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지은이) | 문예중앙 | 2011-07-11  

여행을 잘 다니지는 않지만 어딘가든 찍어 오는 사진들은 늘 그곳의 풍경사진들 뿐이었다. 사람을 넣지 않는 사진들때문에 간혹 지은들은 왜 사람이 없는 사진들만 찍어 오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나의 철학은 그런것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직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크다고 할까. 사람이 없어야 같이 갔던 혹은 혼자 스쳐갔던 그때의 모습을 다시 떠 올려 보고 싶은 억지같은 마음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였는지 작가마다 사진속에 담아 놓은 그 철학들을 알고 싶을때가 많다.  책에서는 우리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던 풍경의 한장에 대한 철학을 들려 줄것 같다.  

 

 

 

 

이중섭을 훔치다 
김영진 (지은이) | 미다스북스 | 2011-07-11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그것도 역경이 있었던 인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림 한장으로 이중섭을 알기에 부족했던 사람들을 그림과 함께 감동시킬것이다. 그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은 우직한 소처럼 기다려야 할것 같기만 하다. 책의 첫장을 넘기는것부터 어디선가 낮은 소의 울음소리로 신호를 받으며 펼쳐야 할것 같은 판타지가 열리는것 같가.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ㅣ 서양 미술사 2     
 
그는 왜 이다지도 많은 이슈를 만들고 다니는 것일까. 그의 말 한 마디가 큰 파장을 낳는 다는 것을 그는 즐기고 있을까. 늘 궁금했지만 독자들은 그의 미학에 빠져들고 그론 이슈따위는 사라져 버린다. 그가 들려준 미학오디세이도 참 즐거웠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작가로서의 진중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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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의 권유
이중재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독학의 권유

 

사람들은 내게 참 손재주 좋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요리, 바느질, 비즈, 홈베이킹, 떡 만들기, 리폼 등등 손으로 하는 것은 대충은 어깨너머로 배워 거의 다 하는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뭐 하나 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것이다. 죄다 인터넷 고수들을 따라하며 조금씩 맛보기 식으로 하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나 선물 할 뿐인데 인터넷 고수들을 모르는 지인들은 나를 손재주가 탁월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문득 뭔가 전문가적인 솜씨를 낼 수 있는 것을 하나 완전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늘 아마추어로 사는 게 뭐가 나쁜가 싶은 생각에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할 줄 아는 걸로 만족하며 살기로 했었다.

생각해 보니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책을 구입해서 독학했던 것들이 위의 것만이 아니다. 나는 피아노도 기타도 모두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물론 피아노는 베토벤이나 체르니30까지는 안되지만 악보를 보고 어느 정도 칠 수 있는 정도로 책을 사서 마스터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기타는 제법 코드를 잘 외워 동아리 모꼬지 갈 때면 밤에 모닥불 피워 놓고 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실증을 잘 느낀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씩 해 놓고 재미없으니 거기서 끝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그동안 아주 조금씩 맛만 보았던 것이 좀 아쉽기는 했다. 내가 어떤 것이든 하나에 몰두하지 못했던 것은 뭐든 시간이 없어서 그걸 다 배우기에는 벅찬 일상이라는 생각이 많았던 것도 있었다. 물론 이것이 사실일수도 있지만 흔한 변명일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며 나를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전지훈련을 외국으로 나가는 도중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쓰지도 못하고 영어를 읽지를 못해 대학교 미팅 장소를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왔다는 에피소드를 말하는 저자는 지금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재직 중인 사람이다.

알파벳도 모르던 축구선수가 축구를 그만두고 독학 4년만에 사법시험에 합격을, 그것도 그전에 법무사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그의 일화를 통해 독학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알려주는 이 책은 그간 읽은 자기계발서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혔다.

먼저 그가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많은 이들에게 자극적이다. 고승덕 변호사처럼 원래 머리가 좀 좋고 나름의 배경이 있었던 그의 행시, 사시 합격이 대단해 보이기는 하지만 놀랍거나 자극까지는 되지 않았다. 뭔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조건의 이면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 알파벳을 모르고 대학교 때는 영어 단어 뜻도 몰라 카페를 찾지도 못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무식한 운동선수였던 그가 이뤄낸 행적은 마치 나도 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극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그보다 나은 상황이니까 그 물에 발 담가 보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어설픈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뭘까.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먼저 학원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스스로 공부를 하라는 독학의 의미는 절대적인 공감을 준다. 전국 상위 1%의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보다 학교에 돌아와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스스로 그날의 학습을 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학습이라는 말 자체가 배우고 익히는 행위인데 학교 가서 배우고 학원에서도 배우며 익힐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다. 그런 면을 보더라도 스스로 독학을 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 독학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남들이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갈 자리와 가지 않을 자리를 가려 원하는 공부에 몰두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저자의 그런 얘기에 백번도 더 공감할 수밖에 없다.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 할 것이 아니라 기억력과 저장을 방해하는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취미 생활을 하고 하루에 10분 이상은 꼭 운동을 하며 즐거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기꺼이 함께 어울리며 하는 독학은 고통스럽지 않을 것 같다. 한 가지만 오래 한다고 해서 집중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오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끝까지 지루함을 참았던 몇 번의 일이 떠오른다. 몰입의 속도는 빠르고 그것을 습득하는 시간도 비례할 것인데 오래하면 좋다고 생각 했었을까.

