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점심은 늘 즐거운 고민이었다.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도 그 속에 늘 ‘김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분식으로 때로는 이탈리안 음식으로 해결한적도 많았으니 김치 하루 안 먹는다고 이상하지 않았던 날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나이가 먹으면서 해외를 나오기만 하면 그렇게 김치가 먹고 싶다. 김치가 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가도 느끼한 서양 음식 먹고 나면 늘 생각나는 것은 달작지근하게 익은 상큼한 김치 한 조각이었다.




후배의 남편은 오페라 극장의 성악가이다. 그는 나보다 훨씬 요리를 많이 하고 좋아한다. 심지어 하는 요리들이 다 맛있다. 그런데 내가 그의 요리중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김치였다. 그는 나보다 다소 단 맛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김치가 달았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케이크는 좋아하니...아니라고 하기 그렇지만 사탕은 좋아하지 않으니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단맛이 많은 김치만은 더 이상 먹는 것이 어려워 양해를 구하고 김치만은 내가 담그기로 했다.

한국도 배추가 여름에 많이 나지 않고 나온다고 해야 전부 저장 배추일텐데, 이곳은 나오는 배추가 대부분 두꺼운 푸른 입이 벗겨진 알배추마냥 매끈하다. 그래도 이렇게 구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배추 두통을 사왔다. 배후 한통은 1.59유로 였다. 우리 나라 돈으로 하면 2천원 정도 되는 배추가. 아시안 마켓이 있어서 종갓집 배추를 살 수 있다. 하지만 500그람에 5.5유로이며, 1키로에 10유로가 넘는다. 500그람이라고 해봐야 서너번 먹으면 없어지는 아주 작은 양이다.

다행이 집에 새우젓과 까나리액젓까지 갖추고 있으니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포기 김치를 담글 수 없으니 바로, 빨리 먹을 수 있는 겉절이로 해 먹기로 했다. 배추 두 포기와 무, 이곳은 조선 무가 당연히 없으니 무는 콜라비로 대신했다. 쪽파는 다행이 있다. 빨간 고추 열 개와 서양배, 양파 하나를 갈았다. 찹쌀풀을 써야 하지만 없으니 밀가루 풀로 대신한다. 뭐든 없으면 대체 품을 찾으면 된다. 그렇게 준비하고 굵은 소금을 사와 절여 놓은 배추가 적당히 절여지면 배추를 찬물에 씻어 내고 양념을 비비면 완성이 되는 김치.

후배의 남편의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독일인들인데, 그가 김치를 먹고 온 날은 늘 조심스럽게 다가와 얘기 했다고 한다. 마늘 냄새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프다고.

이를 닦고 가지만 김치에 버무려진 마늘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빠지지 않나보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은 후부터 쉬는 날이 아니면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그 때문에 김치가 줄어들 것 같지 않지만 나와 후배가 김치 하나 놓고 파스타 먹기, 김치 하나 놓고 라자냐 먹기, 김치 하나 놓고 요끼를 먹느라 배추 두 포기가 벌써 동이 났다.

고민했다. 우리, 김치 없으면 안 되는 걸까?

내가 없으면 잘 먹지 않았던 김치였는데, 나로 인해 두 번이나 김치를 담갔던 후배 부부들은 당분간은 김치를 먹지 않기로 했다. 후배 남편은 근무 하는 동안은 김치를 먹을 수 없으니 고통을 줘선 안될 것 같아 당분간은 김치를 담그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냉장고에 딱 한번 먹으면 없어질 김치를 보니 마음이 헛헛하다. 나도 외국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당분간은 김치는 먹지 않고 버텨 보자고 했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찾지 않았던 그 김치가 왜 이렇게 애착이 가는 것일까. 며칠 전 마트에서 본 말갛게 웃고 있는 것 같은 예쁜 배추 포기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그 배추를 집으로 가져와야만 할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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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1211 2017-07-0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치에 대한 그 맘 이해해요.^*

오후즈음 2017-07-05 23:42   좋아요 1 | URL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은 심정인가봐요. ^^ 한국가면 일주일동안 김치만 먹고 싶은 밤입니다. ㅎㅎ

cyrus 2017-07-0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인들이 샤우어크라우트를 자주 먹습니까? 저도 그거 먹어보고 싶어서 인터넷에 있는 레시피에 있는대로 만들어본 적 있어요. 제가 만든 샤우어크라우트의 맛은 거의 물김치의 맛에 가까웠어요. ^^;;

