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은 아이들과 독서 수업을 한다. 어쩌다가 모이게 된 그룹이라 처음에는 큰 의미가 없었는데, 일 년 정도 모이니까 아이들끼리의 끈끈한 정도 생기고 서로 챙겨주고 안 오면 궁금해 하고 많이 친해져서 가끔은 내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토론도 한다. 어느 날은 나에게 그냥 뒤에 앉아 있으라고 할 때도 있고 그걸 지켜보는 것이 즐거울 때가 많다. 아이들을 보면서 또래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오늘은 지진에 관한 책이었다. 동일본 지진에 관한 얘기를 해주며 그때 많이 늘어난 미니멀 리스트들에 관한 얘기도 해줬다. 극한 미니멀을 실천하고 있는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욕실에 잘 접어 놓여 있는 수건이 그 남자에게는 없다. 소창으로 만들어진 수건 한 장이라는 얘기에 아이들이 믿을 수 없다며 소리 지르고 웃었는데, 그때 아이들에게 물건이 없는 삶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자고 했다. 지진으로 시작된 미니멀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이야기로 전개된 토론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일주일간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 버린다는 행위는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기부나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라고 얘기해줬더니 아이들의 고민은 더 커졌다.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처음에 아이들은 음식물 쓰레기까지 써서 다시 버린 다는 행위에 대한 정리를 했다. 10분 동안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 줬다.




나는 첫 번째 추억이 담겨 있었던 사진첩과 졸업 앨범, 상장,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버리겠다고 이야기 했더니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추억을 다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왜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것이라고 만류 했다. 웃으며 알았다고 얘기 했지만 사실 나는 2년 전 이사를 오면서 앞에 얘기 한 것들을 버리고 왔다. 가끔 초중고 친구들의 사진첩을 모두 버린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괜찮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나의 행동을 이해 못한다며 절대 버리지 말라고 말리겠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웃음이 난다. 현관 입구부터 들어차 있는 새로 산 운동화들에 한숨도 나온다. 오늘 아이들이 집에 왔다면 이 신발들부터 버렸겠지. 어제 도착한 신간 책들이 식탁에 쌓여져 있는걸 보며 정말로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적어봐야 겠다. 아이들과 다음 주에 정말로 뭘 버렸는지 다시 한 번 얘기 하자고 했는데, 고민이 된다. 소중한 것은 남겨 놓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고민의 한주가 시작되었다. 고민되는 봄 밤이 싫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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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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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사라지지 않을 것들 [영원한 유산 - 심윤경]



간혹 작가의 몇몇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심성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작가가 쏟아내는 작품들이 내 취향과 맞지 않더라도 출판을 기다리며 읽곤 하지만 몇 년간 쏟아낸 심윤경 작가의 작품들은 앞에 얘기한 것들과 거리가 있었다. 특히 사랑이 달리다 시리즈는 그녀의 작품이 맞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번 작품도 그랬다면 작가와의 이별을 고할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를 애정 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다려온 그녀의 작품 [영원한 유산]은 오래전 그녀의 향기가 났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찍은 사진 한 장의 궁금증으로 시작된 그녀의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20여년이 흐른 후 이해동이라는 청년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줄여서 언커크(UNCURK)라 불리는 곳에서 애커넌의 호주 대표의 통역을 맡으며 사기죄로 2년 2개월의 실형을 살고 나온 윤원섭을 만나게 된다. 이름 없는 독립 운동가의 자손인 이해동과 악덕하기로 유명했던 친일파의 자손인 윤원섭의 만남은 이 소설 [영원한 유산]의 내적, 외적 갈등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친일을 하였지만 그것이 훈장 같은 윤원섭이 바라보는 적산가옥 벽수산장을 바라보는 느낌은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이 전혀 없다. 그녀에게 그런 것보다 큰 불만과 치욕은 지방 출신이라는 것에 격분을 더 하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독립투사보다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을 욕하는 것에는 그의 친일 행적보다 지방 출신인 주제에 중앙 귀족인 척 행세한 신분 세탁자인 것이 화가 나는 부분이라고 했다. 귀족이 아닌 것이 귀족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눈에 밟히는 큰 죄가 되었다. 그의 다른 일부분의 행적들은 모두 그 밑으로 사라지는 연기 같은 것이었다.

