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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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명사]: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사전적 의미 : 하천바닥이 폭포만큼의 경사보다는 작은 급경사를 이루어 물의 흐름이 빠른 부분을 말한다. 여울의 하천바닥은 주로 굵은 조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이 소리내어 흐른다.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 표지에 반했다. 반짝이는 꽃분홍색이다. 노신사가 한껏 차려입은 정장에 맨 보타이 같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이 책은 황석영의 나이 칠십을 앞두고 만들어 졌으니 화려한 인생을 잘 치르고 있는 기념식에 맞는 표지로 잘 골랐다 싶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얻어 들었던 책 중에 <사라진 직업의 역사>에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소재를 삼아 책을 써 본다면 이런 직업이 좋겠다고 말했었던 것 같은데 벌써 황작가님이 소재를 가지고 책을 내셨다.

19세기 구한말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운동등의 배경으로 이신통을 향한 한결같은 연옥의 사랑으로 책은 끝을 맺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이었던 동학이 천도교를 소설화하여 천지도라는 종교를 만들어 냈다. 집이 없는 떠돌이도 아닌 이신통은 천지도라는 종교의 신자로, 이야기꾼이 되어 전국을 떠돈다.

 

 

관기였던 월선은 선전관과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연옥이었다. 월선은 구례댁으로 불리며 연옥을 관기였던 자신처럼 되지 않게 키웠지만 결국 오동지의 재취로 보내게 된다. 자신의 처지가 미천하니 돈 많은 집안의 재취로 들어가 귀여움 받으며 살길 바라지만 구례댁의 팔자처럼 순탄하지 않은 것이 연옥의 팔자였다. 재취로 들어간 집에서 화적이 아니타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가슴에 품었던 이신통을 그리워하며 살았기에 미련 없이 친정으로 돌아왔다. 결혼 전 이미 이신통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연옥은 이신통을 그리워하며 어머니와 함께 객주를 꾸려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이신통을 다시 만났다.

시대가 동학운동, 갑오개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었으니 주인공들의 삶이 평탄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이신통은 여러 번 운동에 참여하여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런 이신통을 다시 살려냈던 것이 연옥이었다.

 

 

소설의 제목이 여울물 소리인 것도 어찌 보면 연옥의 삶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폭포만큼의 경사는 아니지만 작은 급경사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은 모두의 삶일 수 있겠다. 그 하천 바닥에 깔려 있는 조약돌은 여옥 같은 신분이 낮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여옥이 마지막까지 어찌 살다 죽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신통이라는 인물이 남겨준 아들과 평생 자신의 남자였던 그를 그리워하며 살았을 그 모습이 여울물 소리처럼 흐르며 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까무룩 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P488

 

 

황석영 작가가 출소한 뒤 처음 나온 <오래된 정원>을 읽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 속에도 한결같은 사랑이 존재한다. <여울물 소리>에서도 한결같은 여옥의 사랑이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 책이 전작들에 비해 감흥이 덜 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 절반이 어찌나 지루한지. 이신통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친구가 궁금하지도 않은데 자꾸 지난날을 얘기해줘 어쩔 수 없이 귀찮지만 들어주는 척하며 있었던 기분이라고 할까.

 

 

전작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오래된 정원>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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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연애
성석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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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책이 나오면 반가운 사람이 있다. 몇몇 작가의 책은 표지에 인쇄인 이름만 봐도 오랜 친구 같은 사람이 있다. 그중에 한명이 성석제였다. 그의 오랜 팬으로 편중된 책 읽기였다. 성석제의 모든 장르의 책 중 유독 단편을 훨씬 좋아했다. 단편이 주는 짜릿한 반전과 유쾌한 통찰이 좋았고, 짧지만 긴 여운이 남아서 뒷얘기를 또 써주지 않을까 싶어 다음편의 단편들을 뒤적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내게 성석제의 장편은 이벤트 같은 느낌이 많다.

