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나 머물렀던 뒤셀도르프를 떠나기 두시간전.

스벅에 온 이유는 핸드폰 베터리가 다 됐기 때문이다.
보조 베터리까지 모조리 다 탈탈 털어 썼더니 20프로 남았다.
그걸로 남은 기차에서 사용할수가 없다.
오늘은 한번도 안해본 기차를 환승해야 한다.

독일 기차는 중간에 가다가 절반이 다른곳으로도 가고 중간에 기차 타든이 갈아 타야하고 그 기차도 잘 타야지만 집에 갈수 있다. 그러니 오늘 베터리 충분해야 db네비게이터를 잘 확인하면서 가야 한다.

그간 스벅에 오면 내 이름 물어 보면 길어서 못 쓰기에 성만 불러 줬더니 다 lee가 아닌 lai. lii등 이렇게 적어 줬는데 첨으로 잘 적어준 직원이 엄청 불친절하다. 이게 다 인종차별인가부다 이렇게 생각 하려니 해도 너도 백인종은 아니잖냐! 이렇게 따지고 싶은 아랍 직원님. 이름은 정확하게 써줘서 이걸로 위안을 삼는다.


뒤셀도르프에서 카메라가 고장났다.
앞으로 16개 도시가 남았는데 이 구리구리 핸드폰으로 사진을 어찌 찍을까. 사진 찍는 맛으로 그동안 여행 다녔는데 무슨 재미로 앞으로 한달을 보내냐 말이다.
어디서 막 드러누워 진상피고 싶어도 밖에 무서운 애들이 이미 포진하고 있어서 조심히 다녀야 한다.

독일아 아직 떠날 날이 남았으니 나랑 좀 친하게 지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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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7-23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제 소형 디카 쌈직한 거 하나 장만하시는 게 어떠실지요? 나중에 남는 게 결국 사진밖에 없는데요.

저는 몇년 전에 실크로드 갔다가 카메라를 통째로 말아먹은 적도 있었어요. 새벽부터 서두른 끝에 한낮에 겨우 사마르칸트에 도착해서 배불리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고 ‘이제 막‘ 촬영 시작 모드로 들어갈 참이었는데, 그만 식탁 위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쾅‘ 카메라가 미끄러져 떨어졌어요. ‘바디‘가 죽으니 함께 가져 갔던 ‘망원렌즈‘랑 ‘삼각대‘까지도 모조리 아무 소용없더라구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사진은 사진대로 못 찍고 나중에 귀국해서 수리비도 제법 들었고요.

오후즈음 2017-07-2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아시는거 있으세요? 저 풀풀레임 무거워서 미러리스 빌려왔는데 망했어요. ㅠㅠ 핸드폰으로 찍는건 진짜 맘에 안들구요. 속상합니다.

oren 2017-07-23 01:53   좋아요 0 | URL
소형 디카는 저도 깜깜합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시면 금방 찾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ddakkary 2017-07-23 14:32   좋아요 0 | URL
저는 후지 x-100쓰는데 꽤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죠.
소니도 괜찮아 보이던데
독일이니까 라이카를...(이건 아닌가)

ㅋ 저라면 롤라이플렉스 작은거 하나 구입해서 필름 사진 찍겠습니다.

오후즈음 2017-07-24 00:53   좋아요 0 | URL
독일 라이카를 저도 알아는 봤는데, 한국에서도 비싸지만, 독일이라고 싸지가 않더라구요.
ㅜ.ㅜ 한국 가고 싶어요.

2017-07-23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4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족과도 오래 같이 있으면 싸우게 마련이다. 혈육도 아니고 몇 년 알고 지낸 대학 선배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몇 달간 함께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 두 개와 거실이 있는 집에 방 하나를 내게 줬다. 더욱이 큰방을 내게 줘서 나는 큰 방에서 굴러다니며 자고 글을 쓰고 인터넷을 하고 있다. 그 부분을 감안하고 나를 불러준 후배에게 나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

 

 

 

 

지난 일 년 넘게 매우 지친 일을 하고 그것을 종료 하며, 늘 목말랐던 꿈을 다시 한 번 펼쳐보고자 나는 독일로 왔다. 후배의 “언니, 이곳에서 그걸 한번 해 봐요. 석 달간 유럽에서 살아봐요.”라는 말에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늘 길어야 보름 정도 머물다 온 유럽에 석 달이라니. 그 꿈같은 시간이 내게 올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간혹 소설 후기를 읽을 때마다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이 후기를 쓰고 있다는 등등의 허세 가득한 그런 일을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랬다. 허세와 허풍으로 지친 나의 그간의 일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독일 생활이었다.

