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 창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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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소설이다.

  

  중국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썰을 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루쉰을 이야기할 것이고, 그의 소설 아Q정전은 당연히 따라나오는 것이니 유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보면 이 책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야 마땅한 소설이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제목은 알고, 내용도 아는데 실제로 읽어보지는 못한 것들! 이것이 고전이 아니겠는가? 나에게도 이 소설은 고전의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고, 아Q정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루쉰 단편소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책에서는 놀랍게도 아Q정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광인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흥미가 생겼고, 생일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선물로 사주었던 책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이제야 리뷰를 하게 되니,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하는 일이라고 해도 내 게으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Q정전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광인일기와 아Q정전이다. 혁명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근대를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다른 분위기로 그리고 있다. 광인일기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저자는 피해망상증에 걸린 친구의 일기를 입수하여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면서 서사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물론 광인의 일기는 루신의 생각이겠지만. 광인은 지금까지 지탱된 사회는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사회라는 것은 중국의 유교 체제와 왕조라는 통치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런 시스템을 통하여 백성들을 쥐어짜고,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왔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통찰은 지식인 내지는는, 권력층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통찰이기에 나는 광인일기가 근대를 살아간 지식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 체제 속에서 본인도 사람을 잡아먹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도 사람을 잡아먹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는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 식견과 교육을 가능하게 한 것이 본인들이 비판했던 사회 체제의 서포트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는 당시 중국 지식이의 절망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반면 아Q정전은 당시 지식인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Q는 원래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얻어터지고, 저기서 얻어터지고는 강자 앞에서는 정신승리를 외치는 사람이다. 실제적으로는 얻어터지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내가 이겼다는 자기 만족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자기 만족이라는 것도 얼마나 기만적인가? 자기보다 약하거나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샌가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쏟아내니 말이다. 이러한 아Q가 시대의 흐름 속에 휩쓸려 들어간다. 뚜렷한 이념도 없이, 상황에 따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린다. 마치 아Q는 가만히 있는데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결국 아무 생각이 없던 아Q는 혁명이다, 반혁명이다라면서 자기도 의도하지 않게 정치적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고, 죽어도 마땅한 사람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광인과 아Q 모두 혁명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바람직한 인간상은 아니다. 이 두 사람 모두 시대에서 새롭게 사람을 잡아먹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다가 도태되었다. 중국만 그런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루신의 이 소설이, 단편 길어야 중편인 이 소설이  왜 중국의 근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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