안철수도 바둑을 배우기 위해 바둑을 알려고 50권의 책을 구입해 읽었다는데 나는 뭔가를 알기위해서 넘쳐 나는 인터넷 자료 몇 장으로 스스륵 배우고 그것이 끝이 되었던 학습이 너무 많다.

“공부는 1,000피스의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1,000피스의 퍼즐을 한꺼번에 맞추려면 힘이 들지만, 100피스씩 나눠 맞춘 뒤 한데 합치면 금세 맞출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작은 성취감들이 모이면 보다 쉽게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P93)

 

롤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듣는다. 그의 모습을 닮기 위해 그가 노력한 만큼 나 또한 투자해야 한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요즘 나의 숙제는 롤모델의 모습을 따라할 롤모델 찾는 일이다. 요즘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저자들도 많고 사람들도 그렇다.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기위해 가장 큰 숙제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독학의 중요함은 스스로를 진단하기 위함이고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긍정의 힘으로 끝까지 자신을 다독이며 앞서 나가라고 말한다. 늘 10후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우선 꿈꾸기 전에 독학을 해야 할 바둑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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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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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김려령의 이름만 들어도 완득이가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한다. 그리고 입가에 웃음이 살짝 번진다. 완득이를 탄생시킨 그녀의 작품을 또 읽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이란 말인가. 김려령은 나처럼 이렇게 그녀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지만 얼마 전에 읽은 <마당을 나온 암탉> 때문에 요즘 동화에 빠져있다. 그래서 김려령이 선택한 동화에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직도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동화가 이렇게 사람 가슴을 울릴 수 있다는 새로운 기쁨이었다.

 

김려령은 이번에 자신에게 딱 맞는 등장인물을 선택했다. 집단 따돌림으로 고통 받다가 세상을 등진 중학생의 주인공,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었던 고딩 완득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번은 동화를 쓰고 있는 작가인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다.

동화 작가가 되어서 자신의 책이 서점에 있는 것을 볼 때면 부끄럽지만 그것이 좋아서 웃고 다닌다는 소박한 그녀처럼 < 그 사람을 본적이 있나요?>속의 화자는 문학상을 타고 동화작가로 등단한 작가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의 서술 구조를 얘기 할뿐 풀어 나가는 인물은 따로있다.

 

십여년 전에 갔었던 필리핀의 작은 동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도로에 신호등과 건널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도를 지나는 차선만 있을 뿐, 사람들이 건너가야 할 건널목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는 큰 도로는 놀라웠다. 무섭게 지나가는 차들을 지켜보며 건널 때마다 오금이 저렸다. 해외에 와서 이렇게 무단횡단하다 죽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지만 무단횡단의 걱정스러움이 어느덧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곳이 있다. 사람이 먼저가 아닌 차가 먼저가 되어버린 도로. 어느덧 사람이 서 있을 곳은 없고 차들만 쉴 수 있도록 만들어져버린 도로에는 한손을 예쁘게 올리고 건너 갈 수 있는 건널목이 너무 멀리 있거나 없을 때도 있다. 그런 곳에 ‘건널목’씨가 나타났다. 위험한 도로를 건너게 할 수 있도록 가방에 건널목을 그려 넣은 천을 깔아 없던 도로를 만들어 주는 건널목씨. 화자 ‘나’는 잊지 않고 있었던 오래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의 즐거운 글쓰기가 시작된다.

