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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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학교 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여. 그러니까 네가 슬플 때에는 반드시 네 곁에 있을게.” P19

 

간혹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간혹 할때가 있다. 그때마다 돌아가고 싶은 나이를 떠 올려보면 절대로 고등학교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침 7시 20분까지 등교해서 저녁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일상이, 매달 치러지는 모의고사 때문에, 하루에 50개씩 외워야 했던 영어 단어가 지겨워서가 아니다. 어떤 위로가 필요했던 그때 모두가 위로를 필요로 했던 그 나이가 너무 고독했고 외로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견뎌진다는 것을 몰랐던 그때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보다 학부모들이 더 극성맞은 유명한 학군에서 공부를 했던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널널하게 공부해도 성적 잘 나왔던 중학교를 다니다가 조금은 공부를 해 볼까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그 아이들의 실력에 놀랐고, 마음 하나 둘 곳 없었던 아이들의 닫힌 소통에 마음이 갑갑했었다. 그래도 나 같이 아웃사이더로 떠돌던 아이가 있는지라 함께 마음이 맞아서 일요일에도 학교에서 만나 공부도 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얘기도 나눴던 한 친구와 사이에서 나는 늘 방황을 했었다. 사실은 나도 어떤 무리에서 그들과 함께 치열하게 공부하고 싶었던 욕구도 있고 주류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 그런 마음으로 멀어졌던 친구와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틀려지고 그 친구의 자퇴 소식을 몇 달이 지난 후에 알고 나서 많이 후회했었다. 일부러 멀리했었던 그 친구의 전화와 편지의 답장을 매번 숨기려했던 그때의 열일곱살이 안쓰럽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를 처음 갔던 그날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서울 어디 변두리의 학교에서 공부좀 했다고 자부했던 어떤 아이는 그들의 틈에서 많이 기죽어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다름을 깨달았던 그때 나에게 태수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생활은 어땠을까.

 

열일곱 살 연우의 시각으로 서술되는 소설은 잊고 있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돌아가고 싶지만은 않던 그 아픈 시간들을 연우와, 채영이, 태수, 마리가 다시 들어가게 만들었다.

 

“언젠가 엄마는 전생에 가장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이 그 빚을 갚기위해 부부로 만난다는 말이 있더라고 했다. 결혼이 빚 갚은 일이라니, 더구나 사람 사는 게 기억나지도 않는 빚을 갚는 청승맞은 일이라니, 전생 따위는 더욱더 안 믿게 됐다나. 하지만 만약에 전생이라는게 있다면 나는 그곳에서 한번쯤 태수를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 P100

 

그런 전생때문이었을까. 연우가 전학을 오면서 함께 미국 유학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태수를 만났던 것. 그리고 연우가 궁금해 하던 여자아이가 채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연우와 연결시켜주었던 것, 그리고 연우와 채영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달렸던 것 모두 그런 전생 때문이었을까.

 

대부분의 소설 속 화자의 소년, 소녀들은 철을 너무 일찍 들어버리는 것 같다. 연우 또한 그렇다. 이혼을 하고 옷 칼럼리스트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졌고 연하 애인이 있고 때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엄마가 있는 연우는 철이 일찍 들어버린 열일곱 살의 소년이다. 역시 태수 또한 그렇다. 미국 유학시절 어떤 사건인지 말해주지는 않지만. (나중에 마리를 통해 알게 되지만) 친구를 위한 의리를 지키며 깊은 속을 내비치지 않는 아이였고, 등굣길에 담배를 피우며 다니는 채영은 은행장인 아버지와 의료종사자인 어머니가 있지만 가족을 위해 가정의 불화도 참으며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그들은 간혹 퍼즐을 맞추며 자신들의 삶의 조각을 계속해서 찾아가나고 있다.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함께 야자를 빼먹고 G 그리핀의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한다. 때로는 맞지 않는 오해의 조각 때문에 틀어지기도 하고 맞는 자리이지만 어색한 조각으로 남아 빛이 나지 않는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간혹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롤모델을 찾아 그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라톤 경주 속 있는 페이스메이커의 풍선 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원하던 삶의 속도가 맞는 것인지 잘 맞춰 찾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지만 인생은 늘 그렇게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연우 역시 그렇다. 완주가 아닌 하프로 완주를 하는 것 또한 아직 긴 시간을 더 많이 달려가기 위한 속고 완급조절이 아닐까. 채영이와 그렇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정겨웠던 것은 그들이 열일곱 살이기 때문은 아니다.