 

 

장편 중 <순정>을 제일 좋아했는데, 2007년에 <도망자 이치도>로 제목이 바뀌어 다시 나이기도 했다. 순정이 장편이지만 단편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들어 가 있는 것처럼 짧은 반전들이 볼만했다. 소설만 생각하면 그는 참 쿨하고 재치 넘치는 때로는 차도남 같은 분위기의 작가라고 할까? 그런 그가 난생 처음으로 연애소설을 썼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성석제와 연애는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 그래서 이었는지 책 표지도 그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성석제는 나름 젠틀한 남자인데 말이지, 표지가 작가와 어울리지 않게 촌스럽게 만들었을까?

 

이야기는 60년대, 아니 해방 이전부터 어진 어느 고래잡이와 일본인의 집에서 식모살이 하는 여자가 만나 딸을 낳고, 해녀의 아들과 운명적인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소설 배경이 작가의 나이와 비슷한 연도를 가지고 시작된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도 이렇게 촌스러웠던 것일까.

 

고래잡이 딸 민현은 주인공 이세길과 초등학교부터 동창이다. 세길은 그녀의 첫 인상을 잊지 못한다. 그런 첫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연정이 쉽게 멈추지 않고 흐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매력적이라고 서술한 부분들이 참 많다. 이런 여자, 어디서 본것도 같은데 어디였을까.

 

 

“확실히 그녀는 비상한 언어력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썼던 은어나 일본말까지 그녀의 자산이다. 그보다 더 체계적인 고향의 사투리, 그 시절의 언어는 그녀가 능통한 또 하나의 언어 역할을 한다. 고향의 언어는 그 언어와 그 시절을 공유한 사람을 직격해 무장을 해제해 버린다.” P86

 

 

"남자들은 민현의 미와 매력에 끌려 접근해 와서 치근덕대는 것은 당연하고, 고래 수컷처럼 옆에서 다른 수컷이 죽어 나가도 암컷 주변을 맴도는 건 당연하고, 민현이 더 이상 관심이 없게 된 남자를 멀리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그것은 오히려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전리품이나 쟁탈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하는 자연스러운 전략일 수도 있었다." P147

 

 

60년대의 그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올라가고 민현은 늘 무리에서 뛰어난 인물이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하기에는 너무 어린 녀석들은 이제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는 나이가 되면서 또 시간이 흐른다.

 

시대마다 중요한 이슈가 있었던 때를 거론하며 그들이 시대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민현을 외면하기위해 멀리 떠났거나 일부러 평범한 자신을 더 평범하게 살기위해 노력했지만 민현과 세길은 꼭 그렇게 만나야 할 사람처럼 다시 만났다.

 

 

포항에서 다시 서울로 대학을 다녔던 세길은 민현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민현을 찾아 다녔다. 그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 고래잡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자유로움과 바다의 향취를 가지고 있던 그녀를 세길은 늘 찾았고, 눈에 두었다.

80년대의 우울한 대학 생활을 보낸 그들 세월의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것이었을까? 고래 사냥이 금지 되면서 더 이상 고래를 잡을 수 없어 직업을 잃은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위한 마지막 고래잡이에서 실종이 되었다. 아홉 살 어린 딸을 놓고 서울로 도망간 엄마는 그녀가 서울이라는 바다에서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제력을 마련해 주었다. 아버지가 실종된 바다, 그녀에게는 그녀가 디디는 좁은 길도 고래를 찾아 떠났던 바다였다. 그녀가 고래였다면 세길은 그녀를 위해 떠있는 섬이었다. 그녀만이 찾을 수 있고 그녀만이 쉴 수 있고 환영이었다.

 

 

육국에서 전경으로 척출된 세실은 경찰병원에서 육 개월을 입원 치료해야 할 만큼 동료와 선임들에게 맞았다. 꼭 그때의 고통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그는 요양을 해야 할 만큼 지쳐있었고 힘들었었다. 바다를 떠 나니는 민현보다 민현을 기다리는 세실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하는 그녀는 세길에게 정박하지 못하고 다시 고래를 찾아 떠났던 아버지처럼 사라졌다.

 

그런 민현을 그리워하는 세길은 민현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녀를 낳아준 어머니까지 은인이라고 말한다.

 

 

“민현의 어머니는 내게는 은인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주었다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풍파를 헤쳐 나가야 했을 때 늘 어둠 속에서 나를 밀어주었다.”P256

 

 

세실에게만 민현이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졸업을 하고 취직이 되지 않을 때 그의 직장이 결정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민현 때문이었고, 바다 속에서 젖을 먹여주고 바닷물의 저항을 덜 받게 수면으로 들어 올려준 어미 고래는 민현이었다.