 

 

 

 

그런데, 나도 후배도 우리가 처음 알았던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나기엔 그동안 변해 버린 모습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와 내가 서로 연락이 끊겼던 것이 십년이 더 됐다가 다시 만났으니 우리가 그 사이에 얼마나 변해 있었는지 서로 가늠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오래전의 카리스마 작렬했던 (그랬다, 대학 시절에 나는 끝내주는 카리스마로 소주병을 들고 다녔던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그 모습은 사라지고 사회생활에 찌든 나이 먹는 여자가(차마 늙은 여자라고 쓰고 싶지 않고) 되었고, 후배는 뭔가 선했던 그 고운 결이 없어져 보였다.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녀의 유학 시절이 끝이 나고 간혹 연락을 했고 2년 전부터 후배가 독일에서 한국에 올 때마다 몇 번씩 다시 만나며 그동안 오래 만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후배도 아마 자신의 집으로 나를 오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저 순수했던 대학 때의 그 모습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후배네 집에서 독일에서 사는 것처럼 나도 한번 살아보고자 왔는데, 후배는 자꾸만 혼자 여행을 떠나길 권했다. 사실 그동안 장기 여행은 모두 여행 파트너들이 있었기에 즐겁게, 위험하지 않게 다녀온지라 영어권 나라도 아닌 독일에서 혼자 기차를 타러 다닌 다는 것이 겁이 났었다. 나 혼자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던 나를 두고 후배는 계속 혼자 기차를 타고 떠나라고 부추겼다. 그때부터 나는 화가 났었다. 나도 어느 정도 여행도 다녀 본 사람이고, 그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시간도 필요한데 무작정 떠나라고 하니, 나보고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저럴까 화가 났다. 우선 나는 그냥 독일 이 집에서 좀 더 쉬고 싶었다. 하지만 집세를 내지 않고 오로지 식비만 내고 있는 입장으로 잠시 화를 참았다. 후배도 뭔가 훌훌 털고 마음의 위안을 삼으라는 의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갈수록 그 도가 넘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후배는 나와 같이 살기 싫었던 것일까? 그러기엔 참 너무 빠른 시간이 아닌가? 나보다 그녀의 촉이 훨씬 좋았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태도도 있었지만 나를 화나게 한 것은 언어였다. 후배는 중국어와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와 두 언어를 모두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얘기를 할 수 있다. 주변에 후배의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올 때면 나는 당연히 벙어리가 된다. 물론 영어권 친구들과 얘기를 할 때면 들리는 문장으로 그들의 얘기를 알 수 있지만 글로 써줘야 해석이 되는 참 답답한 고등교육을 한 나쁜 예가 바로 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이 비루한 영어로 15개국을 여행 다녔다. 물론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겨 답답한 경우도 있었지만 큰 사고 없이 잘 다녔던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그 시간을 나는 힘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후배에게 영어 고자란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하지만 간혹 이놈의 영어때문에 나를 열받게 할때마다 나는 늘 생각했다.

'내가 영어는 너보다 딸리지만, 인격이 딸리는 것은 아니잖니....'

 

 

 

 

각각 다른 나라에서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후배는 외국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했었다.) 우리가 서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녀로, 나는 나로 존재하며 서로를 준중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혼자 여행도 못하는 사람, 외국인과 영어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뭔가 부족한 결핍이 많은 사람으로 취급되고, 간혹 어제 현금을 찾았는데 오늘 유로가 내려갔다는 말을 하면 사소한 걸로 목숨 거는 쪼잔 한 어른이 되고 말았다. 서로 성격적인 부분이 많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사실 독일에 온지 일주일 지났을 무렵 알게 되었다. 사실 이게 뭐 큰일이겠나. 나는 한 달 정도 이곳에 머물고 다른 도시로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도시로 떠나는 날이 생각보다 늦어졌고, 그것 때문에 서로 보지 않아도 될 감정의 골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결심했었다. 절대로 후배와 나쁘게 헤어져 한국에 오지 않기로.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서 느끼는 그 사소한 모멸감을 참아 내기로 했었다.