 

 

“살아남는다는 것, 아직 잘 모르겠다.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도 없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 때마다 몸에 대해 느끼게 된다. 이기적이고 변덕스럽지만 반성과 결심도 잘하는 몸. 약해져 있다가도 원하는게 생기면 힘을 낼 줄도 안다.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포기도 잘하지만 결국은 나를 따라준다. 몸이야말로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에. ” P269

 

소년이 자라고 있다. 아픔을 간직한 채. 전생에 한번쯤 봤을 것이라는 태수가 전생의 빚을 갚은 것인지 알수 없게. 그들의 청춘과 닮아있는 음악 G 그리핀은 태수와 처음을 연결해주었고 헤어진 채영을 다시 만나게 해줬다. 삶은 이렇게 둥글게 또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연우와 태수, 그리고 채영이의 성장 소설을 통해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그들의 안쓰러움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아프겠구나, 힘들겠구나. 하지만 시간이라는 무거운 이름은 너희를 지금의 시간을 추억하게 만들텐데. 우리도 지나서 지금에야 알았으니 걱정말라고 달래주고 싶다.

 

96년 처음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고 있을 때 선배가 읽고 있던 책을 보며 얘기했다. 그 작가 까졌어. 책을 다 읽고 나서 까졌다는 그 의미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을 때 나는 은희경이라는 작가를 진정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가 내 놓는 소설은 모두 소장해서 읽어야 했었는데 참 오랜만에 만난 은희경의 소설은 역시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는 절대로 나이 들면 안된다는 그 말을 잘 간직하고 사는 것일까. 젊은 감성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또 다른 시작이 궁금해진다.

 

 

“첫눈 오는 날, 나와 같은 보는 아이를 만난다면 나도 꼭 그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너에게 갈게. 네가 오지 않겠다면.” P460

 

늦은밤, 첫사랑 때문에 울고 있었던 그때 나도 이런 말을 해줄걸 그랬다. 네가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갈게.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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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작은 거짓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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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반짝 빛나는> 소설을 읽고서는 가오리를 좋아하게 됐었는데 그 이후에는 그만큼 매력적인 문장과 소재를 만나본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가오리의 소설 속에 찍혀있는 그 한 장의 사진은 가오리를 너무 매혹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충분하지만 발표되는 소설을 읽다보면 그녀의 그 매력은 거품이었던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 소설들이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건을 단순화 시키고 감정선들도 많이 단순한 것 같다. 특히 가오리의 소설들은 더욱 그렇고 이번에 발표한 이 책 또한 가볍게 읽히면서 가볍게 잊히는 책이 되었다, 나에게는.

 

결혼 삼년차인 루리코와 사토시는 사랑과 결혼이 주는 유통기간을 다한 듯 현실에는 충실하고자 하지만 마음은 늘 먼 곳을 보고 있는 부부가 되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죽여 버리겠다는 섬뜩한 말을 하는 루리코였지만 정작 본인은 점점 말라가는 부부의 정을 지키기 위해 외도를 하게 된다. 여느 드라마에서 본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루리코와 사토시의 스키 여행이지만 루리코의 연인도 스키장에 따라와 방을 잡고 루리코와 정을 통하고 사토시 역시 학창시절 좋아했었던 동창을 만나 그곳에서 관계를 맺는다. 루리코는 사토시와의 결혼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을 하고 사토시 역시 루리코를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일들을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서로가 불륜속에 있음에도 결혼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의 심리를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런 관계만이 사랑을 유지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일까 의문이 된다. 물론 그것 또한 그 부부가 사는 법이긴 하겠지만.