 

왜 민현에게 세실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느냐고 물어 볼 수 없다. 사실 책 중간까지 좀 지루해서 역시 성석제에게는 연애 소설은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민현이 왜 세실에게 정박하지 못하며 표류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 궁금해서 끝까지 책을 놓지 못했다. 민현은 그런 여자였다. 오로지 사랑밖에 필요 없는 것 같지만, 사랑이 또 그녀를 떠나게 만드는 여자. 세길은 민현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녀가 태평양 어디쯤 자유롭게 떠돌다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 올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그녀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세길이고, 세길의 사랑이다.

 

간혹 이런 책을 읽을 때 마다 나는 세상에는 운명적인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번 생을 모두 소비하는 날들을 가진 사랑. 하지만 그 사랑이 나에게는 이번 생에는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간혹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언젠가 내게 다음 생이 허락 된다면 민현과 세길 같은 사랑을 꼭 해 보리라.

 

 

“나는 멋진 인생을 살았어. 너 때문에. 당신 덕분에. 고마워. 고마웠어요.

너는 나를 기억하겠지, 클레멘타인.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민현.”P297

 

 

“그녀는 떠났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침묵하리라. 침묵으로도 수많은 말을 대신할 수 있다. 그렇듯, 삶에서 그렇듯이.”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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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박이정 지음, 이우정 극본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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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본 드라마 중에 베스트 중에 하나가 [응답하라 1997]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주연배우들에 기대어 드라마를 볼 수는 없었지만 입소문이 좋아서 중간부터 본방 사수하고 그 전편은 다시 보기로 몰아서 봐줬다. 가수 서인국과 정은지의 경상도 사투리가 입에 착착 감기게 대사를 해서 경상도 지역 출신들인가 했더니 그렇다고들 하더라. 어쩐지 억양이 남다르다 했다.

 

사실 나는 H.O.T의 시대는 아니다. 나의 청춘을 모두 앗아갔던 사람은 서태지뿐이었다. 서태지 이후로 가수에 미처 콘서트에 가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요 근래 그런 마음을 다시 불사르게 했던 건 버스커버스커 뿐이었다고 할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버스커 팬카페에 좀 많더라. “서태지 이후로 가수에게 빠지긴 처음이에요.”라는 게시판 덧글이 어찌나 많던지.

 

1박2일, 남자의 자격의 작가 이우정은 Tvn으로 활동 범위를 옮기면서 예능이 아니라 드라마를 썼다는 것이 좀 놀랐다. 하긴 구성 작가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서 드라마 공부 하는 사람들 많이 봤다. 잘나가는 구성작가의 첫 드라마가 참 농익고 너무 맛깔나다. 그간 구성 써온 대본 실력 있으니 응칠이의 대사들이 매회 살아 숨 쉬었다. 이우정의 학창 시절 얘기는 아니고 실제 같이 드라마 집필했던 막내 작가가 토니안의 팬이었고, 그 모티브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2년 구성 좋고, 연기 좋고 지난날의 향수 한번 제대로 가져다 놓았다.

 

그런 드라마를 소설로 읽는 재미로 만든 책이 나왔다. 이우정의 극본을 가지고 소설을 다른 사람이 썼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을 놓고 소설로 쓴 작품이 많다. 보통은 소설 원작이 영화나 드라마가 되는데, 반대의 경우로 소설이 탄생했다. 16부작 드라마를 모두 응집 시킬 수는 없었지만 드라마를 스쳤던 대사들을 다시 한 번 보니 드라마 속 성시원과 윤윤제가 다시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윤제보다 준희에게 더 많은 호감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윤제보다 시원이 태웅을 만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짠하게 남았었다. 태웅의 가슴 아픈 사랑을 좀 더 위로해주고 싶은 모성본능이 일으켰는지 모르겠지만 태웅의 진득함이 참 좋았다.

