초월했다는 사실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 사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결국 뱀파이어를 다루는 이야기에 웃음을 섞게 만들게 되고, 이는 뱀파이어 자체의 희화화를 낳게 되지요. 뱀파이어는 원래 없어, 라는 안도감과 함께 말입니다.

그러나 뱀파이어와 관련된 긴장은 저것뿐만이 아닙니다. 좀 더 근원적이고 직접적인 긴장이 그와 우리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욕망과 공포 사이의 긴장입니다. 뱀파이어를 다룬 매체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피를 빠는 것은 일종의 성적인 욕구와 마찬가지이다, 라는 설정을 부여함으로써 성적욕망과 흡혈욕망을 동일시합니다. 그러고 보면 둘 다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 동일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화면에서 뱀파이어가 흡혈하는 장면을 보면서 화면 구도와 소품들을 통해 에로틱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 흡혈은 중세의 문학작품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성간에 일어나며, 주로 일어나는 장소는 침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에로틱함에 취할 수는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조금이라도 더 피가 많이 빨리게 된다면 우리는 죽음에 이르게 될 테니 말입니다. 여기에 현대인들의 불안 심리와 맞물려 더욱더 뱀파이어를 다룬 매체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마도 한동안 뱀파이어의 생명력은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좀 더 매력적이고 다의적인 뱀파이어의 이야기들이 기대된다는 말과 함께 끝맺은 이 책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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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02 22:25   좋아요 0 | URL
참 이상하죠. 물론 뱀파이어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뱀파이어에 대한 흥미를 멈출수가 없으니 말예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정말 없다고 확신할 수 있어?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하핫. 뱀파이어는 제게 참 흥미로운 존재에요.

가연 2012-08-03 05:22   좋아요 0 | URL
ㅎㅎ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면 없는 것과 큰 차이 없지 않을까요 ㅎㅎ 이렇게 적고 보니 마치 외계인같네요, 풋. 음.. 만약에 이들이 정말 숨어서 살기를 원해서ㅋㅋ 각종 매체에 나온 것 처럼 일반인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라면 그걸 존중해서.. 없다고 믿어주는것도.. 푸하하.

드림모노로그 2012-08-06 18:01   좋아요 0 | URL
아 저 이거 읽어야 하는데 뱀파이어라 잼 날 것 같았는데 ㅎㅎㅎ 의외로 안 읽혀지대요 푸하하 ~ 반 쯤 읽고 덮었는데 ㅎㅎ 어서 읽고 리뷰 올려야겠어요 ^^

가연 2012-08-09 22:09   좋아요 0 | URL
ㅎㅎ 방금 리뷰보았어요, 풋.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2-08-26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6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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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뜸했네요.

 

 

 

상대성의 특수이론과 일반이론.

 이번에 나온 신간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이 도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상대성이론에 관한 책이 있고, 그 중에는 상대성이론에 대하여 쉬운 접근법들을 담고 있는 책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주창한 본인이 쓴 글에 비한다면 내용에서는 좀 부족한 부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이 책은 아인슈타인 본인이 직접 일반인들을 위해서 특수 상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하여 풀이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여기서 일반인들이란 정규 고등교육을 마친 사람을 의미하며, 우리나라에 비교하자면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사람 정도가 해당되겠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본인은 이 책이 설령 일반인이 아니라 더 어린 학생들이라도 충분히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고 여겼지만, 사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몇 수학적 기호에 겁을 먹지 말아야 되고, 처음에 그가 정의하는 요소들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책에는 얽힌 일화가 있는데, 이 책을 보여주고는 '어때, 이해가 되지 않느냐' 고 물었던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손녀딸이 이렇게 답하였다고 합니다. '다 이해했어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 점이 있어요, 관성이 뭐에요?' 관성은 역학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이지요.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데, 아무래도 쉽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려고 했던 아인슈타인의 의도는 실패한 듯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스티븐 호킹을 위시한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교양과학서적을 쓰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장방정식을 꼭 집어넣는지, 그리고 왜 그 방정식이 아름답다고 여기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과 메타과학.