오후즈음 2017-07-06 21:29   좋아요 0 | URL
학센을 먹을때도 나오고,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물김치를 아주 많이 익혀서 채 썰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심심한데 시고....우리나라 종갓집 김치처럼 그렇게 포장 돼서 많이 팔더라구요. 물김치 맛이 맞을겁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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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나이에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사강이 이 소설을 쓸 시대를 생각하면 결혼도 하지 않은 서른아홉의 폴이 실내 장식가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당찬 여자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그녀도 그녀의 애인 로제만 곁에 있으면 한없이 나약한 여자가 되고 만다. 자유연애를 꿈꾸는 로제는 폴과의 사랑이 절대적이지 않다.



그는 때론 기분에 맞춰 젊은 여자와의 하룻밤이 특별하지도 않다. 지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나쁜 남자의 정석이라고 할까. 그런데 폴은 그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동화 속에 나온 공주들과 다를 게 없다. 나른한 연애를 깨워줄 마법의 주문을 가진 왕자가 나타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폴에게 나타난 시몽은 그녀가 살고 있는 동화속의 액자 안으로 들어간다. 폴을 사랑하는 시몽은 그녀에게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지만 나이차이가 나는 시몽과의 사이에서 늘 갈등을 겪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문득 나이든 사강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부 안하기로 유명한 사강이 19시에 쓴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그해 비평가 상을 받으면서 엄청난 부를 지니게 되었다. 너무 어린 시절 성공을 거둔 그녀의 중년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녀의 “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은 17세였고, 그것을 쓸 때 그녀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작품을 쓴다고 했으니 경험이 많지 않았던 19세의 그녀의 소설은 당연히 그녀의 17세가 녹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보면 서른아홉의 폴은 분명 사강의 세월을 녹아 넣었던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읽었는데 사실 이 소설은 그녀의 나이 24살 때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그녀는 고통사고로 차가 전복되어 머리에 중상을 입고 3일간의 의식 불명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소설을 쓰게 되었으니 그녀는 자신의 혼돈의 시대를 시간여행자로 미리 다녀 온 것은 아니었을까.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알코올과 마약, 도박 중독으로 그녀의 노년은 정말 궁핍한 삶이었다고 했다. 마치 모든 사랑을 다 잃어가는 폴처럼 그녀는 쓸쓸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폴은 아직 젊고 젊은 시몽이 있지 않는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아니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특히 여기서 점 세 개가 중요하다고 한다.)는 당시 브람스를 즐겨 듣는 프랑스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물음표가 아닌 권유 형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꼭 같은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권하는 느낌. 브람스를 좋아해보세요. 폴은 그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시몽을 보며 연상의 여인을 좋아했던 브람스를 떠 올렸다. 브람스는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동안 연정의 마음을 품지 않았던가.



폴은 브람스를 떠 올리면 시몽이 자연적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젊은 시몽을 떠나보내기로 한 그녀가 시들해진 로제와의 사랑을 계속 가기로 선택한 부분은 어쩌면 시몽의 젊음을 계속 가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평생 연정의 마음을 품고 살아갔던 브람스처럼 시몽을 두지 않았던 그녀가 시몽의 뒤를 보며 했던 “시몽, 나는 늙었어. 늙은 것 같아......”의 대사에 그녀가 선택한 현실의 타협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카인 소지로 인해 기소된 그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얘기 했다. 그녀가 그녀를 덜 파괴하고 살았다면 훨씬 더 많은 그녀의 다양한 작품을 만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쉽지만, 참 멋진 대사를 하며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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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름은  오후 7시 30분이 넘어야 해가 지지만

독일 이곳은 오후 9시 30분이 넘어야 해가 진다.


이제 곧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 올 것이다.


 

 

 



오후 10시쯤 되니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있었던 나의 유로 360 사건을 해결 하기 위해 아침부터 일어나 은행으로 가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전화로 시티은행으로 전화를 해서 인출 요류건을 접수 했다.


