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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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학교 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여. 그러니까 네가 슬플 때에는 반드시 네 곁에 있을게.” P19

 

간혹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간혹 할때가 있다. 그때마다 돌아가고 싶은 나이를 떠 올려보면 절대로 고등학교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침 7시 20분까지 등교해서 저녁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일상이, 매달 치러지는 모의고사 때문에, 하루에 50개씩 외워야 했던 영어 단어가 지겨워서가 아니다. 어떤 위로가 필요했던 그때 모두가 위로를 필요로 했던 그 나이가 너무 고독했고 외로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견뎌진다는 것을 몰랐던 그때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보다 학부모들이 더 극성맞은 유명한 학군에서 공부를 했던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널널하게 공부해도 성적 잘 나왔던 중학교를 다니다가 조금은 공부를 해 볼까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그 아이들의 실력에 놀랐고, 마음 하나 둘 곳 없었던 아이들의 닫힌 소통에 마음이 갑갑했었다. 그래도 나 같이 아웃사이더로 떠돌던 아이가 있는지라 함께 마음이 맞아서 일요일에도 학교에서 만나 공부도 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얘기도 나눴던 한 친구와 사이에서 나는 늘 방황을 했었다. 사실은 나도 어떤 무리에서 그들과 함께 치열하게 공부하고 싶었던 욕구도 있고 주류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 그런 마음으로 멀어졌던 친구와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틀려지고 그 친구의 자퇴 소식을 몇 달이 지난 후에 알고 나서 많이 후회했었다. 일부러 멀리했었던 그 친구의 전화와 편지의 답장을 매번 숨기려했던 그때의 열일곱살이 안쓰럽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를 처음 갔던 그날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서울 어디 변두리의 학교에서 공부좀 했다고 자부했던 어떤 아이는 그들의 틈에서 많이 기죽어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다름을 깨달았던 그때 나에게 태수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생활은 어땠을까.

 

열일곱 살 연우의 시각으로 서술되는 소설은 잊고 있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돌아가고 싶지만은 않던 그 아픈 시간들을 연우와, 채영이, 태수, 마리가 다시 들어가게 만들었다.

 

“언젠가 엄마는 전생에 가장 빚을 많이 진 사람들이 그 빚을 갚기위해 부부로 만난다는 말이 있더라고 했다. 결혼이 빚 갚은 일이라니, 더구나 사람 사는 게 기억나지도 않는 빚을 갚는 청승맞은 일이라니, 전생 따위는 더욱더 안 믿게 됐다나. 하지만 만약에 전생이라는게 있다면 나는 그곳에서 한번쯤 태수를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 P100

 

그런 전생때문이었을까. 연우가 전학을 오면서 함께 미국 유학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태수를 만났던 것. 그리고 연우가 궁금해 하던 여자아이가 채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연우와 연결시켜주었던 것, 그리고 연우와 채영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달렸던 것 모두 그런 전생 때문이었을까.

 

대부분의 소설 속 화자의 소년, 소녀들은 철을 너무 일찍 들어버리는 것 같다. 연우 또한 그렇다. 이혼을 하고 옷 칼럼리스트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졌고 연하 애인이 있고 때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엄마가 있는 연우는 철이 일찍 들어버린 열일곱 살의 소년이다. 역시 태수 또한 그렇다. 미국 유학시절 어떤 사건인지 말해주지는 않지만. (나중에 마리를 통해 알게 되지만) 친구를 위한 의리를 지키며 깊은 속을 내비치지 않는 아이였고, 등굣길에 담배를 피우며 다니는 채영은 은행장인 아버지와 의료종사자인 어머니가 있지만 가족을 위해 가정의 불화도 참으며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그들은 간혹 퍼즐을 맞추며 자신들의 삶의 조각을 계속해서 찾아가나고 있다.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함께 야자를 빼먹고 G 그리핀의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한다. 때로는 맞지 않는 오해의 조각 때문에 틀어지기도 하고 맞는 자리이지만 어색한 조각으로 남아 빛이 나지 않는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간혹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롤모델을 찾아 그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라톤 경주 속 있는 페이스메이커의 풍선 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원하던 삶의 속도가 맞는 것인지 잘 맞춰 찾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지만 인생은 늘 그렇게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연우 역시 그렇다. 완주가 아닌 하프로 완주를 하는 것 또한 아직 긴 시간을 더 많이 달려가기 위한 속고 완급조절이 아닐까. 채영이와 그렇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가까워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정겨웠던 것은 그들이 열일곱 살이기 때문은 아니다.

 

 

“살아남는다는 것, 아직 잘 모르겠다.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도 없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 때마다 몸에 대해 느끼게 된다. 이기적이고 변덕스럽지만 반성과 결심도 잘하는 몸. 약해져 있다가도 원하는게 생기면 힘을 낼 줄도 안다.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포기도 잘하지만 결국은 나를 따라준다. 몸이야말로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에. ” P269

 

소년이 자라고 있다. 아픔을 간직한 채. 전생에 한번쯤 봤을 것이라는 태수가 전생의 빚을 갚은 것인지 알수 없게. 그들의 청춘과 닮아있는 음악 G 그리핀은 태수와 처음을 연결해주었고 헤어진 채영을 다시 만나게 해줬다. 삶은 이렇게 둥글게 또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연우와 태수, 그리고 채영이의 성장 소설을 통해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그들의 안쓰러움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아프겠구나, 힘들겠구나. 하지만 시간이라는 무거운 이름은 너희를 지금의 시간을 추억하게 만들텐데. 우리도 지나서 지금에야 알았으니 걱정말라고 달래주고 싶다.

 

96년 처음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고 있을 때 선배가 읽고 있던 책을 보며 얘기했다. 그 작가 까졌어. 책을 다 읽고 나서 까졌다는 그 의미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을 때 나는 은희경이라는 작가를 진정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가 내 놓는 소설은 모두 소장해서 읽어야 했었는데 참 오랜만에 만난 은희경의 소설은 역시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는 절대로 나이 들면 안된다는 그 말을 잘 간직하고 사는 것일까. 젊은 감성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또 다른 시작이 궁금해진다.

 

 

“첫눈 오는 날, 나와 같은 보는 아이를 만난다면 나도 꼭 그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너에게 갈게. 네가 오지 않겠다면.” P460

 

늦은밤, 첫사랑 때문에 울고 있었던 그때 나도 이런 말을 해줄걸 그랬다. 네가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갈게.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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