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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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쟁이 김훈의 오랫만의 소설이다.

 

  아직 읽어야할 책들이 많고, 소설을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굳이 사지 않았던 책이다. 그런데 책을 빌려줬던 녀석이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선물해 준 책이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단숨에 읽었다. 김훈의 소설이 그렇듯이 읽히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른 소설보다 쉽게 읽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중간중간 멈춰서는 부분이 있다. 연대기를 따라서 가는 일반적인 소설과 김훈의 소설이 다른 점이 이 부분이다. 정신차리지 않고 읽다보면 시간과 공간이 꼬여 있다. 갑자기 이 사람의 삶에서 저 사람의 삶으로 넘어가 있기도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마차세의 삶에서, 마장세의 삶으로, 마동수의 삶으로, 이도순의 삶으로, 박상희의 삶으로 넘어간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삶인데 그들의 삶이 섞여 있으니 막힐 수밖에 없다.

 

  소설의 시대배경이 그렇듯이 주인공들의 삶은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 돈, 사랑, 직장, 자녀 등등 모든 가치관들의 이면에는 살아남는 것, 이 난리를 이겨내고 살아남는 것에 가 있다. 어떤 사람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데 같이 산다. 어떤 사람은 군수물자를 삥땅치고,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돈다.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그는 그렇게도 싫어하던 한국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얼마의 돈을 보내면서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장남으로서의 역할을 동생에게 떠넘긴 미안함을 달랜다. 물론 그에게 미안함이라는 말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각자가 여러가지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들의 삶에서 무엇이 남았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모질게 연명해온 목숨이 끊어지기도 하고, 쓸쓸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잘나간던 사업도 어느날 파산하고, 함께 살던 부인도 부하 직원과 떠난다. 형과 동업하던 마차세도 좋은 시절을 보내고 택배 배달기사로 서울 남부 순환 도로에서 동부 순환 도로로, 외고가 순환 도로에서 내부 순환 도로로 하루종일 달린다. 꿈도 젊음도 사라지고, 소시민의 모습만 남아 있다. 김훈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전혀 영웅적이지 않다. 그렇게 아등바등했는데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막막한 세상 속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하나 없이 부평초처럼 떠돈다. 박상희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도 편지를 보냈던가? 그 편지를 과연 장세의 부인은 받았을까? 받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이며, 받았더라도 읽을 수는 있었을까? 등장인물들의 삶에서 한가지를 생각해 본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들의 젊음을 소비했는가? 인생이 무상하다.

 

  다만 이 책에서 발견한 한 가지 희망은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은 살아가고, 아이들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박상희가 옷가게를 차렸다. 누니가 혼자서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그나마 마차세의 삶이 다행이다 싶은 것은 모두가 공터에 서 있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상희와 누니라는 몸을 기댈 수 있는 작은 거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만 이 책이 몇 페이지가 더 연장된다면 어떤 모습들이 그려질까? 상희의 옷가게는 마트에 쫓겨서 매출이 급감하여 폐업하게 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고, 누니는 세상에 귀신은 없지만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때닫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차세는 취업통보를 기다리면서 결코 임시직일 수 없는 임시직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너무 멀리 나갔는지도 모르겟다. 그렇지만 자기 주인공들의 삶을 그리면서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해야 하는데 허허롭다. 마치 내가 공터에 서 있는 것 같다. 이또한 글쟁이 김훈의 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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