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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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서두를 읽고 놀란 적이 없다. 이토록 길게 작품에 대해 말하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가 자신의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론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자식으로 치겠지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길고 긴 작품 해설을 읽고 시작한 <나사의 회전>은 처음 니콜 키드먼의 <디아더스>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유령이 등장하는 집안이라, 그것도 현대가 아닌 시대이지 않나. 그렇기 때문은 아니더라도 한적한 시골집에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찾아간 가정교사와 남매, 그를 보육하는 그로스 부인이라는 사람과 하녀들의 모습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서두에서 다뤄졌던 지루함이 사라졌다. 그런데 소설을 읽을수록 가정교사인 나의 얘기에 공감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1800년대의 시대가 그러했지만 스무살 젊디젊은 여자가 남의 집 가정교사로 들어간다면 그녀의 신분 또한 알만하고 그녀에게 젊은 시절을 꽃피워줄 꿈이라는 것이 없겠다는 것도 짐작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대 저택의 두 남매를 어린 나이에 생기기 힘든 모성본능을 가지며 지켜내려고 하는 고군분투 역시 가련해 보인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액자 형태로 된 소설의 가장 중요한 얘기는 가정교사가 저택으로 들어가 유령을 만나고 두 아이들을 유령에게 떨어지게 하면서 지켜내려는 얘기가 핵심이다. 그녀가 화자가 되어 서술되는 얘기는 주관이 없는 것이 흠이면서 너무나 불안정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확신이 너무 강하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녀는 남매인 두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녀는 그 아이들을 사랑스럽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두 아이를 오직 아름다움과 붙임성, 행복과 영리함만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고민이고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얘기가 빠져있는 곳에서 그녀가 가족을 만들어 가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층계참에서 보았던 희미한 물체를 그녀는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집에 오기 전에 있었던 퀸트와 제슬양에 대해 그로스 부인을 통해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보게 되면서 그들을 혐오스럽고 사악하다고 표현한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점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유령이 사람들을 헤칠 것이고 그들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더 단단하게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로스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할 때 그로스 부인은 너무 쉽게 그녀의 얘기에 인정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 밖에 볼 수 없는 유령을 정말로 믿게 된다.

하지만 그 어는 쪽도 유령이 집에 있었고, 아이들을 사악하게 변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없다. 그녀만이 유령의 존재를 발설하며 괴로워한다. 그로스 부인은 유령의 존재는 보지 못했지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빙의되어 발설하듯 말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완벽하게 그렇다고 진실이 아니다.

 

이렇게 소설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결론이 난무하다. 그녀는 왜 그토록 그곳에 집착을 하는 것일가. 유령의 존재가 무섭고 싫었다면 그녀 스스로가 집을 떠 났을텐데 그녀는 집에 남고 그로스 부인이 떠난다. 또한 왜 그녀에게만 유령이 보이는 것일까. 물론 그로스 부인은 소리는 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소리조차 아이들이 격양된 감정을 표현 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유령의 존재 때문에 괴로운 것은 오직 그녀뿐이다. 또한 퀸트와 제슬은 또 어떻게 유령으로 되었는지 사건의 전말이 모두 사라졌다. 오직 그녀의 시선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소설은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독자들의 상상속의 결말로 귀결될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정말 특이한 매력은 다 읽고 나면 오싹해지는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말하는 그 유령의 존재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순간 이런 호러물이 없다.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는 것에서 독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제일 혐오스러운 모습을 떠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점점 유령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의 변화 과정은 유령이 마치 그녀의 몸속으로 빙의 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때로는 차분하게 자신의 편지를 가져간 마일스를 타이르는 모습에서는 수사관이 된 듯하다.

그 부분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사의 회전>에서 내가 필사적으로 추구한 것은 행동이었으며,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내 유령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과 내 이야기를 훌륭하게 제시하는 것, 즉 무서운 것에 대한 내 느낌과 내가 의도한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P16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았다. 나사의 회전이라는 제목도 다시 보았다. 나사의 구멍을 잘 키워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것 같은 표지의 사진에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그토록 자신의 교육방침을 아이들에게 교육시키고 싶던 것이 어쩌면 잘못된 구멍을 찾아 돌린 나사의 회전은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으스스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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