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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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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책을 표지만 보고 고르거나 표지 디자인이 좀 감각이 떨어진다고 해도 작가와 상관없이 생각하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정치인들이 표지로 나오는 이 표지에 어떻게 거부감을 안 가질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사람이 손으로 하트까지 하고 있는 이 표지가 그려진 책을 받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사실 일부러 이 책은 절대 선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나와 생각이 많은 분들이 계셨는지 내 품으로 들어와 버렸다. 덜컥 겁을 먹으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굽시니스트라는 시사만화를 그리고 있는 작가의 이력을 살피면서 그도 참 다양한 삶을 살았으니 남들이 보지 못한 현명한 풍자를 그려주겠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며 책장을 열었다.나름 통찰력이 있다고 하시니 그의 통찰력을 믿으며 책을 볼 수밖에. 시사 주간지 <시사IN>에 <본격 사가인 만화>를 연재했던 약 3년 정도의 만화가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2009년이라면 참 나라가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국장을 두 번이나 한 나라가 있을까? 그것도 한 사람은 자살을 한 대통령이라니. 시대에 가장 악독한 행위를 저지르고 정치범아닌 정치범이 되어 모든 국민 앞에 청문회까지 열고도 수백억의 돈이 있으면서도 돈이 없다며 세금도 내지 않는 뻔뻔한 전대통령 잘 살고 있는 마당에, 자살을 한 대통령이 있었던 한해의 풍자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들이 많았다.

 

정치를 풍자한 만화를 그러거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나조차도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들은 무조건 좌파로 생각을 할 만큼 꼬일 대로 꼬여있고 그들의 행적이 아무리 옳은 일은 한다고 한들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가 내게는 전혀 맞지 않는 양념을 뿌려댄 음식과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의 이런 시각을 바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부분은 우리나라 공주님의 얘기였다. 그녀의 얘기에 솔직히 수긍가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미쳐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공주님의 논리에 허를 찔렀다고 할까.

 

2010년 5월 15일자에 연재한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편은 작가의 지식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회였다. 물론 이런 사자성어식의 풍자가 많이 있기는 했지만 그간 본 연재 중에서 읽으면서 세상에를 몇 번씩 외치며 읽었던 회였었다. 그래서였는지 그 다음 편부터 읽는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가 표지에 있었던 비호감이 슬슬 사라져가는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내가 싫다고만 생각했던 정치가 절대로 멀리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또 한 번 느낀다. 우리가 바뀌지 않으면 그들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일 테고 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절대로 싫다고 떠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옛 속담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하지만 떠나면 안 되는 절도 있는 것이다.

사실 어떤 화에서는 전혀 몰랐던 얘기라서 너무 정치에 무지한 내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분명 잘 알았다면 나도 웃으면서 넘어갔을 얘기였는데 너무도 심각하게 몰랐는걸 이라며 나의 무지를 탓하기만 했다고 할까. 그렇게 넘어가면 되었던 지난날의 정치가 그랬던 것 같다.

 

선거일 때만 반짝이는 그들의 시민 사랑도 구역질나게 싫었지만, 그들을 못 믿어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며 있던 나의 국민적 의식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몇 년 전 나는 북유럽으로 이민을 가고 싶었다. 그들의 나라가 부러웠기 때문도 있었지만 부끄러운 대통령의 나라에 국민으로 세금 내며 살고 싶지 않았다. 한 어플에는 대통령 임기를 알려주는 어플도 있는걸 보았다. 간혹 임기가 며칠 남았는지도 확인을 해 보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무지한 백성이 무지한 임금을 섬기고 사는 것 같은 날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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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컴퍼니 스토리콜렉터 3
하라 코이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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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마음 한편이 싸한 울림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여러 번이었다. 어찌나 그들의 모습이 이제 앞으로 다가올, 앞이라고 해봐야 아직 몇십년은 더 남았지만 어쩌면 그 시간이 더 빨리 다가 올 것만 같아 우울해졌던 소설이었다.

지금은 자주 다닐 수 없는 나의 회사 경로가 되었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꼭 가야했던 종로의 탑골 공원을 지날 때마다 보았던 나이드신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쓸쓸했었다. 젊은 나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날은 참 무료하던데, 오랜 시간을 저렇게 보내시다가 가야할 노인분들을 보니까 앞으로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서 더 쓸쓸했다고 할까. 비라도 오는 날은 탑골 공원이 더 적막해 보이기까지 했다. 주인을 잃어버린 가방처럼 덩그러니 도시 안에 버려진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은 공원뿐이었을까.