 

 

 

이주 전에 나는 현금 인출기에서 돈이 나오지 않고 한국 인출기에서는 돈이 인출된 사고가 있었다. 사실 그때 나는 후배에게 서운했었다. 스스로 너무도 이성적이며 스스로 차분한 성격이라고 말하는 그때의 행동은 나쁜 일을 당한 사람을 대하는 행동인가 싶어 처음엔 당황했었다. 낯선 나라에서 사고를 접한, 그것도 50만원이라는 나름의 거금을 날릴 것 같은 이 불안한 마음을 후배는 감정 조절을 못하는 나이 먹은 어른 취급을 했다. 후배는 어쩌겠냐며, 은행에 접수하면 되지 않겠냐. 그리고 못 받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기계를 확인 하지 않고 온 우리가 잘못 한 것이니, 누굴 탓하냐고. (은행에서는 기계의 결함이었다고 했지만) 그날이 토요일 이었으니 우선 월요일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주말이었으니 담당자도 찾을 수 없고, 은행 문이 여는 월요일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런 냉정함이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후배는 돈 50만원에 여행의 기분을 망치지 말라며 잊으라고 했다. 잊으라는 말, 나도 어떤 누군가가 같은 일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일의 당사자가 되면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은 아니게 된다. 시간이 지나 나도 마음을 다스려갔다. 하지만 나는 그날 걱정스런 나를 뒤로 하고 태연하게 인터넷에서 쇼핑할 것들을 서핑을 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후배와의 동거가 불편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불편했다. 그 불편함을 알았을 때 나는 이 도시를 떠났어야 했다. 독일로 오기 전에 우려 했던 이런 일이 결국 일어났지만 나는 그 일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분명 후배는 나에게 큰 배려를 해 준 셈이지만 그것으로만 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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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kkary 2017-07-1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은 법이죠.
 

 

 

 

 



독일 북부 여행 기차 티켓을 모두 끊었다. 앞으로 남부 여행 기차 티켓만 끊으면 된다.


다음 주부터 시작될 북부 여행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그리스 갈 때 한 달 넘게 스케줄 짠 걸 생각하면 이번 북부 여행은 마치 근교에 위치한 지방 어디 기차 타러 내려가는 것 마냥 표 끊고, 숙소 결정하고 나니 그냥 모든 일이 다 끝난것 같다.

한 번도 혼자 이런 장기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 사실 마음이 편한 것도 있다. 노선이 안 맞아 길을 잃어도 같이 간 동행인에게 미안하지 않고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고, 날씨까지 더운 환상의 콜라보를 선사하면 그때 발산되는 짜증으로 싸울 일도 없다.

다행이다, 이렇게 준비 없어 떠나도 나를 책망할 사람이 없다는 것.

그동안 유명 관광지는 꼭 가봐야 한다며 힘들게 가지 않고, 유명 관광지를 못 보더라도 아쉬워하지 않고, 길을 잃어도 그냥 쉬면서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앞으로의 여행이 너무 편해지고 즐거워졌다.

이제, 남은 남부 기차표를 끊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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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7-17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차표 엄청 끊으셨네요.. 그러고 보니 저는 독일 여행 때 차를 직접 몰고 여행을 다녀서 ‘기차‘ 한 번 제대로 타 보지 못했네요. 자동차 반납할 때 뮌헨역, 지하철로 이동할 때 함부르크역 가본 추억밖에.. 아무튼 멋진 여행 만낄하시길요~

오후즈음 2017-07-17 02:04   좋아요 0 | URL
많죠...그만큼 이동이 많아서 사실 좀 걱정입니다.
독일원 원래...아웃토반좀 달려 봐야 하는것 아닌가요? 저는 혼자인 관계로 기차로 이번 여행은 끝을 보기로 했습니다. 조만간 오렌님도 다녀 오신 도시들 사진을 올려 볼게요 ^^
 

프라이부르크 뮌스터.

시내를 갈때마다 뮌스터를 찍는데 늘 하늘 모습이 다르다. 
 
독일, 프라이부크에 온지 벌써 한달이 되었다. 처음 2주는 정말 시간이 안갔다.
시차 적응하느라  이번만큼 고생한 경우는 없었다. 오후 7시나 8시가 되면 눈이 감겨 힘들었다.
이곳은 오후 9시가 넘어도 밖이 훤하니 그 시간에 할일이 너무 많았지만, 좀처럼 몸이 움직여 지지 않았다.

