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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텔레비전을 틀면 손범수씨가 심심치 않게 나오신다. 가입 조건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처리해 주겠단다. 이 광고의 특징이 있는데, 광고를 계속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암에 걸릴 것 같다는 것이고, 나도 살면서 암에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는다면 나는 가족들에게 상당히 무책임한 가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암보험에 가입한다.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다. 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암에 관해서만 말하고자 않다. 사람들이 암 선고를 받으면 불안해 한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것처럼 꼭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 그런가? 암의 특징 때문이다. 암의 특징은 무한증식에 있다. 암세포는 어느 정도 선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증식을 하고, 그 결과 암세포가 기생하고 있는 생명체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흔히 자본에 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본을 암에 비유한다. 끝을 모르는 자본의 자가 증식, 그리고 이 자가 증식 과정 속에서 피도 눈물도 없으며, 결국에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까지 망가뜨리기 때문에 자본을 암세포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마지막까지 증식하는 자본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제기한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는다는 책의 제목만 보고 있으면,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어마 뜨거라 하면서 깜짝 놀랄 것이다. 반대로 기대감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은 상당히 특이한 제목인데라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이라고 할지라도 뜨악하게 된다. 책의 내용은 책 제목처럼 빨갛지도 않고, 전혀 사상적이지도 않다. 물론 저자의 글 행간에 담겨 있는 사상이 맑스의 자본론에 입각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저자는 도시 생활의 부적응자이다. 자기 부인과 함께 천연 효모를 가지고 빵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 다음 조용한 시골에 정착한다. 쉽게 말하면 귀농을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람이 꽤나 행복하게 산다. 자기의 시골 생활에 대해서 패배 의식도 없고, 그렇다고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가족들과 꽤나 행복하게 살아간다. 자기가 원하는 천연 효모를 가지고 빵을 만드는 분야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를 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빵집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그의 다음 행동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온갖 상상을 한다. 대개는 이렇게 인기를 끄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더 넓히고, 삶의 많은 부분을 빵집을 경영하는데 쏟을 것이라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삶은 전혀 반대로 간다. 빵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주일 가운데 며칠은 빵집의 문을 닫는다. 빵집 운영 시간도 한국의 유명 프렌차이즈 빵집처럼 늦은 시간까지 열지도 않는다. 딱 그날 정해진 분량만 팔고,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간에 마감을 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여름 휴가 또한 상당히 길다.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유럽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빵집을 운영하면 금방 망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의 빵집은 망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적자가 누적되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저자의 경영 마인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업이 잘되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욕망을 키운다. 그렇지만 저자는 빵집을 키우기보다는 자기의 욕망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지속 가능성에 있기 때문이다. 욕망으로 자신을 가득채워서 빵집 경영에 올인하면 그 삶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빵집을 유지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월급을 줄 정도가 되는 선에서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하고 있다. 그의 자제력과 실험이 어느 정도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대로만 갈 수 있었어면 좋겠다.
지금 한국에서는 철지난 트리클 다운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파이를 키운다음에 나누자고 하는 선성장 후분배를 말한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과거로 회귀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이미 세상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져 있다. 고령의 국민들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하다. 다만 그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과 경제인들도 자본에 종속될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다.