 

이해동이 윤원섭 일가의 친일 행적을 애커넌에게 말해보았자 그저 지나버린 남의 나라 일뿐이었다. 문득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대상이 호주 대표 애커넌이 아니라 독일의 대표였다면, 폴란드의 대표였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포장으로 끝날 일이었을까.

애커넌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윤원섭의 거만한 모습이 흉하기 그지없다. 2년의 실형을 살고 나온 자의 모습에서는 반성이라는 것은 없고 다시 자신의 것을 찾으러 온 듯 당당함은 벽수산장의 숨은 곳을 알려주는 모습에서 더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에게는 이완용이 갖은 지방색이란 없다는 듯. 호수만 200여 평의 땅이라 아방궁이라 불렸던 그곳의 모습을 다시 찾은 자신의 영광인 듯 두 눈으로 담고 있을 윤원섭, 그 모습에 불같은 마음이 명치끝까지 타 올랐을 이해동의 얼굴은 또 어떠했을지.


 

“해동은 그 모든 울분과 통증을 넘어 마지막 한마디를 뱉었다. 아름답다.

저택은 아름다웠다.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기가 그렇게 고통스러웠다. 스스로 벼락이라도 때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윤덕영의 썩은 정신과 나라를 팔아먹은 자금으로 만들었는데도, 저택은 아름다웠다.“ P252




저자가 말하는 벽수산장이 너무 궁금해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을까. 저자의 소설의 시발점이 되었던 할머니와 찍은 사진 속의 멀찍이 찍혀 있는 그 유럽풍의 저택.




[송석원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47번지 일대를 말한다. 천수경(조선 후기의 위항 시인)이 송석원이라는 집을 짓고 살면서 그를 중심으로 열린 옥계시사 또는 송석원시사가 널리 알려졌다. 송석원시사의 부흥을 계기로 이 일대의 지명은 옥류동 계곡을 말하는 옥계(玉溪) 대신 송석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천수경 사후 송석원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장동 김씨라 불린 신 안동 김씨와 여흥 민씨를 거쳐 1910년경에 윤덕영 (순종의 계후 순정효황후의 숙부이자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형이다.)(이 송석원을 가지게 되었다. 윤덕영은 일제 강점기에 옥인동 땅의 절반 이상을 사들이고, 송석원 터에 프랑스풍 건물인 양관(洋館)이 중심이 된 벽수산장(碧樹山莊)이라는 저택을 지었다. 양관은 한국 전쟁 전후에 한국통일부흥위원단 청사로 쓰이다가 1966년에 불탔고, 1973년에 철거되었다. 해방 이후 옥류동 계곡 주변에는 많은 주택이 들어섰고, 주민들은 여전히 그 일대를 송석원이라 부른다.


벽수산장은 윤덕영이 프랑스에서 본 귀족 별장 설계도로 1931년 자신이 소유한 옥인동 대지에 저택 건설을 착수하여 1935년에 완공이 되었다. 윤덕영은 5년 후 1940년에 사망하였고, 이후 덕수 병원으로 쓰였고 한국 정쟁 중에는 미8군 장교 숙소로 이용되었으며, 1954년 6월부터는 한국통일부흥위원단 (UNCURK, 언커크) 본부가 입주하여 사용하다가 1966년 4월 5일 보수 공사 도중 화재로 전소되었다. 언커크는 화재 직후 외교 연구원 건물로 청사를 옮겼고, 양관은 총무처에서 관리되다가 1973년 6월에 철거되었다.- (부분 나무 위키 발췌)







