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을 영웅에 대한 동경심으로 이끌었던 작품이 있다면 바로 삼국지이리라. 이 삼국지에는 재미있는 말들이 전해져 오는데, 각각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 혹은 세 번 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라, 등의 어구들이다. 그러니까 세 번 넘게 읽으면 너무 꾀가 많아져서 괜히 속아넘어 갈 수 있을터이니 상종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세 번 정도는 읽어야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을터이니 세 번은 넘게 읽어라, 라고도 한다. 둘 중 어떤 말이 원본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 번 넘게 읽은 사람과 상종하지 말라, 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요즘 삼국지를 세 번 넘게 읽은 사람은 정말 많을 것 같으니. 어렸을때부터 삼국지 만화를 읽고,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를 읽고.. 이 판본 저 판본 읽다보면 삼국지를 세 번 넘게 읽은 사람들은 정말 많을 것이다. 특히나 근처 도서관에 가서 삼국지 책을 한 번 빌려보라. 표지가 닳고 닳아 너덜너덜한 상태인 책이 대부분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 번 넘게 읽었을텐데도 세상에는 꾀가 없이 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아니, 꾀가 있더라도 정말 억세게 강한 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여간해서는 큰 그림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개천에서 용나는 그런 세상은 멀리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런 사회라면 꾀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간해서는' 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 번의 가능성 중 하나, 어느 한 번은 꾀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렸을 때 삼국지를 접한다면 주로 만화로 삼국지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만화도 여러가지 판본이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판본이 아마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아래의 60권 삼국지이리라. 어릴 때 많은 신문 광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덤으로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던 채치중의 만화 중국 고전도 흥미로웠지만 말이다. 이 판본 외에는 일지매 등등을 그렸던 고우영의 삼국지도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작품의 손을 더 들어주고 싶다. 물론 이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작품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추억이 덧붙여져 더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몇 가지 기억나는 부분을 들자면, 미츠테루의 작품은 대사나 배경 설명이 만화치고는 제법 긴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로 그렸으니 내용이 부실할거야, 라는 염려는 대부분의 경우 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나로선 그런 부분을 좋아하지만 가볍게 읽기는 적절하지는 않다, 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작가가 그다지 관심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큰 사건인데도 단지 몇 장 언급하고 지나간다거나, 하는 모습도 있기에 이 책만 읽고 난 삼국지를 다 읽었다, 라고 여기기는 힘드리라. 고우영 삼국지의 경우에는 상당히 익살이 섞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익살 뿐만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재해석이 상당히 자주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재해석이 지나친 재해석처럼 여겨지지 않고대체로 뛰어난 독자적 시각을 보여주던 것이 바로 이 고우영 삼국지의 장점이다. 다만 작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고증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확실히 어떤 부분이 더 고증을 잘 따랐나 판단한 여력이 없지만, 고증이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그 부분은 당시 시대상 적어도 인터넷이 지금만큼이나 활성화 되지는 않았을터이니 전문적 지식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테니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렇게 만화로 삼국지를 접하고 나면 그 다음 순서는 삼국지연의, 나관중 저, 를 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삼국지연의는 그 번역과 평역이 많아서 무엇을 읽어야 할 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으며, 대개 다른 사람이 자주 보는 책을 보게 된다.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책은 이문열 평역이리라. 이문열 평역에 대한 비판은 제법 잘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 굳이 많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 부분만 언급하자면 먼저 이문열 판은 내용에 오류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문체가 상당히 현대적이다. 문체가 현대적이라는 부분은 도리어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그 현대적인 부분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삼국지연의 자체가 고전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문체 자체가 좀 옛스러워도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가독성을 더 높게 평가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문열 작가 본인의 개입이 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야기를 잘 읽어나가는데 갑자기 작가가 끼어들어서 흐름을 끊어버린다면 좀 이야기의 맥이 끊기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주관적 상황 설명을 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계속 서술해나가는 편이 일관성 측면에서 나을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는 가장 무난한 삼국지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문열 평역 보다 더 쉽게 읽었던 책은 왼쪽의 삼국지, 그러니까 김홍신이 평역한 삼국지였다. 이전에 1997년에 나왔던 판본을 읽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판본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삼국지는 이문열의 판본에 비하여 작가의 개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몰입하기가 훨씬 쉬웠던 것 같다. 