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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타키투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3월
평점 :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책이다. 역사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늘과 대동소이하다. 이 책이 먼저 쓰여졌으니 오늘날의 역사관이 타키투스의 역사관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책은 당시 로마를 힘들게 했던 게르만 민족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민족적으로 접근하면서 기록한 책이다. 게르만 민족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로마와 전쟁을 벌이면서이다. 물론 로마와 전쟁을 벌이기 전에도 게르만 민족이 존재했지만 문자로 기록된 역사에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로마는 공화파와 민중파의 대립으로 평화가 위협받게 된다. 이때 등장한 민중파의 우두머리가 마리우스이며, 그 뒤를 이은 것이 공화파의 술라이다. 마리우스가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로마의 북부 지역에 킴브리족과 데우토네스족이 침입하게 된다. 이를 물리치면서 마리우스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인기와 권력을 공고히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킴브리족과 데우토네스족이 바로 게르만 민족이다. 이후 게르만 민족은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점령하고 북상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로마와 접촉하게 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서 게르만을 점령하려는 강공책을 쓰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고, 그의 후계자인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에 라인강 서쪽으로 철수하면서 게르만 민족은 자기들의 세력권을 지키게 된다. 이후 에도 여러가지 접촉을 하게 되고, 게르만 민족은 훗날에 서로마를 무너뜨리는 민족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참고로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보면 막시무스가 상대하는 둥근방패를 들고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민족이 바로 게르만 민족이다.
타키투스가 게르만 민족에 관한 책을 기록한 이유는 로마인들에게 게르만 민족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고, 경계하게 하기 위함이지만, 그의 후예들은 제국의 평화에 빠져서 게르만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타키투스가 우려하고 경계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서 그의 식견이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게르만이라는 타민족, 그의 입장에서 중심인 로마가 아닌 변방인 게르만 민족을 야만으로 바라본다. 문명화 되지 못하였으며, 할줄 아는 것은 싸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상무 정신과 주군을 향한 충성심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음울하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곳으로 그리는 그의 묘사를 바라보면서 변방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가 변방을 규정하고 바라보는 시선의 작동 방식은 대개 이렇다. 나와 타자를 구분한다. 그리고 타자를 적으로 간주한다. 나는 중심이고, 적으로 간주된 타자는 변방이다. 그리고 그 변방은 세련되지 못하고, 문화도 없고, 무엇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야만인들이다. 흔히 야만인을 지칭하는 바바리안이라는 말자체가 가지는 의미도 그런 말이 아닌가? 타키투스의 이런 시각은 오랜 세월을 두고 재생산되었다. 타키투스가 바바리안이라고 불렀던,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취급했던 변방의 민족인 게르만 족에 대한 책 게르마니아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아이러니하게도 2차대전 당시 히틀러가 애독하는 책이 되었다. 강대한 국가 로마 조차도 무너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 민족의 후예가 독일임을 앞세우면서 히틀러는 또 다른 변방을 만들어 냈고, 타키투스와 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취급했다.
히틀러만 그랬겠는가? 같은 민족 안에서도, 같은 국가 안에도 이러한 변방의 작동 방식은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좌빨과 우꼴이라는 논리도 그렇고, 오늘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개돼지 논쟁도 같은 맥락이다. 단어만 변방 혹은 야만으로 바꾸어 놓으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게르만이라는 한 민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바라보는 하나의 좋은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부담이 없는 분량과 깔끔한 번역은 책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