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발견한 책. <몽실 언니>

친구에게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는 읽어 봤는데 <몽실 언니>는 안 읽었다며 가져왔다. <강아지 똥>으로 너무 잘 알고 있는 권정생 선생님의 책이다. (선생님으로 부르고 싶은 분이다.) 지식E2였던가?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읽으면서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 것을 선생님의 인생은 한번에 여러 번 인생을 살다 가는 것처럼 굴곡 많은 삶이었던 것 같다.

<강아지 똥>을 처음 읽고 세상의 모든 생물은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그 소중한 교훈에 동화란 이런 감동을 주는 것이구나 다시 한 번 느낀 어떤 날이었었다. 그런데 <몽실 언니>를 잠들기 위해 편한 마음으로 누워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읽고 말았다.

 

작가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몽실이의 삶은 어쩜 그 시대를 견뎌냈을 많은 사람들의 시대였을 것이다.

일본의 탄압을 받으면서 살아야 했고, 광복을 했다는 감격은 어느덧 서로의 심장을 겨눠야 하는 6.25를 맞이하게 된다. 몽실이는 국가의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국가와 똑같이 닮은 가족을 가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돈 벌러 멀리 떠난 사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몽실이와 함께 시집을 간 엄마는 새 아빠와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이쯤이면 상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은 다음 페이지에 나오고 만다. 씨가 다른 자식을 거둬 먹이고 싶지 않는 시어머니와 새아빠는 당연히 몽실이를 구박하고 아홉 살 난 몽실이는 그 구박을 다 받으면서 세월을 견뎌낸다. 그리고 자신이 떠났던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 아버지 때문에 몽실이는 새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 속에서 다리 하나가 불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몽실이는 엄마가 있으니까 아빠가 다르지만 남동생이 있으니까. 그렇게 견디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몽실이의 삶의 고난은 여기가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몽실이를 친 아버지에게 보내고 마는 것이다. 고전 소설도 그렇지만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왜 다들 그렇게 못났을까. 어머니들은 왜들 그렇게 강인하기만 할까. 몽실이가 다시 아버지를 찾아 살아가면서 새 어머니를 만나고, 그 새어머니는 새 아버지처럼 몽실이를 구박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싶었지만 행복은 불행을 위한 서곡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일까. 너무 짧게 끝나고 만다. 새어머니는 몽실의 여 동생 난남이 (난리 통에 낳았다고 난남이라고 동네 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 낳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태어나서 젖을 먹어보지 못한 난남이가 암죽을 먹여가며 길러야 하는 참 기구한 인생이 되어 버렸다. 난남이를 키우기 위해, 전쟁을 치르기 위해 나갔던 아버지가 포로로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해 한쪽 다리를 절며 집으로 왔지만 어린 몽실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의 집을 돌며 깡통을 차고 동냥밥을 얻어 오는 것 밖에 없었다.

 

삶의 구차함은 몽실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프시지만 옆에 있는 아버지, 엄마 얼굴도 모르고 엄마 젖도 한번 물려본적 없지만 엄마의 예쁜 얼굴을 꼭 닮은 난남이와 함께 사는 것을 만족하며 모진 보릿고개도 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몽실이는 난남이와 헤어질까봐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책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그후 30년이라는 말에 있다.

어린 시절 응석 한번 부려 본적 없이 새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고 천덕꾸러기로 살아야 했고 다시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새어머니를 만나 좋았지만 어린 동생을 어머니, 아버지 없이 혼자 돌봐야 했고, 돌아온 아버지는 반시체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고 어린 동생과 아버지를 먹이기 위해 동냥을 다녔고, 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부산까지 내려가 보름을 넘게 병원 앞에서 길바닥에서 살았지만 결국 아버지는 그 차가운 길에서 죽고 말았다. 난남이와 헤어지는 것만은 하지 못해서 난남이와 함께 식모살이로 갔지만 결국 다른 곳에서 난남이는 잘 사는 집으로 양녀가 되어 헤어졌다. 그런 몽실이가 삼십년이 지난 지금의 얘기를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모질게 고단하고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몽실이는 꼭 그렇게 30년을 버텨내 준 것이다.

 

30년이 지났어도 몽실이는 늘 동생들이 걱정이고 아픔이었다. 한 시대의 삶의 아픈 성장을 고스란히 보여준 <몽실 언니> 때문에 권정생 선생님이 더 그리워졌다. 이제는 이런 동화를 더 써주시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몽실 언니>가 초등학교 6학년 권장 도서이던데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도 생소하기만한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몽실이가 견뎌낸 세월의 힘들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몽실 언니>를 읽고 많이 울었으면 좋겠다. 울면서 몽실이를 격려해주고 안타까워해주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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