물론 이 삼국지 판본도 마찬가지로 고증의 문제나 문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왼쪽의 책은 개정판인 것 같은데 기존 10권을 5권으로 줄였다. 위의 이문열 책이나 김홍신 책 중 어떤 책을 고르냐, 와 같은 문제는 사실 취향 문제이리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책은 삼국지연의, 라는 큰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삼국지연의 번역이 있다. 그것은 장정일 삼국지이다. 장정일 삼국지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주요 부분만 잘라서 읽어보았었다. 도원 결의를 하는 부분, 황건적의 난과 동탁의 전횡, 공명이 오나라에 가서 설전을 벌이는 부분 등 그런 부분을 읽었을 때 느낀 솔직한 심정은 뭔가 너무 다르다, 라는 것이었다. 기존에 내가 알던 삼국지와는 너무 다르달까, 그래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내용이랄까. 아예 삼국지라는 이름만 가져오고 완전히 본인이 새롭게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상당히 주관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 부분은 매우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불호' 다. 개인적으로는 추천하지 않는 책이다. 중화사상을 극복하겠다, 라고 야심차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도리어 그 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힌게 아닐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물론 이 주관적이고 주체적인 부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오나라에서의 설전 부분은 상당한 명장면이었다. 다른 삼국지 평역에서도 멋있게 나오지만 이 책에서는 더욱 제갈량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쯤 되면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섞이지 않고 온전한 삼국지연의를 즐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번역에만 몰두한 책들도 있다. 범우사의 원본 삼국지, 그리고 김구용 삼국지이다. 범우사의 책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법 읽을만한 책이다. 김구용 판본이나 범우사 황병국 판본이나 둘 다 사실 문체 자체는 위에 소개하였던 책들에 비하면 좀 딱딱한 편이다. 아무래도 한학자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다 보니 소설적 기법이나 윤색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은 그야말로 꼼꼼한 번역들이다. 번역의 옆에 작가 자신의 생각을 끼워넣거나 (평역), 완전히 재창조하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그런 것들은 원본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원본 없이 그런 평역이나 재창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앞서 말했던 평역들에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수 없겠지만, (이미 작가에 의하여 판단이 내려진 책들이기에) 이런 꼼꼼한 번역을 기반으로 하는 삼국지에는 도리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자체도 사실은 소설이다. 제갈량은 실제로 무슨 기문둔갑을 펼쳤던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비슷한 제의를 했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과연 실제 역사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실은 정사가 있다. 정사 삼국지, 라는 이름인데 진수가 쓴 역사서이다. 먼저 저자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제갈량에게 목이 베인 진식의 아들이라는 설이 많은데, 사실 그 설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뒷받침하는 근거가 좀 부족하기 때문이다. 촉서, 위서, 오서, 이렇게 나누어져서 번역되어 있는데, 삼국지연의가 역사와 어떤 관계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 번 들춰볼만도 할 것이다. 다만 문제점이 있는데, 이 책은 소설책이 아니다. 역사책이다. 그리고 그 점 만큼 큰 문제점이 없다. 읽기가 좀 힘들다. 나 또한 위서 부분만 조금 들춰보다가 접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는다면 삼국지연의서 그려진 인물들에게서 베일을 한 꺼풀 벗겨낸 모습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인다면 넷에서 정보를 모아보았을때 대부분의 번역서가 그렇듯 이 책도 번역에 대한 논란에서는 비껴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한문 독해를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논란에 끼어들수도 없고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도 없으며, 다만 여러 한학 권위자들의 정사 삼국지에 대한 번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우리 나라에서 삼국지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누군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유비가 가장 많은 비유를 차지한다고 한다. 중국에서 같은 질문을 하면 관우 또는 조조를 꼽는 경우가 많고, 일본의 경우 제갈량을 꼽는다고 한다. 물론 꽤 옛날 이야기일테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저런 질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삼국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강한 캐릭터성을 보여 주는 부분이리라. 조조나 유비, 제갈량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들이고, 이들 인물에 대하여 많은 책들이 나와있다. 왼쪽의 책들은 조조에 대한 책들인데, 오른쪽의 조조 평전이 더 잘 알려진 책으로 보인다. 내가 언급하고자 하는 책은 제일 왼쪽의 용인술의 대왕, 조조다. 이는 상당히 저자가 공을 들였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책인데, 몇 부분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이 책을 넘길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마 당혹감이리라. 한자가 너무 많이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눈에 잘 들어오지를 않아 계속 읽어나가기 힘들다, 하지만 어린시절에서부터 점차 나이가 들 때까지 구성되어있기에 꾸준히 읽다보면 또 읽혀질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별도의 평전 부분을 마련하여 조조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조금 조조의 변명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없는 것이, 조조가 저지른 비판 받아 마땅할 행위를 역사적 맥락을 잘 고려를 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책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여담인데 종이질이 너무 좋다.