화려한 양관은 모두 소실된 벽수산장은 서용택 가옥과 박노수 가옥이 부속 건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벽수 산장 정문 기둥 4개중 3개가 남아 있고 옥인동 62번지 소재 건물 동쪽에는 벽수산장의 벽돌담과 아치 흔적이 남아 있다. 역사의 기록이 담겨진 부분은 대부분 소실되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고 이제는 그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해동은 저택의 아름다움을 말하기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하는 상처를 갖고 있는 유산. 그런 유산을 낳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미 만들어진 시간의 흔적을 어떻게 지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불 타 소실된 건물을 바라보았던 해동의 무거운 걸음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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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에게만 가혹할까 - 자신에게 유독 엄격한 사람들을 위한 죄책감 버리기 연습
사이토 사토루 지음, 기즈키 지아키 엮음, 장은주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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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자책 버리기 연습 [나는 왜 나에게만 가혹할까]




일본의 한 정신과 의사의 50년 경력을 통해 쓴 책 [나나는 왜 나에게만 가혹할까]에서는 저자의 전문분야인 가족 문제의 해결을 하며 축적된 총 65개의 내용들이 담아냈다. 그중 기록해 놓고 싶은 것들만 발췌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2020년 출판사를 통해 받은 책의 리뷰를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상대가 바뀔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편이 낫다. 사람은 바뀔 필요가 있을 때만 바뀐다. 지금 변화가 필요하다면 당신 자신이 먼저 변화하라. 만일 상대에게 당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라면 당신의 변화가 상대의 변화를 이끌 것이다. P60


건강한 자기애를 기르는 법

- 허세나 허영이 아닌,

좋은 의미에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P 71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진짜 자신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내어 그 환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멋졌던 혹은 미래에 멋질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P76


비교 하려만 자기 사진과

- 비교당하지 않고 자란 사람은 자기평가가 높다. 자긍심이 넘치는 사람을 달리 말하면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다. P77


우리는 모두 평범한 인간이다.

- 의미 있는 인생이랑 실체가 없다. 그저 숨을 들이귀고 내쉬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인생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회복’이라고 말한다. P 84

우리에겐 선택한 권리가 있다.

-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우리는 희생자가 괸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고 내가 선택한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P92



부모의 아바타가 되지 않으려면

- 초조해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당신의 부모가 당신에게 했던 잔혹한 행동을 당신이 자신에게 되풀이하게 된다. 먼저 자신에게 상냥해지자. 이것이 나를 바꿔나가는 요령이다. P99


두려움의 정체를 찾아서

-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낸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거짓이다. 의식은 거짓밖에 떠올리지 않는다. P135


그럼에도 살아가는 힘에 대하여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에서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과거는 멀어지지 않고 뒤를 바짝 꽂아온다. P139


가족이 지옥이 되는 순간

- 가족은 남자가 여자를 때려도 어른이 아이를 학대해도 허용되는 일종의 무법지대이자 위험지대다. P151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법

-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나의 본모습을, 진짜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정신없는 일상 속에 파묻혀 침묵하고 있던 ‘나’ 자신이 비로소 자기주장을 펼칠 것이다. 고독은 진짜 나의 또 다른 얼굴이다. P164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의 특징

- ‘혼자 있을 수 없는 사람’은 상대를 지배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상대를 속박할 필요가 없다. 나를 사랑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P172



성격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 삶의 방식과 인품과 인격은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212



몸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어른이 되지만 마음은 애정을 주면서 잘 가꾸어야만 비로소 어른이 된다. 마음이 충분히 어른으로 성장했다면 내면에 머무는 어린아이를 적당히 어르고 달랠 수 있다. P215



분노가 억압되는 세 가지 구조

-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분노이며 분노는 그 사람이 지닌 욕구의 모습이다. 분노를 세련된 형태로 정리한 것이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이다.

