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알라딘 서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하여 쓰기 시작할 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이다, 라고. 이제 떠날 날이 다가온 것 같지만, 당장은 떠날 생각은 없다. 아니, 떠난다는 말도 우습다. 이번에 떠나게 되면 다시는 블로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현실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요즘은 무엇인가를 쓸 때 항상 아예 그만 둘 생각을 한 번은 해보고 쓰게 된다. 그렇게 쓰면 조금씩 더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어서 좀 웃긴다. 여하튼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다. 가늘게나마 길게 서재의 생명을 이어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떠나게 된다면, 떠날땐 웃으며 안녕. 정작 정말로 떠날때에는 이런 인사말따위를 쓸 리가 없을테니까.
예전에 어디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강아지가 있었다.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내가 다가가니까 꼬리를 흔들고 두 발로 일어서 마구 나를 껴안으려고 들었다. 물론 나한테만 그러는 것은 아니구.. 다가가는 모든 이들에게 혀로 핥으며 반가움들을 표시를 하는데 설령 그렇다고 하여도 너무 좋았다. 나는 그 강아지를 한참동안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강아지는 앞발로 내 옷을 할퀴고 더럽혀놓았지만, 그래도 그게 반가움의 표시이기에 가만히 안고만 있었다.
위대한 캣츠비, 를 그린 (개츠비가 아니다!) 강도하의 최근 신작인 아름다운 선, 을 보면 연애란 고양이를 개냥이로 길들이는 것이라 한다. 처음 그 웹툰의 그 대사를 보았을때는 오, 멋진 말인데? 였지만, 저렇게 강아지를 한참 동안 끌어안고 있으니 갑자기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아,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겠구나. 그 말은 너무 씁쓸했고, 한편으로는 달콤한 바람처럼 내 폐 깊숙히 들어왔다. 그래, 내가 딱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좋아해버리고 난 뒤, 뒤에 누군가 더 좋아하게 될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하지만 오지 않은 가능성에 거는 것 보다는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을 보는게 옳지 않을까?
가끔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돌아버린거 아니냐, 고 우스개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가끔은 나도 그 말에 긍정을 표한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아무리 읽어도 허망함이 채워지지를 않는다. 뭐, 사실 책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런 연애감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풋. 책을 읽는다고 내 성향이나 고집, 그리고 주장이 쉽게 바뀌지도 않고 도리어 합리화할 정교한 도구만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람은 자기 성향대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절망감들이 나를 덮친다.
정말 많은 것들이 허망하다.
유럽사 산책.
이 책 정말 좋은 책이다. 내가 이 책 때문에 겨우 서재에 들어와 글을 남긴다. 역사서와 에세이 사이에 교묘한 줄타기를 한 책이다. 역사서만큼 엄밀하지는 않지만 역사서보다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원래 좋은 책일수록 더 쓸말이 없다. 한 번 읽어보시라.
에쎄.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은 절반정도를 읽었는데, 원래 몽테뉴가 좀 횡설수설하는걸까? 한 단락 안에 말하려 하는 것이 너무 많기도 하고, 인용문들도 너무 많다. 그래서 잘 읽히지 않더라. 물론 번역의 문제가 있다고 말들을 하던데.. 그래서 영어판을 구해서 읽어봤는데 영어판은 더욱더 읽히지 않았다. 인용문을 라틴어로 영어 주석이 없이 그대로 적어주는 센스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몇 단어밖에는 모르겠더라. 그냥 새로 누군가 번역을 해주길 기다려야 될지도.
총균쇠.
한참 인기있을때에는 읽지 않았었지만 이제 와서 읽어보았다. 책 내용과 평가는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거랑 같이 읽어보시라. 눈 앞에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이제 글을 끄적거리고 책에 관하여 이야기하는게 점점 힘들다.. 책을 혼자 읽는 것도 좀 힘들다. 이제 슬슬 독서 카페나 독서 모임에 한 번 참여를 해볼까, 혹은 아예 만들어볼까 고민중인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