 

사실 정말 내가 많이 찾아 읽었던 책들은 제갈량에 관련된 책들인데, 생각보다 제갈량에 관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몇 몇 기억에 남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왼쪽에 보이는 책들은 사실 같은 책들이다. 먼저 공명의 선택, 이라는 책이 먼저 출간되었었고, 그 이후 제갈공명,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져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문체가 소설에 더 가까워 읽기가 쉽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이 제법 잘 결합되어 있다. 다만 제갈공명의 일대기를 그대로 따라가다보니 다른 주위의 이야기는 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다른 삼국지연의 등을 읽음으로써 보충될 것이다. 제갈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고 읽어볼 만 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갈량도 병법책이 있다. 제갈량의 병법은 병법 24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대략적인 목차정도만 남기고 지금은 소실되었다. 만약에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온다면 매우 뛰어난 책일테지만,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저 병법 24편은 사실 제갈량이 썼되 제갈량이 펴내지는 않았다. 그럼 누가 펴냈는가? 그것은 위의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펴낸 것이다. 전하던 제갈량의 글들을 한데 묶어 병법으로 펴낸 것이다. 만약 그 책이 지금껏 내려왔다면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수의 생각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진수는 제갈량의 병법 24편을 두고 번잡하다고 일렀다. 사실 어쩌면 번잡할 수 밖에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진수가 묶은 것은 단순히 병사를 다루는 일 뿐만 아니라 장수 등 거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병법 24편을 두고 제갈량집, 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어? 그런데 방금 난 병법 24편은 소실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병법 24편의 다른 이름이 제갈량집, 이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바로 위의 책의 제목이 제갈량집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은 저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편의십육책, 이랑 장원, 를 엮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편의십육책, 장원, 은 제갈량집, 목차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위서 논란이 상당히 컸던 책들이다. 다만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온 문헌 중 제갈량이 썼다고 여겨진 책들이 이 정도 책들 밖에 없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저렇게 제갈량집, 이라고 묶은 것이 아닌가, 한다.  

 

삼국지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삼국지 시리즈, 라고 불리는 게임시리즈인데, 코에이에서 만든 이 게임은 아직도 많은 이의 향수를 자극하는 게임이다. 나는 삼국지 5까지 해봤는데 개인적으로 게임성은 삼국지 3이 가장 뛰어난 것 같다. 랜덤으로 장수를 생성시켜서 자신의 나라를 만들고 이윽고 천하통일을 한다. 삼국지연의를 읽으며 한 번쯤 저 시대에서 활동하여서 이름을 날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게임에 빠져들었으리라. 그리고 삼국지 5에 이르면 다양한 특기가 생겨서 훨씬 게임을 즐겁게 즐길 수 있다. 수행을 시켜서 장수의 능력치를 향상시킬수 있고 좌자, 남화노선, 사마휘 등의 신선을 등용시켜서 전투를 할 수 있다. 이들 신선은 환술과 도술을 잘 쓰기에 전장에 큰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보물로 능력치를 매우 높일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삼국지 영걸전 시리즈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 게임 중 하나다. 영걸전, 공명전, 조조전 이렇게 영걸전 시리즈는 삼국지 시리즈와 나란히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다. 공명전과 조조전도 재미있지만 영걸전 시리즈의 그 극악같은 난이도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적과 아군의 전력차가 이렇게 큰 게임은 정말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도 이정도로 차이가 큰 게임은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유비의 레벨을 99만드는 비법을 이용하여서 게임을 하였던 경우가 매우 많았다. (심지어 레벨 99를 만들어놓았는데도 게임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능력치와 레벨을 조정하여 여러명의 레벨을 올려둔다면 게임이 훨씬 쉬워지지만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성 안에서 백성들에게 말을 걸면서 마치 본인이 그 시대에 잠깐 머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영걸전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유비 중심의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유비가 실제 역사에서는 이릉 전투에서 패배하고는 백제성으로 물러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지만, 이 게임에서는 잘만 한다면 유비와 관우 모두를 살려서 대체 역사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를 다 따라가 조비를 궁지로 몰았을 때 나타나는 반전은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대중문화에는 게임만 있는게 아니다. 만화도 빠질 수 없다. 용랑전과 같은 삼국지의 배경을 빌려온 만화도 있겠지만, 삼국지 세계관에서 나름 창작해서 그려낸 만화들도 있다. 가장 먼저 언급한 고우영이나 미츠테루 삼국지가 삼국지연의 얼개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여기서 언급하는 만화들은 그야말로 극화체로 작가의 세계를 아낌없이 나타내는 만화들이다. 그 만화들이라면 바로 왼쪽의 만화들, 화봉요원과 창천항로이다. 창천항로는 조조 중심 만화인데, 보통 삼국지에서 인물간 관계를 조조와 유비를 대척점에 놓는 경우가 많아서, 조조를 띄운 만큼 유비도 높게 평가를 받게 된다. 창천항로의 조조가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된다면, 유비 또한 그 조조에게 끝까지 맞서는 유일한 맞수로 그려진다. 선이 강한 그림체와 멋진 대사들은 남자라면 한 번쯤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 것이다. 다만 제갈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창천항로를 보면서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창천항로에서 그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이렇게 그린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화봉요원을 더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화봉요원은 조운과 사마의의 이야기인데, 여기서 나오는 제갈량은 신기묘묘한 존재로 저 만화 세계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고보니 화봉요원과 창천항로 모두 유비와 조조 둘을 대척점에 놓고 전체적 세계관을 꾸려나간다.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맞수로 말이다.