 

 

드라마는 동창회를 시작으로 성시원의 남편이 누구일까 궁금증을 15회까지 잘 가져갔다. 나중에 시원과 윤제가 동침하듯 같이 지내는 것이 16부작 앞에서 나오면서 그간 너무 궁금했던 시원의 남편이 윤제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책 또한 과거와 동창회를 오가며 진행된다. 이미 시원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궁금하지 않지만 끝이 날수록 그들의 청춘이 아름답고 부러운 마음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다만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이 책을 만난다면 이미 본 향취를 다시 보는 과정을 조금 벗어난 구성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동창회와 과거의 교차 편집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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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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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올레 길을 다섯 시간쯤 걸을 때였다. 바다를 원 없이 마주하며 걸었던 날이었다. 그날 도중에 다리가 아픈 것도 있었지만 노을 지는 바다와 나, 그리고 간혹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서 있었던 어느 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3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서울 밖을 나가서 살아본 적 없는 서울 시민이었다. 그런데 제주도 올레 길에 빠져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딱 한번 있었던 서울 생활의 고단함에 하소연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이후 제주도 바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곳에 살고 싶다는 말을 잊고 말았다. 나에게는 아직 이루고 싶은 욕망과 욕심이 있었고 무엇인가 잃어 버렸다는 생각을 안고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때로는 갑갑해 미친 여자처럼 가방 하나 들고 훌쩍 강원도, 전라도, 가까운 아시아를 떠났지만 이내 서울 생활을 그리워하였다. 아마도 어딘가에 정착하기위해서는 나 스스로 뭔가를 이뤄내고 싶은 욕망이 더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였는지 장석주 시인의 시골 생활이 부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열심히 자식 뒷바라지에 허덕이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과 달리 호숫가가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다시 책을 읽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이십대에 이미 원하는 시인이 되었고 베스트셀러도 생겼고, 젊은 나이에 출판사 사장도 되어 보았고, 2만권을 소장 할 수 있는 재력과 (책값을 무시 못 하기 때문에 2만권의 책 중 선물 받은 것도 있다고 한들 그 많은 책을 사는데 드는 돈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그 방대한 책이 머물 수 있는 집도 있었지만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와 ‘수졸재’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산지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20대 초반의 [월든]을 쓴 작가 소로우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서 2만권의 책을 가지고 이제 3만권의 책과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는 책속에 열 번은 넘게 언급되고 있다.

 

 

이 책이 어떤 감흥과 조금 멀어지는 부분은 이런 그의 성공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이 마흔은 인생의 오후라고 얘기하는 부분에 동의 할 수 없는 부분과 마흔에 접어들면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뤄내야 한다는 그의 얘기에 비록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마주하게 될 마흔에 그처럼 성공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보여 줄 수 없는 현실에 당혹스러운 마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성공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나름의 뜻과 의미는 있지만, 개인마다 느끼는 성공의 척도는 다를 것이다. 백세 시대라고 하면 마흔은 정오를 향하고 있는 아직은 오전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의 오후 발언은 거슬렸다. 물론 이런 거슬림 또한 나에게 급하게 닥칠 시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나의 발악 같은 마음을 위로하고자 그도 꿈이 있다면, 마흔은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P16)라고 하기도 한다. 인생이 하나의 여정이기 때문에 그 여정을 중요시 하고 열심히 살아가며 인생은 그 어떤 확신과 답도 없으니 마흔은 분명 아직 불완전한 성인 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직 마흔이 되지 못한 나의 시간에 조바심 내지 말고 마음의 공간을 비워둬야 할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서재에 있는 책 3만권을 계속 자랑한다. 그리고 나이 마흔과 관계없이 책 읽기의 중요성을 얘기해 줬다. 책이 사람을 바꿔 놓기도 하지만 때로는 절망감도 주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의식을 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로 가는 행위다. 책을 읽는 행위는 혁신적인 사유를 촉발시키고 존대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우리를 새로운 어떤 세계로 데려가는 일이다.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나아간다.” (P118)

 

 

새로운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들중 때로는 우리는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길을 일은 뒤 자신이 처한 불확실성을 참아내는 법, 의심에서 만족을 만들어내는 법,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 혹시 잃어버린 길 위에서 얘기치 않게 새로운 길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것은 길 잃기가 주는 선물이고 보상이다.” (P157~158)