이 책은 사실 옛날에 나온 책입니다만, 이번에 새롭게 개정판을 내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고쳤습니다. 옛날에 나온 과학과 메타과학, 은 앞부분에서 명제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탐구 방법론들을 먼저 설명하고 진행해나갑니다만, 이 책은 아무래도 그 부분들을 조금 제외한 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개정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요. 우리가 형이상학을 영어로 번역할 때 metaphysics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위 개념은 사실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 일단  meta-라는 접두사는 사이에, 혹은 후에-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석해보면 metaphysics는 physics 뒤에 오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형이상학에서의 physics는 물질계의 원리 전반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되지만 이를 축소시키면, physics는 우리가 쓰는 물리학이라는 단어가 됩니다. 왜 형이상학에 물리학이 포함되어있을까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발달된 과학의 전통은 사실 일종의 통합과학이었고, 그 기초가 되는 부분은 사물의 운동을 논하는 물리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지식이 증가되어가면서 도저히 한 분야로는 그 지식을 모두 담을 수 없었고 학문의 분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다시금 융합과학, 통합과학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런 시대흐름에 맞춰서 새롭게 많은 부분을 개정하여 낸 것이 아닌게 여겨집니다. 이 책은 과학적 방법론과 과학 철학 분야를 다루고 있고, 이는 앞서 말한 통합과학에 있어서, 더 나아가 과학과 타 영역과의 통합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지요. 그리고 덤으로 책의 뒤에는 장회익 교수의 영어 논문이 담겨져 있어 그의 사상을 보강해줍니다.

 

 

 

코뮤니스트.

 사람은 꿈을 어디까지 함께 가질 수 있을까요? 예전에 쓴 글 중에서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의견이 팽팽히 부딪힐 때 이성과 이성의 대립이나 이성과 감정의 대립, 혹은 감정과 감정의 대립 중에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은 이성과 이성의 대립이지만,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바로 같은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꿈을 꾸게 만들어준 이론이 있다면 아무래도 마르크스가 내세운 이론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론을 쫓아 공산주의자가 되고, 자신들의 어깨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었다고 믿었지요. 얼치기 공산주의자에서부터 제대로 된 신념을 갖춘 공산주의자까지, 이론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혁명에 뛰어든 농부에서부터 이론의 조직화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가 저 꿈에 반해서 공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결국 모두가 아시다시피 꿈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마지막에 독재로 점철된 것은 공산주의가 아닌 괴물에 지나지 않다, 진정한 공산주의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등으로 반론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령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더라도 이상적이었던 공산주의가 왜 독재라는 끔찍한 괴물로 대체되었는가, 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사상가들이 고민을 하고 아직도 논의는 진행중인데, 여기에 이 책의 저자가 뛰어듭니다. 저자 로버트 서비스, 는 '스탈린' 의 평전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는 근현대 러시아 역사의 연구자인데, 그의 꼼꼼한 분석과 통찰이 코뮤니스트에서는 어떻게 발휘될지 궁금합니다.

 

 

 

또래압력은 어떻게.