2주동안 몸의 기능을 맞춰 시간을 보냈더니 그닥 한 일 없이 독일에서의 한 달이 지나갔다.

어린 과외 쌤과 수업 하느라  2주는 더 힘들었던것 같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그녀보다 딱 한살 많은 쌤으로 변경했더니 나이 한 살이 무섭다.
1년의 경험치가  불편한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다. 

2주동안 시차 적응도 못했지만 마음의 시차 적응도 못했었다. 그것도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다.
이제 독일의 다른 도시로 떠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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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렇게 3장으로 이뤄진 이 책속에서는 주인공 영혜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모두 그녀를 보는 제 3자의 시선뿐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의 시선으로, ‘몽고반점’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남편의 시선, 그리고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선이었다. 단지 꿈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학적으로 변해가는 영혜의 채식주의에 대한 강박증, 그리고 ‘몽고반점’에서는 좀처럼 그녀의 행동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채식주의자에 있었던 부분도 마찬가지 이었다.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모인 가족들중 어느 한명도 그녀의 이상한 고집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도 가족에게 심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속옷을 입지 않고 블라우스를 입고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먹으며 앉아 있는 그녀는 고집이 강하거나 강박관념이 심한 사람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녀를 이해 할 수 있는 통로는 어떤 것일까.





 

그녀를 억지로 고기를 먹이겠다는 가족들의 그 성화도 결국 그녀를 꺾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오로지 순수한 것들, 피 비린내가 나지 않는 순한 것들만 들어 올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좋아 했다. 가슴은 그 어떤 것도 해치지 않는다고 했다. 살육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육식을 거부 하는 그녀에겐 그 어떤 것도 죽이지 않는 가슴이 소중했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지 않았다면 그녀는 고기를 거부하기 위해 과도로 손목을 긋지 않았을 테고, 이런 그녀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이혼하지도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채식만으로 그 어떤 것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며 살아 갈 수 있었을까.

 

운명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운명이라는 것이 내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녀의 채식으로 인한 운명은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남편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했고, 혼자 있는 처제를 걱정하다 그녀의 엉덩이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몽고반점이 궁금했겠지만 그것을 비디오로 담을 생각은 형부로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있는 그녀에게 그렇게 쉽게 갈 수 있었을까? 물론, 자신의 아트를 위해선 위약을 벗어던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 그가 그런 가능성을 떨쳐 버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영혜의 언니 인혜 또한 힘들게 아들을 홀로 키워 내며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도 돌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모두 영혜가 만들어 놓은 운명의 덫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런 운명을 그녀가 원했을까?

 

나무불꽃에서 영혜는 나무 형상처럼 말라갔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늙은 나무처럼 그녀는 점점 말라갔고, 나무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 나를 포기하라는 의사표시 같다. 나는 이제 나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으로 남길 원하는 그녀는 이제는 채식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정신병원에서도 그녀를 더 이상 손쓰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거식증이 계속 되고 있으며 무생물처럼 살아가길 원했는지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



 

이것이 인혜의 말처럼 모두 꿈이었으면 영혜는 좋을까? 모든 것을 부정하듯 숨이 넘어갈 듯 피를 토하는 동생을 보는 그녀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꿈이라면 그녀가 새벽녘 숲길을 걸어 동생이 머문 정신병원에 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간신히 숨이 남아 있는 동생을 보며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악몽 같은 시간을 떠올리지 않아도 됐을 일이다. 매번 지옥 같은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이 꿈이었길 바란다. 그녀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나는 한강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5.18 민주항쟁을 가지고 소설을 쓴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임철우의 <봄날>을 읽으면서도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계속 시간이 지나도 그 얘기를 해줘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시대가 그것을 그대로 옮기기에는 작가 자신에게 큰 위험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 참 불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년과 5.18을 엮어 놓았다. 계속해서 이런 작업을 해 주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한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밀어 놓았던 그녀의 작품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실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해 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영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감은 해주고 싶었는데, 그 공감도 사실 너무 괴리감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 고지식한 것일까. 주인공 영혜보다 그녀로 인해 가정이 파괴됐지만 혈육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돌보고 있는 인혜에게 훨씬 많은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든다.

 

구급차 안에서 영혜의 삶이 끝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인혜의 삶은 현재진행중이다. 아직도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은 인혜를 더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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