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평양!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이 두 마디는 잊을 수 없는 단어이다. 교회 부흥운동이 시작된 해와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을 계기로 한국의 기독교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0년전 Again 1907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그 프로젝트를 보면서 어찌나 그리 창피하던지! 당시 모였던 장소가 상암이다. 집회 장소 밖에서는 홈에버 해고자들이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기독교의 거두라는 사람들은 죄다 경기장 안에 오며서 회개를 외치고 있었다. 그 안에는 김성수 회장을 추켜세웠던 큰 목사님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절망스럽고 부끄럽던지.

 

  1907년 평양의 대부흥 운동도 마냥 좋았다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영적 각성 운동이라면, 진짜 기독교라면 당시 민족의 아픔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하지 않았었을까? 신비주의, 성령운동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평양 대부흥운동의 가장 아쉬운 점이 이것이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할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고, 기독교의 사회적인 책임을 제거하여 일제에 순응하는 기독교로 전락하게 되어버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2월 5일 광화문에서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조계종 화쟁 위원회에서 발벗고 나섰단다. 그럴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관심이 조계사에, 그리고 화쟁 위원회에 쏠렸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보는 바와 같다. 종교가 할 수 있는 영역에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그럴듯한 변명과 함께 사실상 한위원장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것이고, 그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민중총궐기가 평화롭게 진행되기 위하여 화쟁 위원회에서 참여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평화 집회를 위해서 경찰에도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에도 요청을 했으며, 차벽대신 사람벽을 만들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나는 문제를 삼고 싶다는 것이다.

 

  화쟁이라는 말, 불교의 정신을 실천하겠다는 그럴듯한 말을 통해서 문제의 핵심이 가려졌다고 본다. 차벽을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종교계에서 차벽을 치우라고 요청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차벽대신 사람벽을 만들겠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가? 국민들이 왜 그 자리에 모이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갑자기 끼어들어서 평화시위를 요청한다는 말은 내가 위에서 이야기한 평양 대부흥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시위를 하면서 평화롭게 하는 것도 좋다. 시위를 하면서 질서를 지키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그 시위의 목적이 평화롭게 집회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진정 조계종에서 이 문제를 화쟁의 정신으로 풀고 싶었다면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들어가야지 표피적인 단계에 머물러서 평화를 요구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말할 것이라면 차라리 끼어들지 말았어야 한다. 그렇게 끼어든 조계종 때문에 민중총궐기는 평화롭게 모였다가 흩어진 집회가 되었다. 무엇을 위해서 모였는지도 없고, 그냥 평화롭게 모였다가 흩어진 집회가 되었다. 고작 이 기사 한줄 내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일까?

 

  그냥 묻고 싶다. 그날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모였던 것일까? 조계종의 진정한 속내는, 그리고 그 기사를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속내는 무엇일까? 내가 전혀 몰랐던 도법이라는 이름을 굳이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상균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도법이라는 이름만 남은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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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8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6-01-2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았습니다 제가 트위터 안한지 몇년이 되어가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