 

 

언젠가 나는 지인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세상에 운명적인 사랑은 있는 것 같다. 어떤 소설과 영화에서 보는 운명적으로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헤어졌더라 하더라도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평생을 외롭게 살아가거나 둘이 함께 죽는 운명적인 사랑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운명적인 사랑은 나에게는 빗겨 갈 것 같다. 그렇다 한들 사랑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꼭 이런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목마름보다 삶의 고단함이 더 현실이기 때문이고 정열적인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사랑이 아니지 않기 때문에 부럽거나 꼭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해줘야 할 것 같은 책임에도 나는 전혀 그녀가 풀어내는 얘기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녀의 감성에 좀 지쳤다고 할까. 나이 먹는 나의 감성이 낡아가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뭔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참 오랜만에 만났다. 미안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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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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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발견한 책. <몽실 언니>

친구에게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는 읽어 봤는데 <몽실 언니>는 안 읽었다며 가져왔다. <강아지 똥>으로 너무 잘 알고 있는 권정생 선생님의 책이다. (선생님으로 부르고 싶은 분이다.) 지식E2였던가?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읽으면서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 것을 선생님의 인생은 한번에 여러 번 인생을 살다 가는 것처럼 굴곡 많은 삶이었던 것 같다.

<강아지 똥>을 처음 읽고 세상의 모든 생물은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그 소중한 교훈에 동화란 이런 감동을 주는 것이구나 다시 한 번 느낀 어떤 날이었었다. 그런데 <몽실 언니>를 잠들기 위해 편한 마음으로 누워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읽고 말았다.

 

작가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몽실이의 삶은 어쩜 그 시대를 견뎌냈을 많은 사람들의 시대였을 것이다.

일본의 탄압을 받으면서 살아야 했고, 광복을 했다는 감격은 어느덧 서로의 심장을 겨눠야 하는 6.25를 맞이하게 된다. 몽실이는 국가의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국가와 똑같이 닮은 가족을 가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돈 벌러 멀리 떠난 사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몽실이와 함께 시집을 간 엄마는 새 아빠와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이쯤이면 상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은 다음 페이지에 나오고 만다. 씨가 다른 자식을 거둬 먹이고 싶지 않는 시어머니와 새아빠는 당연히 몽실이를 구박하고 아홉 살 난 몽실이는 그 구박을 다 받으면서 세월을 견뎌낸다. 그리고 자신이 떠났던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 아버지 때문에 몽실이는 새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 속에서 다리 하나가 불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몽실이는 엄마가 있으니까 아빠가 다르지만 남동생이 있으니까. 그렇게 견디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몽실이의 삶의 고난은 여기가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몽실이를 친 아버지에게 보내고 마는 것이다. 고전 소설도 그렇지만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왜 다들 그렇게 못났을까. 어머니들은 왜들 그렇게 강인하기만 할까. 몽실이가 다시 아버지를 찾아 살아가면서 새 어머니를 만나고, 그 새어머니는 새 아버지처럼 몽실이를 구박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싶었지만 행복은 불행을 위한 서곡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일까. 너무 짧게 끝나고 만다. 새어머니는 몽실의 여 동생 난남이 (난리 통에 낳았다고 난남이라고 동네 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 낳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태어나서 젖을 먹어보지 못한 난남이가 암죽을 먹여가며 길러야 하는 참 기구한 인생이 되어 버렸다. 난남이를 키우기 위해, 전쟁을 치르기 위해 나갔던 아버지가 포로로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해 한쪽 다리를 절며 집으로 왔지만 어린 몽실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의 집을 돌며 깡통을 차고 동냥밥을 얻어 오는 것 밖에 없었다.