 

실직을 하였거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도서관, 그곳에 만난 스고우치와 기리미네는 한때 뜨겁게 일했던 회사의 모습을 떠올린다. 열심히 일하고 잔업을 하고, 상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회식자리에서 무리하며 놀고 쓰린 속을 달래며 집으로 갔다가 다시 정신없이 출근을 했던 지난날의 모습에 현재의 쓸쓸함을 달래다가 우연치 않게 그 둘은 회사를 다니는 놀이를 한번 해 보자고 한다. 정말로 회사를 다니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하고 업무 성과를 올리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미팅을 하고 출장도 가는 그런 회사 일을 하기 시작한 그들은 어느덧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일을 할 수 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맘 아프게 다가온다. 점점 늘어나는 실직과 퇴직으로 사람들은 없는 병까지 생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이 어디 일본뿐이겠는가. 전 세계는 점점 올드화 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에 읽은 영월드 라이징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들의 놀이가 정말로 회사를 움직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놀이에 동참하면서 자회사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스고우치의 아들 신페이는 젊은 시절 한방을 통해 멋지게 자신만의 회사를 차려 나가려고 한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그 회사라는 공간을 그렇게 다니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신페이는 전혀 알지 못한다.

무기력한 일상이었던 그들의 모습에 활력을 넣어주었던 ‘주식회사’놀이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소설의 구성상 조금 뻔 하게 보이긴 한다. 그렇다고 소설이 맥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맥스로 흘러가는 동안의 소설의 구성은 읽는 동안 엔딩에서 주어질 감동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작가의 노련한 인물 구성도 참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덕목은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뜻하게 짜인 인물 구성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감동의 잔상이 오래가면서 앞으로 나의 미래의 모습까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신페이의 패기가 이해가 되면서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이해가 되는 그런 따뜻한 소설이다. 그리고 매일 출근을 하면서 하루에 몇 번씩 사표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던 나를 위한 반성의 소설이라고 생각되었다. 직장 상사와의 트러블과 일과 사람 사이에서 겪게 되는 지루한 모습에 매번 오늘까지만 다니고 그만 둘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몇 번씩 외치며 책상 앞에 앉았던 나를 반성했다. 사람은 일을 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느끼는 권태와 무료함, 지루함도 일을 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일 테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런 투정도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런 투정이 스트레스로 쌓여 위경련을 낳고 있기는 하지만. 스고우치가 회사에 대한 믿음을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정말로 가슴이 울렸다. 나는 한번도 내가 다녔던 직장에 대한 어떤 프라이드도 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스고우치같은 미래가 없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현재를 더 치열하게 즐겁게 일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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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인상파 그림은 왜 비쌀까?> _ 필립후크 / 현암사 

그림에 대한 지식이 얼마 없는 나에게 인상파라는 그림 하나만 생각하면 고흐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불후한 시대를 살고 갔고, 그의 열정이 어떠했는지 동생 태오와의 편지를 기록한 책과 그의 서적을 통해 알게되면서 그의 그림들이 더 각인되어 고흐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것 같기도 하다. 생전에 단 한점의 그림을 팔아 보았던 그의 그림들이 이제와서 비싸게 팔리는게 좋은 일일까? 생각해 봤다. 물론 그의 가치를 이제서야 인정해 주는 것이니 참 다행스럽다 생각하지만 그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면서 그의 그림이 비싸게 팔리면 대체 누구에게 이득이 된달 말일까? 그는 자식도 없고, 그를 그렇게 도와 주었던 태오마저 세상에 없는데 말이다.  

인상파 그림들이 비싸게 팔리는 이유를 알고 싶다기 보다 당시에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의 그림들이 어떻게 해서 가치있게 평가가 되었는지 그 흐름을 알고 싶게 하는 책이다.  

 

 

<결국, 음악>_ 나도원/ 북노마드 

<나는 가수다>라는 예능 프로그램때문에 술렁이는 음원 사이트들은 대박을 치고 있다. 그곳에서 발표된 음악들은 음원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치고 있다. 얼마전에 나온 임재범의 <너를 위해>는 한주간 계속 1위를 하고 있다. 그의 노래가 나온지 십년이 지난 노래인데도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새로 나온 신곡이 아닌 십년이 지난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대는 것은 그의 가창력과 무대 연출, 진심도 있었겠지만 우리와 함께했던 그 시대의 향수가 더 크게 다가온것 같다. 그때 그 노래를 불렀었던 그때의 추억들이 살아나고, 그 노래를 불러주었던 그 사람이 떠 오르고,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노래방에서 불렀던 그 음악이 떠오르는 그 시간들때문에 더욱 가슴을 애절하게 울렸던것은 아닐까.  

결국, 우리에게 가슴을 움직이는 것들은 어쩜 이런 향수 있는 음악들 인것 같다. 나와 시간을 함께 한 음악들은 추억의 공간을 파고 들어 마음을 적져 놓는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던 음악들의 얘기에 나의 추억까지 함께 한다면 이보다 근사한 그리움이 어디있을까?  