 

이런 라이벌 형상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드라마, 84부작 삼국지도 그렇지만, 2, 3년 전에 새로 방영된 삼국, 에서 그 빛을 발한다. 비록 이 알라딘에서는 아직 상품으로 올라와 있지 않지만 말이다. 조조와 유비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삼국, 에서는 제갈량은 매우 젊고 미청년으로 등장하는데, 연의에서처럼 책략을 펼치기는 하지만 쉽게 다른 장수들, 관우나 장비를 휘어잡지는 못한다. 특히나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유비가 오나라와 결혼동맹을 맺었을 때 관우와 장비가 매일 제갈량에게 찾아와서 언제 구할거냐고 난동을 피운다. 그러던 어느날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의 책상을 뒤집어 엎어 버리며 화를 벌컥 내고, 제갈량은 망연자실하며 한 구석에 서 있다가 뒤집힌 책상을 바로 놓으려는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 '다시 바로 해봤자 소용이 없다, 내일 또 어차피 저 놈들이 와서 다시 뒤집을테니 뭐하러 바로 하냐' 라고. 그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84부작 삼국지에서의 제갈량과는 정말 비교가 많이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저 DVD세트는 84부작 삼국지인데, 이 삼국지에서의 제갈량은 그야말로 능구렁이처럼 나타난다는 것을 한 번 이라도 보았던 사람은 잘 알리라. 또 84부작 삼국지에 비하여 새로 방영된 삼국, 에서의 유비는 그야말로 '간지폭풍에 카리스마 작살' 의 인물로 그려지며, 조조는 '여유넘치고 자신감이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앞서 만화에서 언급하였던 것 처럼 이 둘 만이 서로를 진정한 맞수로 나타내지는 것이다.

 