 

삶의 구차함은 몽실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프시지만 옆에 있는 아버지, 엄마 얼굴도 모르고 엄마 젖도 한번 물려본적 없지만 엄마의 예쁜 얼굴을 꼭 닮은 난남이와 함께 사는 것을 만족하며 모진 보릿고개도 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몽실이는 난남이와 헤어질까봐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책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그후 30년이라는 말에 있다.

어린 시절 응석 한번 부려 본적 없이 새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고 천덕꾸러기로 살아야 했고 다시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새어머니를 만나 좋았지만 어린 동생을 어머니, 아버지 없이 혼자 돌봐야 했고, 돌아온 아버지는 반시체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고 어린 동생과 아버지를 먹이기 위해 동냥을 다녔고, 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부산까지 내려가 보름을 넘게 병원 앞에서 길바닥에서 살았지만 결국 아버지는 그 차가운 길에서 죽고 말았다. 난남이와 헤어지는 것만은 하지 못해서 난남이와 함께 식모살이로 갔지만 결국 다른 곳에서 난남이는 잘 사는 집으로 양녀가 되어 헤어졌다. 그런 몽실이가 삼십년이 지난 지금의 얘기를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모질게 고단하고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몽실이는 꼭 그렇게 30년을 버텨내 준 것이다.

 

30년이 지났어도 몽실이는 늘 동생들이 걱정이고 아픔이었다. 한 시대의 삶의 아픈 성장을 고스란히 보여준 <몽실 언니> 때문에 권정생 선생님이 더 그리워졌다. 이제는 이런 동화를 더 써주시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몽실 언니>가 초등학교 6학년 권장 도서이던데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도 생소하기만한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몽실이가 견뎌낸 세월의 힘들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몽실 언니>를 읽고 많이 울었으면 좋겠다. 울면서 몽실이를 격려해주고 안타까워해주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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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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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방송된 <황금 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박칼린이 나오면서 최고의 시청률의 기록을 세웠다는 기사를 보았다. 국민의 동생인 김연아와 비가 나왔을때보다 높은 시청률이었다니 그녀가 2010년을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켜 놓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청률 때문이 아니라 뮤지컬은 일 년에 한두 번 봐야 많이 보는 본인이지만 뮤지컬을 본 다고 한들 각본에는 관심이 가졌지만 정작 중요한 음악감독이 누구인지 주의력 있게 살피지 않은 나에게도 그녀의 카리스마가 가슴 깊게 다가왔으니 그녀에 관한 관심은 시청률의 몇배는 극에 달할 것으로 생각한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을 통해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는 많은 시청자들은 그녀의 독특한 삶이 많이 궁금했을 것이고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준 그녀의 따뜻하고 심성 깊은 카리스마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단원을 뽑기 위해 오디션을 보면서 출연진들과 나눈 얘기들은 많이 인상적이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오는가, 이곳에 어울릴 수 있는 조화력을 가졌는가를 보고 있다는 말에 뭔가 좀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책을 통해 더 잘 알게 된 그녀의 어머니의 고향, 리투아니아. 그리고 한국의 아버지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세 명의 딸이 있는 그녀의 가족 얘기와 그녀의 삶을 얘기해주고 있는 책 <그냥>을 읽으면서 사실 좀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녀의 유명세를 통해 출판된 듯 한 조금은 조잡해 보이는 편집. 4부까지 나눠지기는 했지만 사실 4부까지 나눠 놓은 섹션의 구분이 좀 모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이면 가족에 맞는 부분. 그녀의 삶을 흩어주는 부분. 그리고 그녀의 삶을 스쳐간 사람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로 나눠진 것 같기는 하지만 명쾌하고 확실할 것 같은 그녀의 성격과 달리 출판된 책은 모호하고 두서없이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목적이었으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봤을 때는 칼린이 하늘로 뛰고 있는 것 같은 사진이었는데 9살의 칼린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심어 놓은 수십 그루의 장미들을 하늘로 날리고 있는 어린 칼린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녀는 어릴 때도 참, 예뻤구나 하는 부러움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부러움은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더 많이 들었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그녀가 부러웠다. 그리고 첼로를 공부 할 수 있었던 그녀의 여건도 참 부러웠다. 한국과 미국, 어머니를 따라 중국에서 살기도 했던 칼린의 다국적 생활환경으로 이뤄진 자유분방함에서 오는 철학적인 사고와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의 의리들도 참 부러웠다. 그녀의 룸메이트들과 그녀가 마음을 편하게 하기위해 무작정 떠난다는 구름여행 (구름 여행은 가방에 꼭 필요 한 것만 챙겨 내비게이션이 없이 종이 지도 한 장을 가지고 구름을 따라 국도로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녀의 친구들과 그리고 그녀의 사랑하는 삽삽개 해태와 함께. 해태는 너무 사랑스럽다.)은 부럽지 않았다. 나도 많이 해 봤으니까. 그래서 그녀의 구름 여행의 그 묘미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간혹 드라마를 보면 위기에 처하거나 혹은 어떤 삶의 한 정점에서 꼭 은인을 만나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참, 작위적인 설정이다 싶을 때가 많았는데 칼린은 그런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첼로를 켰고 연주회를 가진 그녀가 소리를 사사 받았다는 것조차 참 놀라웠다. 문득 내 주변의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런 구세주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스쳤던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그녀를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부러운 사람은 조승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의 고향 리투아니아에 대려다 준 송일곤 감독.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는 장준환 감독의 인연 또한 남다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딴 나라 사람같이 느껴졌던 것은 그녀의 특이란 이력을 통한 그녀의 주변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한국 토종개 삽삽개를 키우며 사는 그녀의 삶. 생선뼈와 콩나물을 조린 음식을 좋아하고 그것 때문에 사람을 얻고, 좋아하는 뉴발란스 운동화를 다시 찾을 때의 기분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너무나 한국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그녀는 장준환 감독이 부르는 그 호칭에 딱 맞는 것 같다. “누나”

