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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평점 :
매번 그런 생각을 해 왔다. 나에게 일정 기간의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여행을 할 것인가. 그럴 때 생각하지도 않고 말 할 수 있는 여행지는 번호 3번까지는 나올 수 있다. 첫째는 산티아고의 800키로가 넘는 길을 걷는 것이고, 둘째는 더운 인도의 길을 돌아다니는 것이고, 셋째는 스위스의 융프라우에 가는 것이다. 스위스를 빼면 나머지 여행은 한 달 이상의 시간이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주며 선택하라고 하면 너무 많은 나라들이 줄지어 있어 쉽게 떠올려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고민을 안고 한 달에 한명씩 바통을 이어 태마가 있는 여행을 가게 해준 프로젝트로 책이 한권 나왔다. 한명이 떠났다 돌아오면 다른 한명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자신만의 여행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기획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여행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설레는 사람들이 있는지. 은희경의 호주, 이명세의 태국, 이병률의 핀란드, 백영옥의 홍콩, 김훈의 미크로네시아, 박칼린의 뉴칼리도니아, 박찬일 셰프의 규슈, 장기하의 런던 그리고 리버풀, 신경숙의 뉴욕, 이적의 캐나다. 책을 읽는 것은 그들과 동그란 지구를 돌고 오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여행을 시작한 은희경의 여행의 의미는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은 호주였다. 사실 조금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의 도시를 탐색해 줬으면 했던 작가 중에 한명이었는데 그녀의 선택의 나라가 조금 시시한 것 같았는데, 그녀의 와이너리에 대한 얘기에 시시함이 사라졌다.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추운 겨울날 마시는 뜨거운 뱅쇼는 좋아한다. 싸구려 와인을 넣었을 때와 조금 돈을 들인 와인을 넣었을 때의 뱅쇼의 맛을 아직 구분하지 못하지만, 뱅쇼 때문에 와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은희경의 호주 얘기에는 흥미로운 와이너리에 대한 얘기보다 역시 그녀의 삶을 통한 글이 더 좋았다. 풍경을 더 보기 위해 헬기를 타고 웅장한 자연의 규모에 자신의 속의 어떤 공간을 더 넓혀 오는 느낌을 받아 오는 그녀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을 느끼는 건 익숙함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낯선 것 가운데에 들어가면 간혹 내가 더 또렷이 보인다. 내 삶의 틀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의 더러움과 하찮음도 보게 되고, 무심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깨친다.” P42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도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것, 낯선 나를 만나는 것일까. 그리고 작은 나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나로 돌아가 다시 갈아가는 것, 그것이 그녀의 여행의 이유였을까.
모든 이들이 여행지를 고른 이유 중에 사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테마가 이명세였다. 그는 영화 준비를 하고 있었고 배경을 태국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 이런 여행기속에 꼭 자기 성찰의 부분만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영화를 위한 답사로 선택된 태국에 이건 아니지 싶다. 마치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느낌이랄까. 사전 답사는 자신의 돈이 아닌 남의 여력을 빌려 갔다 온 것 같아 그의 여행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 블로그들이 워낙 많으니 조금만 찾아보아도 갔다 온 것 같은 여행기들이 많아 어쩌면 여행기속 사진들이나 나라들은 식상 할 수 있을 같다. 그런 부분에서 김훈과 박칼린이 선택한 나라는 최고였다. 이름도 어려웠던 김훈이 찾아간 미크로네시아. 그의 여행 태마는 또 얼마나 거대한지.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라고 한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심연의 바다는 심장이 단단해졌다. 심연 공포증이 있는 나는 이런 깊은 물 사진을 잘 못 본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래서였을까, 인간이 참 무력 하다는 것 그 심연을 보는 순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미크로네시아_ 깊은 우물같은 이 아름다움
그녀의 눈처럼 신비로운 해안의 색을 가진 뉴칼리도니아의 무인도. 박칼린의 자유분방한 모습과 많이 닮아 보였다. 그녀가 감독한 뮤지컬을 한편도 본적이 없지만, 그녀의 에세이 한권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은 갈 수 있었는데, 그녀의 여행 준비가 나와 많이 닮았다. 여행을 가지전에 사전 작업을 많이 한다. 여행 갈 나라의 서적을 읽는 것은 기본이고 다녀왔던 블로거들의 여행기를 한 달 정도 찾아다니며 읽는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 한다고 한들, 여행은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준비 되어 떠나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준비 되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 여행일 것이다. 그저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여행이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라고 한다. 그 어떤 것도 땔 수 없고 때로는 어디든 있는 것이 물이고, 도착 후 간절하게 바라는 시원한 생수고, 감정이 닿으면 툭하고 쏟아져 내리는 눈물 같은 수도꼭지라고 나만의 그녀의 여행을 정리해 봤다.
뉴칼리도니아_ 그녀의 눈처럼 아름다웠던 그곳.
그녀의 여행지 선택도 그녀처럼 감각적이다. 바다로 가라고 바람이 말했다고 하지 않던가. 재치와 감각이 고스란히 자리 잡은 푸른 바다가 가득한 여행, 아름다웠다.
박찬일의 여행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화룡점점을 찍지 못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맛있는 음식도 함께여야 하니까. 그의 여행의 의미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하는데, 딱 맞는 여행지의 선택이다. 일본의 큐슈 에키벤 여행. 신칸센에서 먹는 도시락이라니. 얇은 대나무로 만든 도시락 통에 매실 장아찌, 연근, 은어 한 마리까지 들어있는 도시락을 먹으며 가는 기차여행은 낭만적이다. 이것이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 기차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가 번진다. 마치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먼저 기차를 타고 도시락을 먹으며 한번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신칸센의 도시락.
이 여행기속 가장 빛나는 글을 역시 모든 여행을 함께한 이병률의 핀란드 여행이다. 여행에 동행했던 작가들이 쓴 글들보다 일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한 그의 내면의 마음이 가장 빛나 보였다. 물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중에 하나인 핀란드여서 더 눈이 반짝였는지 였을 수도 있다. 그에게 여행이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라는 말에도 나에게 여행이라는 의미와 가장 비슷하다. 지금을 살고 있지만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 순간은 지금이 아니고 언젠가, 혹은 아주 오래전 때로는 미래의 어디쯤이라고 생각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은 더 아련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맞는 것이 아닐까.
그곳은 언제나 크리스마스 _ 핀란드
문득 나에게 여행의 의미를 물어 본다.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몇 년 전 해남을 갔다 오면서 나는 친구에게 이런 문자를 한통 보냈었다.
“새해, 여행을 했어. 나에게 여행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었어. 지금 서울을 올라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어 행복해.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봐”
내게는 여행이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떠났던 자리에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곳이 있는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여행을 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추억을 간직하며 지금의 자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 얼마 안 된다.
이런 나의 생각과 많이 맞닿아 있던 박칼린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흘렀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내가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라면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보다. 난 어느 날 멋진 뉴칼레도이나 남자를 만났고, 그의 멋진 등을 보며 상상의 세계를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게.“ P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