 

 

<디자이너 열전> _ 현실문화 

 

한때 나의 꿈은 디자이너 였다. 그것도 의상 디자이너.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나온 앙드레김의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불렀던 가수의 무대를 보고 나서 나도 저런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생각해 보았던 그런 꿈이었다. 그 꿈때문에 한동안 정말 열심히 방산 시장의 원단 가게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흰 에이포지에 무작장 그림만 그려댔던 그런 추억이 있다.  

간혼 케이블에서 보여주는 패션쇼의 무대들을 볼때마다 그들의 상상력에 매료 되기도 한다. 저런 생각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들도 예술가의 한 범위내에 들고 있으며 그들의 펼쳐내는 이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그것도 내가 꿈꾸었던 의상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분야속의 다자이너들의 만남이라니 그들의 아이디어들에 자극을 받을 것 같다.  

예술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것이 아니다. 단조로운 나의 삶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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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 지구를 위협하는 맛있고 빠르고 값싼 음식의 치명적 유혹
파울 트룸머 지음, 김세나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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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큰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주변에 맛집을 찾아다니며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도 있고, 주변의 맛집을 취재하듯 다니는 맛집 블로거 후배도 있고 나 또한 매운 음식 한번으로 하루의 짜증을 확 풀어 낼 수 있을 때가 있으니 우리가 먹을 것에 대한 집착과 쾌락은 인생의 절반을 넘게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요즘 속이 안 좋아서 열흘 동안 단식을 하면서 먹는 것의 즐거움과 떨어져 있다 보니 그동안 생각했던 먹는 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누구나 먹더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식이 주었던 바쁘니까 안 된다는 고정관념은 깨끗이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던 몸에 좋고 질 좋은 음식을 먹어야하며 잘 골라서 먹는 일도 우리 마음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책을 통해 또 한 번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현대인들의 빠른 일상에 맞춰 음식들도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이 많이 나오면서 이탈리아의 피자의 활약은 더 커진 것 같다. 화덕에 구워진 피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를 가든 비슷한 맛을 내는 피자를 먹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되었고, 간혹 외국 여행을 갔을 때 잘못 선택한 음식으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우리집 앞에서도 먹을 수 있는 피자를 외국 나가서 먹을 때가 있었다. 이렇게 보편적인 음식이 된 이탈리아의 음식 피자가 세계를 어떻게 지배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풀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책의 내용은 사실상 피자가 세계를 지배하기위한 경로나 뭐, 그런 얘기들보다 우리에게 이 보편적인 음식이 얼마나 안 좋은 것들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경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질 좋은 재료로 맛있는 피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곳도 있지만 냉동식품이 당연히 좋지 않은 것들은 알고 있지만 그 실상을 더 잘 알고 나면 바쁠 때 빨리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선택했던 냉동피자들은 이제 저 멀리 밖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책은 피자를 이루는 것들을 우선 소재해 주었다. 반죽, 치즈, 소스, 육류, 양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얹어 만들어진 피자가 다른 나라로 이동하게 되는 운송까지 소개한 글을 사실 그간의 음식들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어서인지 충격은 아니었지만 치즈부분에서 많이 우울해졌다.

두부를 좋아하는 나는 유전자변형 콩 사용 때문에 국산콩 두부를 조금 비싸게 사 먹고 있지만 먹을 때마다 이게 정말 국산콩일까 생각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일부러 국산콩으로 만들어진 국산콩 두부인데도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이게 믿을 수가 있을까 싶지만 두부 먹고 싶다고 진짜 국산콩을 사서 갈아서 두부를 만들어 먹는 일이 쉽지 않으니 그냥 믿으면서 먹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일부러 먹고 있는 이 국산콩, 유전자변형 콩을 결국 내가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유전자 변형한 콩은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그 콩이 들어간 가축은 우유를 만들어 내고 그 우유는 치즈로 변형이 된다. 결국 먹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좋은 우유로 만들었다고 한들, 좋은 사료를 주지 않는 소의 젖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커피의 정치학>을 읽을 때도 커피의 원두를 가지고 공정무역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횡포에 화가 났었는데 유기농 기업들을 압박하는 기업들도 모두 대기업들이고 결국 대기업들 때문에 소비자만 품질 좋은 먹거리를 먹을 수 없는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유기농 기업들이 많이 생기고 그들의 확산으로 건강한 식습관이 자리 잡기 위해 먹는 사람들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얘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위해서 저자가 말한 새로운 식습관을 위한 열가지 조언을 참고하며 살아야겠다.

 

<새로운 식습관을 위한 열가지 조언>

1.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라.

2. 육류 섭취를 줄여라.