 

재능 있는 사람을 골라 캐스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에 맞는 사람으로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진정한 캐스팅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역시 멋진 여자다. 그녀 때문에 나는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게 되었다. 더 멋지게 나를 가꾸며 사는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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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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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커다란 퀼트 이불을 한 채 지은 기분이 든다. 빠르게 만들어진 이불이 아니다. 한 땀 한 땀이 매우 신중하게 천을 지나가야 삐뚤어지지 않는다. 어울리는 색과 무늬를 골라 천을 잇는 것 또한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조각 천을 이어 이불을 만들 듯 조지라는 한 사람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까지의 환상을 경험하면서 삼부자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얘기를 다 듣고 나면 아름답게 조각을 이어 놓은 퀼트 이불 한 채가 완성이 되듯 한 가족사의 얘기에 가슴에도 조각이 모아져 아름답게 펼쳐진다.

 

책 띠지에 <팅커스>를 번역한 정영목 번역가가 이런 말을 써 놓았다.

<이왕 책을 펼쳐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라는 구절과 마주쳤다면, 이제부터는 아예 딴 세상이라 생각하고 신발 끈을 조여맬 것, 아니 신발을 벗어버릴 것>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책이구나 싶어 펼치면 당혹스러워 진다. 첫 페이지부터 시작인 것이다. 첫 문장이 조지가 환상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이라니. 당황스럽게 책을 읽어나간다.

 

제목이 <팅커스> 즉 땜장이들에 대한 이야기.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가 삼십년 동안 시계수리를 했고 그의 아버지도 땜장이였듯 그 역시 시계를 수리하며 살았다. 파킨슨병과 당뇨병, 그리고 암에 걸려 이제 앞으로 살 시간을 손가락으로 세어도 될 만큼의 아주 작은 시간이 있을 뿐인 조지는 신장 기능 부전으로 요산 중독으로 죽기 진전 아버지를 떠올린다.