원망 버리기 연습

- 우리 인생에서도 재고 조사를 통해 썩은 사과를 골라내야 한다. 우리 삶의 썩은 사과는 인생을 갉아먹는 ‘원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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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희극인 - 희극인 박지선의 웃음에 대한 단상들
박지선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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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도 재미있게 지내고 있나요? [멋쟁이 희극인 _박지선]



- 나는 넘어질 때마다 무언가 줍고 일어난다. P115




생일을 하루 앞두고 떠난 그녀의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그녀의 러빙유에 음악에 맞춰 들려줬던 돌고래 소리가 당황스러웠지만 그 배만큼 재밌었던 그녀. 그녀는 자신이 돌고래 소리를 낼 수 있는 장기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 웃음소리만 남기며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선 밖으로 사라졌다. 마치 스크린 속의 화면이 페이드 아웃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단 한 번도 화면 밖에서 본적도 없는 그녀의 떠남이 며칠 동안 슬펐다. 오랜 친구의 부고를 들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세상을 떠난 신혜철의 부고를 들었을 때의 울컥함이었다.


 

트위터를 하지 않아 그녀의 재기 넘치는 내용들을 다 알지 못했지만 기사화된 내용은 간혹 알고 있었다. 간혹 예능에 출연해 트위터 속의 내용을 얘기 할 때마다 왜 그녀가 개그맨인지 알겠다는 긍정의 끄덕임이 있었다. 어떤 이는 알고 있고 어떤 이는 알지 못하는 그녀의 트위터 속의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멋쟁이 희극인> 제목을 달고 159페이지라는 다소 얇은 책속에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는 아마 “엄마”일 것이다. 그녀보다 더 개그요소가 많았던 그녀의 이야기 속에 소재가 되어주고 그녀의 관객이 되어준 사람, 엄마.

6개의 챕터에 담은 그녀의 이야기들 속에 엄마는 그녀의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관객이었고 응원자였다. 그녀의 외모에 상처받는 말을 들어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엄마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


 

“엄마 처방

일부러 그 말이 듣고 싶어서 물어보거나 말을 걸 때가 있다.

나도 “아니야, 너 안 못 생겼어.” 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엄마에게 “요즘 나 최고로 못생긴 것 같아.” 했더니 엄마가 말한다.

넌 언제나 나한테 최고였어.


고맙다고 엄마!!” P30



"숨어


엄마에게 나의 숨은 매력은 뭐냐고 물었다.

“예쁜 얼굴.” 이라고 답한 뒤,

내가 좋아할 겨를도 없이 바로


“그러나 너무 숨어 있기 때문에 통 보이지 않지.”라고 한다.” P34




피부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그녀가 한 예능에 나와 분장하지 못하는 고충을 얘기했던 때가 기억이 난다. 남들은 더 뽀얗고 결점 없는 피부 톤을 만들 때 그녀는 스킨조차도 바르지 못했던 순간, 그 순간마저도 개그로 승화 시켰던 그녀의 그 짧은 얘기를 책을 읽으며 자신의 아픔까지 개그로 승화 시켰던 그녀의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마음의 평안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젤 용하다는, 못 고치는 사람이 없다는 피부 전문의를 찾아 대구에 내려갔고, 그 분은 내 피부 이야기를 듣고 보더니 딱 한마디 던졌다.

“지선 씨는 못 고쳐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에 평안이 찾아왔다. 그래, 그것이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이제 내가 나를 받아들인다. 인정해 준다. 더 사랑해 준다.” P109



그의 아픔을 공감해 준다고 해 주지만, 그 공감은 똑같은 아픔을 겪어보지 않는다면 모르는 일이 아닐까. 얼굴을 보여주며 웃음을 주려는 직업을 가진 그녀가 얼굴을 보일 수 없는 순간, 그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많은 시간들, 어떻게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녀의 고통은 없다. 깔깔거리며 웃는 박지선의 모습과 러빙유를 부르는 능청스런 그녀가, 스펀지 밥을 사랑하는 그녀가, 펭수 사인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그녀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를 떠 올리며 웃으며 사랑해주면 될 것 같다. 어느 날 유투브 알고리즘이 나를 박지선에게 인도하여 그녀의 개그에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면 너무 멀리 떠난 그녀가 멋쟁이 희극인 이었음을 다시 한 번 추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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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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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새 아빠라면 환영이지 [스텝파더 스텝 -미야베 미유키]