독일 현지 은행으로 아침에 갔더니  내가 인출 했던 기계는 고장이라는 푯말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한 분이 나와 비슷한 경우로 이미 은행에 찾아 왔었다고 한다.


오후가 되어야 기계의 결함을 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후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침 9시인데 오후 3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동안 들었던 독일인들의 느린 일처리 방식에 비춰보면 매우 빠른 응대란다.


집으로 돌아와 시티 은행과 통화를 했다. 독일 은행은 이렇게 처리를 해 준다고 한다.

우선 나의 돈이 인출 된 것은 맞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접수는 해줬다. 그리고 시티 은행에서는 나보고 60일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이후  사건 조사를 하지만 돈을 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니, 내 잘못도 아닌 기계 오류로 왜 내 돈을 못 돌려 받는단 말인가. 이게 말같지도 않은 말을 해서 상담원 잡을 것처럼 화가 났다가 참았다.

하....60일 준다고 하면 고맙긴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독일에서 쓸 돈을 따로 인출 해서 시티 은행에 넣어 놓은것이라.

거금 50만원이 이렇게 빠져 나가면 차후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긴다. 비상금이 있지만,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기에 쓸 수 없는 돈이다.

나의 인출 기록을 메일로 영어로 서류첨부를 부탁했더니 상담원이 내일 보내 주겠다고 했다.


오지 않을것 같은 점심이 지나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여기는 6시까지 은행이 열려 있다)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은행으로 달려 갔다. 기계의 결함으로 확인이 되었다고 한다. 기계에 돈이 없었다고.....ㅠㅠ


그런데 지금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미 나는 한국에서 돈이 빠졌지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티 은행 한국 본사와 연락을 하고 난 후 한국 계좌로 돈을 보내겠다고 하니...기다려야 하는것 밖에 없다.



긍정적인 대답을 받은 것으로 오늘은 해지는 것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하루가 참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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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0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어느 정도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

오후즈음 2017-07-05 00:09   좋아요 0 | URL
아직 입금은 안됐지만, 우선 자신의 기계의 오류라는 얘기를 해 줬고...시티 은행에서도 오늘 한국은행에서 차감된 내용의 메일을 받았네요.....현지인이 있어서 이런 일을 처리 가능했던 것이라, 만약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정말 아찔합니다. ㅠㅠ
 

독일 생활비를 출금해야해서 오늘 토요일인데도 은행에가서 atm기로 돈을 인출했다.
혹시 몰라 늘 펑일에 갔는데 오늘은 한국서 가져온 유로를 다 써서 인출해야만 했다.

500유로 인출하려니까 360만 가능하다고 뜨기에 알았다고 확인 버튼을 누르니 돈은 안나오고
카드만 나왔다.
이상해서 서 있다가 다음 사람에게 양보하니 그 사람도 안된다며 다른곳으로 갔다.
나는 그냥 기계가 이상 있나봐 하고 집에 와서 혹시나 하고 인터넷 뱅킹 어플을 와이파이 잡아 확인했더니 돈이 출금되었다.


ㅠㅠ 내돈 50만원.
급하게 은행으로 가봤더니 안됐던 그 기계에서 돈을 뽑는 사람들을 봤다.

아 미치겠다.
토요일이라 은행 직원은 없고
영수증도 나오지않아
나의 이 사실을 확인 시켜줄 사람이 없다.
독일인들은 이런것에 얄짤없다던데 미치겠다.
울고 싶다. 500유로가 아니라 360유로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난 진짜 왜이럴까

유랑 카페를 막 알아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았는데 돈을 다시 받을수 있더라도 한달이 넘게 혹은 석달도 걸린단다.


제발.
착하게 있다가 귀국할테니
내 현금을 돌려주세요. 오늘 이렇게 종교도 없는 나는 계속 기도했다. 내일부터 수업에 들어가야해서 오늘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 열받고 속상해서 잠이 안온다.
월요일에 좋은 꿈 꿔서 로또 사라고 한국에 얘기 하고 기다렸더니 꽝이란다.
로또 꽝이었으니 제발 인출된 내 돈은 돌려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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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7-0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꼭 찾을 수 있기를 한국에서도 간절히 바랍니다.

