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심리 상담 - 병든 한국 사회는 청년들의 내면을 어떻게 파괴했는가
김태형 지음 / 다시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청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참 괜찮은 녀석들이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꽤나 반듯한 아이들이 많다. 요즘 젊은이들은 생각이 없고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은데 내가 만나본 녀석들은 그렇지 않다.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판단을 하는 어른들이 문제이지, 그들은 결코 생각이 없지 않다. 오히려 요즘 녀석들은 생각이 없어라고 말하는 그들이 젊었을 때보다 생각이 더 많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그래서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들이 생각이 없어서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 한 녀석이 생각이 난다. 지금은 어학연수를 위해 외국에 나가 있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어디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외모도 그 정도면 예쁘장하게 생긴 편이고, 성격도 모난 곳이 없다. 학교도 괜찮은 곳을 나왔고, 책임감도 있다. 공동이 해야 할 일을 맡길 때에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인턴을 몇번 하면서 면접을 보다가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어학연수라는 스펙을 쌓기 위하여 외국에 1년간 나갔다. 잘 다녀오라고 축하해주고 보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얼마나 청년들을 몰아 붙여야 하는가? 이런 안타까움 때문이다.

  처음 이 녀석과 대화를 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커피 한잔 사주면서 요즘은 어떻게 살아가니로 시작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그 녀석의 아픈 부분을 찔렀다.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그날은 작심하고 만났기 때문에 일부러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그 녀석의 사촌들이 꽤나 잘나간다. 의사도 몇 있고, 취업해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래서일까? 그 녀석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매우 컸다. 자기도 모르고 있지만 부모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부모가 자신이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자랑스럽게 밝히도록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처음 들어간 학교는 그러한 기준에 모자랐기 때문에 반수를 했고, 이름을 내밀 수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한동안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졸업할 때가 되어서 문제가 발생했다. 취업도 마찬가지의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데 쉽지가 않다. 매일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떨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그 녀석의 자신감이 계속 추락을 한다. 그 녀석의 부모도 그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닌데 스스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신을 계속 몰아 붙인다. "괜찮니?"라고 물어보면 "괜찮아요."라고 답하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한잔 하면서 그 녀석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내가 보기에 너는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아.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거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당황했다. 커피숍에서 비록 그녀석하고 10살 이상 차이가 나지만 남녀 둘이 앉아 있다가 여자가 무슨 말을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오해하기 딱 좋은 그런 그림이다. 게다가 괜시리 그 녀석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참을 말없이 울더니 냅킨을 가져다가 눈물을 닦고 "창피하게 울었네요. 아! 창피해!" 이러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았다. 그 녀석의 부모님이 조심스러워서 지금까지 살면서 한 마디하지도 않고, 눈치도 주지 않지만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이 녀석이 이후에 참 고마워한다. 그날 내가 그 녀석에게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커피 한잔 사주고, "넌 꽤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 한마디 해준 것 밖에는 없다.

  이 녀석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럴 때마다 같은 이유로 힘겨워 하는 녀석들을 만났다. 내가 보기에는 꽤 괜찮은데, 자꾸 스스로를 몰아 붙인다. 그나마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녀석들은 회복이 빠른데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도무지 회복이 되지 않는다. 군에 있을 때에는 그러다가 자살한 녀석도 몇 명 봤다. 

  요즘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더 이상 유행어가 아니다. 일반 명사가 되었다. 왜 그럴까? 어느새 이 나라에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시대를 지나면서 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라는 것이 서열화 되는 것이 아닐진대 수능 점수로, 혹은 학교로, 혹은 직장으로 사람을 서열화 한다. 누구는 금수저, 누구는 흙수저로 분류가 된다. 그 사람의 조건이, 그 사람이 처한 서열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데, 그것이 마치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내는 것인양 마음대로 판단해 버린다. 그러니 상위 그룹에 속한 사람은 굴러떨어질까 두려워서 하위 그룹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인색의 낙오자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여서 살아간다.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리라. 이 책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이 책에 기록된 내용들이 특별한 몇몇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케이스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를 보자. 이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한트럭은 찾을 수 있다. 그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야,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야, 지금의 아픔이 너의 인생에 귀중한 밑거름이 될거야 이런 식상한 말을 하지 말다. 그냥 진심을 담아 한마디만 해주자.

  "넌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그 무슨 말보다 위로가 될 것이다. 이 시대의 아픈 청춘들에게 "넌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