삼국지를 영화로, 라는 생각도 이쯤되면 나왔을 법하다. 하지만 원작이 매우 길다보니 전체를 영화화 할 수는 없고, 군데 군데를 잘라서 영화를 만들었다. 적벽대전 부분을 영상화한 왼쪽의 영화, 바로 아래의 오관참장을 그려낸 눈이 즐거운 영화인 명장 관우. 적벽대전에 대해서는 사실 길게 할 말이 없다. 주유역의 양조위가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 같다. 제갈량역을 금성무가 맡은 것으로 아는데, 둘 다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캐릭터는 잘 어울렸지만 스토리는 좀 따라가기가 힘들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명장 관우 또한 스토리보다도 캐릭터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니, 어차피 스토리는 삼국지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다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로서는 관우와 유비의 부인과의 로맨스(가 영화에 나온다)는 정말 전혀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것은 다 집어치우더라도 명장 관우의 관우 역할을 맡은 사람은 견자단이다. 알다시피 엽문, 에서 엽문 역할을 맡아 멋진 무술 실력을 보여준 사람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에서 그 무술 실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명장 관우, 에서는 무술실력만이 캐릭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회유하는 조조의 모습에서 우리는 덕장의 모습마저도 발견해낼 수 있다. 덕장 뿐이라고? 덕장 뿐이라면 새롭게 발굴되는 조조의 평이한 캐릭터 하나로 남을 뿐 새로울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의, 를 들먹이면서 양과 늑대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스스로를 양이라고 한 적 없다' 라고 말하는 조조를 보며 전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유비는 패한다. 앞서 언급한 게임에서나 유비를 살려서 한 황실을 잇게 할 수 있을 뿐, 실제 역사에서는 촉나라는 멸망해버린다. 물론 뒤따라 위나라, 오나라 모두 망하고 결국 사마씨가 세운 나라로 통일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유비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해왔던, 특히나 삼국지연의 때문에, 사람들로서는 늘상 이 결말이 아쉬울 것이다. 나 또한 이 결말을 항상 아쉬워 했던 것 같다. 결말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문인들은 펜을 든다. 후대에 망상가득에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왼쪽의 반삼국지는 그야말로 정사에 반하는 삼국지이다. 이는 서서가 조조의 계책을 사마휘의 도움을 받아 벗어난 뒤 유비 밑에 그대로 남는 이야기에서부터 진행이 된다. 그야말로 모든 촉나라 팬들의 염원을 담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유비 밑에는 제갈량, 방통, 서서 등 이렇게 수많은 인재가 모이고, 제갈량의 힘에 사마의는 호로곡에서 그대로 폭샇고 만다. 연의에서 모사재천 성사재인을 보면서 눈물흘렸던 사람들로서는 속이 다 후련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환상은 환상일 뿐, 잠시 이 반삼국지를 보면서 낄낄대더라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꼭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정말 어렸을 때 이 책을 접했고, 어린 마음에 내가 알던 삼국지가 잘못된건가, 하는 생각마저 가졌었다. 하지만 이 책 대로라면 촉이 몽땅 통일해놓고 사마염에게 그대로 줘야 되는데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찌 있었겠는가.

 

 

여기까지가 삼국지에 관련된 책들과 이야기들이다. 사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황석영 삼국지가 생각외로 인기가 좋다고 알고 있지만, 조금도 읽어보지 못했기에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유비나 관우에 관련된 인물론들도 접해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접해왔고, 나 또한 많이 접해왔지만 여전히 남은 부분이 많다. 앞서도 언급했었지만 정사 삼국지 번역은 저 번역본 하나 뿐이다. 학계에서의 연구 또한 여전히 개운치 않은 부분이 많다.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서 읽어나가기 쉽지 않은 시대가 바로 이 시대들이다. 그런데 이는 단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완전히 다 알게 된 것 보다는 앞으로 계속 알아갈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 좀 더 나아간다면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삼국지와 그 인물들은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몇 번이고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게임 등으로 재창작되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p. s. 아마 근 시일 내에 에반게리온을 보러 갈 것 같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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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4-30 02:09   좋아요 0 | URL
저, 삼국지 세번은 읽은 것 같아요 여러 사람 것으로... 그런데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첫번째 세 사람이 만나는 것은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장정일 삼국지는 작가가 새로 쓴 게 맞을 겁니다, 황석영 삼국지는 밑에 쓰셨군요 저는 읽었습니다 다른 것도 하나 읽은 것 같기도 한데, 작가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읽은 이문열 삼국지도 봤습니다 이렇게 쓰니 네번이네요 그런데 정말 네번을 읽은 것인지... 다 도서관에서 빌려봤습니다

일본에서는 삼국지로 정말 많은 만화를 만들었죠 원작하고는 아주 다른 것도 많고, 건담이 나오는 삼국지도 있었습니다 만화를 본 건 아니지만...


희선

가연 2013-04-30 22:25   좋아요 0 | URL
오우.. 그렇다면 희선님과는 이제 대화를... 풋, 저는 항상 저런 말들 보면서 궁금했던게, 그럼 삼국지 세번 읽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 대화를 안해야되나? 아니면 서로 가까이해야되는지.. 이런 쓸데없는걸로 고민을 했었답니다, 쿡. 비록 넷상이지만 서로 대화를 많이 하도록 합시다, 풋.

맞아요, 완전 새로 쓴 책이더군요. 황석영 삼국지는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한 번 읽어보고는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네요. 근데 건담이 나오는 만화가 있어요?? 한 번 찾아봐야겠다.