또래 압력은 이 책의 소개에도 나와있듯이 동료 집단의 어떤 사회적 압력을 의미하며 이에 의하여 또래들에서부터 소외되면 소외될수록 괜한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동일한 입장에 놓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데 괜한 거부감을 가지게 됩니다. 또래, 라는 말이 왠지 문제를 청소년에 한정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 또래압력은 어디에서든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느 직장이든 어느 그룹이든지 속해 있는 집단에서 돌출 행동을 하면 그것에 대하여 또래 압력이 작용하며, 돌출 행동을 한 구성원은 억압받으며 스트레스와 소외감을 받게 됩니다.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에서 한병태가 느끼는 감정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또래 압력은 그 특성상 현대에 이르러서는 자유로운 의견과 감정을 억압하는 역기능이 강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양면성이 존재하며, 압력의 이 양면성에 집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 사람인데,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또래 압력이라는 종래의 부정적 개념을 긍정적 이미지로 바꾸는데 노력합니다. 또래 압력때문에 도리어 사회선은 증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긍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면 긍정적으로 변한다, 이렇게 거칠게 요약할 수 있지요. 그러나 분명 방법적으로 수긍이 가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는 속된 말이지만, 좀 치사한 방법이기도 하지요. 실제적이고 내재적인 변화는 없이 타인의 시선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변화에만 기대기에는 시급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개념의 긍정적 발견은 뛰어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이 책과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소크라테스의 변론, 사이서 고민하다가 결국 이 책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사실 매우 특이한 책입니다. 과학책의 탈을 뒤집어쓴 문학책이라고 불러야 할지, 문학의 외투를 둘러싼 과학책이라고 불러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사실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과학책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깊이가 얕으며, 건조한 과학책들과는 다르게 상당한 양의 수식어들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득이 될 때도 있지만 사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실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문학책이라고 부르기에도 곤란합니다. 물론 그 어떤 것이라도 문학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내용이 우주의 소립자들에 관한 것이라면 그다지 모양새가 좋아보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앞으로 인문 계열과 과학 계열이 통합을 이루려 할 때 나아갈 길을 조금 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들에 대하여 시가를 읊고 다양한 전설에 대한 해석을 낳았다면 비록 우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의 자리에 빅뱅이나 지질학적인 시대 구분이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겠습니까. 저자는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견지를 따르는데 고대인들이 어떤 종교적 혹은 영적인 언명을 고수한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으로 생명에 대하여 풀어나갑니다. 물론 저자의 모든 글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자의 서술 방식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

 

 

 

몇 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실 7월의 가장 핫한 책은 유럽문화사 1-5권일텐데.. 이 다섯 권이 신간평가단 책으로 선정될리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새롭게 번역된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도 눈여겨볼만한 책이지요. 아무래도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책이니.. 그리고 이렇게 네 글이 묶인 것은 확인을 못했으니깐.. 하지만 향연 부분의 번역 부분은 몇 문장 소리내어 읽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왠지 모르게 어색하네요,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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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08-06 18:39   좋아요 0 | URL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1권 겹치네요 ㅎㅎㅎ이 책 참 독특할 것 같죠 ^^ 선정되었으면 좋겠어요 ^^ ㅎㅎㅎ

가연 2012-08-09 22:10   좋아요 0 | URL
ㅎㅎ 독특할 것 같긴 한데 ㅎㅎ 선정권에서는 쫌..ㅎㅎ 아무래도 다른 책들이 워낙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ㅋㅋ
 

 

 

 

  내가 읽는 책들을 스스로 살펴보면, 별다른 기준이 없고 그리 계획적이지 못하다. 이런 막무가내식 지식의 수집은 그저 내가 무언가 알기를 원한다, 라는 그런 내면의 욕구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 분야에 대한 깊이는 들쑥날쑥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점이 있다보니 A에 관한 말을 할때 A에 대한 말을 하다가 B로 화제를 연관시키는, 일종의 돌려막기식 이야기를 가끔 하게 된다. 사실 상대방이 A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A에 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쪽이 옳을 수도 있을 텐데, 아무래도 나는 A의 어느 특성과 유사한 B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서는 못배기게 된다. 이건 좋은 점일 수도 있지만 별다른 기준이나 이념이 없다는 약점을 가질 수 밖고, 내가 독서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뚜렷하게 전하기 힘든 결과를 낳게 된다. 아니,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긴 있는가? 라는 의문도 낳게 될 것이다. 최근에 읽은 리영희 선생의 독서 편력에 관한 글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념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쌓더라도 일종의 '지식의 상인' 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지난 번 글에서 별다른 이념이 없다고 말한 나로서는 그야말로 정곡이 찔린 기분이지만, 솔직한 말을 하자면, 지식의 상인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그저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끄적거리는 거라면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식의 상인역할을 한 번 해보고자 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저자는 먹기 위하여 이탈리아를 가고, 기도하기 위하여 인도를 찾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사랑하기 위해서 인도네시아를 갔었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이탈리아편이 가장 좋았고, 그 다음부터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읽기가 힘들었다. 저자가 인도를 기도하기 위해서 찾아갔는데, 그러고보면 참 요즘 인도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라는 말에서 말하듯 일종의 영적편의점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녀도 사실 그런 느낌을 조금은 받았는지, 기도하기 위하여 찾아간 인도에서 별다른 깨달음은 얻지 못한 모습을 글에서 보여주었다. 어떤 인도 사람들이 요기, 혹은 스승이랍시고 아쉬람을 짓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이끄는 모습을 가끔씩 다큐멘터리에서 보는데, 그럴때마다 나로서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정말 갠지스강이 성수라서 그 물을 마시면 모든 일이 다 잘될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이는 일종의 강박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짓는 쓴웃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저런 의구심이지만 다른 하나는 처연한 감정에서 드는 쓴웃음이다. 강박증은 이렇게 정의된다. 분명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증세다. 설령 그들 중 일부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잘못되고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서 서양문명에 대한 염증으로 인한 동양문명의 대두이다. 서양문명은 항상 물질주의이고 동양문명은 항상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문명인가? 인도는 정녕 그 정신세계 문명의 중심에 있는 곳인가?