오후즈음 2017-07-04 06: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ㅠㅠ

oren 2017-07-0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없는 기계가 사람 잡더라고요.
3년 전에 벨기에 갔다가 ‘주차 정산 시스템‘한테 붙잡혀서 몇 시간 동안 진땀 흘린 거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 나요.. 아무리 제대로 절차를 밟아도 정산이 안 되고, 차 뺄려는 사람들은 연신 밀려들고 말이지요...

오후즈음 2017-07-04 06:58   좋아요 0 | URL
정말 식은땀 나는 일이셨겠네요. 저도 이놈의 기계 때문에 정말 사람 잡네요...

cyrus 2017-07-0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난감한 상황이군요. 타지에서 돈이나 지갑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아찔한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돈이 무사히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오후즈음 2017-07-04 06:59   좋아요 0 | URL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습니다. ㅠㅠ 계좌로 송금 되기전까지는 아직 안심은 안되네요. 으휴.....못살겠어요.
 
친구가 뭐라고 - 우리의 삶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사노 요코 지음, 이민연 옮김 / 늘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친구들과 놀러 좀 그만 다니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밖에 나가서 놀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그것 때문에 나의 모든 것들에 제약이 생겼다. 숙제를 빨리하면 친구네 집에 놀러 갈 수 있고, 내 방 청소를 빨리 마치면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와 놀러 다니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를 더 많이 먹으니 각자가 더 소중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생겨 친구와 함께 공유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친구가 뭐라고]를 쓴 사노 요코는 처음에 친구가 없어도 될 것처럼 얘기 했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챙기거나 알려 주거나 공유 되는 것들이 모두 다 있어야 친구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어느 날 소식을 끊었어도 수술한 배를 움켜쥐고 돈을 빌려 달라고 전화를 걸 수 있고, 나의 부고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려와 나를 위로 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

다른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걸로 시작된 이 책 속에 그녀의 진실성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쏟아 놓는 친구와의 일화들을 통해 지나간 나의 친구들을 떠 올려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매년 다이어리를 정리 할 때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지인들의 연락처를 지워 나갔다. 이후 핸드폰을 바뀌게 되면 자동적으로 연락처를 다시 옮겨 넣으면서 멀어진 이들의 연락처를 지우거나 때로는 다시 연락 할 때도 있었다. 지워지는 이들에 대해 아쉬운 것이 없다가 문득 나도 어떤 이들에게 이렇게 지워 지겠다는 생각에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친구와 멀어졌을 때, 혹은 심하게 다투었을 때 친구와 화해를 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그냥 둔다고 했다. 억지로 다시 만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나에게도 간혹 이런 것들이 그전의 감정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싸우지 않기 위해 참다가 결국 그것이 더 큰 눈덩이처럼 커져 싸워 안보는 사이로 남게 된 경우도 있다. 그녀처럼 그냥 시간이 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을 때까지 기다려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관계의 친구가 떠올라서 마음이 쓸쓸했다.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우정이 우정을 불러들일 때까지 있었다면 나는 정말로 소중한 그녀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정이 우정을 부른다는 그 말은 어떤 말일까? 시간이 지나서 이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을 때까지 시간을 두는 것, 그래도 마음에도 더 이상 앙금이 남지 않아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 할 수 있는 그런 일,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 사실 얼마나 많은 고독의 시간이 필요 할지 생각해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오해는 인생 경험치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친구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꼭 오래된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로 남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그 친구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사건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경험치를 불러와 그 사람의 인성을 알 수 있겠지만, 간혹 내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 중학교 고등학교의 친구들만 오랜 친구,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는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훨씬 많은 교감을 하고 소통을 하며 잘 지내고 있을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인가 생각이 든다. 내겐 오래된 친구들은 중학교 동창들이었다. 중학교 친구들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돌보느라 아이가 없는 나에게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나는 더 이상 그녀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에 친구가 뭐라고 생각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꼭 오래된 친구들만이 진정한 친구로 남는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내 주변에 남은 지인들이 더 빛나보였다. 그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수간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고 행복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내 옆에 있는 그들과 더 행복하게 살기위해 배려와 안부를 나누며 살기로 했다. 물론, 그들도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믿어 본다. 그런 이들만 내게 남았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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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까지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 다섯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