 

등단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될 것 같았다고 말했던 선배가 떠올랐다. 몇 년 동안 고생해서 작품 써서 등단했더니 작가가 되겠다고 열심히 썼던 글들은 모두 초기화가 되고 등단 이후부터 다시 처음이 되었다고 했다. 화자 ‘나’도 그렇다. 동화 작가가 되었지만 매일 종이를 찍어내듯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작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느라 지내야 하는 시간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심난한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창작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아무것도 안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시작한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 보통은 글쓰기 교실인데 작가 오명랑은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준비를 할수 있는 교실을 열었다. 아이들의 얘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하는 얘기들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은 시범적으로 한 달간 무료라는 것에 아이들은 오명랑을 찾아오게 되고 가슴에 꺼내기 어려웠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국어는 딱 하나였는데 요즘은 국어도 4종류로 나눠져 있다. 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 수업으로 나눠져 있고 듣기 수업에서는 동화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서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수업이더라. 어쩌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내가 아이들의 국어 과정이 바뀌어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리고 국어가 이렇게 나눠져 목적에 맞게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문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일에 서툴기만 하다. 그래서 오명랑의 듣기 수업은 참 특별한 것 같다. 나의 얘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도 듣기가 잘되어야 할 텐데 그런 부분은 학습에 소외되기 일쑤다.

 

오명랑의 듣기 교실에서 시작된 건널목씨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건널목씨가 아파트 사람들의 배려로 비어있는 경비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돈을 받지도 않고 경비일을 봐주며 아이들을 위해 무거운 건널목 천을 가지고 다니지만 아동 성추행 범으로 오해를 받는 장면들이 나온다면 상처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뻔한 스토리 전개에 더 실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김려령은 그런 상투적인 구성을 하지 않았다. 고마웠던 부분이었다.

감동을 받았던 그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스토리 전개가 이뤄진다면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은 절대로 기다려지지 않을 것이다.

뻔한 결말이 아닌 작가 나름의 고운 심성으로 결말이 맺어진 작품이었지만 사실 조금 심심한 부분도 없지 않아 뭔가 많이 먹었지만 헛배가 불러온 느낌이다. 아직도 김려령의 작품들에 독자인 내가 더 목마른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그런 좁은 도로를 지날 때면 나는 뒤뚱거리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다가는 건널목씨를 떠올릴 것이다. 그가 나를 위한 건널목을 깔아줬으면 좋겠다. 매번 선택의 순간에 갈팡질팡하는 나를 위해 건널목을 놓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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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그의 화려한 입담에 수많은 어록들을 만들어 낸 2000년도의 초반 시절을 기억한다. 예능 프로에서 그가 던진 말 한마디들이 많은 공감을 자아냈고 인간 김제동이라는 사람에 대한 매력이 급상승했다. 비록 그가 우월한 키와 몸, 얼굴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다독으로 쌓인 그의 지식과 경험은 김제동이라는 아이콘을 만들어내며 공감 백만 개를 달아줘도 될 것 같은 어록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의 어록들이 어느 순간 빛을 바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가 있었던 자리에 김제동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많은 어록들은 어느덧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웃음을 줘야 한다는 예능 속에서 웃음보다 진지하고 심각함을 던져주어서 스스로도 예능과 맞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나영석 피디와 함께 나눈 담화에 큰 공감을 이룬다.

비록 예능을 슬프게 만드는 사람일지라도 김제동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는 저버릴 수 없다. 그의 화려한 입담처럼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지라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제동과 만남을 이루는 사람들과는 예능에서 잊힌 김제동이 아닌 깔맞춤을 입은 듯 한 그의 옷차림과 딱 맞는 자리였다. 소설가 이외수, 정치가 이정희, 방송인 나영석 피디, 아이돌 스타 소녀시대 수영, 그의 교수이자 시인인 신영복 교수님, 놀랍도록 모든 사물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얘기해 주는 과학자 정재승 (그의 책을 지금 읽고 있는데 정말...재밌다. 과학 콘서트 왜 이제야 읽은 것일까.), 올림픽 축구 대표 감독이라는 말보다는 2002년의 마지막 미소에 눈물을 흘리게 했던 홍명보, 그리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더 좋아졌었던 나우콤 대표 문용식 (하지만 지금 그가 운영하는 클럽박스의 변형된 지금의 모습에 많이 화가 난다.) 예술과 방송을 떠난 모든 분야를 아울러 만났던 그의 얘기들은 참 재미있다. 특히 고현정의 대화들은 거의 코미디 급이다. 그리고 그의 가장 절친 김씨와의 만남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만나야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제동이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그의 대사는 어이없지만 그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였다.

 

“넌 나름의 도랑이 생긴 거야. 물이 떨어지면 어디로 흘러갈지 아는 거지. 사람에게 그게 생기면 피곤해. 제동이 넌 늘 착하고 따뜻하고 기부 잘하는 사람, 난 늘 불평하고 투덜대고 오만방하자고 버릇없는 사람. 이게 각인돼 버린 거지. 그래서 나는 편해. 내가 뭘 해도 제재나 뒷말이 없지.” (P140)

 

사실 이 말에 어느 정도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김씨의 철학에 나는 사실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역시 김씨는 김씨의 철학으로 살아 갈 뿐인 것이다.