 

옆의 이미지가 없는 책은 저 인도 구루 중 가장 유명한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 배꼽이다. 지금은 품절되었지만 괜찮은 책이다. 오쇼 라즈니쉬가 자신이 주장하는 것 처럼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인가, 하는 것에는 사실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로서도 사실 그가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정말 깨달음인건지 고개를 갸웃거릴수 밖에 없다. 그는 말한다, 깨달음은 말로 전해질 수 없는 것이며 (여기에는 나도 동의한다. 불교에서 염화미소, 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승을 배반하지 말고 믿고 따르라고.  이런 깨달음에 관한 문제는 뭐라고 판단하기 어려우니 그의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닌 것 같다. 꽤 옛날에 나온 책이지만 이런 책도 있다. 아래의 책도 옛날에 나와서 이미지가 보이지 않지만, 제목을 '내가 사랑한 책들' 이라고 한다. 오쇼의 글쓰기를 보자면 하나 특징적이 것이 있는데, 정말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의 책은 지루하지 않다. 물론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자기 자랑은 (그가 진실로 깨달은 자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으며, (그가 깨닫지 못한 자라도) 치기겠거니, 하고 그냥 흘려볼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은 니체의 '자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부터 시작하여 붓다의 '법구경', 성경의 '산상수훈' 등과 같이 잘 알려진 책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전혀 이름을 듣지 못한 책들, 책이라고 불리기 힘든 노래, 항간을 떠도는 시구들까지 모두 아우르면서 독자들에게 각각 대화를 건다. 그런데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서 호의적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이 책에서 다른 책들을 설명하는 방식은 정말 그 책의 제목, 그리고 앞 몇장 읽어보고 말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이 책에 실린 목록들 중에는 논리철학논고나, 존재와 무 등이 있는데, 오쇼 라즈니쉬는 자신의 설명의 대부분을 어렵다, 라는 말로만 되풀이해서 끝을 낸다. 그리고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저자의 인물평, 자신의 그에 대한 감정 정도로만 가득 채우고 있다. 물론 제목이 내가 사랑한 책들, 이니 소개를 어떻게 하든 그것은 자신의 자유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쇼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그가 소개하는 책의 다양함은 접어두더라도, 적어도 그가 자신있어하는 (문맥에서 자신감이 드러난다.) 니체의 책들이나 칼릴 지브란의 저서를 소개할 때에는 그는 사자가 된다. 사자는 백수의 왕이지만, 동시에 왕이기에 가질 수 있는 오만함도 있다. 그렇기에 그는 그들을 '깨닫지 못한 자', '한 발만 더 내딛으면 될 것을' 와 같은 말을 하면서 안타까워한다. 오만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을 볼때 우리는 그들에게서 강력한 에너지를 느낀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아, 이 모습은 진정 사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이다, 라고. 이 책 문맥 곳곳에서 오쇼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과 오만함은 사람들을 이성적인 영역에서 비이성적인 영역으로 이끌어간다. 그의 가르침을 받을때에는 몰랐던 것들을, 나중에 벗어나고서야 깨닫게 된다. 마치 꿈에서 깬 것 처럼 말이다. 그의 제자였다고 주장하며, 누구보다도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쓴 책이 있는데, 그 제목은 '타락한 신' 이다. 이 책도 지금은 절판이고, 매우 옛날에 나온 책이지만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어떤 사람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의 공과 과를 모두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는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모두 겪어봄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무엇이 그의 공이고, 무엇이 그의 과인가, 그리고 때로는 공과 과가 서로 뒤바뀌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의 책의 저자인 휴 밀른은 본인이 주장하기로 접골의, 그러니깐 카이로프락틱을 주로 했던 정골의였다. 미국에서는 대체의학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제도가 제대로 확립이 안되어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이로 값이 싸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체의학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정골의는 우리나라의 추나요법이나 카이로프락틱 요법사와 그 위상이 다르다. 그런 휴 밀른이 오쇼의 제자로 오랜 기간을 보내며, 그의 모습을 끝까지 들여다본 후에 쓴 책이 바로 이 타락한 신이다. 휴 밀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명상에 잠긴 후 가르침을 주는 것은 질소가스의 최면효과와 마약에 따른 것이고, 그는 섹스 교주, 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진 난잡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프리 섹스 때문에 성병이 도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하며 자신의 신도들은 굶어죽고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지만 자신은 기필코 롤스로이스 100대를 채워야 한다며 아집을 부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리 누군가를 잘 믿는 성격은 아니다. 그렇기에 종교든 신비학적인 전통이든, 앞서도 말했지만 지식적인 측면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접해보았지만 빠져본 적은 없다. 도리어 이렇게 생각한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믿어라고 하는 사람만큼이나 조심해야 할 사람은 없다, 라고. 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오쇼의 책들을 몇 권 본다면 그의 책들은 그가 다른 책들을 비판한 것 처럼 말재주를 부려서 동일한 내용을 되풀이하고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말끝을 흐리게 되는 것은.. 오쇼의 책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가 이렇게 오쇼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에 서 있다는 것을 별개로 하더라도 저 휴 밀른, 의 타락한 신, 에 나오는 일화들을 고스란히 믿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설령 믿는다고 할지라도 여러 신비학적인 전통에 있어서 음과 양의 결합은 제의서 몇 번이고 반복되어 온 것이고.. 오쇼가 (이렇게 주장할 리 없지만) 화간도 죄가 되는가? 라고 반문하고, 오쇼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나는 오쇼를 통해서 깨달음에 가까이 갔다, 라고 주장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오쇼는 스스로를 광인이고, 세상의 법칙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볼 때 세상의 법칙이나 허식에서 벗어나서 보아야 진정으로 보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의 믿음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한 그의 주장에는 크게 논리적인 문제는 없다. 그리고 상대방의 믿음이 문제가 있다, 라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지적할 수 있을까?

