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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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나 이슈가 되었던 책이다. 대체로 성경을 비비꼰 이야기들은 세간에 화제가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작가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주제 사라마구이니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랴. 게다가 출판사에서 전략적으로 12월 25일을 출간일로 잡았으니 더 이슈가 되리라. 원래 책에 대한 편식이 심한 편이라 소설을 잘 안 읽는(소설만 잘 안읽는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나이기에 카인이라는 제목과, 작가, 그리고 막 희생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묶여 있는 어린 양이 그려진 표지를 보면서 성경을 비비꼰 책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넘어갔다. 며칠 지나서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대학 동기가 읽고 감상을 기록한 글이 올라왔다.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알라딘 베스트셀러 중에 이 책이 문학 분야에서 꽤 오랫동안 랭크되는 것을 보면서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책을 주문하면서 5만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집어 넣었다. 지금은 5만원을 채운다고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도서정가제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5만원을 채우는 것은 알라디너들의 즐거움이자 목표이자 의무였다.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서 책 주문시 항상 5만원을 채우게 된다.

 

  이렇게 사놓고 책꽂이에 박아두었다가 연휴 기간에 꺼내서 읽게 되었다. 역시 소설책은 쭉쭉 넘어간다. 만약 내가 스물에 이 책을 접했다면 엄청난 고민을 하면서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고민이 되지 않는다. 읽어가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 비하면 가볍다는 정도? 스물에 교회 선배가 던져주었던 사람의 아들을 읽는데에는 몇달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읽다가 던지고 또 읽다가 던지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교회를 다녔던 내게 사람의 아들은 그정도의 충격이었다. 잠시 곁길로 가지만 지금의 이문열씨의 행보를 보면 안타깝지만 사람의 아들이 내게 주었던 충격은 부인하지 못한다.

 

  읽는 내내 도대체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왜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소설에 나오는 성경의 이야기들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책이 내게 더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많이 다르다. 기독교의 신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나 로마의 신과 비슷하다. 편을 나누어서 사람들의 전쟁에 끼어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판을 깨는 그런 신의 모습 말이다. 카인은 그런 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대적하고, 저주하고, 신의 계획을 깨버리기 위해 노아의 방주 사건을 이용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적인 고뇌를 가지고 신과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소갈머리 없는 신이라 이름붙여진 인간과 애정결핍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차 있는 카인의 입씨름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인간적인 고뇌도 없고, 신에 대한 반발도 없다.

 

  책을 덮으면서 요한복음 1장 1절을 약간 비틀어서 한마디로 평을 내려본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태초에 책임전가가 있었느니라 책임전가는 카인과 함께 있었으니 이는 곧 사람의 본성이니라

 

  소설 속의 신과 카인은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한다. 신은 자신의 계획을 흔드는 카인에게, 카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아벨을 편애한 신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내가 아벨을 죽인 것도 신이 알면서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 소설은 시종일과 신과 카인이 책임이라는 공을 가지고 탁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아마 작가는 카인이 가여웠나 보다. 마지막에는 카인이 강력한 책임전가 스매싱을 날리고, 신은 이에 짜증을 내는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보니 말이다. 물론 소설은 끝나지만 그들의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카인이 존재하는한, 사람이 존재하는한 책임이라는 공을 가지고 하는 탁구시합은 끝나지 않으리라.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다. 옥시 사태가 그렇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중범죄가 그렇고, 온갖 스캔들이 그렇다. 잘못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는 책임전가 신공, 그리고 그 신공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함께 훈련한 철면피 아우라는 흡사 카인의 한 대목을 현실로 옮겨 놓은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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