 

그러고 나면 죄책감이나 두려움 같은 느낌 들지 않아?

- 물론 가끔씩 ‘너무 재수 없게 보였나’하는 죄책감도 들긴 해. 그렇지만 난 오만하고 이기적인 직업군에 있는 사람이야. 이래도 된다고 생각해.” (P142)

 

정말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번엔 내가 김씨를 찾아가 다시 질문을 하고 싶어지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김제동이 말 잘하고 기부 잘하고 산을 좋아해 사람들과 산을 오르고 책을 많이 읽고 있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기보다 언젠가 나왔던 인터뷰의 얘기에 인간 김제동이라는 사람이 싫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그는 간혹 텔레비전에 장가가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다소 오해를 할 수 있는 얘기를 했었다. 그는 마누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많은 누이와 어머니를 모실 며느리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집안에서 많은 누이 밑에 아들 하나인 귀여움을 독차지 할 것 같은 막내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효자라는 것은 유명하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효도 할 며느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뜨악해 버렸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효자라는 어떤 드라마속의 대사가 울리며 그의 결혼관에 사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분명 인간 김제동이라는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다. 그의 달변에 녹아들만큼 세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이인 나이지만 역시 그의 말 한마디가 때로는 그 어떤 명언보다 더 절절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가 계속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김제동을 만나는 것일까.

그가 소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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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받아들고 표지에 심취했다. 이 기괴하고 요상한 그림은 무엇이란 말이냐. 너무나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는 그림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의 자괴감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마음이 간절하기만 하다. 불편하고 쉽게 와 닿지 않는 그림들이나 영화의 한 장면들은 빨리 지나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만 좋아하는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은 영화도 피 철철 넘치는 하드고어 장르는 피해서 선택해 보는 편이다. 그림 또한 예쁜 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을 보고 있는 순간을 즐긴다고 볼 수 있겠다. 문학 또한 스릴러 장르와 내가 맞지 않는 부분도 영화를 고르는 기준과 부합한다. 이런 예술 장면 속에 지극히 평범하지 않는 부분들, 그로테스크한 부분을 배제 한다면 예술이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문학과 영화, 그림들 속에 그로테스크한 부분들이 삽입되면서 좀더 자유롭고 큰 범주를 넘어 설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라는 책은 명제를 확실히 하고 시작한다. 우리가 말하는 그로테스크란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시작하는 것은 방대한 예술 분야를 들어가기 위한 범위를 정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의 목적은 다소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져 온 용어의 역사에 기대어 그로테스크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이 원칙을 기준 삼음으로써 주제의 범위는 물론 15세기 후반부터 현대까지로 시간적 범위도 한정할 수 있었다.” (P26)

 

"그로테스크[grotesque]: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한 말로 15세기 말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특정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는 용어.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다." (P42)

 

독일의 문학 평론가 볼프강 카이저가 1950년대에 펴낸 이 책의 현대 미술과 문학에 포함된 부분은 21세기와는 사실 많이 동떨어져 있는 부분도 있다. 50년대에 모은 자료들의 정의를 부정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부분의 예술 부분들은 벌써 근대에 있는 범주에 속해 버렸기 때문이다. 볼프강이 느꼈을 현대의 예술은 이제 근대의 예술이 되었고 그렇게 놀랄 만큼 그로테스크가 아니다. 언젠가 일본의 영화감독의 영화 한 장면을 보면서 경악 할 수밖에 없었던 그 부분 또한 볼프강이 정의한 그로테스크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 이론서를 만날 때마다 미학 부분에 너무 부족한 학식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먹으며 더 매진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열정이 없다는 것에 더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광범위한 예술의 범주 안에 그로테스크가 자리 잡은 부분과 그로테스크의 확장으로 인한 예술의 완결성을 얼마나 가지게 되었는지 그 부분도 알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많은 예를 들어 놓은 작품 속에 가장 와 닿았던 작품은 당연히 카프카였다. 그 이후의 작품들과 작가들에게는 사실 1950년대에 나온 이 책의 예들이라면 상당한 고전들인데 그 고전들을 만날 수 없었던 내 지난날이 아쉽기만 했다고 해야 할까.

 

예술 범주 안에서 만나게 되었던 그로테스크의 범주들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것만 확실히 느낄 뿐, 저자가 내세운 미술 작품역시 많이 접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아쉽기만 했다.

손철주 작가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작품의 제목을 탓한 적이 있었는데 어쩜 그 말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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