 

오쇼가 어떤 신비학적인 전통을 따르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 사상계에 발을 딛었다면, 그와는 달리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일종의 전통을 따랐다고도 볼 수 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원래 몸담고 있었던 곳은 신지학 협회, 라는 곳이다. 그런데 신지학 협회가 생긴 연원은 사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미국의 헨리 스틸올코트와 러시아의 심령술사였던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뉴욕에서 만나 신지학 협회를 창설하였다. 신지학은 좁게 보면 이들이 창설한 이 협회의 이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넓게 본다면 플라톤의 사상적 체계 아래에 플로티누스가 일자의 개념을 도입하고, 중세의 파라켈수스와 그 외의 신비주의자들에 의하여 이어온 하나의 개념이다. 그 이름대로 신지학은 신을 우리가 알 수 있다, 라는 명제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영적 체험을 특히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인간은 정상적으로는 신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넘어선 초인지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때 우리는 신비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초인지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흔히 인도에서 요기들이 괴로운 수행을 하는 것도 그 방법의 일부이다. 이런 류의 수행은 그 근거를 인도 전통의 리그 베다 등의 경전과 그 신비학적인 요소들에 두고 있으며, 그들은 이를 통하여 우리가 신비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이런 신비학자들은 경전에 정상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방법 외에 숨겨진 비의가 있다고 믿는다. 그 예로 성경만 해도 수많은 해석이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수비학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666이 악마의 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물론 666은 유대교의 카발라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그 비의를 해석하기 위하여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전통이 집적되고, 당시 사회상 새로운 이념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서 발족된 협회가 바로 저 신지학 협회다.