 

 

 

자연과 함께 모든 것을 비우며 살기위해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간 저자가 느낌 10여년의 세월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는 많은 책들을 얘기하며 비움과 자연과 함께 나누는 시간들을 얘기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소장한 3만권의 책 때문에 절대로 그가 어떤 비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자의식이 이상하게도 비움과 다른 어떤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가 이뤘던 성공에 가깝게 가기위해 살고 있는 나는 책을 읽고 그처럼 비움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방대한 독서를 한 저자와 달리 너무 부족한 독서와 책을 소장한 독자와의 간극 때문에 책이 거리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책을 다 읽고 이와 비슷한 책들이 말하는 무소유의 삶이 주는 가벼움을 느끼지만 아직은 양손에 들고 있는 가지고 싶은 삶의 환의의 기분을 놓을 수 없는 것이 3만권의 책이 없는 부족한 독자기 때문에 비움의 미학을 모르고 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온 그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그의 인생을 참 알차게 마흔을 맞았고, 그동안의 시간에 보상을 주듯 남은 시간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마흔과 마주 할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즐기며 도시 생활을 느리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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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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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그런 생각을 해 왔다. 나에게 일정 기간의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여행을 할 것인가. 그럴 때 생각하지도 않고 말 할 수 있는 여행지는 번호 3번까지는 나올 수 있다. 첫째는 산티아고의 800키로가 넘는 길을 걷는 것이고, 둘째는 더운 인도의 길을 돌아다니는 것이고, 셋째는 스위스의 융프라우에 가는 것이다. 스위스를 빼면 나머지 여행은 한 달 이상의 시간이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주며 선택하라고 하면 너무 많은 나라들이 줄지어 있어 쉽게 떠올려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고민을 안고 한 달에 한명씩 바통을 이어 태마가 있는 여행을 가게 해준 프로젝트로 책이 한권 나왔다. 한명이 떠났다 돌아오면 다른 한명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자신만의 여행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기획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여행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설레는 사람들이 있는지. 은희경의 호주, 이명세의 태국, 이병률의 핀란드, 백영옥의 홍콩, 김훈의 미크로네시아, 박칼린의 뉴칼리도니아, 박찬일 셰프의 규슈, 장기하의 런던 그리고 리버풀, 신경숙의 뉴욕, 이적의 캐나다. 책을 읽는 것은 그들과 동그란 지구를 돌고 오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여행을 시작한 은희경의 여행의 의미는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은 호주였다. 사실 조금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의 도시를 탐색해 줬으면 했던 작가 중에 한명이었는데 그녀의 선택의 나라가 조금 시시한 것 같았는데, 그녀의 와이너리에 대한 얘기에 시시함이 사라졌다.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추운 겨울날 마시는 뜨거운 뱅쇼는 좋아한다. 싸구려 와인을 넣었을 때와 조금 돈을 들인 와인을 넣었을 때의 뱅쇼의 맛을 아직 구분하지 못하지만, 뱅쇼 때문에 와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은희경의 호주 얘기에는 흥미로운 와이너리에 대한 얘기보다 역시 그녀의 삶을 통한 글이 더 좋았다. 풍경을 더 보기 위해 헬기를 타고 웅장한 자연의 규모에 자신의 속의 어떤 공간을 더 넓혀 오는 느낌을 받아 오는 그녀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을 느끼는 건 익숙함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낯선 것 가운데에 들어가면 간혹 내가 더 또렷이 보인다. 내 삶의 틀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의 더러움과 하찮음도 보게 되고, 무심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깨친다.” P42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도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것, 낯선 나를 만나는 것일까. 그리고 작은 나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나로 돌아가 다시 갈아가는 것, 그것이 그녀의 여행의 이유였을까.