희선 2013-05-01 23:27   좋아요 0 | URL
삼국지를 여러번 읽었다 해도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꾀를 부릴 수 없습니다^^
'SD 건담 삼국전' 입니다 사실은 애니메이션으로 봤어요
책도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니 있더군요 여기에 나오는 건담은 작아요
건담을 많이 본 것은 아닌데, 좋아하는 것은 <기동전사 건담 SEED> 예요^^

에반게리온은 잘 모릅니다 예전에 극장판 하나 보기는 했는데...
이번에 나온 에반게리온 Q 재미있게 보세요


희선

가연 2013-05-10 21:04   좋아요 0 | URL
많이 늦게 덧글을 이렇게 씁니다. 에바 큐는 봤어요, 풋.
건담을 좋아하시는군요ㅋ 저는 건담은 하나도 안봤는데..
여성분들도 건담을 좋아하는 분은 좋아하시더라구요.

맥거핀 2013-04-30 14:08   좋아요 0 | URL
글로 봐서는 가연님은 삼국지를 10번 이상은 읽었을 것 같은 느낌이니 아무래도 멀리해야겠군요. 저는 예전부터 집에 있던 박종화판의 오래된 삼국지로 보았습니다. 5권짜리 세로로 쓰여있는 것 말이죠. 코에이사의 삼국지는 12까지 나왔더군요. 몇날며칠 밤을 새우고 찾아오는 천하통일의 허무함이란...천하통일이란 다 부질없구나..이 생각을..ㅋ 요새 가끔 밤에 잠이 안와서 TV를 틀어보면 삼국지 드라마가 하더군요. 내용은 뻔한데 볼 때마다 채널을 못돌리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어요. 저도 여러 본 것들이 생각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가연 2013-04-30 22:09   좋아요 0 | URL
하하하, 맥거핀님의 댓글엔 유머가 있네요. 첫 문장을 읽다가 계속 미소지었답니다. 어쩐지 다른 사람들이 자꾸 저를....... 푸하하. 물론 농담이구.. 박종화판은 잘 모르겠네요. 세로로 쓰여있었다니 정말 오래된 판본같네요. 삼국지 게임을 천하통일시키고 나면 정말 허무하지요, 풋. 저는 개인적으로 신장수를 마구 만드는 것을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중국 역사, 무협드라마들은 이상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황제의 딸부터 시작해서 몇 번이고 본 무협드라마들 (천룡팔부나 사조영웅전 등) 이라도 멍하니 보고 있더라구요. 즐겁게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풋.

saint236 2013-04-30 22:19   좋아요 0 | URL
나중에 하다하다 할 일이 없으면 공융이나 한복같은 사람으로 천하 통일을...

가연 2013-04-30 22:36   좋아요 0 | URL
하하하, 맞아요, 공융이나 한복.. 정말 슬픈 장수들이죠. 하지만 좀 더 안습인 장수 있지 않나요? 엄백호였나, 풋.

마립간 2013-04-30 14:20   좋아요 0 | URL
삼국지 경영학을 쓰신 최우석씨의 말을 빌자면, 단편적인 삼국지의 내용이 널리 알려져 삼국지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삼국지를 통독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강연 들을 때도 삼국지를 책으로 읽으신 분 손들어 보라고 했는데, 몇 분 안 들었습니다.

가연 2013-04-30 22:02   좋아요 0 | URL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ㅎ 다만.. 저로서는 내용을 알고 있는 것과 책을 읽은 것과 큰 차이가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네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도 책으로 몇 번 읽었긴 하지만 말입니다, 풋.

saint236 2013-04-30 22:19   좋아요 0 | URL
삼국지 영화중에 유덕화 주연의 용의 부활도 있지요...이것은 조자룡을 주인공으로 그린 것인데 이 또한 꽤나 재미있게 봤습니다. 한중일에게 삼국지는 화수분과 같은 존재죠. 파고 또 파도 끝이 없으니 말입니다. 창천항로는 이학인씨가 죽는 바람에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한 기분이...

가연 2013-04-30 22:56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러게요, 화수분, 적절한 비유입니다. 삼국지 용의 부활, 은 기억은 하고 있었는데 볼 시기는 놓쳐버렸지요. 그런가요, 저는 거의 끝까지 오오 간지다, 이러면서 봤던 것 같아요, 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