3.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라.

4. 제철 식품을 구입하라.

5. 현지 식품을 구입하라.

6. 품질인증마크에 유의하라.

7. 요리하는 법을 배워라.

8. 가끔은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어라.

9. 당신의 돈이 하고 있는 일을 살펴라.

10.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끔씩은 색다른 것을 허락하라.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일수록 더 유혹하는 손길이 많을 때가 있다. 위의 10번은 그런 것을 가끔을 허락하기 위한 선물 같은 일이다. 때로는 일탈이 선물일 때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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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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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서두를 읽고 놀란 적이 없다. 이토록 길게 작품에 대해 말하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가 자신의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론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자식으로 치겠지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길고 긴 작품 해설을 읽고 시작한 <나사의 회전>은 처음 니콜 키드먼의 <디아더스>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유령이 등장하는 집안이라, 그것도 현대가 아닌 시대이지 않나. 그렇기 때문은 아니더라도 한적한 시골집에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찾아간 가정교사와 남매, 그를 보육하는 그로스 부인이라는 사람과 하녀들의 모습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서두에서 다뤄졌던 지루함이 사라졌다. 그런데 소설을 읽을수록 가정교사인 나의 얘기에 공감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1800년대의 시대가 그러했지만 스무살 젊디젊은 여자가 남의 집 가정교사로 들어간다면 그녀의 신분 또한 알만하고 그녀에게 젊은 시절을 꽃피워줄 꿈이라는 것이 없겠다는 것도 짐작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대 저택의 두 남매를 어린 나이에 생기기 힘든 모성본능을 가지며 지켜내려고 하는 고군분투 역시 가련해 보인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액자 형태로 된 소설의 가장 중요한 얘기는 가정교사가 저택으로 들어가 유령을 만나고 두 아이들을 유령에게 떨어지게 하면서 지켜내려는 얘기가 핵심이다. 그녀가 화자가 되어 서술되는 얘기는 주관이 없는 것이 흠이면서 너무나 불안정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확신이 너무 강하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녀는 남매인 두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녀는 그 아이들을 사랑스럽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두 아이를 오직 아름다움과 붙임성, 행복과 영리함만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고민이고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얘기가 빠져있는 곳에서 그녀가 가족을 만들어 가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층계참에서 보았던 희미한 물체를 그녀는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집에 오기 전에 있었던 퀸트와 제슬양에 대해 그로스 부인을 통해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보게 되면서 그들을 혐오스럽고 사악하다고 표현한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점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유령이 사람들을 헤칠 것이고 그들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더 단단하게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로스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할 때 그로스 부인은 너무 쉽게 그녀의 얘기에 인정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 밖에 볼 수 없는 유령을 정말로 믿게 된다.

하지만 그 어는 쪽도 유령이 집에 있었고, 아이들을 사악하게 변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없다. 그녀만이 유령의 존재를 발설하며 괴로워한다. 그로스 부인은 유령의 존재는 보지 못했지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빙의되어 발설하듯 말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완벽하게 그렇다고 진실이 아니다.

 

이렇게 소설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결론이 난무하다. 그녀는 왜 그토록 그곳에 집착을 하는 것일가. 유령의 존재가 무섭고 싫었다면 그녀 스스로가 집을 떠 났을텐데 그녀는 집에 남고 그로스 부인이 떠난다. 또한 왜 그녀에게만 유령이 보이는 것일까. 물론 그로스 부인은 소리는 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소리조차 아이들이 격양된 감정을 표현 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유령의 존재 때문에 괴로운 것은 오직 그녀뿐이다. 또한 퀸트와 제슬은 또 어떻게 유령으로 되었는지 사건의 전말이 모두 사라졌다. 오직 그녀의 시선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소설은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독자들의 상상속의 결말로 귀결될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정말 특이한 매력은 다 읽고 나면 오싹해지는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말하는 그 유령의 존재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순간 이런 호러물이 없다.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는 것에서 독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제일 혐오스러운 모습을 떠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점점 유령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의 변화 과정은 유령이 마치 그녀의 몸속으로 빙의 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때로는 차분하게 자신의 편지를 가져간 마일스를 타이르는 모습에서는 수사관이 된 듯하다.

그 부분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사의 회전>에서 내가 필사적으로 추구한 것은 행동이었으며,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내 유령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과 내 이야기를 훌륭하게 제시하는 것, 즉 무서운 것에 대한 내 느낌과 내가 의도한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P16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았다. 나사의 회전이라는 제목도 다시 보았다. 나사의 구멍을 잘 키워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것 같은 표지의 사진에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그토록 자신의 교육방침을 아이들에게 교육시키고 싶던 것이 어쩌면 잘못된 구멍을 찾아 돌린 나사의 회전은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으스스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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