 

 

모든 이들이 여행지를 고른 이유 중에 사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테마가 이명세였다. 그는 영화 준비를 하고 있었고 배경을 태국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 이런 여행기속에 꼭 자기 성찰의 부분만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영화를 위한 답사로 선택된 태국에 이건 아니지 싶다. 마치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느낌이랄까. 사전 답사는 자신의 돈이 아닌 남의 여력을 빌려 갔다 온 것 같아 그의 여행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 블로그들이 워낙 많으니 조금만 찾아보아도 갔다 온 것 같은 여행기들이 많아 어쩌면 여행기속 사진들이나 나라들은 식상 할 수 있을 같다. 그런 부분에서 김훈과 박칼린이 선택한 나라는 최고였다. 이름도 어려웠던 김훈이 찾아간 미크로네시아. 그의 여행 태마는 또 얼마나 거대한지.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라고 한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심연의 바다는 심장이 단단해졌다. 심연 공포증이 있는 나는 이런 깊은 물 사진을 잘 못 본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래서였을까, 인간이 참 무력 하다는 것 그 심연을 보는 순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미크로네시아_ 깊은 우물같은 이 아름다움

 

 

그녀의 눈처럼 신비로운 해안의 색을 가진 뉴칼리도니아의 무인도. 박칼린의 자유분방한 모습과 많이 닮아 보였다. 그녀가 감독한 뮤지컬을 한편도 본적이 없지만, 그녀의 에세이 한권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은 갈 수 있었는데, 그녀의 여행 준비가 나와 많이 닮았다. 여행을 가지전에 사전 작업을 많이 한다. 여행 갈 나라의 서적을 읽는 것은 기본이고 다녀왔던 블로거들의 여행기를 한 달 정도 찾아다니며 읽는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 한다고 한들, 여행은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준비 되어 떠나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준비 되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 여행일 것이다. 그저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여행이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라고 한다. 그 어떤 것도 땔 수 없고 때로는 어디든 있는 것이 물이고, 도착 후 간절하게 바라는 시원한 생수고, 감정이 닿으면 툭하고 쏟아져 내리는 눈물 같은 수도꼭지라고 나만의 그녀의 여행을 정리해 봤다.

 

뉴칼리도니아_ 그녀의 눈처럼 아름다웠던 그곳.

 

 

그녀의 여행지 선택도 그녀처럼 감각적이다. 바다로 가라고 바람이 말했다고 하지 않던가. 재치와 감각이 고스란히 자리 잡은 푸른 바다가 가득한 여행, 아름다웠다.

 

 

 

박찬일의 여행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화룡점점을 찍지 못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맛있는 음식도 함께여야 하니까. 그의 여행의 의미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하는데, 딱 맞는 여행지의 선택이다. 일본의 큐슈 에키벤 여행. 신칸센에서 먹는 도시락이라니. 얇은 대나무로 만든 도시락 통에 매실 장아찌, 연근, 은어 한 마리까지 들어있는 도시락을 먹으며 가는 기차여행은 낭만적이다. 이것이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 기차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가 번진다. 마치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먼저 기차를 타고 도시락을 먹으며 한번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신칸센의 도시락.

 

 

 

이 여행기속 가장 빛나는 글을 역시 모든 여행을 함께한 이병률의 핀란드 여행이다. 여행에 동행했던 작가들이 쓴 글들보다 일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한 그의 내면의 마음이 가장 빛나 보였다. 물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중에 하나인 핀란드여서 더 눈이 반짝였는지 였을 수도 있다. 그에게 여행이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라는 말에도 나에게 여행이라는 의미와 가장 비슷하다. 지금을 살고 있지만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 순간은 지금이 아니고 언젠가, 혹은 아주 오래전 때로는 미래의 어디쯤이라고 생각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은 더 아련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맞는 것이 아닐까.

 

 

 

그곳은 언제나 크리스마스 _ 핀란드

 

 

 

 

 

문득 나에게 여행의 의미를 물어 본다.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몇 년 전 해남을 갔다 오면서 나는 친구에게 이런 문자를 한통 보냈었다.

 

 

 

“새해, 여행을 했어. 나에게 여행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었어. 지금 서울을 올라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어 행복해.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봐”

 

 

 

내게는 여행이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떠났던 자리에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곳이 있는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여행을 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추억을 간직하며 지금의 자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 얼마 안 된다.

이런 나의 생각과 많이 맞닿아 있던 박칼린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흘렀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내가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라면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보다. 난 어느 날 멋진 뉴칼레도이나 남자를 만났고, 그의 멋진 등을 보며 상상의 세계를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게.“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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