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정권부터 우리 국민들이 우리 정부를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글로벌 호구"

 

  참 씁쓸한 말이다. 글로벌 스챈다드를 외치는 시대에 맞게 호구짓도 글로벌로 하다니. 전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미국 대통령의 카트를 끌어줬다. 여당의 전 대표라는 사람은 주한미군 사령관을 업어 주었다.(물론 펠레의 저주에 맞먹는 저주라는 기가 막힌 일도 일어나긴 하지만.) 현 대통령은 외국 순방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에 귀국이라 부르지 말고 방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외국 순방을 많이 한다. 중요한 결정은 거의 대부분 외국에서 전자 결제하기로 유명한 분이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말이다. 그렇게 외국을 자주 순방하면서 마일리지를 쌓는 것 외에 어떤 성과도 없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 발표 후로 중국에 가서 그렇게 혐오해마지 않는 북한 정권보다도 못한 대우를 중국으로부터 받았으니 한국이 얼마나 국제 사회에서 호구짓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조선사를 배우면서 광해군은 연산군에 맞먹는 폭군이라고 배웠다. 인조 반정은 잘못된 것을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의로운 행동이라고 배웠다. 흥청망청이라는 한마디의 말로 광해군을 깎아 내렸던 역사를 배운 나에게 있어서 광해군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은 광해군에 대한 재해석을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씌여졌다. 물론 재해석을 한다고 광해군의 오점을 일부러 누락하거나 하지 않는다. 광해군의 악정은 분명한 악정임을 짚고 넘어간다. 다만 이 책은 광해군의 외교에 대해서만큼은 큰 점수를 주고 있다. 명의 쇠퇴와 청의 발흥 사이에서 조선의 사대부들이 명으로 경도되어 있는 시대 속에서 광해군은 명과 청 사이의 외줄타기 외교를 통하여 실리적인 외교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광해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도, 청도 아닌 조선이었다는 의미이다.

 

  이 시대에 광해군이 필요하다는 말도 이런 의미이다. 조그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세계 열강이 모여 있다. 전 세계 군사력의 10위 안에 있는 국가들의 이익이 얼마나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지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미묘한 관계 속에서 한국은 충분히 실리 외교를 취할 수 있다.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이 미묘한 상황을 잘 활용하여 자주 통일과 자주 국방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 정권과 이번 정권의 대통령은 다른 의미의 광해군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던 폭군으로서의 이미지, 벽창호로서의 이미지를 덧 씌운 광해군의 이미지만 추구한다. 그의 외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외국에 나가서는 온갖 호구짓은 다하면서 자국민을 향하여서는 준엄하게 꾸짖는 행태는 영화 광해군에서 신하들이 보여주는 행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다.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고, 유지 될 수도 있다. 다만 외교에서만큼은 지난 두 정권과는 다른 사람들이 집권했으면 좋겠다. 내가 반기문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리 외교, 아직은 우리에겐 너무나 먼 유토피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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