 

신지학 협회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애니 베전트이다. 사실 신지학협회가 제대로 굴러가게 된 것에는 그녀의 영향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결국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신지학협회는 거의 힘을 잃었다.) 미국에서 신지학협회가 발족했지만, 곧 그들은 인도로 옮기게 되고, 간신히 국제운동을 이끌어가던 올코트가 수명을 다하고 수장자리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는 베전트에게 이어진다. 베전트는 사회개혁가로도 유명한데, 특히 인도에서 많은 개혁과 독립 운동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지학자로서의 그녀는 사회개혁가 이상으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다. 많은 해설서를 썼고, 많은 강연을 하였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발견해내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그녀가 주목하기 전에는 아무런 인지도가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 의해서 곧 올 세계의 스승의 매개자로 주목받은 그, 크리슈나무르티는 그 이후에 수많은 저서를 남기며 사상가로서 발돋움하였다. 왼쪽의 저서가 그의 저서 중 하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 책은 명상 서적으로서도 상당히 고전으로 꼽히지만, 단순히 철학서로 생각하고 읽어도 괜찮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의 책에는 특별히 자신을  내세우는 모습은 그리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안을 문맥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오른쪽의 저서는 두려움에 대하여, 라는 저서이다. 사는 것은 괴롭고 두렵고 불안하다. 우리 인간은 나면서부터 불안하고 힘든 존재이다. 그들에게 두려움이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그는, 결과적으로 두려움이라는 것은 시간과 생각을 근원에 두고 있을 때 생기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사실 어떻게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긴 시간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 인간의 의식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이라도 진리를 담고 있는 것에는 옛 잠언들과 다르지 않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양자물리학자도 있었다. 양자 포텐셜을 정식화한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이 바로 그이다. 그러나 사실 데이비드 봄은 양자물리학계에서는 일종의 이단으로 불린다. 양자물리학에서의 코펜하겐 해석이나 다세계 해석 외에 새로운 해석인 양자 포텐셜을 정식화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내재적 홀로그램이라는 개념도 만들어내었다. 단순히 주류가 아닌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단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이단으로 불리는 것은 다른데 있지 않다. 그의 개념들이 실제로 좀 특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은 종교나 신지학에 접목하기 매우 좋게 설계되어 있다. 그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대담을 보면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

 