2004년 개봉한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속 4남매는 그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장남 야기라 유야와 둘째만이 홀로 된 엄마와 살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그 좁은 집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한명의 엄마 밑에 네 명의 아이들은 아버지는 달랐다. 가장 어린 막내를 키우지도 못하는 엄마는 다른 남자와의 동거를 위해 아이들을 또 버렸다. 오래된 영화의 엔딩이 아직까지 생각나는 영화 속의 두 소년이 소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거물급 추리소설 작가가 쓴 명랑 추리소설이라는 것이 당황스럽지만 읽는 동안 내내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 찾아간 신흥 부자 주택 단지로 도둑질을 하러 찾아간 주인공은 벼락을 맞고 두 쌍둥이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 되는데, 하필 그 아이들이 그 영화 속의 인물들과 너무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로 다니면서 집에서는 단 한명만 있는 것 같이 살고 있다.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기만 하는 두 부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정기적으로 보내졌던 그 돈도 어떤 때는 끊어지기도 한다. 우연치 않게 발견한 도둑은 쌍둥이들에게 발견되어 경찰에 잡혀가지 않는 대신 그들의 계부가 되어야 했다. 쌍둥이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자신들의 아빠가 되어 달라고 했다. 두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살핌 없이 살기란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간혹 학교에도 가야 했고 잘못 걸려든 일에 보호자도 필요 했다. 결혼도 안한 총각이 쌍둥이의 아빠가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쌍둥이 구별도 잘 못했던 주인공이 점차 두 사람의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게 된다. 해결 되는 일들을 통해 어느덧 세 사람과 주인공의 아버지까지 포함하여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형성되어 가는 모습도 읽는 동안 즐거웠다. 무엇보다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에 하나둘씩 참견, 참여하게 되는 두 꼬맹이들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그래서 미미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소설이 너무 낯설 것 같다. <화차>밖에 읽지 못했지만 미미여사의 작품들이 어떤 것들인지 알고 있는 독자로서 이 작품은 나에게는 참 너그러운 소설이었다. 흐뭇했고 즐거웠다. 잔인하지 않고 피 뚝뚝 흘리는 영상미 떠 올리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착한 이들에겐 상이, 악한 이들에게는 적당한 벌이 가는 권선징악의 모습이 새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쁜 부자들에게는 적당히 돈을 빼앗아 가는 홍길동 같은 주인공의 설정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한 것은 그들이 완벽한 가족을 이루지 못할 거라는 생각들 때문이다.


 

바람나서 집을 나간 부모 대신 잠시의 울타리가 필요했던 중학생 쌍둥이들에게는 주인공만큼 좋은 스텝파더가 없을 것이다. 적당한 무관심이 주어지는 자유도 좋았겠지. 미성년자인 두 쌍둥이들이 보호자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명 고아원으로 보내질 것이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선택은 그들을 보호해주는 보호자를 찾는 것뿐이었는데 그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 비 오는 그날, 벼락이 쳐서 쌍둥이들 앞에 놓아 줬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직은 결혼 따위 관심 없고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관심도 없는 주인공에게 집에 빨리 오라는 아이들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면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그런 모습을 더 보고 싶은데, 이야기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그런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미미여사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는 휴식 같은 소설이었다. 그녀도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았을까?


 

“쌍둥이의 아버지는 언젠가는 반드시 집에 들를 것이다.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도 그렇게 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언제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하늘을 흐르는 강이 어디서 끝나는지 누가 알까. 운명도 미래의 일도 그와 같은 것이다. 가야 할 곳으로 갈 따름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흘러가면서 즐겁게 살자.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니까.” P358



새해니까 생각해 본다. 뭘 어떻게 몸부림치며 살지 말자고 말해본다. 흘러가면서 즐겁게 살자.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자.

절판된 책을 가지고 있는데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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