 

조지는 강인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지켜야 할 자식이 아닌 아버지가 있었다. 목사였던 아버지가 간질이라는 것을 알려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버지 옆을 지키는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같다. 자식을, 남편을, 가정을 지켜내는 강인한 여성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조지의 기억을 통해 가장 큰 사건은 아버지의 간질 발작을 보는 것이었고 그것 때문에 조지는 손을 물려 상처를 입었지만 정작 그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아버지 자신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손에 상처를 입혔기 보다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를 보였다는 것이 가슴 아팠을 것이고 살이 돋아나는 것이 가슴에 구멍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결국 조지의 어머니는 하워드를 정신병원에 넣을 생각을 하고 그는 상처 입은 아들을 위해 그리고 그의 가족의 삶을 위해 떠나고 만다. 가족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보여주는 아버지 하워드 때문에 눈물이 났다.

하워드에 대한 조지의 기억을 함께 찾아가는 일이 참 더디다.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랫동안 읽었다. 한 문장을 읽어나가고 다음 문장을 읽고 난 후 다음 문장을 위해 앞 문장을 또 한 번 읽어가는 것은 촘촘한 바느질과 같다. 그 바느질을 하는 조지와 함께 조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슬퍼야 하는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작가의 묘사력에 있는 것 같다. 하워드의 간질 발작 부분의 세밀 묘사는 영화의 스틸컷을 옮겨 놓은 듯하다.

조지가 죽기 전 누워 있는 침대며 그가 다른 시간으로 넘어가는 부분에도 치밀한 묘사력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빨리 읽을 수 가 없었다. 그려내야 했다. 작가 폴 하딩이 표현하는 문장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조지가 말하는 장면들을 떠 올려야 하고 하워드의 행동을 다음 컷으로 이어지게 그려내야 하는 장인의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에 늦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지와 함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다 보면 문득 나의 삶의 끝에는 어떤 기억들로 가득할까 궁금해졌다. 역시 자신을 둘러 싼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들이 무수하게 자라고 있는 저 멀리의 숲을 거닐고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때 또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역시 어떤 작가의 말처럼 삶의 끝에는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조지를 사랑하는 손자들도 조지와 함께 죽음의 건너편을 같이 갈 수 없을 테니까.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들중 단 한권으로 유명해지는 작가가 몇 있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도 작가의 유일무이한 책이다. 폴 하딩 또한 단 한권의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니 이것이 신데렐라 아니겠는가 싶었는데 작가는 자신의 책을 알리기 위해 많은 애를 썼더라. 우리나라는 사인회를 주를 이루고 강연회라고 해도 몇 번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자신의 책을 알리기 위해 소규모 서점이라던지 심지어 가정집에서 부탁을 하면 가서 독서토론을 하는 열의를 보였다는 얘기에 뭐든 쉽게 손에 들어오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열심히 했던 그였기 때문에 그의 수상소식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 해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조지의 삼부자의 얘기보다 사실 작가 폴 하딩의 얘기가 더 극적이다. 두 장의 앨범을 낸 드러머였던 그가 미국과 유럽 각지를 방문하던 중에 책을 읽고 음악의 뜻을 접는 것조차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그리고 집필을 하고 소설을 쓰고 책을 내려고 했지만 모든 출판사에게 거절을 당하고, 출판된 책을 홍보하기 위해 가정방문까지 하는 그의 인생은 어쩜 조지보다 더 뜨겁게 움직이는 것 같다.

 

마지막 조지가 떠 올렸던 것. 어머니와 자신을 떠났던 아버지가 찾아왔던 크리스마스의 저녁식사 시간. 그리고 그와 나눴던 얘기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마치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아버지가 먼저 해주고 간 것처럼 다시 떠 올리는 그 말들이 잔잔하게 남는다.

“조지, 그래, 그래, 그러마, 잘 있어라”

참 오랫동안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을 놓고도 여전히 조지의 아버지의 말이 조지의 말처럼 들리며 애잔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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