물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이런 저런 추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친구(이자 오랫동안 사업을 뒷받침한 사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출판된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강박적이고 사치가 심해졌다고 하던가. 그 친구의 딸이 그에 대하여 책을 출판하였다. 제목이 그늘 속의 삶들, 이라는데, 번역도 되지 않은 듯 하고, 읽어본 적이 없어서 더 부연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또한 사생활적인 측면에서 깨끗하지는 못했다, 라는 점은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의 책들도 앞서 오쇼의 책들을 이야기하면서 걸리는 부분, 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책들의 내용이 비슷비슷하다, 라는 이야기를 되풀이 하게 된다. 정치인들 투표하는 것도 아니건만, 사생활까지 깨끗한 인물은 없는 것인가? 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전에 글로 남겼다시피, 이정표를 들고 있는 사람이 목적지까지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기는 하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자신의 손으로 그를 길러낸 신지학협회를 해체한 때였다. 애니 베전트는 그가 세상의 스승의 매개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녀의 믿음과는 달리 진리에 이르는 것에 특정한 방법은 없다, 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를 따르던 협회를 해체시키고 만다. 사실 협회를 계속 유지했었다면 신지학협회가 현재에 이르러 이렇게 영향력이 줄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개인적으로도 강연을 다니고 책을 쓰는 것만큼이나 더 쉽게 자신의 가르침들을 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도리어 해체했기 때문에 그가 이만큼 유명해졌을 것이다, 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부연하자면 해체를 통해서 진정으로 깨달은 자, 의 면모를 보였기에 이렇게 책도 많이 알려지게 되고 강연도 많이 다니게 되었다, 라는 말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 만약 여기까지 생각하고 그런 해체를 결행했었다면 진실로 용의주도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런 주장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지금으로서는 그가 당시 해체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지만.. 분명 저 사람들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깨달음이라는 말 등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그 말이 다른 사람이 받은 감정과 느낌, 그리고 깨달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불교에서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를 줄줄이 읊는다고 해서, 대승과 소승, 그리고 금강승의 전통을 논한다고 해서 불교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 삼법인에서부터 십이연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언급한 것은 불교의 기본교리이자 정수이다.) 셈족 계열의 종교들이 어떻게 발달되었는가, 에 대해서 논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정작 크리스트교나 유대교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게 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나또한 내가 그런 것들을 알고 있다고 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지식으로) 알고 있다, 라는 말과 (진정으로) 알고 있다, 라는 말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남에게 말할 수 있을 때 진짜 아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깐 진짜 아는 것은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수학 문제 풀이에 해당되는 법이다. (그리고 내가 수학 문제와 논리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아는, 그 유명한 말인 '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 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 의 마지막 명제로 남겼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전하고자 한다면 우리로서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글쎄, 나도 모르겠다. 누구도 만족할만한 답을 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이 신비가들, 그리고 사상가들이다. 비의를 깨닫고자, 그리고 한단계 더 높은 정신 수준으로 올라서고자. 그 방법으로는 직접적으로 텔레파시라도 익히기 위해서 영적 체험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무의식을 그대로 책에 부딪힘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충격이 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쇼나 크리슈나무르티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p.s. 이건 여담인데, 왜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는)은 사람들은 그 깨달음을 나누려고 할까? 최근 읽고 있는 축의 시대, 에서는 사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많을 텐데, 그 중에서 대다수는 숲에 들어가 은거했을것이다, 라고 머리말에서 이야기한다. 좋은 것은 많이 나누어야지, 하는 심정일까? 하지만 그렇다면 종교들이 포교 또는 전도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신비가들이나 수행자들이 나를 본다면, 좋은 스승을 못만나서 그래, 제대로 믿지 못해서 그래 등의 말을 할테지만 (신비학적인 전통에서는 스승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나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p.s. 2 하나만 더, 무도가 부활해서 짱이고, 국카스텐과 김연우의 노래가 좋았다, 이번주 나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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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구입한 책들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값도 비싸고 천 페이지 정도가 되는 책들이다.

개인적으로 축의 시대는 이전부터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장바구니에 오래 담아둔 책이었는데, 요즘 이벤트 중이라 그나마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했다. 책 소개에도 나와있다시피 축의 시대, 라는 용어는 카를 야스퍼스가 먼저 쓴 개념이다. 이전에 읽었던 부채에 관련된 책에도 축의 시대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카를 야스퍼스의 축의 시대가 쓰인 책을 찾아서 원문을 읽어보고 싶으나..... 계속 우선순위가 밀리는 중이다. 몇 번이고 우선 순위가 밀린 책 중에는 생각에 관한 생각, 도 있다. 정말 구입하고 싶은데, 언제 구매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거의 다 읽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가지고 싶은 책이 있기 마련이다.)

 

저 히틀러 평전이 정말 비싼 책인데 원래하면 11만원에 해당하는 것을 반값에 구매했다. 솔직히 횡재한 기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 나는 이 책도 덜 읽었다.

 

 

 

 

 

 

 

 

 

 

 

 

 

 

 

 

히틀러가 좋아서 히틀러 관련 책들을 찾아 읽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 책이 있기 때문에 읽는 것 뿐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위의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은 균형잡힌 시각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절판상태이다. 이 책과 위의 이언 커쇼의 히틀러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아직 별로 들춰보지를 못해서 더 이야기할 것은 없지만, 이언 커쇼의 히틀러 책이 좀 더 문체가 딱딱한 분위기를 주는 것 같다. 그래도 그림 자료가 있는 것 같으니 맘에 든다. 평전이야 사실 객관적인 서술이 생명일지도 모르고 사실 히틀러를 다루는데 딱딱하게 쓰지 않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전시의 히틀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지만 나의 투쟁을 읽는 것도 괜찮다.

 

 

 

 

 

 

 

 

 

 

 

 

 

 

 

위에 같이 끄적여둔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는 2차 세계대전의 간략하게 개괄을 훑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다만 아무한테나 추천을 할 수는 없는게, 패러디가 너무 많다. 저자가 이글루스에서 활동하던 굽시니스트, 라는 닉을 쓰던 사람인데.. 현재 시사인에서도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패러디는 애니메이션 등을 많이 본 사람들만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패러디라서 처음 보는 사람은 이게 뭐냐, 라는 소리를 할 만도 하다. 내용에 대한 것은.. 내가  2차세계대전 전쟁사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해서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히틀러에 대한 섭렵이 끝나면 스탈린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위의 스탈린은 이번에 읽으려고 구입한 책이고.. 이 책도 마찬가지로 천 페이지에 달한다. 일전에 시공사에서 나온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생각보다 알차고 괜찮다고 여겨진다. 스탈린 왼쪽에 있는 책이다. 저 책 뒤에는 서간문이랄까, 보고서랄까 몇 몇 자료들도 함께 실려 있어서 당시의 생생한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스탈린이 모택동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였다던가? 히틀러에서 스탈린까지 줄을 그으면 그 사이에 절망이 얼마나 몸부림 칠 것인가.. 이 언저리에 살펴볼만한 역사적 사건이 스페인 내전인데,

 

 

 

 

 

 

 

 

 

 

 

 

 

 

 

 

 

스페인 내전은 진실로 별의 별 이념들이 뒤섞인 각축장이었다. 크게 국민파와 공화파의 전투로 알려져있지만 그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좌파와 파시스트, 지주계급, 왕정과 보수 등 평소라면 연립할 수 없는 그런 이념들이 함께 연대를 해서 상대를 부수려고 든다. 어쩌면 이념이라는 것이 정말 허울만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많은 지식인들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서 한 팔을 거든다고 했지만 실제로 도움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름에 손이 데어 후방으로 가거나 비행기타고 관광하듯이 내전에 참여하거나.. 헤밍웨이도 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이럴 때면 한가지 회의감이 든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서 정말 한 팔을 거들었는지, 그냥 특파원자격으로 구경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멀리서 지켜보고 사용하는 게 옳은 일일지, 아니면 그 경험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고유의 것이고 경험을 직접 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손을 대어서는 안될 것일지 모르는 일이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그의 소설은 읽을 만하다.

 

별다른 이념을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그야말로 논리의 정합성을 따져서 어떤 현상에 대해서 비판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일전에 우주로부터의 귀환, 혹은 뇌사나 탐사 저널리즘과 같은 책을 쓴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한 내용, '시맨틱스와 로직스에 의거하여' 비판한다는 말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나는 그만큼이나 엄밀하지는 않지만, 않기에 이런 것은 한편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저런 수많은 이념이 맞부딪치는 내전 한 가운데 서면 무력하게 바람에 휘날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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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17 16:0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가연님의 글이 좋다보니 자주 화제의 글에 오르게 되고, 그러다보니 읽는 사람이 좀 더 늘어나고, 그러다보니 가연님의 글이 올라오기만 하면 읽으려고 오시는 분들도 자연스레 많아지게 된 것 같은데요.

저는 며칠간 페이퍼를 안썼는데도 방문객이 일정하게 어느정도 들어온걸 알게되니, 아, 이사람들 그냥 가게하면 안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책임감(?)도 생겼었어요.

가연 2012-07-24 22:11   좋아요 0 | URL
남겨두니깐.. 계속 푸념같아서 그냥 지워버렸네요, 풋. 부끄럽네요.

이 페이퍼는 별로 맘에 안드는 게 제가 아직 덜 읽은 책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ㅎㅎ

히틀러랑 스탈린 책을 좀 더 읽고 이야기 해야겠어요, 하하.

saint236 2012-07-18 11:31   좋아요 0 | URL
전 저 히틀러 평전 1권을 누구 빌려 줬는데 아직도 돌려 받지 못했네요. 벌서 10년이 지났는데. 1권이 없어서 읽지도 못하고 그냥 10년째 2권 묵히는 중입니다. 1권을 구하려고 하는데 못구하고 있습니다.

가연 2012-07-19 07:27   좋아요 0 | URL
요아힘 페스트의 평전을 말씀하시는거죠? 아마 도서관에 있지 않을까요? 저는 종종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들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게다가 이 책은 좋은 책인 것 처럼 보이니 곧 재출판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